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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홈스트롬 편, 유강은 역,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메이데이)
33장 생태정치론 논쟁과 자연의 정치학 (밸 플럼우드Val Plumwood)
이른바 ‘녹색 이론’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 부문 비평과 입장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몇 가지 공통된 지반에 서 있으면서도 여러 지점에서 크게 갈라진다. ... 생태정치론 논쟁을 통해 녹색운동에 여전히 일관된 해방 이론이 없음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일관된 해방 이론이 없으면 인간 지배와 비인간 자연 지배 모두에 저항하는 게 쉽지 않다. ... 이제까지 많은 환경 비평가들이 자연에 대한 통제와 착취가 어떻게 인간에 대한 통제 및 착취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주었다(Plumwood and Routley, 1982; Hecht and Cockburn 1990; Shiva 1989, 1992). 생태계를 파괴하는 제3세계의 첨단 기술 농업과 임업은 또한 엘리트의 지배와 사회 불평등을 강화하면서 이를테면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남성의 경제 지배를 확대한다. 이런 과정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구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공유하는 하천에서 먹는 공짜 물과 공짜로 숨 쉬는 공기가 점점 생명유지에 부적합해지는 것처럼, 건강한 삶을 위한 생물권의 갖가지 수단도 점차 사유화되며 값을 치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특권으로 바뀌고 있다. 시장의 권력이 없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는 패배자가 될 것이며 (이미 많은 곳에서 그렇게 되고 있다), 인간 정의와 자연 파괴 문제는 점점 하나로 수렴될 것이다. (613-614)
우리에게 필요한 녹색 철학이 인간, 비인간 지배 형태를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연합의 문제로만 다루려 하지 않는다면, 인간과 비인간의 관심사를 모두 충족시켜야만 하며 인간, 비인간의 상호 결정과 상호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 이 대화에 참여한 세 가지 주요한 생태정치적 입장(사회생태론social ecology, 근본생태론deep ecology, 에코페미니즘)은 각각 자본주의 비판, 환경론 비판, 여성운동 비판과 연결된다. 따라서 근본생태론은 이른바 “진한 녹색 이론 deep green theory”(인간중심주의를 환경문제의 주된 뿌리의 하나로 주된 뿌리의 하나로 여기는 일련의 입장이나 비판)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분야일 것이다(naess 1973, 1987).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으로 대표되는 사회생태론은 무정부주의 전통을 비롯한 여러 서구 급진 전통에 의존하며, 인간 사회의 위계라는 측면에서 생태 문제를 분석하는 데 치중한다. 많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자연 지배와 여성 지배가 동일한 문제 틀에서 발생하며 공통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가진다고 보았다(Ruether 1975; Plumwood 1986, 1992; Warren 1987, 1990). 따라서 정치적 생태론을 둘러싸고 녹색 진영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쟁점은 또한 녹색운동 내부의 각 입장이 제휴하는 여러 급진 운동과 억압에 대한 비판 사이에서의 해방의 응집력과 협력관계라는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 응집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저항 형태가 다른 저항 형태에 대해 실천과 이론 차원 모두에서 감수성을 개발하고 이해 연관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614-615)
