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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복혜(福惠) (사학징의 p.91~93) * 칸디다, 福者 : 성은 정(鄭)이고, 사호는 간지대(干之臺, 칸디다)이다. 1801년 2월에 붙잡혀 와서, 포도청에 이송되었다가 다시 와서 4월 2일에 사형을 당했다.
본조문목 : 너는 여항(閭巷)의 천한 노파로 흉악한 무리와 체결하여 사학에 깊이 빠졌다. 부녀자를 종용하여 요술을 전하고 무리를 미혹시킨 형상이 죄수의 공초에서 이미 드러났다. 너의 죄상은 실로 발뺌할 도리가 없다. 너는 누구에게 강론을 받았는가? 함께 배운 자는 누구인가? 왕래하며 전해 익힌 것은 몇 곳인가? 너의 사호는 무엇인가? 앞뒤로 범한 바 정황을 감히 숨겨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바르게 고하라.
본조초(本曺招) : 제가 우매한 까닭에 사학이 사형죄가 되는 줄도 모르고 이가(李哥: 이합규)가 가르쳐 꾀는 것을 달콤하게 들었고, 비록 사학을 하였어도 깊이 미혹되는데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이합규가 제 사호를 간지대(干之臺)로 지어주었습니다. 대개 사호를 부르는 것은 죽은 뒤에 좋다고 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연 칭호를 얻었습니다. 또한 조예산(趙禮山: 조시종)의 집과 친하게 알고 지내, 자주 왕래하였습니다. 조예산의 처 한신애와 과부가 된 딸 조혜의도 사학을 하였습니다. 제게 이합규와 정광수, 홍문갑을 청해오게 하였고, 이합규는 교주라 부르며 밤중에 혹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본조초 : 이합규는 한조이(한신애)의 말이 그집 비복들을 가르치려 하다고 저를 시켜서 청해왔습니다. 그래서 이합규를 그집에 맞이하여 왔지만, 사랑채의 양반이 이를 알까 두려워서 바로 돌려보냈습니다. 정광수도 또한 제가 부르러 가서 청사(廳事)에 앉아 비복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그들이 배우지 않아서 돌려보냈습니다. 그 밖에 계동(桂洞)에 사는 늙은 할미 모녀가 그 집에 자주 왕래하였습니다. 이른바 교주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은 덕산(德山) 사는 이름은 알지 못하는 송가(宋哥)인데 저와는 서로 친했습니다. 연전에 상경하여 제게 사서를 내다 팔게 해서 의복을 사입고 갔는데, 이미 죽었습니다. 제집에서 찾아낸 서간은 제 아들 윤석춘(尹碩春)의 처가 이참판(李參判 : 이기양) 집 유모여서 저 또한 그 집을 출입하였고, 이진사(李進士 : 이총억)가 사랑채를 도배한 뒤에 제게 휴지를 주므로 제가 과연 남겨 두었습니다.
승관초 : 저는 이합규에게서 사학을 배워 단단히 미혹되어 깊이 빠졌고, 세례를 받고 사호를 받았습니다. 조예산의 집과 강완숙의 집을 들락거리며 매파가 되었으며, 얽혀서 세례를 받아 기강을 어지럽히는 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붙잡혔을 때는 도당들을 가려주어 보호하고, 사서를 숨겨 감추고 밤중에 옮겨 묻어둔 죄를 자백합니다.
결안초 : 저는 남자 교우와 얽혀서 부녀자를 잘못 그르쳤고, 요서와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한신애의 집에 맡겨서 숨겨두어, 훗날 요서를 전하려는 계책으로 삼았으니, 만 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12. 윤운혜(雲惠) (사학징의 p.93~95) * 루치아, 福者 : 성은 윤(尹)이고, 윤점혜(尹占惠)의 아우이다. 사호는 누재(樓哉: 루시아)이다. 1801년 2월에 잡혀 와서 4월 2일에 사형 당했다.
