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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갑자기 덕님께 카톡이 왔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이 주최하는 아시아 리와일딩 포럼에 김성란 박사님이 연사로 참여하신다고 알려주셨어요. 평소 생명다양성재단의 여러 활동에 대해서 진실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괜히 바빠서 흘려보내고 있었는데 덕님이 운명처럼 보내주셨어요.
어릴적부터 제인 구달,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올리버 색스, 최재천, 최근의 김산하, 김상욱 등 과학자이면서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인 분들의 책은 많이 읽었어요. 김산하 박사님, 최재천 교수님 강연은 참 매력이 있지요. 여타의 과학자가 포럼에서 발표하지 않는 인문학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어요. 오늘도 일찍 도착해서 인사부터 드렸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은 제 친정아버지와 고등학교,대학교 동창이시라는 것은 알았는데 두분이 생각보다 친했다는 것은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두분이 생김새가 언뜻 비슷해서 친구들이 닮았다고 늘 얘기한대요. 반골기질도 고집도 닮으셨어요. 아무튼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교수님 호천이 외손녀 왔습니다', 하면 더 기쁘게 반겨주세요^^ 김산하 박사님은 지난 여름에 한강조합원으로 참여했던 1박2일 수달캠프에서 처음 뵈었어요. 김산하 박사님은 야생의 자연을 전달할 방법을 찾다가 커뮤니케이션과 디자인을 공부하러 영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까지 하신 행동하는 학자이시죠. 김산하 박사님의 <야생학교>라는 책에서는 박사님의 개성있는 드로잉과 컬러링을 신랄한 글과 함께 볼 수 있어요. 진천 수달 캠프때는 못 챙겨갔던 번역서 활생(Feral)을 가져가서 싸인을 받았지요. 그런데 감격적이게도, 세연이에게 무슨 동물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시더니 세연이가 '수달하고 맹꽁이요!' 하니까 수달을 직접 그려주셨어요^^
1부는 김산하 박사님이 시작하셨어요. 야생은 자연 속의 일부가 아니라 스스로 자연을 만드는 존재이며, 활생(리와일딩)은 무엇에 대항해 싸우는 것이 아닌, 무엇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물러나서 지켜보는 것이라고요. 자연을 싹 정리해내기로 유명한 일본의 쿠니히코 오츠키씨. 일본의 마지막 늑대가 있던 쿠마노숲에서, 시카 사슴이 나무 껍질 어린 나무 뿌리까지 다 먹어치워 산사태가 일어나는 상황을 보여주셨지요(김산하 박사님 활생에도 나왔던 영국의 목초지대와 똑같은 상황) 늑대가 와야만 하는데도 섣불리 재도입하지 못하는 상황. 답답하지만 그래도 끝끝내 일하고 알리고 교류하고의 반복, 작지만 늑대 박물관도 만든 평생의 노력이 대단했어요. 일본에서 늑대는 원래 신령스러운 존재였다는데 모두들 무서워해서 아예 신으로 만들어놓고 신으로서만 존재하게 두는 건가요. 일본에서 좋은 소식이 들린다면 멧돼지와 고라니를 포획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할 수 있을텐데요. 오츠키씨 응원합니다.
정원도시, 싱가포르. 예쁘게 치장된 숲, 자라난 풀을 베어버리는 깔끔함. 강민응오씨는 싱가포르의 숲을 '매니큐어'한 숲이라고 했어요. 왜 사람들은 '지저분'을 참지 못할까요? '무질서' '다양함'은 왜 싫어할까요? 원래 싱가포르에 있었던 원시 열대우림을 보고 싶어하는 강민응오씨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작은 나라이다 보니 규모의 한계가 있지만 운행이 중단된 말레이시아와의 철도선을 따라 자연과 숲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며 시민들과 야생복원활동을 하고 계셨어요.
일본과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안타까움과 공감 속에 보았다면, 다음 세션의 인도네시아와 몽골은 무척 부러웠습니다. 일단 압도적인 경관과 야생의 규모가 달랐어요. 세상에, 수마트라 호랑이, 수마트라 코끼리, 수마트라 오랑우탄, 표범.. 우리 한국은 카메라 설치해서 수달 한 번 찍히면 엄청 기쁜데.. 이건 뭐 부러워서 할 말이 없네요. 인도네시아에서 숲을 없애고 기름야자를 생산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이 얄미울텐데 한국에 와서 이렇게 강연을 해주시니 죄송하기도 합니다^^;
몽골은 끝없는 대지에 몽골 야생마, 세이커 매 등 대형 야생동물의 복원이 흥미로웠습니다. 세이커 매들은 유리창에 부딪혀죽지는 않지만 큰 나무나 바위에 내려앉아서 먹이감을 탐색하는 대신 전신주에서 감전사를 당한다니 안타까웠어요.