사회생태론 및 근본생태론 쪽에 선 저명한 남성 이론가들은 마치 양쪽의 입장이 녹색 이론 경주의 유일한 출전자인 것처럼 이 논쟁을 일관되게 둘 사이의 대화로 수행했으며(Zimmerman 1993), 녹색운동을 포괄하는 응집력 있는 해방적 관점을 구축하는 데 기여한 페미니즘과 에코페미니즘 이론의 중요한 역할을 무시했다(Bookchin, 1988, 1989, 1990, 1992; Chase 1991; Braford 1993; Clark 1993; Kovel 1993; Sessions 1993)/ ...그 결과로 초점이 좁아져 ... 특히 인간의 자연 지배를 온전히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분석이 왜곡되었다. ... 이 논쟁은 또한 주로 경쟁적인 환원주의의 풍조 속에서 이루어졌고 종종 불필요한 독단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런 논쟁 방식으로 인해 ...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한쪽의 접근과 주로 인간 지배형태에 초점을 맞추는 다른 쪽의 접근 사이에서 그릇된 양자택일이 강요되었다. 생태정치론 논쟁은 오래된 비판(인간 사회의 위계를 거부하며 그런 위계에 대한 이해를 보완하고 완벽하게 다듬는 비판)과 양립이 절대로 불가능하지 않은,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
한 사례를 보면, ... 마르크스주의가 급진 담론에서 제왕 행세를 하던 시절 ... 여성운동과 환경 운동의 통찰력과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에 흡수될 수 있는 정도만큼만 인정받고 정당성과 관심을 부여받았다(예컨대 페미니즘적 비판의 경우에는 ‘계급’이나 자본주의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면만 인정받았다). 이런 접근은 식민화의 한 형태이며 억압의 위계를 만들어 낸다(Haraway 1990a). 그렇게 해서는 억압 형태의 복수성과 상호 관계를 적절하게 인식할 수 있는 문제 틀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615-616)
사회생태론: 기존의 설명들로는 불충분하다
급진 전통에 의존하여 인간 사회의 위계와 시장 사회의 시각에서 생태 문제를 분석하는 사회생태론 ...
머레이 북친의 최근 연구를 통해 분명해진 사회생태론은 억압의 위계를 만들어 내는 익숙하지만 매우 문제적인 움직임 속에서 그런 착취 형태들 사이의 관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북친은 ... 생태계 파괴에서 인간 간 위계와 중장집권화가 행하는 역할에 대한 비판을 설득력 있게 발전시키는 한편,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을 유지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담아내거나 위계와 연결되지 않은 인간의 차이라는 관념을 인정하지 못한다. ... 인간 지배 비판과 비인간 지배 비판 사이의 이론적 간극을 설득력 있게 연결하지는 못했다. ... 자연 지배는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의 결과로 생겨났으며 따라서 전적으로 부차적이라고 북친은 단언한다(Bookchin 1993: 365쪽). 따라서 북친은 역사적인 환원 명제를 주장한다.
자연을 지배한다는 우리의 관념은 모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실질적인 지배로부터 유래한다. ... 하나의 역사적인 발언으로서, 이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가 자연을 지배한다는 관념에 선행했음을 확실하게 선언한다(Bookchin 1989: 44쪽) (617)
북친의 설명은 인간 해방을 강조하지만, 그는 인간 해방이 전략적으로 자연해방에 앞서고(1989: 601쪽)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 해방은 “사회적 대의라기보다는 사회적 징후”의 지위로 강등된다(1989: 25쪽). ... 사회생태론이 비록 급진적인 정치적 지향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북친의 사회생태론은 정치를 인간 간 관계에 국한된 것으로 보는 듯하며, 텍스트를 통한 그의 실천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서구식 설명에 내재한 식민화 정치학에 둔감한 것처럼 보인다. ... 이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접근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합리성이라는 특별한 가치 창조의 특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가차없이 비난한다. (618)
북친이 보기에 생태 위기에 직면한 우리는 이성 비판자들에 맞서 이성의 우위와 서구 전통을 옹호해야 한다. .... 북친은 인간 우위의 부정을 인간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설명하며 또한 이성의 식민화하는 형태에 대한 비판은 모든 합리성에 대한 거부로 묘사한다. (618-619)
