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페렐만
페렐만은 1966년 6월 13일 소비에트 연방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고, 레닌그라드 239번 고등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1982년에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소련 국가 대표로 출전해서 만점으로 금메달을 받은 경력이 있다. 이후 같은해에 레닌그라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소비에트 연방 레닌그라드의 스테클로프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까지 미국의 여러 대학들을 방문하면서 연구하다가, 1995년 스탠퍼드 대학교와 프린스턴 대학교 등을 포함한 미국 유수 대학들의 교수 영입 요청을 거절하고, 자기가 처음 연구를 시작한 스테클로프 연구소로 돌아갔다. 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수학회에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였다.
페렐만은 1994년에 리만 다양체에 대한 영혼 추측을 증명하였고, 이 공로로 1996년 유럽 수학회에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였지만, 수상식에 참석을 거부하였다.
2002년 11월 페렐만은 arXiv에 3차원 다양체의 기하화 추측 및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하는 일련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푸앵카레 추측은 1904년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에 의해서 제기된 추측이며, 기하화 추측으로 함의된다. 페렐만은 기하화 추측을 리처드 S. 해밀턴이 발표한 리치 흐름(영어: Ricci flow)을 사용해서 증명하였다고 한다. 리치 흐름은 3차원 리만 다양체를 더 대칭적으로 만드는 변환인데, 이 경우 유한한 시간 뒤에 다양체에 특이점이 발생하게 된다. 페렐만은 이러한 특이점의 성질과 구조를 분석하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였고, 이 기법을 사용해서 기하화 추측의 증명을 완성하였다.
2000년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푸앵카레 추측을 7개의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로 채택하고, 상금 100만 달러를 걸었다. 페렐만의 논문 발표 이후, 2010년 3월 20일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페렐만에게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공로로 100만 달러를 수여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페렐만은 이를 거부하였다. 2006년에 페렐만은 필즈상을 수상하였으나, 페렐만은 수상식에 참석을 거부하였다. 2011년에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 추대를 거부하였다.[1] 제임스 칼슨 클레이 수학연구소장은 "페렐만이 적절한 시기에 참석 여부를 알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페렐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동거하며, 어머니의 연금을 통해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상금이나 명예를 거부한 것은 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우주의 비밀을 쫓고 있는데 어떻게 백만 달러를 쫓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초청한 적이 있으나 거절했다.
https://youtu.be/a9tZ-iU_Nco
앤드루 와일스
어릴 때부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고 싶어했다. 1974년 수학과 학사를 따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진지하게 페르마의 대정리를 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대학원 기간 동안에 풀지 못 하면 학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지도교수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는 (당시) 아무 관계 없었지만 대세인 타원곡선을 추천하였다. 이를 전공하여 1979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타니야마 유타카와 시무라 고로가 보형형식을 연구하던 도중 발견한 타니야마-시무라 추론과, 게르하르트 프라이가 추측하고 케네스(켄) 리벳이 증명한 '리벳의 증명'이라는, 타원곡선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의 접점이 생기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1986년 처음으로 이를 알게 되었다. 타원곡선을 전공했던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1993년 1월경 그는 증명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확신을 가졌다. 와일스는 프린스턴의 동료인 닉 캇츠(Nick Katz)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에게 내용을 설명하기 위하여 강의를 개설했다. 제목은 '타원곡선 상의 계산'이라는 애매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강 신청을 했던 대학원생들은 2-3주가 지나자 모두 수강을 취소하고, 강의실에는 와일즈와 캇츠뿐이었다. 한 학기의 강의가 끝나갈 즈음, 캇츠도 증명의 기본 줄거리에 오류가 없는 듯하다고 동의했다.
와일즈는 또 다른 프린스턴의 동료인 피터 사르낙(Peter Sarnak)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검증을 의뢰하였다. 이들이 동의를 하자, 1993년 6월 21일~23일에 3차례의 강의를 걸쳐 캠브리지 대학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1시간짜리 3번의 강연을 통해 이 내용을 발표했다.[1]
강연 제목이 '타원곡선, 모듈러 형식, 갈루아 표현'이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페르마의 정리에 대한 강연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첫 강연이 끝날 때쯤에도 극소수의 수학자들만이 페르마의 정리에 대한 강연이 아닐까 의심했을 뿐이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증명 문서 참조 바람.
그러나 곧 증명에서 오류가 발견되었다. 충격에 빠진 앤드루 와일스는 집에 은둔해 오류를 고치기 위해 폐관수련했고, 제자 리처드 테일러의 조력을 받아 결국 1994년 9월, 완벽한 증명을 내놓아 인류 역사에 남을 위업을 달성한다.
이런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필즈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나이 제한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처럼 수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의 주인공에게 필즈상을 안 준다는 건 너무한 것이었기에, 시상식이 열리던 때 44세의 나이로 필즈상에 준하는 특별상인 기념 은판을 받았다. 시상식 당시 그에게 쏟아진 박수 갈채는 그 어떤 40세 미만 수상자보다도 오래 이어졌으며, 필즈상 역대 수상자 명단에도 특별상을 받은 인물로서 당당히 이름이 올랐다. 2016년에는 동일한 업적으로 아벨상을 수상했다.
https://youtu.be/tmL-wb3hr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