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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너는 왜 숨지?
어느 날 아버지가 집으로 멋지고 반짝거리는 빨간색 자동차를 몰고 왔다. 차는 무척 커 보였지만, 그것은 아마도 내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친구한테서 빌린 차였다. 우리 가족은 휴가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내 생애 최초의 휴가 여행이었다! 차 안은 짐으로 가득 찼으며, 부모님과 우리 일곱 형제 모두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클레어 카운티의 마운트섀넌에 있는 친할머니 댁을 향해 출발했다. 이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시골이었다. 여행이 온종일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따금씩 아버지는 차를 멈추었고, 우리 모두 잠시 차 밖으로 나와 휴식을 취했다. 운이 좋으면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도 있었다.
내가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분들은 유스호스텔에 사셨고, 할머니가 그곳의 관리인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첫날이 기억난다. 아버지는 차를 몰고 크고 웅장한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으며, 오래된 아치문을 지나자 마당이 나타났고, 또다시 더 작은 아치문을 지나자 안뜰에 이르렀다. 그러자 돌로 지은 커다란 창고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오래된 집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창고들도 집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나는 할머니로부터 그곳이 마차 차고들로 오래전부터 말과 마차들을 보관해 온 곳이라고 들었다.
아버지가 차를 세우자 우리 모두 구르다시피 차에서 내렸다. 나는 경이로움에 차서 그 집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에 나무 의족을 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아일랜드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다리 하나를 잃었다는 얘기를 나는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두 분은 형편이 매우 어려웠지만 할아버지는 의족으로도 운전할 수 있게 설계된 멋진 구식 자동차를 한 대 가지고 있었다. 첫날 저녁 할아버지는 나에게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제비를 보여 주었다. 할아버지는 새끼 제비에게 점적기로 먹이를 먹이며 신발상자 안에다 키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또 새알들도 발견했는데, 새들이 부화하기를 바라며 따뜻하게 온도를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기력이 없어 보이고 등이 구부정했다. 그리고 그 첫날 저녁 나는 할아버지를 둘러싼 빛이 다른 사람들의 빛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흐릿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것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할머니는 작은 키에 얼굴이 아름답고 우아한 분이었으며 짧은 회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호스텔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일했다. 또한 할머니는 훌륭한 요리사였는데, 갈색 빵과 사과 파이를 비롯해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만드느라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냈다. 주방에서는 언제나 갓 구운 빵 냄새가 났으며, 나는 두 분과 함께 그곳 식탁에 앉아 차와 따뜻한 갈색 빵 한 조각을 음미하는 것이 좋았다.
그 큰 집은 멋진 곳이었다. 주방 저쪽에는 수없이 많은 화분들이 놓인 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여름철이었는데 복도에는 온갖 색깔의 꽃들이 언제나 만발해 있었다. 복도 끝에는 유리로 된 온실이 있었으며, 그곳에는 할머니가 키우는 꽃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원 역시 환상적이었다. 호스텔 안뜰에 제비들이 둥지를 튼 마차 차고들이 있고, 그 뜰 저편에 작은 문이 있었다. 나는 그 문을 여는 대신 언제나 위로 기어올라 넘곤 했다. 그 문은 큰 나무들과 언제나 좋은 향기를 풍기는 사랑스런 꽃들이 핀 정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정원에는 토끼들과 새들이 있었으며, 때로 키 큰 나무의 구부러진 가지들 아래 앉아 있다 보면 지빠귀 새의 둥지와 어린 새끼들을 볼 수 있었다. 정원 너머에는 밭들과 드넓은 시골이 펼쳐졌다. 나는 그 정원을 사랑했고, 그곳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꼈다.
마운트섀넌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는 혼자서 멀리까지 산책을 했다. 살짝 빠져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어디로 갔는지 눈치채지 못했으며, 상관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남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대개 어른들은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때로 나는 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그들의 생각을 내가 느꼈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년간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가 어렸을 때 한 번은 이웃집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나를 방에 가두고 열쇠를 내버리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아주머니가 그 말을 했을 때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옹호해 주지도 않았다.