형추문목 : 너는 신분이 비록 낮아도 또한 상천(常賤)과는 다른데, 대체 무슨 심보로 사학에 깊이 미혹되었는가? 자신이 이를 범하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남편까지 가르쳐 꾀어, 집안의 제사에 참여함이 싫다 하여 남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기꺼이 사학의 소굴이 되게 하기에 이르렀다. 맞닿은 가옥과 이어진 담장이 온통 악을 함께 하는 집인데다. 대문이 서로 통해 밤낮으로 뒤섞였다. 왕래하며 뒤얽힌 자로 말할 것 같으면 강완숙 골롬바가 아니면 간지대의 무리였다. 고로동(古老洞: 안국동의 다른 이름이다.)의 임조이(任召史)는 가까운 친척 사이라 맺어 혈당이 되었으니 왕래하며 뒤얽힌 것이 모두 사학하는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근래 기찰 포교에게 일이 발각된 뒤에는 이웃 서너집의 요서와 요물을 거두어 모아 임조이의 집에 전부 감춰둔, 지극히 요망하고 몹시 참람한 죄상이 남김 없이 탄로났다. 흥련(興連)과 김경애(金景愛) 등의 요서와 요화도 모두 네 집에서 샀다고 하였고, 이로 인해 배우기까지 했다 하니, 네가 가르쳐 꾀어 무리를 미혹시킨 죄는 스스로 달아날 수가 없다. 게다가 내력으로 말하더라도 양근에서부터 두루 흘러다닌 정황은 일만 사람의 눈을 가리기가 어렵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비록 발뺌을 하고자 한들 할 수 있겠는가? 감히 숨겨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바르게 고하라.
형추초 : 저는 제 어미에게서 사학을 배워 사서를 보아 익혔습니다. 제 남편 정광수 도한 전부터 사학을 해서, 저와 함께 강론하였습니다. 사학을 하는 사람은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지라, 실제로 남편을 데리고 상경하여, 동당(同黨)인 사학하는 사람 최해두와 조섭 등 세 집의 중간 담장을 서로 통하게 해서 왕래하였습니다. 강골롬바는 제 언니가 그 집에 깃들어 살았고, 또한 사학을 하였으므로 강완숙과 제 언니가 한 차례 제 집에 왔었고, 저는 가보지 않았습니다. 간지대 정복혜는 작년에 한 차례 왔었고, 임조이는 저의 가까운 친족이어서 제가 과연 왕래하였습니다. 금번 체포함이 몹시 엄하기에, 제 집과 이웃에 사는 최해두, 조섭 두 집의 요화와 사서 등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을 임조이의 집에 감춰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흥련과 이흥임, 김경애 등이 요화를 사갔고, 또 사학을 배웠습니다. 제 남편은 금년 정월 초 6일에 최해두, 조섭 두 사람과 함께 모두 달아났고, 제 언니는 강완숙과 함께 포청에 붙잡혔습니다. 저는 혼서(婚書) 없이 정광수의 아내가 되었고, 별호는 누재(樓哉: 루시아)입니다.
승관초 : 저는 사서에 깊이 빠져 조상의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나무라며 꾸짖음이 너무 심해서 제 남편과 함께 상경하였습니다. 간지대는 여자로 사학을 하는 매파인데 또한 서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임조이는 상경한 지가 오래지 않아 동네 사람의 지목을 잠시 면하겠다 싶어 제집과 조섭 최해두의 요서와 흉한 그림 등 삿되고 더러운 물건을 임조이의 구들장에 옮겨 두었다가 체포된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결안초 : 제가 어려서부터 사술을 배우고,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떠돈 추한 행적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 남편의 악행을 함께 하여 시가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흉악한 무리와 이웃이 되었고 요망한 여자와 뒤얽혀서 요화와 흉하고 더러운 물건을 직접 만들어서 내다 팔았으며, 많은 사람을 가르쳐 꾀어 한 세상을 속여 미속시켰으니,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13. 강완숙(完淑) (사학징의 p.95~98) * 골룸바, 福者 : 성이 강(姜)이니, 홍필주의 계모이다. 사호(邪號)는 갈륭파(葛隆巴: 골롬바)이다. 포도청에서 와서 1801년 5월 22일에 사형을 당했다.
포청초 : 저는 10여년 전에 예산에 사는 공씨(孔氏) 성의 과부에게 사서를 처음 배웠습니다. 을며년(1795) 봄에 남경(南京)에서 나온 신부라고 부르는 사람이 최인길의 집에 있다는 말을 듣고, 가서 그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를 데려다 두었다는 얘기는 정말 억울합니다.