한국에서 우연히 이루어진 재야생화는 철원의 두루미 월동지이죠. 최명애 교수님은 인류학자이셔서 농부들의 이야기를 청취하고 그들이 농업방식이 우연하게도 두루미에게 유리했던 사회적 상황을 분석해내셔서 좋았습니다.
과학자분들의 강연이 길게 이어지다보니 다들 지칠 때쯤이 되었습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힘들 때가 되었지요. 마지막 3부. 김성란 박사님과 최재천 교수님만 남았네요. 리시버도 반납하고 화장실도 10분안에 해결하고 조금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김성란 박사님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요? 강연자인데도 평소와 비슷한 모습에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하셨어요.
쓰레기산이 숲이 되는 과정. 그 속에 있는 우리의 리와일딩은 무엇일까요? 자연에게 제자리를 내어주고, 우리도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힘. 존재는 모두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연결되는 자연. 쓰레기산을 덮어주었던 생태교란식물은 그곳이 그들의 자리였습니다. 그들은 쓰레기 위에서 좀 더 나은 흙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무를 덮어버린 단풍잎돼지풀과 환삼덩굴도 꺼내주기를 몇 차례 하다보면 결국 손이 점점 덜 가고 10년 후에는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제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보여주셨지요. 빗물받이통과 빗물호스, 동물물그릇, 에너지 사용 자제, 사서고생같아보이는 과정들, 불가능해보이는 일들. 그래도 봉사자들은 숲안에서 웃고 있어요. 덕님이 백로와 함께 찍힌 사진이 나왔는데 세연이가 "와 둘이 똑같아! 닮았어!" 하네요. 똑같아요. 백로도 참 조용히 기다리는 물새예요. 길쭉하고 날씬하다 못해 가느다랗고. 백로가 알아보고 숲으로 왔나봐요.
집씨통이 만드는 연결도 보여주셨어요. 한 기업의 문의에서 시작되었고, 과정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없애기 위한 노력들. 깨져도 다시쓰는 집씨통. 회원가입서도 설명서도 넣지 않는 모습 그대로. 택배기사님과 집씨통참여자 모두를 설득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이제는 당연한 과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날 집씨통에서 자라난 어린참나무의 우아한 모습에 모두가 '우와!'하고 감탄했어요. 세연이는 박사님을 훌륭하게 보조했습니다.
김성란 박사님은 오늘 포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최재천 박사님은 2002년 생명다양성 세계학술대회를 진행하며 가장 중요한 수요일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경리 작가님을 연사로 모셨지요. 생명다양성재단에서 김성란 박사님에게도 인문학자의 리와일딩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제의를 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이 정도를 기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봅니다. 제가 일부러 김산하 박사님을 곁눈질로 관찰했는데, 김성란 박사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빨리 말씀하시는데 한 마디라도 놓칠까봐 꼼짝도 않고 굳은 표정으로 들으시더라고요. 김산하 박사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런 모습은 처음 봤어요.
마지막 연사, 최재천 교수님은 역시나 문학을 인용하기를 좋아하시죠. 서거 100주년인 Franz Kafka의 '변신'을 언급하시며 벌레가 다양한 식물 사이를 헤메고 다니느라 식물이 다시 회복하고 성장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세상 모든 문제는 다양성 회복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하시며, 김성란 박사님의 강연에 대해서 감동적이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끝났다! 오늘 저는 사실 포럼도 포럼이지만 김성란 박사님과 강덕희 활동가님과 사적인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이 수도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 보고 싶고, 한마디라도 더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늘 환대해주시지만 아직은 너무 깍듯하게 대해주셔서요. (흑흑 나도 진작와서 친해졌어야 하는데 왜 이제서야 알아가지고...)
한강조합에서 다른 분들이 저한테 '아이고 세연이 엄마! 왔어요!'하시는데요..앞으로도 이건 안될 것 같기는 해요. 제가 짝사랑이 원래 심해요.
그런데 슬프게도 두 분다 노을공원에 일이 생겨서 가보셔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풀이 죽어서 그냥 샛강에서 오늘 저녁에 열리는 한강살롱에 가야겠다..저녁식사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세연이가 온다니까 녹싸님이 꼭 온다고 하셨다는거예요. 세연이는 녹싸님이 젤라또 가지고 오시냐며 좋아했어요! 아쉽게도 젤라또는 기계를 통째로 들고 다녀야 한단다.. 이외에도 바쁘신 청년 분들은 각자 수업도 듣고 일도 하시다가 하나 둘씩 모여드셨어요. 개미활동 때, 숲의 향연 때 뵈었던 분들이 대부분이셨어요.