나는 습지대를 건너고 숲을 통과하고 건초 밭을 가로질러 새 강둑을 따라 몇 킬로미터이고 걸었다. 하지만 내가 혼자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나와 함께 있는 천사들과 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새들과 동물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종종 천사들은 말했다.
"잠깐, 발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걸어 봐."
그러면 앞쪽 어딘가에 내가 관찰할 것이 보이곤 했다. 어린 토끼 가족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을 때는 마법에 홀린 것 같았다. 토끼들이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가까이 앉아서 몇 시간이나 그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몇 킬로미터나 걸은 것이 분명했지만, 한 번도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한 적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 내가 한 일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전혀 사고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도로들과 강, 습지, 소떼가 가득한 들판을 가로질러 건너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답은 분명하다. 신과 천사들이 나를 그들의 손안에 둔 것이다. 천사들은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했다. 그들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전부였다.
어느 날 또다시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그 작은 문을 통과했을 때 한 천사가 불쑥 나타나 내 팔을 잡았다.
"이쪽으로 와 봐, 로나. 너한테 보여 줄 것이 있어. 네가 보고 싶어 할 거야."
들판을 건너갈 때 나는 천사들을 돌아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누가 더 빨리 달리는지 내기하자!"
우리는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나는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무릎에 상처가 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천사들이 말했다.
"그렇게 많이 다치진 않았어. 그냥 작은 생채기가 난 것뿐이야."
"천사들 눈에는 작은 생채기로 보이지만 나한테는 큰 상처란 말이야, 너무 아프고 쓰라리다고. 알겠어?“
천사들이 나를 놀리며 말했다.
"자, 그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 너한테 보여 줄 것이 있어."
나는 일어났고 과연 무릎의 통증은 금방 잊었다. 들판을 지나 그 너머의 숲으로 걸어 들어갈 때 천사들이 나에게 귀를 기울여보라고 말했다. 나는 귀를 기울였고 멀리서 많은 동물들의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물었다.
"어떤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야?"
천사들이 말했다.
"한 동물의 소리를 들어 봐. 단 하나의 소리를 들을 때까지 모든 소리들을 분리해 봐."
그러고 나서 천사들은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네가 더 나이가 들어서도 더 분명하게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 거야."
나는 숲을 지나가면서 내가 듣는 모든 소리들을 분리시켰고, 내가 내딛는 걸음마다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모든 종류의 새들의 지저권을 구분할 수 있었다. 참새, 굴뚝새, 콩새, 지빠귀,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새들의 서로 다른 노래들을, 주변에 있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그들이 무슨 새인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식별할 수 있었다. 천사들이 나를 가르칠 때면 나는 매우 빠르게 배우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어떤 울음소리가 들려. 나한테 들려주려는 소리가 이거 맞아? 누군가 울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숲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나무들이 더 커지고 주위는 더 어두워졌다.
"여긴 너무 어두워. 나를 위해 빛을 좀 밝혀 줄 수 있어?"
천사들이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 그 울음소리를 따라가 봐. 네가 듣는 소리를 따라가."
그래서 나는 소리를 따라갔고, 울음소리는 나를 어떤 공터로 이끌었다. 그곳에 서서 귀를 기울이자 이내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바로 오른쪽이었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다시 나무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가시를 매단 작은 나무들이 있었다. 가시들에 나는 다리와 팔이 긁혔다. 갑자기 울음소리가 그쳤기 때문에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빛이 내 뒤쪽에 있어서 가시나무들과 덤불 사이가 어두웠다.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바로 그때 빛 하나가 어느 나무 아래서 나타났다.
천사들 중 하나가 말했다.
"저기 나무 옆에 있는 빛을 봐. 작은 가시금작화 덤불이 있는 곳 말이야. 그곳에서 그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정말로 그곳에서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 마리 새였다. 그냥 평범한 새가 아니라 맹금류였다. 나중에 나는 그것이 새매였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몹시 수칙하고 끔직한 몰골이었겠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새였다. 나는 그 새를 들어 올려서는 그 새가 떨어진 것이 분명한 큰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새를 도로 올려 주기 위해 나무 위로 기어오를 수는 없었다. 내 손 안에서 움직이는 새를 보니 몸을 다쳤다. 새의 두 다리가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목에도 상처가 있었다. 아마도 떨어지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천사들은 새의 어미가 이 새끼를 원치 않아서 둥지에서 던져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천사들이 말했다.
