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휴 이사금(伐休尼師今)[또는 발휘(發暉)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석(昔)씨로 탈해왕(脫解王)의 아들인 각간 구추(仇鄒)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성은 김씨로 지진내례부인(只珍內禮夫人)이다. 아달라왕(阿達羅王)이 죽고 아들이 없었기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웠다. 임금은 바람과 구름을 보고 점을 쳐서 홍수와 가뭄, 그리고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았으며, 또한 사람됨이 사악한지 정직한지를 알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성인이라 일컬었다.
伐休[一作發暉]尼師今立 姓昔 脫解王子仇鄒角干之子也 母姓金氏 只珍內禮夫人 阿達羅薨 無子 國人立之 王占風雲 預知水旱及年之豊儉 又知人邪正 人謂之聖
2년(서기 185) 봄 정월, 몸소 시조묘에 제사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2월, 파진찬 구도(仇道)와 일길찬 구수혜(仇須兮)를 좌우군주(左右軍主)로 삼아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 군주(軍主)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二年 春正月 親祀始祖廟 大赦 二月 拜波珍飡仇道一吉飡仇須兮爲左右軍主 伐召文國 軍主之名始於此
3년(서기 186) 봄 정월, 주와 군을 두루 돌며 풍속을 살펴보았다.
여름 5월, 그믐 임진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7월, 남신현(南新縣)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바쳤다.
三年 春正月 巡幸州郡 觀察風俗 夏五月壬辰晦 日有食之 秋七月 南新縣進嘉禾
4년(서기 187) 봄 3월, 주와 군에 명령을 내려 토목공사를 일으켜서 농사지을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
겨울 10월, 북쪽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려 한 길이나 쌓였다.
四年 春三月 下令 州郡 無作土木之事 以奪農時 冬十月 北地大雪 深一丈
5년(서기 188) 봄 2월,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해왔다. 파진찬 구도를 시켜 병사를 내어 막게 하였다.
五年 春二月 百濟來攻母山城 命波珍飡仇道 出兵拒之
6년(서기 189) 가을 7월, 구도가 백제와 구양(狗壤)에서 싸웠다. 승리하여 5백여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六年 秋七月 仇道與百濟戰於狗壤 勝之 殺獲五百餘級
7년(서기 190) 가을 8월, 백제가 서쪽 국경에 있는 원산향(圓山鄕)을 습격하고, 또 진군하여 부곡성(缶谷城)을 포위하였다. 구도가 굳센 기병 500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니 백제의 병사가 거짓으로 달아났다. 구도가 뒤쫓아 갔다가 와산(蛙山)에 이르러 백제에게 패하였다. 임금은 구도가 실수하였다 하여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시키고 설지(薛支)를 좌군주(左軍主)로 삼았다.
七年 秋八月 百濟襲西境圓山鄕 又進圍缶谷城 仇道率勁騎五百擊之 百濟兵佯走 仇道追及蛙山 爲百濟所敗 王以仇道失策 貶爲缶谷城主 以薛支爲左軍主
8년(서기 191) 가을 9월, 치우기(蚩尤旗, 혜성의 이름)가 각(角), 항(亢)에 나타났다.
八年 秋九月 蚩尤旗見于角亢
9년(서기 192) 봄 정월, 국량(國良)을 아찬으로 삼고 술명(述明)을 일길찬으로 삼았다.
3월, 서울에 눈이 내려 석 자나 쌓였다.
여름 5월, 홍수가 나서 10여 곳의 산이 무너졌다.
九年 春正月 拜國良爲阿飡 述明爲一吉飡 三月 京都雪深三尺 夏五月 大水 山崩十餘所
10년(서기 193) 봄 정월, 초하루 갑인에 일식이 있었다.
3월, 한기부(韓祇部)의 여자가 한 번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낳았다.
6월, 왜인이 크게 굶주려, 식량을 구하러 온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되었다.
十年 春正月甲寅朔 日有食之 三月 漢祇部女 一産四男一女 六月 倭人大饑 來求食者千餘人
11년(서기 194) 여름 6월, 그믐 을사에 일식이 있었다.
十一年 夏六月乙巳晦 日有食之
13년(서기 196) 봄 2월, 궁실을 다시 수리하였다.
3월, 가뭄이 들었다.
여름 4월, 궁궐 남쪽의 커다란 나무에 벼락이 쳤다. 또 금성의 동문에 벼락이 쳤다.
임금이 돌아가셨다.
十三年 春二月 重修宮室 三月 旱 夏四月 震宮南大樹 又震金城東門 王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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