큰 회전 식탁이 있는 중국음식점이었어요. 호화롭고 비싸고, 비건주문으로 조정도 가능했어요. 전세빈 개미님이 덕님, 성란님, 흐른님이 모두 10월말에 퇴사하시는 상황을 알리셨어요. 다들 '그럼 이제 어떡해..'했죠. 걱정을 잠시 하다가 각자 옆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저는 이분들이 개미로 계속 오신다고 했고 2세대가 만드는 다른 역동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고된 일을 14년이나 한다는 것은 지나친 일입니다. 자기 몸을 돌보고 쉴 시간도 있어야 해요. 그간 지속하셨던 것이 기적이고, 심지어 덕님은 66세이면 법적으로 '노인'이라고요..이렇게 힘 센 66세라니 말도 안되지만. 아무튼 이분들이 한번에 가시기로 생각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 든 세대는 무엇이든지 될 때까지 만들어가면서 일을 해왔어요. 다음 세대들은 1세대와 함께 있으면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일단 보고 있어요. 그들만큼 잘 할 수 없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하다가 실패할 용기가 부족한, 모든 것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세대이기도 합니다.
2세대는 무척 자유롭고 똑똑하고 자신있지요. 오늘 메뉴 주문하는데도 도착하는 시간에 각자 다른 메뉴를 다른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주문하고, 각자 주문한 것을 자기만 먹는 모습이 제게는 조금 어색했어요. 주문받는 분의 눈치를 살피는 건 저뿐이었어요. 남의 취향을 존중하고 절대로 메뉴 통일하지도 않고 그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우리 안의 다양성 만세! 나이든 세대들은 젊은 세대를 걱정하지만 언제나 젊은 세대들이 더 잘해왔어요. 아마 덕님도 성란님도 흐른님도 믿으실 거예요.
세연이는 까불거리며 장난도 하고, S노트의 펜을 꺼내 참석자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식사가 마무리 될 때쯤 모인 분들께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덕님께서 노고시모의 회계까지 하고 계신줄은 몰랐기 때문에 그건 좀 걱정이 된다고 말씀드렸죠. 보통 회계는 사무실 안에서 전담직원이 따로 있을텐데, 숲을 돌보기도 바쁜데 숫자 맞추는 일까지 다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활동가들에게 어떻게 일을 분장할지 모르겠지만 덕님이 1인 3역정도는 해오신 듯해요.
노고시모의 1세대가 자리를 비우면 노고시모가 없어질까요? 저는 젊은 개미님들에게 괜찮을 것 같다고, 잘 하실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원래 어렵게 이루어진 일은 쉽게 없애지 못합니다. 그간 너무 어렵게 힘들게 쌓아왔는데 그 과정이 기록으로 다 까페에 도 남아있지요. 책도 2권이나 나와있고요. 정말 답답할 정도로, 자기 존재를 먼저 주장하지도 않고 바보같이 일했는데 결국은 존재할 곳이 생겨난 노고시모의 싹틈, 그것은 어린참나무의 깊은 뿌리와도 같아요.
어떤 단체가 지속되려면 독립된 예산과 더불어 커뮤니티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까페를 잘 활용해보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앞으로도 잘 기록하시고 까페에서 소통을 많이 하셔야 한다고요. 누군가 컨테이너, 나무자람터를 깨끗이 '정리'하고자 할 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결국 개미들의 단결이지요. 서울숲의 그린 트러스트가 사라지고, 수많은 협동조합이 유명무실해졌던 것은 결국 이들을 함께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개미가 이미 1100명이 넘고, 서로를 잘 아는, 이 자리에서 같이 밥먹고 있는 여러분들이 서로 계속 소통하고 연결되어 있으면 노고시모는 계속 잘 해나갈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왜 일까요? 저는 어쩌자고 이렇게 뒤늦게 왔을까요? 일에서 놓여난 덕님과 성란님을 잘 설득해서 같이 대학로 연극 보러 다닐까 궁리하고 있고(제가 진지한 연극 표가 가끔 생겨서) 시원하게 안마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도망가시겠죠? 앞으로 한달간 인턴쉽 하실 활동가님들 정말정말 잘 부탁드린다고 응원하고 싶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 자리에 덕님과 성란님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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