"그 새는 신이 너에게 주시는 선물이야. 이번 여름방학과 내년 여름방학 동안 잘 돌봐 줘. 하지만 그 다음에는 너와 함께 집으로 가지는 못할 거야."
천사들은 가끔씩 내가 이해 못할 말들을 하곤 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새를 들고 숲과 들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가 들어가서 살 낡은 모자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나의 새는 서서히 강해져 갔지만 여전히 제대로 걷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어딜 가나 그 새를 데리고 다녔다. 두 다리로 내려앉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잘 날지도 못했다. 아버지와 나는 새를 던지고 받기를 해서 새가 잠깐이라도 날개를 펴고 나는 법을 배우게 했다.
먹이를 구하는 일도 큰 문제였다. 새매는 피냄새가 나는 날고기만 먹었기 때문이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다른 생명체를 죽일 수는 없었다. 나는 새에게 먹일 고기가 신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더 큰 문제는 새가 한 번에 아주 적은 양만 먹는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새를 위해 날고기를 살 수 있도록 동전 한 푼은커녕 반 푼이라도 줄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에 나는 천사들에게 말했다.
"나더러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한번은 가족과 함께 몇 킬로미터 떨어진 킬랄로이에 갔었다. 나는 새를 데리고 어느 정육점으로 들어가 정육점 주인에게 새에게 먹일 날고기가 필요한데 돈이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구걸하는 것이 죽어도 싫었지만 정육점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게도 방학 기간 동안 어느 때고 오면 날고기를 조금씩 주겠다고 말했다. 말은 간단하게 들렸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은 마운트섀넌에서 킬랄로이까지 차를 몰고 왔다 갔다 할 기름값이 없었다.
나는 그때도 그렇지만 부모님이 왜 그 어린 새에게 좀 더 먹을 것을 주려고 하시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직도 나는 그 문제를 놓고 씨름한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 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나를 도왔는데 부모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 때면 나는 날고기를 손톱만큼이라도 얻을까 하고 기웃거렸지만 반응은 언제나 "으흠!"과 "어허!"뿐이었다. 나는 내 몫을 기꺼이 새와 나누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사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만약 내 동생들이나 언니 중 한 명이 그 새를 데리고 왔다면 기꺼이 먹이를 주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가까스로 새를 먹일 수 있었고, 새는 나날이 강해졌다.
하루는 내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호수스 천사가 말했다.
"너의 마음이 때로 무겁고 너 자신이 힘없는 존재로 느껴진다는 걸 알아. 하지만 신이 너를 다르게 만들었고, 너의 삶은 언제나 다르리라는 걸 기억해야만 해. 너에게는 해야만 하는 특별한 일이 있어."
"하지만 난 정말 원치 않아. 왜 신은 다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나를 택했지?"
호수스는 그냥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왜 너여야만 하는지 어느 날 너도 알게 될 거야.“
나는 말했다.
"난 두려워. 내가 다르다는 것이 나를 울고 싶게 만들어."
호수스가 말했다.
"넌 자주 울게 될 거야. 영혼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너의 눈물이 필요하니까."
그때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할머니도 내가 여러 면에서 지능이 모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나한테 말을 걸었고, 그날 나는 할머니와 나의 가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청소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부르셨다. 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방에 들어간 적이 한두 번밖에 없었으며, 그때도 잠깐 구경만 했을 뿐 아무것도 건드려서는 안 됐었다. 그런데 이번엔 나더러 먼지 닦는 걸 도와달라고 부른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걸레를 주면서 탁자를 닦게 했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는 장식장 안의 소중한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먼지를 닦았다. 나는 할머니가 커다란 타원형의 사진 액자를 집어 드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큰 슬픔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 틀림없었다. 할머니는 몸을 돌려 그 사진을 가지고 와서는 크고 오래된 높은 침대에 걸터앉아 나더러 옆에 와서 앉으라고 가볍게 침대를 두드렸다.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 다리를 흔들며 앉았다. 할머니는 아름다운 옛날 사진 하나를 보여 주었다. 내 나이 또래의 작은 여자아이가 헝클어진 머리에 초라한 옷을 입고 맨발로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어린 남자 아이가 땅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막대기로 진흙 웅덩이를 휘 저으며 놀고 있었다.