북친을 비롯한 사회생태론자들의 확신이 ... 가장 훌륭한 서구의 급진 전통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 맹목적인 서구의 ‘합리적’ 문화를 진화의 정점에 두는 합리주의 철학의 정치학과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이 틀림없다. ... 가장 합리화되고 지능화된 인간 개인과 문화를 꼭대기에 두는 합리적인 위계인 이성의 우위는 세계의 의미를 “주관성의 확대와 궁극적으로 인간 지성을 향한 거대한 생명의 진화”로 파악하는 세계관의 논리적 산물이다(Bookchin 1992: 26). ... 이런 오만하고 일차원적인 세계관은 지구 생명 전체의 거대한 다양성을 인간 지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거치는 하나의 단순한 ‘단계’로 인간이라는 이상에 한참 못미치는 것으로 치부한다. 북친의 신헤겔주의적 생태 합리주의는 ... 자연과 비서구 문화 영역을 열등시하는 서구중심의 합리주의 개념의 복합체(합리성, 진보, ‘원시주의’, 발전, 문명)에 대한 재평가를 감수하지 않는다. ... 또한 진보의 신화를 비롯한, 식민주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들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토착 문화를 우리 자신의 본보기적 문명보다 앞선 ‘후진적’ 단계로 보는 통념과 대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619-620)
사회생태론은 철저한 정치적 비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그것이 지닌 정치적 감수성은 비인간 영역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 북친은 생태 위기 해결을 생태 사회를 통해 추구하는데, 이는 제2의 자연(“자기 성찰을 하게 된 제1의 자연, 즉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진화를 이끌 수 있는 생각하는 자연”[1990: 182)으로 정의된다)을 대표하는 인간이 “자연의 이성적인 목소리“(1992: 23)로서, 즉 자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자연을 관리하는 이성적인 ‘집사’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이다. ... 자연에는 인간의 간섭에 대한 제약을 부과할 수 있는 존재나 이해의 독립성이 없음을 입증하는 맥락에서는 자연이 가진 차이가 부지불식간에 지워진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상에 이 타자를 위한 공간을 남겨 둘 필요가 없다. (620)
인간을 “자의식을 갖게 된 자연”으로 정의함으로써 자연을 인간 영역으로 통합하면 인간-자연 관계를 정치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 인간의 자연 지배를 다른 억압 형태들과 비견되는 것으로 파악하려는 어떤 시도든 간에 이런 통합에 저항하고, 자연의 존재를 당연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타자로(개인으로서든 민족으로서든) 인정해야 할 것이다.
...북친 식의 사회생태론은 인간 사회 내의 일부 위계 형태에 초점을 맞추지만,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많은 문제적인 측면들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Plumwood 1981; Clark 1984, 1993; Benton 1990). 사회생태론은 인간의 자연 식민화와 결부된 여러 가정을 옹호하며, 이 식민화에 의존하는 인간 안의 위계 형태를 유지한다. 사회생태론 스스로는 지배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제공한다고 자처하나, 적어도 북친 식의 사회생태론은 그런 목표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621)
근본생태론과 해방
인간중심주의나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비판은 ... 중요한 공헌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근본생태론의 주요 대표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응집력 있는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며, 또한 다른 녹색 관점들을 포섭하거나 기각하는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621)
주요 근본생태론자인 워릭 폭스는 ... ‘자연’ 억압이 인간 지배 형태들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 인간의 일부 범주를 ‘자연’으로 구성하는 것이 어떻게 그들에 대한 지배를 자연화하는지에 관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근본생태론이 아니라 에코페미니즘이다[Ruether 1975; Mies 1986; Plumwood 1986, 1991, 1993; Shiva 1990, 1992]). ... 폭스는 다른 형태의 지배에 대한 비판은 환경문제에 무관하다고 본다. .. 가령 페미니즘은 환경 윤리 개념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Fox 1989: 14). 