포청주뇌초 : 저는 제집에 주문모를 데려다 두고, 뜻을 오로지 하여 배웠고, 매달 7일에 첨례라 하며 설법하고 모여서 강론 할 때는 나인(內人) 문영인(文榮仁)과 제 집안 여자 복점(福占) 등이 함께 강습에 참여하였습니다. 작년 12월에 주문모가 장차 아현의 황진사 집으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로 숨어 피해간 곳을 알지 못합니다.
포청초 : 신해년(1791)에 윤지충이 사학으로 공주 감영에 붙잡히자, 저도 사학을 하였다고 적발되어 감영에 갇혀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홍지영(洪芝榮)은 제 남편인데 저를 내쫓았고 제 오라비 또한 자취를 끊었습니다. 제가 늘상 서찰을 주고 받은 곳은 정약종, 정약용 및 오석충(吳錫忠), 권철신, 문영인 등의 집이었고, 서찰은 또 이미 적발되었으니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포청초 : 저는 조예산(趙禮山: 조시종) 집의 부인과 서로 친하게 왕래하였고, 폐궁의 강경복과 서경의 등 두 나인에게 사서를 교습하였습니다. 그 뒤 두 나인이 강화도 죄인의 처인 송씨와 송씨의 며느리 신씨(申氏)를 제 집에 두 차례 데려 와서, 신부와 함께 나란히 앉아 경문을 듣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몇 차례 답례로 가 보았습니다. 이번 달에 황사영이 숨어 피할 곳을 간절히 청하므로 제가 용호영(龍虎營) 안의 늙은 할미 집에 숨어 지내게 하였습니다.
형추문목 : 네가 비록 일명(一名), 즉 서족(庶族)이라고는 하나 양반의 집안이다. 그리고 지아비도 있고 아들도 있으며 먹고 입는 것도 넉넉한데, 대체 무슨 마음으로 스스로 사교에 빠지는 것도 부족해서, 물들어 속이고 더럽혀 미혹시켜 남녀와 상하의 분별도 없이 독을 흘리고 악을 퍼뜨리는데 날이 부족하다 여겼느냐? 진실로 이미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다. 주문모를 교주로 머물러 지내게 하면서 기이한 재화로 삼아 무리를 모아 모여서 밤낮으로 뒤섞인 형상은 이미 낱낱이 포청에서 자백하였다. 요컨대 그 귀결되는 뜻이 오로지 사술에 깊이 미혹된 데 있을 뿐이라면 안배하고 경영하여 장차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이냐?
폐궁에 한 번 걸음하는 것은 마치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보니, 무릇 사람의 마음이 있는 자라면 그렇지 않음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반드시 인연을 맺어 교통하며 주문모에게 들이려 한 것은 과연 무슨 의도이냐? 황사영은 바람난 마소로도 절로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깊은 교유와 감춘 정이 있어 더불어 생사를 함께 한단 말인가? 애초에 깊은 규방에다 자취를 숨겨주었고, 또 다시 도망자의 소굴로 길을 가리켜 준 것은 네게 있어 오히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속한다. 그러니 또한 어찌 통상적인 정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겠는가? 이제 엄한 신문 아래 감히 숨겨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고하렸다.