"이 두 아이가 나의 어린 자식들인데 하나님이 데려가셔서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 있단다."
그 말을 하는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되실 거예요. 할머니도 그걸 아시잖아요.
할머니가 대답했다.
"그래, 로나. 이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구나."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몹시 가난했을 때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어린 아들 토미가 병에 걸렸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큰 슬픔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딸 마리는 목에 혹이 생겼는데, 할아버지가 마리를 자전거에 태우고 당시 두 분이 살던 위클로에서 더블린의 병원까지 몇 킬로미터를 달렸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엄청난 노력도 헛수고였다. 마리는 의사들이 수술을 하기도 전에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는 우리 아버지의 잘생긴 그을린 얼굴을 볼 때마다 토미가 살아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나와 내 자매들을 볼 때면 마리는 어떻게 자랐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든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했다.
"언젠가는 그 아이들을 내 팔로 다시 안아 보게 될 날이 오리라는 걸 알지만, 그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구나."
할머니가 느끼는 지독한 아픔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와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들로 인해서 생긴 아픔을.
그때 할머니가 슬픔을 걷어내고 말했다.
"로나, 두려워하지 마라. 영혼들은 어떤 식으로든 너를 해치거나 다치게 할 수 없어. 네가 두려울 때라도 이 작은 기도를 드리면 된단다. '주님 그리고 성모 마리아님, 저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저 영혼들을 구해 주세요.' 하고 말이야."
할머니는 나에게 미소를 짓고는 그 주제에 대해선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가 보는 것들을 할머니에게 말해 주고, 내가 느낀 고통과 기쁨을 할머니와
나눌 수 있었더라면 무척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천사들은 그것은 금지된 일이라고 줄곧 말해 왔다. 내 느낌에 할머니는 내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서는 나에게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먼지 닦는 일을 계속했고, 청소를 끝낸 뒤에는 방을 나갔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할머니는 주방으로 갔고 나는 화장실로 가서 신과 천사들에게 기도했다.
"저의 할머니를 도와주세요. 할머니는 지금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
그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나는 마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햇빛이 찬란한 오후였는데 할아버지는 마차 차고에서 자동차를 닦고 있었다. 내가 살짝 들여다보자 할아버지는 나에게 차자를 한 잔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찻잔을 들고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뜰의 자기 옆에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제비들이 어린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물고 둥지를 드나드는 것을 구경했다. 그런 식으로 내가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것은 처음 도착한 날, 할아버지를 도와 새끼 제비에게 먹이를 먹였을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천시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천사들이 말했다.
"그냥 들어 봐. 할아버지가 너에게 마리에 대해 말씀하시려고 해. 마리를 병원에 데리고 간 일에 대해서도."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날은 쌀쌀했지만 햇빛이 빛나는 날이었다. 네 할머니가 마리에게 길 떠날 준비를 시켰어. 그 아이는 상태가 좋지 않았고, 우리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야만 한다는 걸 알았지. 자전거를 꺼내면서 난 몸이 떨렸다. 그 자전거로는 삼십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온전히 버텨내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어.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다른 방도가 없었단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말과 마차를 가진 사람도 없었어. 나와 함께 병원에 가 줄 사람도 없었지."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로나, 오직 너뿐이란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나는 샌드위치와 사과와 작은 물병이 든 가방을 짐칸에 단단히 묶었다. 가는 도중에 마리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웠어. 떠나기 전에 네 할머니를 꼭 껴안아 주었지. 아직 갓난아기들에 불과한 너의 아버지와 삼촌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함께 병원으로 갈 수 없어서 네 할머니는 눈물만 쏟고 있었어, 네 할머니의 두 팔에서 마리를 건네받아 자전거에 앉혔어. 아이를 균형을 잡아서 내 앞에 태우고는 가슴에 꼭 안은 뒤 자전거를 출발시켰어. 네 할머니에게 인사하기 위해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단다. 팔로 마리를 껴안고 의족을 한 다리로 자전거 폐달을 밟는 것은 아주 어려웠어. 자전거를 탄다기보다는 허겁지겁 내달렸지. 아주 긴 시간 페달을 밟았다. 도중에 자주 멈춰 서서 손가락에 물을 묻혀 마리에게 먹였어. 아이는 목 안의 혹이 움직이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제대로 먹을 수도 심지어 마실 수도 없었어. 몇 시간이 지나고, 아마 점심때쫌 되었을 거야. 난 배가 고파서 자전거를 멈추고 샌드위치를 먹고 물을 조금 마셨어. 그러고 나서 다시 자전거를 몰았는데, 얼마 못 가서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그걸로 그 자전거는 끝이었지. 나는 자전거를 그곳에다 버리고 마리를 두 팔에 안고 걷기 시작했단다. 아이의 심장 박동과 호흡이 매우 약해져 있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진 뒤였어. 어쨌든 병원 측에서는 우리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완전히 지쳐서 병원 계단을 오르는데, 더 이상 한 걸음도 옮길 수 없게 되었을 때 간호사가 달려와 내 팔에서 마리를 받았어. 난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의사가 나와서 다음 날 아침 맨 먼저 수술을 할 것이라고 하더구나."
