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표범례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서 '지도표(地圖標)'라는 제목을 붙이고 지도에 사용한 표(標, 기호)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지표(地表)상의 각종 현상을 지도상에 어떤 기호로 나타내었는지를 지도의 여백에 별도의 도표(圖表)로 만들어 설명을 붙인 것으로서 현행지도의 난외주기(欄外註記)와 같다. 범례(凡例, 일러두기)라고도 한다.
1) 영아(營衙) : 영문(營門)에 속하는 관아(官衙)라는 뜻으로 쓰여, 병영(兵營, 병마절도사의 군영), 수영(水營, 수군절도사), 감영(監營), 행영(行營) 등 군영(軍營)을 일컫는다. 이곳에서 절제사·첨절제사·동첨절제사·수군만호·절제도위 등을 지휘·감독하였다.
2) 읍치(邑治) : 지방행정조직인 8도·군현제(郡縣制)의 도(道) 아래 두었던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치소(治所)를 말하며, 오늘날의 시청, 군청(청사)에 해당한다. 읍성(邑城)이 있으면 ◎, 성이 없으면 ○표시 안에 고을 이름 두 글자를 적고 부, 목, 군, 현 등의 단위명칭은 지도에서 생략하였다.
3) 성지(城池) : 원래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성(城)의 둘레에 파놓은 연못(池)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산성(山城)과 궐성(闕城)을 의미한다. 산성 : 일반적으로 3면이 험한 산벼랑으로 둘러싸이고 1면이 강이나 계류(溪流)로 된 곳을 택하여 낮은 곳을 막아 성벽을 쌓고 골짜기의 좁은 통로를 이용하여 성문을 내는 방식으로 축조한 성을 말하며, 산봉우리를 감싼 퇴뫼형과 골짜기를 막아 쌓은 포용형이 있다. 궐성이란 궁궐 외곽의 성이나 수원의 화성(華城)처럼 고을 외곽을 완전히 둘러싼 성을 말한다. 일종의 외성이다. 성지(城地)란 성(城)과 그 영지(領地)를 의미한다.
4) 진보(鎭堡) : 진(鎭)과 보(堡). 진(鎭) :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지방행정구획 단위의 하나이며, 조선조 때의 진은 각 병영·수영·감영 밑에 둔 지방대의 진영(鎭營)을 말한다.
5) 역참(驛站) : 역(驛)과 참(站). 역(驛) : 중요 도로에 약 30리 간격으로 설치되었고, 말과 역졸(驛卒)을 두어 공문을 전달하는 이외에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알선하며 그 밖에 관물(官物)의 수송도 담당하였다.
6) 창고(倉庫) : 창고. 여기서는 관창(官倉)을 이른다.
7) 목소(牧所) : 목장(牧場). 국가적(행정, 군사)으로 필요한 말을 먹이던 곳. 목소()와 속장(屬場, 牧)을 구분하고 있는데, 8도행정통계표에서는 큰 항목을 '목장(牧場)'이라 하고 제주의 것은 '목소(牧所)'라고 하여 구분하고 있다.
8) 봉수(烽燧) : 봉화(烽火). 여기서는 봉수대(烽燧臺)를 말한다. 봉수대는 봉화를 올리는 설비를 갖춘 곳.
9) 능침(陵寢) : 능(陵)은 임금이나 왕후의 묘(墓)를 말하며, 능묘(陵墓)란 능(陵)과 묘(墓)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능침(陵寢)이란 죽은 임금(왕후)의 침소(寢所)라는 뜻으로 쓰였다.
10) 방리(坊里) : 태종 13년(1413) 이후 현행 읍(邑)·면(面) 동(洞)에 해당하는 하급 지방행정구획 단위로서 면(面)·방(坊)·사(社)·<통(統)·리(里)>가 있었으며, 방(坊)은 현행 동(洞)과 유사하다. 여기서 방리(坊里)는 하급행정구역 명칭을 모두 이른다.
11) 고현(古縣) : 폐지(통합, 이전)된 부·목·군·현의 옛 치소(治所). 폐현(廢縣).
12) 고진보(古鎭堡) : 고진(古鎭)과 고보(古堡). 곧 사용하지 않는 옛 진(鎭)과 보(堡). 폐진보(廢鎭堡).
13) 고산성(古山城) : 옛 산성. 곧 주둔군이 없이 비워둔 산성. 폐산성(廢山城).
14) 도로(道路) : 도로. <대동여지도>에서 도로는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도로가 직선으로 되어 있었다는 뜻이 아니고 <대동여지도>가 목판본이기 때문에 흑백으로 인쇄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곡선으로 표현되는 강(江)과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10리마다 방점(傍點, 방표<傍標>)을 찍어 거리를 표기했는데, 이 또한 직선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구불구불한 이정(里程, 도리<道里>)을 표현한 것으로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과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낸 것이다. 평지의 곧은 길은 일정한 간격으로 방점을 찍고 기복(起伏, 높낮이)과 굴곡(屈曲)이 심한 경우에는 간격을 줄여 찍었다.
2. 지도표에 없는 지형표현과 지명표기
1) 산줄기<山經>는 모두 하나로 연결하여 표현하면서, 높이나 넓이 등의 규모에 상관하지 않고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능(分水稜)으로서의 역할에 따라 과장하거나 과감하게 축소 표현하였다.
2) 산은 3,000여개를 표기했다. 산성과 봉수가 있는 곳은 모두 표현했고 중요한 산성과 능침(陵寢)이 있는 곳은 지형과 관계없이 과장 표현했다.
3) 물줄기<水經>는 수계별로 연결하여 표현했으며, 각각의 하천은 곡선으로 나타내되 넓은 하구(河口)에서부터 쌍선(雙線)으로 표현하다가 차츰 좁아져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단선(單線)으로 바뀌는 방식으로 나타내었다.
4) 군현(郡縣)의 경계는 점선(點線)으로 나타냈으며 도(道)의 경계는 표시하지 않았다. 월경지(越境地), 월입지(越入地), 월입처(越入處), 비입지(飛入地), 두입지(斗入地) 등으로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는 경계가 고르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이 상대편 고을의 땅으로 깊숙히 파고 들어간 곳을 말한다.
5) 호수(湖水)나 연못 등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타원형(○)으로 표현하고 ○○지(池)라고 표기하거나, 이름을 적지 않고 기호 옆에 지(池), 택(澤), 연(淵), 호(湖), 담(潭) 등을 표기하였다.
6) 섬<島嶼>은 1,100여개를 표시했는데, 그 위치는 거리와 방위에 있어 축척을 사용하지 않았고 크기와 모양도 실제와는 다르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우형은 <대동여지도>가 목판이라는 제약과 자료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섬의 크기나 거리를 문제삼지 않고 육지에 인접하게 배열식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았다. 제주도(島)는 별지의 지도로 제작하여 바다의 공백 260리를 생략하고 제22첩에 배치하였다.
7) 사(祠, 사당)·원(院)·사찰(寺刹) 등은 기호 없이 지명을 표기했는데 절의 경우 '寺'라는 글자를 표기한 곳이 절의 위치이고 이름인 ○○은 오른쪽이나 위의 여백에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