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작품론>
이윤희 대표작 찾기
정소금
1. 이윤희, 다채로운
우리가 잘 알려진 작가에게 ‘씨’자를 붙일 때는 호메로스나 단테나 셰익스피어가 누리는 호칭 생략의 명예로운 자격이 그 작가에게 모자란다는 암시가 있다.
- 에드거 앨런 포, 『글쓰기의 철학』, 시공사, 2018.
작품이 마음에 들면, 작가가 마음에 들어온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네 권을 읽고 나서 아서 C. 클라크로 검색되는 책을 내리 몇 권 샀다. 지난해부터는 포를 읽고 있다. 포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 추리소설의 창시자, 공포소설의 완성자이며,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은 쥘 베른, H. G. 웰스, 아이작 아시모프에게까지 큰 영향(『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시공사, 2018)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대한민국에 이윤희가 있다. 20세기 어느 날, 어여쁜 표지 그림에 이끌려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푸른책들, 1995)을 읽고 매료되었는데, 이 작가가 『네가 하늘이다』(현암사, 1~4권, 1998, 푸른책들, 2008)에서는 역사를 묵직하게 다루더니, 『끝없이 웃는 호랑이』를 시작으로 어느새 서른 편이 넘는 우화를 내고 있다.
이윤희는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 1990년 아동문예작품상에 단편동화, 같은 해 새벗문학상에 장편동화가 당선되어 등단한 지 30년이 넘은 중견 작가로, 대표작 한 편을 꼽기 어려울 만큼 작품 세계가 다채롭다. 거기에다가 2020년에는 우화를 다시 쓴 동요 가사를 멜론에 등록하기 시작했고, 유튜브 동화 노래 채널에 계속 업로드하고 있는 “어머나쏭”은 중국에 수출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오늘도 대한민국 아동문학 숲에 새 길을 내며 걷는 이윤희의 대표작을 찾아보자.
2. 『네가 하늘이다』, 묵직한
동학 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2000매짜리 청소년 장편소설 『네가 하늘이다』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대표작이 될 만하다. 이윤희는 ‘우리가 하늘’이나 ‘내가 하늘’이 아니라, ‘네가 하늘’이라고 말한다. 너를 하늘처럼 대할 때 비로소 나도 하늘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늘이라면 너도 하늘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동학의 가르침 “사람은 곧 하늘이다”를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을까?
평론가 김지은은 이 책을 “사실적 고증에 공을 들인 역사동화”라고 지적하면서, “역사동화를 쓰고자 하는 후배 작가가 있다면 이윤희 작가의 창작 과정은 하나의 전범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윤희는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 그 아들의 아들, 또 그 아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롭고도 건강한 눈을 가져, 조상의 피와 땀을 바로 이해하기를, 그리하여 건강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잘 자라나기를 소망”(작가의 말)하는 마음으로, 시민 강좌, 역사 특강, 관련 행사, 농민군 전적지 탐사로 지리산 종주에까지 참여하여 나무 하나, 풀 이름, 당시 풍속을 공부하면서 자료 조사를 120% 이상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네가 하늘이다』 길 끝에 『35』(하마, 2020)가 있다. 만화 같은 그림이 섞여 있어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지만, 사실화는 자료 출처와 함께 무게감을 더한다. 그러므로 『네가 하늘이다』와 함께 이윤희 대표작으로도 손색이 없다.
3.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 사랑스러운
저학년 동화집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에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장난꾸러기 요술쟁이를 내세운 표제작을 비롯하여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랑스럽게 읽힐 만한 동화 여섯 편이 실려 있다.
《삼국사기》 권46 열전 설총조에 따르면, 7세기 이 땅 한반도에 우화가 있었다. 신라 제31대 왕 신문왕은 화왕(花王 : 모란), 장미, 백두옹(白頭翁 : 할미꽃)이 나오는 「화왕의 이야기」를 다 듣고 무릎을 치면서, 설총에게 “그대의 우언(寓言)에는 정말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우언’이란 “다른 사물에 빗대어서 의견이나 교훈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며, ‘우화’란 “비유적인 형식을 빌어서 교훈을 목적으로 쓴 짧은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우화는 「화왕의 이야기」로부터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에 실린 「진짜 꽃향기」로 명맥이 이어졌다고 보아도 좋겠다. 이윤희는 장미와 할미꽃을 차용하면서 ‘화왕’을 ‘하느님’으로 치환하였는데, 하느님이 한꺼번에 모든 꽃을 피운 바람에 진동하는 꽃향기를 줄이려고 꽃마다 피는 차례를 정하는 이야기로 다시 썼다.
그러므로 ‘쓸모’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는 「하느님의 붓자국」과 지금은 중국이지만 한때는 우리 땅이었던 대흑산, 평정산, 노극사노산을 알려 주는 「산들의 회의록」을 포함하여 글 맵시 어여쁜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은 이윤희 대표작이 되어도 좋겠다.
4. 『끝없이 웃는 호랑이』, 빛나는
‘동화=안데르센’, ‘우화=이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우화=이윤희’로 보아도 좋겠다.