할아버지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어!"
병원 측에서 마리를 수술실로 옮기면서 목 안의 혹이 움직여 기도를 막았다. 그렇게 마리는 질식사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난 너무나 슬프고 원통했다. 토미를 잃었는데 또다시 마리를 잃다니! 난 더 이상 신을 믿을 수가 없었어. 네 할머니에게 난 너무도 못할 짓을 했어."
무도 못할 짓을 했어."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마리와 토미가 할아버지 앞에 서시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눈물을 만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마리와 토미가 할아버지와 함께 있어요. 울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나를 꼭 껴안으며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이 할아버지가 울었다는 걸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천사들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비밀을 지켜야만 해."
나는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며, 지금에야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 주변의 불빛처럼 할아버지 주변의 빛도 훨씬 밝아졌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두 어린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와 분노가 너무 쓰라려서 할아버지에게서 삶의 기쁨을 꺼버렸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 닦는 일을 마저 끝내기 위해 마차 차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마치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할아버지는 평소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으며, 할아버지 주변의 빛도 다시 매우 희미해졌다. 그 후 나는 할아비지 주변에서 그처럼 밝은 빛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에는 나는 무척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내가 또다시 천사들을 위해 일했음을 알았다. 이번에는 천사들이 할아버지를 도울 수 있도록 내가 천사들을 도운 것이다.
마운트섀넌에서의 여름은 너무나도 즐거웠고, 나는 이듬해 여름에도 그곳에서 다시 방학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일 년은 금방 지나갔고, 다시금 낮이 길어졌을 때 나는 어서 빨리 여름방학이 되어 마운트섀넌으로 다시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그 여름에 우리는 할머니 댁에서 지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머니 집을 지나고 그 아래쪽 마운트섀넌 마을을 지나서 변두리에 차를 세웠다. 그곳에 야생의 텃밭이 딸린 커다란 집이 있었다.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집이었다. 식탁과 의자 두 개, 냄비 하나가 있을 뿐 방에는 침대를 비롯한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그런 것은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재미난 모험으로 여겼고,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잤다.
그 여름, 우리가 그 텅 빈 오래된 집에서 머무는 동안 샐리라는 이름의 친절한 노부인이 아버지에게 마운트섀넌 근처의 작은 따을 주었다. 그 땅은 산 높은 곳에 있었으며, 그곳까지 산길을 올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한 뙈기 땅은 샐리 여사 혼자서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만 집에 붙어 있었다. 그 오두막집의 문은 전통적인 형태의 문으로, 문의 위쪽 절반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샐리 여사는 우리가 오는 소리를 듣고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그 앞에 서 있곤 했다. 때로는 고양이를 팔에 안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차와 비스켓 또는 사과 파이를 내놓으며 우리가 환대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나는 샐리 여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녀가 클레어 카운티에서 자랄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척 좋았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몇 시간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마침내 내가 떠날 때가 되면 나한테 다음날도 꼭 오라고 말하곤 했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놀러오라고도 했다.