또한 인간 사회 내의 위계는 자연 파괴에 대한 설명과 무관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회생태론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인간끼리의 관계만큼이나 정치적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여러 비판을 조화시키지 못한다면, 폭스 등이 정식화환 근본생태론 또한 인간-자연 지배라는 주제를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억누른다. ... 사회생태론과 마찬가지로 근본생태론 역시 자연이 가진 차이를 자아(self/Self)로 통합함으로써 억압한다(Plumwood 1991, 1993). ... 근본생태론의 지배적 형태들은 정치적 실천보다는 개인의 심리적 행위로 이해되는 동일시 관념을 분석의 핵심 개념으로 선택하며, 개인적 변화를 강조하고 사회구조를 무시하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근본생태론의 설명은 (개인을 넘어서 볼 수 있는 변화의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인 동시에 (심리학 이외의 요인들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적이다. (621-622)
생태적 자아ecological selfhood라는 근본생태론의 핵심 개념도 마찬가지로 탈정치적으로 이해된다. 이 부분의 설명은 한편으로는 다양한 동양 종교의 입장과 광범위한 연계를 시도하면서도 풍부한 결실을 낳을 수 있는 페미니즘의 자아 설명이나 페미니즘 이론과의 실질적 연계를 무시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Cheney 1987, 1989; Warren 1990). 그 결과는 상호 관계의 심리학이 아니라 통합의 심리학이다. 폭스는 과도한 개인적 애착의 형태인 이기심(폭스는 이것을 심리학적 이기주의와 융합한다)이야말도 “소유욕, 탐욕, 착취, 전쟁, 생태 파괴”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Fox 1990: 262). ... 이런 표준적 형태의 근본생태론은 자유주의 정치 이론의 녹색 잡탕 스튜를 장식하는 훌륭한 종교적, 정신적 고명이 된다(Elkips 1989; Bradford 1993). (622-623)
인간 지배와 비인간 지배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 에코페미니즘에서 보자면 ... 근본생태론은 사회생태론의 쇼비니즘과 인간 우위라는 전통적 교의 고수를 비판한 점에서 엃았다. ... 사회생태론은 근본생태론이 인간 간 정치에 둔감하고 인간 위계가 환경문제를 만들어 내는 데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사실을 비판한 점에서는 옳았다. (624)
녹색 이론을 위한 페미니즘의 틀
페미니즘 이론은 ... 억압의 위계를 세우지 않고서도 복수성을 인정할 수 있는 녹색 이론을 만들기 위한 믿음직한 토대를 제공한다. 억압의 복수성이라는 맥락에서 여성 억압을 고려하는 이론적 틀의 정식화야말로 최근 10년간 많은 페미니즘 이론가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각주 5. 사회적 에코페미니스트들은 흑인 페미니스트들과 더불어 여성의 억압을 수많은 억압 형태 가운데 하나로 본다(hooks 1981; 1984, 1989; Eisenstein 1978). 사회적 에코페미니즘social ecological feminism은 특히 흑인, 반식민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의지한다(Ruether 1975; Hartsock 1983; Mies 1986; Warren 1987, 1990; Spelman 1988; Haraway 1989, 1991b; King 1989, 1990; Shiva 1989, 1992). 그러나 인종, 계급, 젠더 등에만 배타적으로 관심을 갖는 형태(Wajcman 1991; Walby 1992)와 달리, 사회적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자연에 대한 관심을 복수의 착취 기반에 대한 탐구와 통합하며, 이 모든 유형의 착취가 어떻게 서로를 상호 결정하고 지지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형태의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의 투쟁이 자연을 위한 투쟁과 동일하다거나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도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식의 명제(이런 주장은 대부분의 연결된 현상에 대해 인과 오류를 범한다)를 주장하지 않는다(Plumwood 1991을 보라.) 이 이론 틀에는 특히 인종, 계급, 젠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자연 또한 포괄하면서 모든 지배 형태의 상호 연관성을 다루는 해방 이론의 정교한 발전도 포함된다(hooks 1981, 1984, 1989). ...