승관초 : 저는 공씨 과부에게서 사서를 배웠습니다. 신해년(1791)에 윤지충이 전라 감영에 체포되었을 때, 제 이름이 죄수의 공초에서 나와 사서를 수색해 가고 제 남편을 붙잡아 가서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죄로 다스리자, 제 남편이 저를 쫓아내 다시는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 집에다 주문모를 숨겨 두고, 세례를 받고 사호를 받아 갈륭파(葛隆巴: 골롬바)라고 하였습니다. 매달 7일에 설법하고 첨례할 때는 문영인과 복점 등이 같이 참석했고, 조예산의 집과 전동(磚洞) 폐궁과 교통하며 왕래하였고, 폐궁의 나인인 강경복과 서경의 두 여자가 와서 학습하였습니다. 심도(沁都: 강화) 죄인의 처와 며느리 또한 두 차례 제 집에 와서 주문모와 나란히 앉아서 경문을 듣고 돌아갔으므로, 저 또한 몇 차례 찾아가 보았습니다. 가르쳐 꾄 사람은 제 딸 홍순희(洪順喜)와 윤점혜, 복점, 달님(月任), 정임(丁任), 효명(孝明), 김연이, 덕이(德伊), 문영인, 정순매(鄭順每), 득임(得任), 순이(順伊) 등이옵고, 서찰로 서로 연통한 곳은 정약종, 정약용, 오석충, 권철신 및 권철신의 누이의 집입니다. 황사영은 친숙하게 지내면서부터 주문모와 요서를 강론하였고, 금년 2월에 황사영이 숨어 있을 곳을 얻고자 하므로 제가 과연 김연이의 집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저는 이미 이 학술을 배웠으니 죽어서 낙지(樂地)로 돌아가게 될 것을 자신합니다. 그래서 비록 형을 당해 죽는다 해도 조금도 뉘우쳐 깨달을 것이 없습니다. 사학에 심하게 미혹되어 주문모를 숨겨 두고, 윤리를 어그러뜨리고 상도를 무너 뜨려 한 세상을 속여 미혹시킨 죄는 만번 죽도라도 오리혀 가볍습니다.
결안초 : 저는 사서를 배워 얻어 바른 도리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해년(1791)에 공주 감영에 붙잡혔지만 조금도 뉘우치거나 두려워 하지 않았고, 제 남편에게 쫓겨나고도 또한 그만둘 줄 몰랐습니다. 주문모를 높여 받들어서 6년간 숨겨 두었고, 추악한 행실이 낭자하게 남의 이목에 올랐습니다. 온 집안의 노소를 가르쳐 꾀고, 각처의 요사하고 흉악한 자들과 체결하였으며, 폐궁과 교통하여, 도처에서 그르치고 잘못되게 하였으니, 만번 죽더라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14. 한신애(新愛) (사학징의 p.98~99) * 아가다, 福者 : 성은 한(韓)이고, 조혜의(趙惠儀)의 계모다. 사호는 아가대(亞加大: 아가다)이다. 1801년 2월에 붙잡혀 와서, 5월 22일 사형 당했다.
형추문목 : 너는 처지가 비록 한미하나 그래도 사족(士族)의 서얼이라 여항의 천한 아랫것과는 다름이 있다. 그런데도 기꺼이 사학을 하여 모녀가 깊이 빠졌다. 흉악하고 더러운 물건과 요사스럽고 간특한 책을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이번에 모두 발각되었으니, 네가 입이 석자라도 진실로 변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묻는 것은 이른바 교주를 청해온 사람이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닐 것이니, 성명은 누구이고 불러온 자는 어떤 사람인가? 감히 감춰 숨김 없이 사실대로 고하렸다.
형추초 : 저와 제 딸이 잘못하여 사학에 들어갔습니다. 사호를 갈륭파(葛隆巴, 골롬바)라 하는 강조이(姜召史)가 제 집을 왕래하다가, 제 집의 묵은 역서(曆書)에다 사서를 베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모녀가 과연 보고서 익혔습니다. 강완숙은 제가 아들과 비첩 들에게 능히 가르치지 못한다고 하여 매번 비웃곤 했습니다. 또 그 말 중에 남자 교우 중에 가장 높은 자는 중인으로는 이용겸(李用謙)과 김심원(金深遠)이고, 양반은 정광수와 황사영 진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호를 간지대(干之臺)라 부르는 정복혜를 시켜 이용겸을 청해오게 해서 비복들을 가르치게 하려 했지만 제 아들이 알까 두려워서 바로 돌려 보냈습니다. 또 정광수를 청하여서 비복들을 가르치려 했으나, 비복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또한 그대로 돌려보냈습니다. 제 딸이 수 차례 강완숙에게 가서 만나보았는데, 사호를 이로수(二老叟)로 부르는 강완숙의 시모가 제 딸을 나무라며 “이렇게 눈 어두운 사람이 어떻게 성교(聖敎)에 들어올 수 있었누?”하면서 구박이 몹시 심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서와 요상(妖像)을 땅에 묻은 것은 모두 정간지대가 가져온 것이지, 실로 제가 감춰 두고 보아 익혔던 물건이 아닙니다.