산 높은 곳에서 혼자 사는 샐리 여사는 그곳에서 무척 외로워 보였다. 아버지에게 문 앞의 땅을 준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녀는 그 땅에다 아버지가 작은 집을 짓기를 바랐다. 그렇게 되면 말동무를 갖게 되기 때문이었다. 샐리 여사는 언젠가 미래에 내가 내 자식들을 데리고 그곳에 와서 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장차 자식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먼 훗날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킥킥거리며 웃곤 했다.
샐리 여사에게는 고양이가 많았다. 사방에 언제나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자신의 친구들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오두막 안이 고양이들로 가득해도 집 안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작은 집이 가구들로 가득했지만 먼지 하나 없었고, 종이 몇 장 쌓여 있는 법도 없었다. 언제나 깨끗하고 내 집 같은 향기가 났다.
나는 샐리 여사를 무척 좋아했으며, 그녀의 작은 오두막집을 방문하며 보낸 어린 시절의 그 여름이 너무도 좋았다. 그 산과,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근처에서 올빼미가 울어대는 곳에 텐트를 치고 잠들던 그 밤들을 사랑했다. 물론 나의 새도 그 산에서 보내는 밤들을 무척 좋아했다. 새는 이제 몸집이 더 커지고 강해졌다. 신기하게도 새는 짙은 색의 큰 부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단 한 번도 내 손가락을 쪼거나 긴 발톱으로 나를 할퀸 직이 없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자주 그랬듯이 새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나는 할머니의 집이 있는 곳까지 일 킬로미터 남짓 걸어가 새에게 정원 주변의 풍경들을 보여 주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을 때 미카엘 천사가 내 옆에 나타났다. 그는 나와 새와 함께 정원 주변을 걸었다. 우리는 할머니의 주방을 지나 예쁜 꽃들과 큰 창들이 있는 아름답고 밝은 복도로 들어갔다. 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았다. 때때로 천사들은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게 만들곤 했다.
미카엘이 나에게 물었다.
"너의 작은 새가 이제 크고 강하게 자랐구나, 아직 새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지?"
"아니, 새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어. 나의 새는 그냥 '사랑'이야. 그것으로 충분해."
미카엘이 나를 보며 말했다.
"어느 날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네가 왜 이 새를 '사랑'이라고 불렀는지."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미카엘의 눈이 너무도 맑아서 그 눈동자 속을 몇 킬로미터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길고 긴 길을 걸어 들어가듯이. 그리고 마치 시간 그 자체를 관통하는 것처럼.
나는 늘 새를 데리고 다녔다. 단 일 분이라도 새를 잊은 적이 없다. 여름방학 마지막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올라갔다. 우리는 텐트를 가지고 갔다. 햇빛이 화창한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닥불을 피웠다. 나는 슬픈 눈으로 나의 새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 새를 처음 발견했을 때 천사들은 내게 말하기를, 그 새가 이번 여름을 끝으로 나와 함께 집으로 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나는 텐트 뒤에서 새를 안고 부드럽게 말했다.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그리울 거야."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어서 와라, 로나. 그 새는 나는 연습이 더 필요해.“
나는 슬픈 눈으로 새를 들어 올렀다. 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날개를 파닥이며 큰 소리로 꽥꽥거렸다.
아버지가 새를 불렀고,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새를 공중으로 휙 하고 날려 보냈다. 아버지가 새를 잡았고, 새는 아버지의 손에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아버지가 나를 향해 새를 다시 공중으로
획 하고 날려 보냈다. 하지만 4분의 3쯤 왔을 때 새는 곧장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나의 새가 가 버린 것이다! 새의 영혼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날개가 거대했고 새는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새는 나를 항해 고개를 돌렸다. 너무도 빛나는 눈으로 나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 새는 그냥 평범한 새가 아니었다. 신과 천사들로부터의 선물이 있다.
나는 행복했고 동시에 슬펐다. 나의 새로 인해서 나는 행복했다. 새는 이제 완전한 존재가 되었으며 독수리처럼 비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새를 지독히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달려왔다. 아버지는 너무나 당황했다.