에코페미니스트들은 거의 20년 가까이 억압의 복수성을 인식하는 맥락에서 자연 지배를 다루어 왔다. (624-625) (각주 6. Ruether(1975), Warren(1987, 1990), King(1989) 같은 에코페미니스트의 저작을 보라. 에코페미니즘은 매우 다양한 하나의 입장이다. 근본생태론과 밀접하게 관련된 에코페미니스트가 있는가 하면, 사회생태론과 가까운 이들도 있고, 또 일부는 급진 페미니즘과 가깝다. 페미니즘과 에코페미니즘 가운데 주로 급진페미니즘에서 생겨난 일부는 고유한 환원주의 경향을 보인다. 가부장제를 모든 위계의 토대로, 즉 다른 지배(자연 지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비롯한 인간 사회의 위계 전부)가 모두 그로 환원되는 기본적인 지배 형태로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즘이 모두 이런 환원주의 경향인 것처럼 판단한다면 커다란 잘못이다. 다른 두 입장과 달리, 에코페미니즘은 근본생태론이 관심을 기울이는 자연 지배와 인간중심주의 비판이나 사회생태론이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 위계 비판을 다룬 것으로 환원하거나 기각하지 않는다.) (626-627)
물론 여성 지배가 지배에 관한 페미니즘의 이해에서 중심을 차지하지만, 이것은 또한 다른 많은 종류의 지배를 설명해 주는 이론적 모델이기도 하다. 억압받는 것들은 종종 여성화되고 자연화되기 때문이다. 로즈마리 루서Rosemary Reuther같은 저자들의 생태 지향적인 페미니즘은 언제나 여성 지배와 흑인 같은 인간 집단 지배, 자연 지배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해 왔다. 루서는 이렇게 말했다. “생태 윤리는 언제나 사회적 지배와 자연 지배의 상호 연관성을 인식하는 생태 정의의 윤리여야 한다”(Ruether 1989). 캐런 J. 워렌Karen J. Warren은 페미니즘이 더 완전해지려면 “여성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이라는 전통적인 페미니즘 개념을 모든 억압 체제의 상호 연관성을 인식하고 분명하게 밝히는 식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1987: 18).
해방 이론과 억압의 네트워크
억압받는 집단에게는 공통적으로 ‘식민화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 이 정체성은 이원론의 문화 구조를 통해 억압을 반영한다. ... 정신/육체, 남성/여성, 이성/감정, 주체/객체 등과 같이 두 타래로 짜인 서구 문화의 이원론은 많은 가닥으로 이루어진 두 타래의 억압 논리를 만들어 낸다. 인간 억압의 구조를 형성하는 이런 공통된 틀은 또한 인간/자연, 이성(문명)/자연 이원론까지 포괄하도록 확대된다. 이런 이원론은 열등시되고 배경으로 밀려나며 도구화되고 동질화되는 자연 영역과 완전히 분리되는 것으로 인간 정체성을 구성한다. 이런 공통된 구조가 자연 지배를 인간 간 지배 형태와 동일한 일반적인 종류로 보는 하나의 이유이다. (626-627)
이런 억압 영역들은 이 구조와 관련된 공통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연결된다. ... 이 공통된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자연에 대한 이성의 통제 이데올로기이다. 이 피억압 집단들에 특히 공통된 점은 각각이 자연 영역의 일부로 여겨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성’을 정복하고 명령함으로써 혼란스럽고 결함 있는 ‘자연’ 영역을 통제한다는 이야기야말로 서구 문화의 주축을 이루는 서사이다. ...자연 지배 이데올로기가 서구의 모든 주요한 억압 형태를 구조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 자연 지배 이데올로기는 서구 사회 내의 지배 관계와 서구 사회와 다른 사회들 사이의 식민화 관계뿐만 아니라 비인간 자연 자체에 대한 식민적 접근도 뒷받침해 왔다. (627-628)
‘원시적인 것’의 정치학
에코페미니즘은 특히 자연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다루는 태도가 남성과 여성의 위계뿐만 아니라 자연과 더 밀접하게 동일시되는 다른 많은 인간 집단의 열등화까지 뒷받침하고 ‘자연화’했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은 ‘자연’으로서 이성과 분리되었으며, 무질서하고 감정적인 동시에 혼란스럽고 동물적인 신체성에 종속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흑인종(더욱 동물적인 존재로 여겨졌다)의 열등함,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문화의 열등함, 노예에 대한 주인의 우월함, 피고용인에 대한 시장의 우월함, 육체노동자에 대한 정신노동자의 우월함 등을 정당화하는 데에도 이와 동일한 이데올로기가 동원되었다. 서구 식민지 개척자들...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그들이 마주친 원주민들은 기독교 문명의 형태를 한 이성의 바깥에 있었고, ‘원시적’이고 어린애 같으며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졌다. ... 콜럼버스의 시대부터 원주민을 ‘자연’으로 보는 관념은 침략과 노예화와 학살을 정당화했다. 콜럼버스의 정복을 기록한 역사가인 스페인의 라스 카사스Las Casas신부는 기독교도들이 원주민을 깔보고 노예로 삼기에 딱 알맞다고 여겼다고 지적했다. “자신들이 동물인지 영혼을 가진 존재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Turner 1986: 142). ... 서구 문화는 바로 이런 틀로 세계를 파악했다. (628-629)