이윤희는 30년 남짓 우화를 꾸준히 펴내고 있으므로 다른 작가들과 뚜렷이 변별된다. 첫 책 『코뿔소에게 안경을 씌워 주세요』(서광사, 1993)에 실렸던 우화 열두 편은 2020년 2월, “동물을 테마로 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30권 이상 계속될 것”으로 기획되어 『술래가 된 낙타』, 『뱀의 눈물』, 『펭귄 가족의 스냅 사진』(7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을 시작으로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시공간을 확장하며 정체성을 탐구함으로써, 기원전 『이솝 우화』와 결이 다른 우화를 내놓는다. 『‘반허락’ 여우 우화』(고조선)와 「진짜 꽃향기」(신라)에서 한반도에 머물렀던 공간은, 「산들의 회의록」에서 “우리 영토가 가장 넓었던 고구려 시절” 중국 땅까지 연장되었다. 여기에 사막(『술래가 된 낙타』)과 남극(『펭귄 가족의 스냅 사진』)까지 지구 곳곳으로 확대되어 펼쳐지는 시공간은 ‘지금 여기’로 한정하지 않고, 『박쥐, 날다』에서 “육천만 년 전, 지금으로 말하자면 남산의 꼭대기쯤 되는 곳.”으로 백악기 즈음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니, 「치타를 위한 진혼곡」에서는 치타가 멸종된 어느 시점을 상정하고 제목에 굳이 ‘진혼곡(鎭魂曲)’을 붙여 미래 시공간을 내다본다.
또 이윤희 우화는 같은 동물이라도 서로 다르게 읽히도록 서술함으로써, 이솝 우화로 굳어진 이미지조차 전복시키는 매력이 있다. 여우는 공작을 먹이로 삼으려고 입에 바른 칭찬(『똘똘이 공작 우화』)을 하거나, 오리너구리를 놀리는 역할(『성급한 오리너구리 우화』)을 맡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이 되려는 의지를 관철(『‘반허락’ 여우 우화』)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호랑이에게 조언자(『끝없이 웃는 호랑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왕다운 왕 사자 우화』에서 사자는 “힘든 과정을 거쳐서 ‘배려’와 ‘차례’와 ‘질서’와 ‘분배’를 배웠고, … 결국 노력과 인내”로 사자왕이 되었지만, 「치타를 위한 진혼곡」에서는 독수리의 입을 빌어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 족속들 치사한 것 좀 봐. 배가 빵빵해져서 더 이상 한 입도 먹지 못하면서도 한사코 우리를 쫓아내려 드는 거야.”라고 그려진다.
이렇게 낱낱이 아니라 한자리에 모아 읽을 때, 이윤희 우화는 비로소 제 값어치로 빛날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저학년 그림책으로 출발하였더라도,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이윤희 우화』’가 나올 필요가 있겠다. 『이솝 우화』를 아이부터 어른까지 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평론가 김지은도 “어려서는 신기한 동물 이야기로만 읽었던 작품이 사춘기가 찾아올 때면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는 동양적인 인(仁)의 의미를 다룬 작품으로도 곱씹어보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윤희 철학동화가 지향하는 중층적 의미의 열린 텍스트라는 숨은 목표가 낳은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꿈을 꾸었지만, 엎드린 호랑이 모양의 국악기 ‘어’로서 노래의 일부가 되었어도 마냥 기쁨에 겨워 『끝없이 웃는 호랑이』를 비롯한 우화들을 묶어 이윤희 대표작으로 삼을 만하다.
5. 다시 이윤희, 치열한
이윤희는 우화를 동화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극단을 창단하고, 동물동화들을 차례로 극화하는 작업을 하여 기린, 두더지, 코뿔소를 공연하였고, … 「펭귄 가족의 스냅 사진」은 2013년 김천 국제 가족연극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2020년부터는 새로운 형식의 동요로서 동화 노래를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작가 개인의 스펙트럼을 넓힐 뿐 아니라 대한민국 아동문학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아동문학 관련 학과를 만들려는 의지로 고군분투한 결과 ‘아동문학보육과’라는 국내 최초의 아동문학 관련 학과를 개설”하는 데 한몫을 하였고, 평론가 원종찬이 통권 16호를 펴낸 것만으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기에 충분”(『아동문학과 비평 정신』, 창작과비평사, 2001)하다고 평가한 아동문학 계간지 《아침햇살》을 1995년 3월 창간하여 2012년 6월 제70호(필자 확인)까지 펴낸 발행인이었다. 이렇게 동화작가이며 동요작사가로 대한민국 아동문학이 가지 않은 길을 오늘도 걸어가는 작가, 이윤희는 브랜드다.
* 이 글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비평활동지원을 받아 집필하였습니다.
정소금 - 1967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2021년 《어린이와 문학》에서 신인평론가상을 받았다. 《아침햇살》, 《어린이책이야기》, 《시와 동화》, 《어린이와 문학》, 《한국동시조》, 《문장 웹진》에 비평을 게재했다. 《어린이와 문학》 전 기획위원(2021~2022). jej199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