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내 고향 예림
손은정
밀양 예림은 잊을 수 없는 어린 동심을 사로잡았던 추억이 가득 쌓인 곳이다
작은고모님 따라 간 5촌 아재 집 아재 동생 아지매 전통 혼례식 구경 가서 손가락 다친 일
동네사람들이 많이 모여 서서 키 작은 5살짜리 발돋움해도 연지곤지 찍은 신부 얼굴 구경도 못하고 시무룩해져서 둘러보니 사람들 뒤 높은 청 마루 아래 작은 박이 보였고, 예쁘고 작은 박 옆에 톱이 담긴 통도 보였다. 살금살금 가서 청 마루 밑에서 꺼낸 작은 박과 톱을 가지고 사람들이 없는 집 뒤뜰에 앉아서 박을 자르기 시작했다. 잘 잘라 지지 않아 시간이 지체되었고, 작은 팔에 힘을 주며 힘들여서 톱질을 하다가 그만 ‘ 으앙 ’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그 때는 혼례식이 끝나고 모두 방으로 들어가서 잔치 음식을 먹으려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마당의 식장을 치우고 있던 사람들이 아이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수건으로 피나는 손가락을 동여 메고 아이 데리고 온 사람을 찾았고, 고모가 데리고 가까운 최 약국에 가서 치료하고 먹는 약을 받아서 먹은 기억이 난다. 지금도 왼쪽손가락 중지 첫째마디에는 그날 톰으로 다쳤던 자국이 흉터로 남아 간혹 어릴 적 다친 날이 생각나며 엄청 호기심 많아서 다치기도 잘 했던 것 같아서 혼자 웃을 때가 있다.
말썽 많던 어린 날, 친구를 좋아 하여 탱자가시나무집 꼭지와 접시꽃집 희야 와 나는 뚜깔 의 씨처럼 뭉쳐 다녔지. 감꽃이 뚝뚝 떨어지던 날 보도랑에 물놀이 갔는데, 헤엄치다 물살이 세어 소리치며 동동 떠내려가고, 빨래하던 희야 엄마 빨래 방망이로 건져서 살려 내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 물이 겁나서 보도랑 물놀이도 해수욕장도 가지 못했다.
몇 년 살지 않았지만 밀양예림에는 잊지 못할 추억이 줄줄이 엮어져 있다. 백모님 댁에 맡겨져 있을 때 있었던 이야기다
초등(국민)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했던 나는 숙제 안 해온 아이들 손 바닥 맞는 것을 보고 기절한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놀라서 업고 학교 가까운 큰댁 큰엄마
(백모님)에게 데려다 주셨는데 그 때 정신이 들어 일어나서 앉으니, 백모님이 걱정을 하시며
“ 아침을 안 먹고 가더니, 참!” 하시며 깨소금에 하얀 쌀밥을 비벼 주시던 그 날의 일들을 잊을 수 가 없다.
육이오 사변이났을 당시에는 엄마랑 동생과 보도랑 옆 감나무가 유난한 보도랑 옆의 방이 많은 집에 살던 때의 일이다. 피난민 어린아이 셋과 언니 한명을 데리고 온 구장과 국군 두 사람이 와서 서류 만들어 내일 데려갈 테니 집이 크고 방이 많으니 하룻밤 재워 달라고 했다. 그때 엄마가 재워 주는 것은 쉬운데 반찬이 없다고 했더니 국군이 맘 산에 가서신기한 꿩을 잡아 주고 갔다.
그날 저녁에 엄마의 특기요리인 옹치기를 생전처음 꿩고기로 만들어 맛있게 나눠 먹었다.
다음 날 국군이 와서 데려갈 때는헤어지기 서운하여붙잡고같이 울며 헤어진 생각이 나며, 그 후 소식이 없었는데, 그 아이들과 언니는 고아원에서 잘 컸는지, 부모는 만났는지 가끔 생각이 나곤 했었다.
시간이 흘러 밀양 가곡동 남천강물이 흐르는 강위 아랑 각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미모가 뛰어난 밀양부사의 외동딸 윤 동옥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 있는 영남루를 돌아 한참 걸어가면 섬불이 나오고 섬불에 살며 수박과 참외밭을 가꾸는 친구 집에 놀러 간 날이 있었다. 수박과 참외도 맛이 있었지만, 원두막이 시원하여 뙤약볕 여름 한낮을 편안하게 놀다왔던 기억이 새롭다. 얼굴이 곱고 의식이 반듯한 그 친구는 유명인사 부인이 되어 상담사교육을 받아 봉사 활동을 하며 살고 있는 친구인데, 항상 단아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대하기가 편하여 밀양 고향친구와는 오랜 특별한 인연으로 초대모임을 만들어 만나고 있다
훗날 예림학교에 교사발령을 받아 고향에 돌아갔을 때다. 밀양 아랑 제에 참석한다고, 육영수 여사가 학교 옆길로 짚 차로 지나간다고 하여, 하얀 모시한복을 품위 있게 차려입고 목련꽃같이 우아한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손 흔들던 모습을 길에 나와서 지켜보며 마주 손을 흔들며 열광하는 아이들과 환영하던 때가 있었지. 그 날 아랑 제 귀빈석에 예림 사시던 안호상 씨 조카분인 숙모(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지만)님이 앉아 계시더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학교 근무 중이라 아랑 제를 못 보아서 안타까웠다. 그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벌써 54년이 흘렀구나!
철없던 어린 시절을 수놓았던 예림,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동심이 꽃피던 추억의 고향 밀양 예림! 귀한 친구가 뱅쿠버에서 부모 만나러 온 아들과 꽃게 장을 먹은 곳이 예림이라며 사진 을 찍어 보냈다. 사진을 보니, 너무 변하여 다른 마을을 보는 것 같이 생소했다.
나는 늙어 호호 할머니가 되었는데 내가 살던 마을은 새악씨 같이 단장하여 젊고 멋있었다. 세월이 유수 같다더니, 하루 24시간 숨김없이 오고 가는데 고향 정든 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했는데, 늙고 보니 하루해가 가면 이 세상 떠날 날이 조금씩 가까워 온다는 사실을 감지하니, 그립고 보고 싶어 생각할 일들이 많아 시간을 잡고 싶다.
추억이 소록소록 돋는 새로워진 내 고향 예림 땅을 죽기 전에 한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