태즈메이니아와 억압의 네크워크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목격된 첫 번째 축적 형태인 태즈메이니아의 바다표범 어업 사례...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형당한 죄수, 침략을 당한 원주민, 이러한 인간 억압 과정에 부채질을 한 바다표범과 고래의 역사는 이데올로기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에서 공히 서로 엮여 있다. 유형 제도는 기존의 장기적인 축적 과정의 산물인 영국의 계급,소유 구조의 극도로 억압적인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바다표범과 고래 도살은 죄수 이송 산업에 연료와 기름, 상업적 기반을 제공했다.
1700년대에 배스 해협과 태즈메이니아의 섬들에 살던 바다표범은 수십만마리였다. ...1798년 최초로 바다표범 사냥 원정에 나선 이래 불과 8년 만에 바다표범 수가 상업적 포획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떨어졌다. 바다표범이 고갈될 때마다 사냥꾼들은 다른 주나 뉴질랜드 등지로 무대를 옮겼다. 바다표범 사냥꾼들은 물가로 나오는 바다표범을 크기와 나이에 상관없이 몽둥이나 칼로 잡았고, 번식지를 서슴없이 파괴했다. (629)
콜린스William Collins가 더원트Derwent...에 고래 사냥 기지를 세운 1806년부터 고래들도 바다표범과 똑같은 운명에 처했다. ... 불과 몇 십 년 만에 포경업자들은 남방긴수염 고래를 지역에서 절멸시켰다고 의기양양하게 뽐낼 수 있었다. 포경업은 뉴질랜드로 진출해서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죄수들을 실어 나르던 선박들이 바다표범이나 고래 사냥에 나섰고, 선창에 기름이나 가죽을 가득 채운 채 ‘문명’세계로 돌아왔다. 뒤이어 탈주 죄수들과 병사들은 이들 산업의 돈벌이에 톡톡히 기여하는 비정하고 지독한 노동자 집단으로 변신했고, 멸시받는 원주민을 일소하는 데 이바지했다. ... 이 산업은 또 수많은 원주민 여성을 납치해서 노예로 삼는 일에도 나섰다. 사로잡힌 원주민 여성들은 학대와 강간을 당했고, 원주민 남성과 아이들은 살해되었다.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은 백인들이 정착하는 범위를 따라 거의 절멸되었다. 오늘날 조상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집단으로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원주민의 정체성을 주장하면서도 전통적인 문화와 땅은 거의 갖고 있지 않다. (630)
자연은 야만적이고 이질적이며 동물적인 것이자 수동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 원주민들은 ... 문화가 없는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770년에 어드벤쳐 만에서 제임스 쿡 선장은 원주민은 “숲속의 짐승처럼 살았다”고 썼다. (630-631)
의복을 문명과 문화의 징표로 해석하는 곳에서 나체란 문화가 없는 동물 상태, 즉 육체로 축소된 상태의 증거이다. ... 이런 이데올로기에서 보자면, 원주민들의 나체와 원주민 생활의 기술 경제는 그들을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자연 영역의 일부로 보고 바다표범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어도 됨을 의미했다. (631)
자연과 주인 없는 땅
이런 이데올로기는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절멸뿐만 아니라 ‘주인 없는 땅’이라는 규정 아래 오스트레일리아를 병합하는 철학적 토대로도 작용했다. ...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도 이 교의를 활용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분류했으며, 유럽인들의 기록에서 그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지워 버렸다. (631)
