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숲속작은책방의 첫 행사가 열렸습니다.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4월의 작가인 김탁환 작가님과 함께한 시간입니다. 신간이 나오면 늘 한 번씩 책방에 들러주시곤 하는 분이시라, 숲속작은책방 뿐 아니라 전국의 동네책방들과 뗄 수 없는 친구 사이인 김탁환 작가님.
이번엔 특별히 "작가의 책밥상"이란 주제로, 신간 이야기 뿐 아니라 작가의 삶에 의미있었던 음식들을 가져와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꾸며 봤는데요. 이 시간에 함께하고 싶다고 찐 팬 독자님들이 멀리서 많이 신청해주셨습니다. 그가운데 일단 지역 우선으로 괴산 북클럽 식구들, 그리고 간절한 사연을 보내 찐팬임을 입증해주신 분들을 초청했는데요. 작가님을 위해 독자들이 직접 준비한 음식과 정성이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4월23일 금요일, 곡성에서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의 주인공들이신 미실란농업법인 이동현, 남근숙 부부와 함께 책방에 도착하셨습니다.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책에 사인도 해주시고요.
다음날 오전 11시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책밥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봄날 정원이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었음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정원에서 복닥이는 밥상을 차리지는 못하고 책방 실내에서 북토크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약 한 시간에 걸쳐 작가님의 소설 인생, 그 대장정이랄까 하는 걸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듣고요....<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어 보았습니다.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간단히 줄여서 정리해 봅니다.
"이 책은 하나의 작품이지만 처음부터 세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각 부마다 전혀 다른 방식의 글쓰기로 구성했는데요, 1부는 아서의 마음, 2부는 그레이스의 몸, 3부는 두 가지가 하나로 합해진 결말로 나뉘어 봤습니다. 책을 처음 구상했을 때는 비건이 아니었는데, 다른 작업들을 마치고 막상 이 책을 쓰려고 했을 때는 비건이 된 후여서 조금 난감한 점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동물의 가죽으로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이 그것이죠. 고민을 했으나 '가방'이라는 소재에 대한 매력이 컸고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냥 변경하지 않고 처음 생각한대로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작가님이 소설 인생을 짧게 요약해주셨던 부분이 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30대에는 무조건 재미난 소설을 써야지 했습니다. 그러다 40대 이후에는 뭔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질문, 본질에 대한 소설이요. 그걸 다루는 방식으로는 '의식주'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시간을 타지 않는 영원한 질문이지요. 그런데 세월호를 만나 이 주제가 뒤로 미뤄지면서 <거짓말이다> <살아야겠다> 등 소위 사회파 소설들을 쓰게 되었어요. 그리고 인간의 선과 악 중에 선을 다룬 소설을 쓰려고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썼고요.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를 고민하며 쓴 책이 <대소설의 시대>입니다. 이렇게 쓴 뒤에야 비로소 의식주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렇게 쓴 작품이 소설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라는 농업 이야기였고,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는 가방이라고 하는 패션산업을 소재로 하게 되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의과 식을 다루는 중에도, 그 주인공들은 모두 해당 업계의 소수자들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미실란 농업법인은 관행농의 일반 규칙을 저버리고 모두들 안된다고 하는 길을 걸어온 곳이고 '유다정'이라는 주인공 역시 사업이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일반적 조언을 모두 무시하고 자기의 고집을 지켜나가는 인물이지요.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는 첫번째, '만남'입니다. 당신이, 그가, 그녀가, 이 집이, 직업이....내게 어떻게 왔을까 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그런 모든 만남은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 키워드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데려오고 싶어서 이번 책에선 특별히 풍경들의 묘사에 주력했습니다. 독자들이 주인공들이 섰던 그 자리,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길 원했습니다. 최근 장편에선 이런 풍경이 많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개 자신의 내면을 그리거나, 혹은 서있는 자리들 집과 직장 등 협소한 장소를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요. 예전 러시아 소설을 읽으며 눈덮인 자작나무 숲에 꼭 가보고 싶었던 그런 풍경에의 욕구 같은 걸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주 매혹되었던 풍경들을 집어 넣었지요. 천진암, 변산반도, 백수해안, 횡성 같은 곳들이요....."
사람들은 어떤 풍경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책에 나온 곳들을 가보 싶고, 그곳에 서서 작가의 마음과 책속 주인공들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무엇보다 이날 제게 개인적으로 가장 닿아왔던 말은 이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고양되는 삶을 살고 싶다"
사람들은 대개 나이 50이 넘으면 더 이상 무언가에 고양되길 회피하며, 자기관리 모드로 돌입해서 그저 안정을 추구하며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나는 지속적으로 더 나를 고양시키는 무엇을 만나고, 고양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은 요즘 제가 부딪친 고민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김탁환 작가님 역시 한 편으론, 내가 쉽게 쓰고 잘 쓸 수 있는 것들(예를 들면 역사소설)을 계속 쓰며 안전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걸 쓸 것인가, 계속 고민하고 있고 둘 중에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고양되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이 책에 작가님은 이런 사인을 남겨주고 계신다고요.
"삶은 신비롭고 꿈은 아름답습니다"
"삶은 신비롭다 - 잘 안될 거 같은데 어쩐지 살다보니 무언가 계속 되고 있다"
"꿈은 아름답다 - 유다정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실패의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그는 자기 삶을 계속 고양시키는 사람이다. 그건 꿈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에 함께해주신 이동현 대표님과 남근숙 이사님 부부... 특히 남이사님은 노래패 활동을 하고 계셔서 행사 처음과 중간에 너무나 멋진 연주로 이날의 분위기를 고조시켜주셨습니다. 오랜만에 노래패 다운 건강한 목소리로, 오랜만에 "꽃다지"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 잊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비건인 작가님을 위해 독자들은 정성스런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요즘 제철인 참나물 김밥, 현미잡곡나물김밥, 두릅 튀김, 비건용 빵과 바질토마토샐러드, 겹벛꽂 음료, 밥알찹쌀떡.....
작가님은 꼭 생일상 받은 기분이었다고 말씀해주셨고요.
간단하지만 멋진 밥상을 나누었습니다.
십 여 명이 함께했던 정겹고 따뜻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글쓰기로서의 첫 소설. 세간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생계의 압박에도 타협하지 않는,자기를 고양시키는 계기로서 글쓰기와 소설. 곡성에서의 생활과 채식 식사, 약간의 농사 등 그날 작가님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좋은 작가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숲속작은책방 덕분에 백수의 삶^^이 좀더 풍요로워 졌네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이렇게 사람을 편안하고 겸손하게 만들어주나봐요....숲속 생활 10년 차인데 아직도 배우지 못한 저를 반성하며...ㅋ....기홍 님 함께해줘서 자리가 빛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