승관초 : 제가 작년 여름에 강완숙의 집에 갔다가 중간에 더위를 먹어 정신을 못 차리자, 강완숙이 하는 말이, “만약 지금 영세를 받지 못하면, 장차 미치지 못할 염려가 있다”고 하면서, 신부가 물을 붓고 강완숙이 십자를 그었습니다. 인하여 별호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 해 가을에 제가 또 강완숙의 집에 갔더니 강완숙이 저를 끌어당겨 붙들더니 신부에게 예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차례 절을 올렸을 뿐입니다. 땅에 묻은 요서 등의 물건은 대부분 간지대가 각처에서 요망스런 사람의 물건을 거두어 온 것입니다. 저는 사학에 깊이 빠져 제 딸을 가르쳐 꾀어 세례를 받고 사호를 받았으며, 첨례하고 강습하였을 뿐 아니라, 요서와 요화를 집안에 감춰두었다가 붙잡히기에 이르렀으니,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결안초 : 저는 사학에 빠져 모녀가 함께 악을 행하였고, 밤중에 이합규를 불렀고, 저녁에 정광수를 맞아들였습니다. 강완숙과 뒤얽혀 주문모를 찾아보았고, 세례를 받고 사호를 받았으나,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각처의 요망하고 흉악한 남녀를 집안에 머물게 했고, 더러운 물건 또한 창고 안에 묻어 두다가 붙잡히기까지 했습니다. 스스로 범한 죄를 헤아리건데,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15. 강경복(姜景福) (사학징의 p100~103) * 수산나, 福者) : 강씨이니, 폐궁의 나인이다. 사호는 선아(仙娥, 수산나)이다. 국청에서 왔다. 신유년(1801)년 5월 22일 처형되었다.
포청초(捕廳招) : 저는 폐궁의 나인으로 홍문갑의 어미에게서 사서를 배워, 이제껏 빠져 미혹되었습니다. 엊저녁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늙은 나인 이녀(李女)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동(磚洞) 문 앞에 기찰 포교가 지키고 서 있던데 어떻게 들어왔는가?” 제가 마음으로 놀라 겁을 먹고, 그날 뒷문으로 몰래 나왔다가 그 자리에서 붙잡혔습니다. 어찌 감히 감추어 숨기겠습니까? 사서를 배우려고 홍문갑의 집에 갔더니 홍문갑의 어미가 한 남자와 함께 같이 앉아서 경문을 가르치는데, 그 소리가 벙어리 같은지라 홍문갑의 어미가 대신해서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이 학문이 너무 좋아 비록 죽더라도 변하기가 어렵습니다.
포청주뇌초(捕廳周牢招) : 이달 보름 사이에 홍문갑의 여종 소명이 신부와 함께 폐궁 안에 숨어 있던 모습은 제가 연달아 보았습니다. 마침 개인적인 일로 나갔다가 이튿날 저녁에 돌아오니, 늙은 나인 이덕빈(李德彬)이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다. “불행히도 들어왔구나.” 그래서 제가 달아나다가 창의문(彰義門) 안에 이르러 기찰 포교에게 붙잡혔습니다. 신부가 간 곳은 들어 알지 못합니다. 평소에 듣기로 송씨(宋氏)와 함께 배운 여인은 바로 조씨(趙氏) 노파라하니 혹 그리로 옮겨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달리 더 고할 것은 없습니다.
포청초(捕廳招) : 깊이 빠진 학문이라 비록 사형을 당하더라도 다시 바꿀 마음이 없습니다.