‘자연’ 범주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범주였다. 자연 범주에 속하게 되면 그 주민들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타자로 여겨지지 않았고, 권리를 존중할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식민지 개척자의 권리에 어떤 제한도 가할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자연 범주는 인간과 비인간 영역 모두에서 억압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631-632)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서 세계 많은 지역의 원주민들은 여전히 이와 동일한 이데올로기 아래서 열등시되고 살해되며 생활 수단에 대한 접근권을 박탈당한다. ... 포유동물의 번식지를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새끼를 낳는 현장에서 고래와 바다표범을 살육하는 행위의 바탕에는 인간도 생명과 재생산 과정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이 과정을 경멸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을 자연의 외부로 여기고 자연을 무한한 공급자로 간주하는 인식의 바탕에는 바로 이런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 지속가능성 문제의 핵심에는 비인간 생물, 육체, 여성 노동, 재생산 등의 영역에 대한 의존을 부정하는 이런 서구의 정복자 의식이 있다. ... 오늘날 이 이데올로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자연화한다. 어린애처럼 선견지명이 없고, 동물처럼 미래의 만족을 위해 참을 줄을 모르며, 자격이나 합리적 자기 개발이 불충분한 빈민들은 이성과 거리가 먼 자연으로 여겨진다(Ehrenreich 1989). 억압의 네크워크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확대된다.(632-633)
협동적 운동 전략: 방법론과 정치학
억압을 ... 한데 맞물린 복수의 지배 형태의 네트워크로서 파악하면 ... 해방운동에 많은 조정이 필요하다. 관련된 비판들을 단순히 합산해서는 안 된다. 많은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억압의 복수성을 다루는 한 방법은 각각의 억압에 모든 억압이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이다-이를테면 페미니즘은 모든 억압 형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보아야 한다(Warren 1987: 133). 그러나 하나의 거대한 운동이라는 바닷속에 모든 운동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뒤섞인다는 대양적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 여성 억압의 특수성과 생생한 경험과 관련된 설명의 필요성을 부정한다면, 또는 운동들 사이에 지향점이 서로 다르거나 이해의 충돌(가령 인종, 민족, 성적 억압)이 생겨날 가능성을 부정한다면,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하다. ... 여러 투쟁이 공통의 기원이나 적, 개념 구조를 가진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동일한 투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운동은 특히 ... 운동의 자율성과 독자적 정체성이 중요함을 주장하고자 했다. (623)
여성들이 평등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중립적이고 정치와 무관한 사회나 인간 개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남성적이기만 한 순수하고 절대적인 지배 형태도 없다. ..
해방 투쟁을 단지 우연히 잠시 연결되는, 변하기 쉬운 복수성으로 볼 것인가(포스트구조주의으 시각), 아니면 한 덩어리의 획일적이고 통일된 체계로 볼 것인가 하는 선택을 설정하면 딜레마가 생겨난다. 그러나 이 구조를 복수이면서 통일된 것으로 볼 이유가 있다면, 이 두 측면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모델은 왜곡을 하는 셈이다. 이런 하나/다수의 딜레마를 피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 억압 형태들이 매우 밀접하게, 본질적으로 연결되며, 함께 작용하여 일정한 구별과 차별성을 가진 하나의 단일 체계를 형성한다고 보면 된다. 하나/다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작동 모델은 여러 억압이 하나의 네트워크가 그물망을 형성한다고 본다. 그물망에는 하나와 다수, 구별되는 초점과 경향이 각 부분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모두 존재하지만, 통일된 전체적인 작동 방식은 하나의 단일한 체계를 형성한다. (각주 10. 그물망 비유는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계급 착취, 생태계 파괴 등은 가부장제 구조가 의존하는 맞물린 기둥을 형성한다.“(Sheila Collins, Warren 1987: 7쪽에서 재인용)는 말에서처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하는 기둥 비유에 대한 대안이다. 또 다른 것으로 펄먼(Perlman 1983)이 사용하는 신체의 비유가 있다. 다른 모델에 관해서는 Albert et al. 1986을 보라. 그물망 모델은 물론 푸코(Foucault 1980: 234쪽)가 제시한 것이다. 최근에 하트삭(Hartsock 1990)은 푸코의 모델을 비판한 바 있다.)(634)
