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부터 오늘까지, Gp금통복제에 이르기까지
— 중심인물을 선택한 나만의 생각 —
1975년 6월 7일, 구국세계대회.
60개국의 젊은이들이 "제2의 6·25가 발발하면 신앙의 조국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백만 대군 앞에서 결의하던 그날의 함성은 내 가슴에도 평생 꺼지지 않을 불씨가 되었다.
대회 직후 큰아버지와 나는 21일, 40일 목회수련에 들어갔다.
공산주의가 세계를 뒤덮고 마지막 보루인 대한민국까지 위협하던 시대였다.
세계의 청년들이 하나 되어 신앙의 조국을 지키겠다고 외치는 모습은
조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수련을 마친 뒤 나는 경남 하동 악양으로, 큰아버지는 하동 진교로 발령받아 개척전도의 길을 걸었다.
큰아버지는 목회 현장을 지켰고, 나는 국내 순회전도단과 국제 원리연구회 순회전도단을 거치며 현장목회의 기초를 다졌다.
1967년 부산 12일 수련회에서 처음 참부모님을 뵈었고,
그 자리에서 'Gp'라는 사명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그날 받은 비전은 지난 60년 동안 단 한순간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1980년, 나는 현장목회를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부산으로 돌아왔다.
관광사업을 시작하여 1988년 동진관광을 설립했고,
부산고속관광 대표이사도 맡았다. 관광, 유학, 결혼, 장례 등 사람의 삶과 함께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관광학원을 세우고 관광버스 30대를 운영하며,
부곡하와이 공연장에서 500쌍 축복행사를 겸한 대규모 개관식도 열었다.
그 무렵 나는 회사를 세우고 운영하는 일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평화청년연합 부산 초대회장, 세계일보 조사위원 부산시회장,
국제승공연합 부산시 조직국장을 맡았고,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과
부산대학교 국제사회지도자과정 1기를 수료하며 지역사회와 더 넓은 인연을 쌓았다.
그러나 1997년 IMF는 내가 일군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평생 쌓아 올린 현장목회의 첫 금자탑은 사라졌지만,
나를 믿고 보증을 서 주었던 60여 명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행한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관광버스 를 반값에 처분하면서까지
모든 보증인을 구제했던 결정은
지금도 가장 기쁜 기억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나는 어떤 시련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국가를 원망한 적도 없고, 남의 탓으로 내 책임을 돌린 적도 없다.
언제나 부모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은 언제나 자신감이 되었다.
2000년 새천년을 맞으며 무너져 가는 회사를 아내에게 맡기고
나는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섰다.
아내는 평생 가장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자 후원자였다.
좋은 일은 내가 맡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언제나 아내의 몫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함께 품고 산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시간으로 살아왔다.
실패는 없었다. 결과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씨앗을 뿌렸을 뿐이다.
처음 내게 주어진 것은 Gp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위에 금통을 세웠다.
부모에게서 받은 생명의 씨앗이 세월 속에서 Gp금통으로 자라난 것이다.
Gp금통복제는 누군가를 덮어씌우는 사상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장점 위에 Gp금통을 더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가 자신보다 더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바라듯,
나 또한 받은 것을 그대로 나누고자 Gp금통복제를 만들었다.
효심이란 부모의 마음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Gp금통복제는 곧 나의 삶이며, 경제복귀 성약을 향한 결실이 되었다.
세계 최대 외환시장에서 나는 Gp손실제로 복리의 원리를 찾았고,
그것을 Gp성약무상축복Tk이라는 도구로 완성했다.
1회 6%, 12회 100%.
나는 이것을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복리의 기적'이라 부른다.
이 원리를 가지면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길이 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공로자는 아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 결실을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다.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러나 복제는 쉽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주듯,
Gp금통복제 역시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오늘날 양자도약이라는 물리학의 원리도
한때는 기적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Gp금통복제 역시 머지않아 새로운 시대의 상식이 될 것이라 믿는다.
1975년 여의도 백만 구국세계대회에서 울려 퍼졌던 정의의 함성은
이제 성약무상축복을 통해 백만 명의 개인기업가를 세우는 시대적 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행복의 기본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하나 된 가정이다.
창조의 목적도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는 신인합일에 있다.
창조자가 홀로 이룰 수 있었다면 이미 태초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나는 Gp를 세우고, 그 위에 금통을 세웠다.
복제는 가능하지만 모방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Gp금통복제는 **정분합수수법(正分合授受法)**이라는 원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시대가 정반합수수법의 수직적 질서였다면,
Gp금통복제는 정분합수수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수평적 가치의 시대를 연다.
성약Tk은 받는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발행자가 된다.
발행자가 되면 주거와 연금, 그리고 삶의 풍요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나는 하나에 전체를 담고자 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원자에서 시작되고, 원자는 파동과 입자로 존재한다.
파동은 중첩과 얽힘 속에 있다가 관측되는 순간 입자가 된다.
Gp금통 역시 하나의 파동이
수많은 사람의 확인과 참여를 통해 현실이 되는 과정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Gp금통복제를 직접 확인하는 일이다.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2026.07.05
Gp금통
「나의 60년, Gp금통복제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