형추문목(刑推問目) : 너는 폐궁의 나인으로 사학에 깊이 빠져, 바깥 사람과 뒤얽힌 정황을 포청에서 이미 인정하였고, 국정(鞫庭)에서도 조사를 받았다. 이른바 천주교 서적을 이미 홍문갑의 어미에게서 배웠다면, 네가 폐궁의 나인으로 애초에 홍문갑의 집안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느냐? 홍문갑의 집에서 주문모를 보았고, 여러 차례 사서를 강습하였다. 그렇다면 영세를 하고 사호를 받는 것은 바로 사학하는 무리가 늘상 행하는 일이거늘, 앞선 공초에서 이에 대해 거론하지 않은 것은 무슨 뜻이냐? 너는 주문모에 대해서도 또한 처음으로 얼굴을 보았다 하나, 주문모가 폐궁에 들어가게 된 인연이 네 소개 아니었다면 과연 누구란 말이냐? 함께 온 자가 비록 홍문갑의 여종 소명이라고는 해도, 지금까지 주문모를 폐궁에 숨겨둔 것은 폐궁으로부터 또한 틀림없이 몰래 소식을 통하여 끌어들여 맞이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누구인가?
너는 서경의(徐景儀)와 똑같이 친하게 지낸 궁인이고, 똑같이 사학에 깊이 빠졌다. 그럴진대 주문모가 몰래 피해왔을 때 무슨 까닭으로 서경의는 하루가 지나고서야 알고, 너는 처음부터 같이 들었더란 말이냐? 네가 더욱 친근하게 보이는 것은 사학에 깊고 얕음이 있어 대우함도 두텁고 박함이 있기 때문인가? 깊고 깊은 협실(挾室), 즉 곁방에 몰래몰래 숨겨둔 것을 너는 이미 알았고, 서경의는 알지 못했으니, 틀림없이 한 방에 같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상시에 뒤얽혀 배포한 것은 사학 외에 어떤 일이 있었느냐? 주문모가 달아나기 전에 틀림없이 몰래 일의 기미를 연통하고 비밀스레 계책을 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네가 홍어린아기련의 집에 들어갔던 것은, 이미 홍어린아기련의 공초에 너에게 수작한 내용이 있을 뿐 아니라, 네가 잠깐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자 주문모가 뒤따라 바로 달아난 것은 네가 가리켜 알려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옥안(獄案)에 이미 모든 정황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으니, 비록 발뺌하려 한들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감히 숨겨 감추지 말고 사실대로 고하렸다. 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고 보니, 깊이 빠졌던 마음에도 능히 뉘우치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실대로 말하여라.
승관초 : 저는 3년 전 죄인 송씨에게서 사학을 처음 배웠고, 강완숙에게 늘상 왕래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친하게 알았습니다. 작년(1800) 가을 강완숙의 집에 갔다가 주문모를 찾아보고 과연 세례를 받은 뒤, 선아(仙娥, 수산나)를 사호(邪號)로 받았습니다. 폐궁의 송씨와 신씨(申氏) 두 죄인이 강완숙의 집에 가서 주문모와 함께 첨례하고 강학에 참석했을 때, 저는 송현(松峴) 폐궁의 나인이어서 함께 가지는 않았습니다. 주문모를 폐궁에 숨겨 감췄을 때는 틀림없이 몰래 소식을 통하고, 이끌어 맞이하여 온 사람이 있겠으나,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제 어미가 강가(康哥)의 집 곁채에 세들어 살고, 금년 정월은 바로 제 아비의 대상(大祥)이지만, 저는 사학하는 사람이라 제사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오라비는 사학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상을 지내려고 와서 홍어린아기련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날 머물러 잤는데, 홍녀의 아들 강가는 포교로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홍녀 또한 “청석동 나인이 방금 기찰 당해 붙잡혀 들어 갔다. 네가 나인으로 여염집에 머물러 지내는 것은 지극히 긴요치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즉시 전동(磚洞) 폐궁으로 갔더니, 주문모가 곁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제가 되나와 송현 폐궁에 들어가자 폐궁의 붙이들이 흉흉하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달아나다가 포청에 붙잡혔습니다. 저는 사학에 깊이 빠져서 바른 도리로 여겼고, 폐궁에 자취를 의탁하여 주문모를 찾아보고 세례를 받고 사호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져서, 이제 비록 형벌에 임해서도 조금의 뉘우침이 없습니다.
결안초 : 저는 죄인과 더불어 가속(家屬)으로 악을 같이 하고 서로를 도와, 사술(邪術)에 빠져 바른 도리로 알았으니, 달게 형벌을 받아 죽겠고 끝까지 바꾸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