억압 형태가 상호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억압들이 하나의 상호 지원하는 체계를 형성한다고 보아야 한다. ... 그물망의 경우처럼 각각의 부분을 함께, 그리고 따로따로 초점을 맞출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구별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넓은 투쟁과 반드시 중첩되며 거기에 참여한다고 보는 벨 훅스의 관점은 그물망 같은 억압의 성격에 함축된 정치학을 포착한다. (hooks 1989:22쪽). (635)
해방과 그물망
억압이 그물망을 형성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지구 전체를 에워싸고 별들에게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하는 그물망이다. 세계의 점점 더 많은 지역이 전 지구적 시장 체계에 통합되고 이 체계가 전 지구적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에 휘말림에 따라 이 그물망의 가닥은 어느 때보다 더욱 탄탄해지고 생명에 해를 끼친다. 이런 그물망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론과 전략에서는 그물망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각 부분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이 부분을 잘라 내서 이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고 다른 억압 형태는 사라질 것이다.” 그물망 구조의 국지적인 부분에 손상을 가한다 해도 그물망은 기능하고 구멍을 메울 수 있다. (635)
그물망을 다루는 전략을 위해서는 협동, 즉 정치적 연합의 형성이 필요하다. ... 그러나 오늘날 녹색 이론의 주요 흐름인 사회생태론과 근본생태론은 이런 최소한의 원칙을 고수하지 못한다.
... 근본생태론은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페미니즘 같은 다양한 급진 운동보다 미국의 자연 신비주의나 불교 같은 동양의 종교 전통과 손잡는 쪽을 선택했다. ... 근본생태론은 생태적 자아를 다른 운동을 위해 적절한 연결의 기초를 형성하는 관계론적 자아라고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사회생태론자들은 이런 선택에 내재한 일부 정치적 함의를 올바르게 지적했다. 급진 운동 및 전통과의 연결에서 떨어져 나가, 환경문제를 우연적으로만 연결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운동과 전통으로 나아간 것이다. (636)
지금 우리는 한층 더 완전하고 연결된 방식으로 지배의 그물망을 이해할 수 있으며, 따라서 훨씬 더 포괄적이고 연결된 방식으로 저항을 실천할 수 있다. ... 사상 처음으로 그물망의 전 지구적 권력이 인간과 생물의 생존 자체를 동시에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그물망 조직의 몇몇 필수적인 부분들이 처음으로 의식적이고 자기성찰적인 폭넓은 저항 주체로 부상한다는 점이다. 이 공통된 구조와 이성과 자연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면 저항의 이론과 실천을 위한 더 폭넓고 깊고 완전한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몇몇 결정적인 연결 고리를 메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636-637)
마르크스주의 같은 ... 과거의 이론들은 권력의 그물망을 불완전하고 환원주의적이며 단편적으로 이해했다. 이들이 이론뿐 아니라 실천에서도 실패한 이유를 추적해 보면 바로 이런 불완전성에 그 기원이 있다. 이런 맹점 때문에 지배는 언제든지 ... 자신을 혁신하고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많은 급진 이론, 특히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여전히 이성과 자연의 이데올로기이 안에 갇혀 있었다. 생태적 합리주의 같은 오늘날의 녹색 대안들에서도 이런 이데올로기를 찾아볼 수 있다. ... 급진 전통이 품은 인간 평등의 전망과 오랜 역사적 시기에 걸쳐 발휘한 거대한 창의적, 지적 에너지 덕분에 모든 민족(과 식물과 새와 짐승)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전망이 형성될 수 있었다. 우리는 과거 급진 전통의 강점과 힘을 인식하는 한편 그에 걸맞게 대대적인 수정과 손질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