"오, 로나. 미안하다. 넌 새가 이렇게 멀리 나는 걸 원치 않았어. 새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넌 알았어."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고 몹시 마음 아파하고 몹시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아버지를 위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버지에게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그것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님을 말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카엘은 매우 분명하게 말해 왔다.
"아빠에게 절대로 말해선 안 돼, 넌 다른 사람들과 달라, 로나. 아빠는 오직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의 육체만 볼 수 있을 뿐이야.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해, 인간이 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넌 알지?"
나는 애원했다.
"하지만 아빠가 너무 마음 아파해, 미카엘."
미카엘이 말했다.
"안 돼, 아빠에게 말해선 안 돼. 언젠가 네가 알고 있는 것을 아빠에게 조금은 말할 날이 올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무 걱정하지 마, 꼬마야."
미카엘은 나를 위로할 때면 언제나 나를 '꼬마'라고 불렀다.
아버지와 나는 새의 죽음에 대해선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 후로 오랫동안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어느 맑은 날, 나는 그 빈집에서 할머니 댁으로 가는 오솔길을 오르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나는 큰 힘과 자신감을 느꼈다. 매우 특별한 누군가가 가까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천사들이 나에게 그 길을 계속 올라가지 말고 그 대신 들판을 통과해서 가라고 말했다. 나는 문을 기어올랐다. 숲을 향해 긴 풀들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는 특별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존재감이 너무 강력해서 육체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그가 가까이 존재한 때는 강력한 힘이 내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카락이 온통 따끔거렸다. 그가 내 근처에 있을 때면 나는 너무도 특별하게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았다.
어린 나는 그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나는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또 왔네!"
그가 말했다.
"나는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어.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 그걸 모르겠어? 너는 나를 느끼지 않아? 나는 너의 머리카락을 자주 헝클어뜨리는데, 넌 왜 나한테서 숨지?"
그의 말이 옳았다. 나는 가끔 그에게서 숨었다. 오늘날도 나는 가끔씩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의 존재가 너무 크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왼쪽에서 그의 강력한 힘이 나와 함께 움직여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대답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나보다 훨씬 크고 난 아주 작기 때문이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로나, 더 이상 숨지 마. 어서 와. 우리 함께 산책하자. 이 생에서 네가 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한 너의 두려움을 없애줄게."
우리는 숲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걸어갔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나무들 사이의 공터에 나무로 지은 오래된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우리는 햇빛이 비치는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걸 당신도 알잖아."
그가 말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로나, 나는 너에게 어떤 상처도 추지 않을 거야. 사람들에게는 네가 필요해. 그들의 영혼도 너를 필요로 하고,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나야?"
그가 대답했다.
"왜 너이면 안 돼? 너는 어린아이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 너는 사람들과 그들의 영혼을 돕기 위해 이곳에 있는 나의 인간 천사야. 울고 싶으면 맘껏 울어도 돼, 나의 사랑의 새야."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나를 당신의 '사랑의 새'라고 부르는 거야?"
"왜냐하면 너는 너의 작은 새가 했던 것처럼 언제나 사랑을 전달하니까. 너는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어. 너는 내 사랑의 작은 새이고, 나는 네가 필요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네가 필요하고.“
눈물이 일렁이는 눈으로 내가 말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걸 당신도 알잖아."
그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로나, 내가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러면서 그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우리 둘은 다시 숲을 통과해 들판을 가로질러 할머니 댁을 향해 걸어갔다. 갑자기 그는 사라졌다. 나는 계속해서 할머니 댁으로 걸어갔다. 어머니가 그곳에서 할머니를 도와 사과 파이를 굽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할머니와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두 분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하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말까지도 들었다. 그들이 말하고 싶지만 마음속에 담아 두는 말들까지도. 그들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그들의 아픔까지도.
우리 식구는 그렇게 네다섯 번의 즐거운 여름을 마운트섀넌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내가 열두 살인가 열세 살이었을 때 할머니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더 이상 유스호스텔 일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그 집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는 방학을 지내러 마운트섀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샐리 여사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몇 년 후 그녀가 산 위의 그 오두막에서 혼자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샐리 여사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천사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땅이 아버지의 소유였음을 증명할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 중 누구도 그곳에 집을 짓고 싶어 한 아버지의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