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박물관
광주대교구와 목포시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가톨릭목포성지 조성사업은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과 문화제로 등록된 광주대교구 역사박물관 복원하여 제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였으며, 이제 가톨릭목포성지 조성 사업의 마지막 사업인 산정동레지오마리애기념성당 건립을 2020년 5월 완공을 목표로 건축규모는 지하 1층 지상 4층, 건축면적 2,162.18㎡(654.06평)으로 연면적 3,240.17㎡(980.15평)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화강석과 동판지붕을 주요 외장재로 하여, 지금은 완공 된 상태이다.
2. 순교비
전쟁 중 4대 광주교구장(지목) 미국인 브레넌(Patrick Brennan, 安) 몬시뇰은 위험한 목포를 떠나 피난 가라는 동료 선교사들의 간곡한 권유를 거절하며 “지목구장인 나의 사명은 나의 관할 지목구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사태가 급해지면 섬으로 피신할 터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목포를 떠나지 않았다.
목포본당 주임 아일랜드인 쿠삭(Thomas Cusack, 高) 신부, 보좌 아일랜드인 오브라이언(John O’Brien, 吳) 신부도 끝까지 성당을 지키다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광주감옥에서 전주감옥으로 대전감옥에 이송되어 그곳에서 후퇴하던 인민군에게 수감자 1,200명과 함께 그해 9월 23~26일 새벽 사이 세 성직자는 1000여 명의 수감자와 함께 순교했다. 당시 목포에서 대전으로 이송되어 온 세 분의 성직자는 대전시 목동 성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수도원 입구 왼편 마루방에 민주 진영 인사와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감금되어 있던 인사를 죽이는 총성이 밤낮으로 들렸는데, 그때 착한 목자이신 세 분에게 마지막으로 마실 잔에는 순교의 피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만 브레넌 몬시뇰의 여권과 명함, 성무일도가 발견되었지만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전기수(Gregorius, 全基洙, 1950.9.26.) 그레고리오 신학생과 고광규(Petrus, 高光圭, 1950.9.26.) 베드로 신학생은 서울 가톨릭대학에 진학하여 신학생으로 수학하던 중에 한국전쟁의 발발로 전주로 피난하였다가 1950년 9월 25일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공산군에 학살당했다. 순교한 이들은 전주 성직자 묘 아래 1차로 모셔졌다가 현재는 담양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들은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를 근현대 신앙의 증인들이라 부르며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산정동성당 성모상 옆에는 세 분의 순교 신부를 추모하는 순교비에는 “인내는 바다같이 수량을 지니고 오로지 임을 향한 일편단심 하루같이 쌓아올린 성탑아여 하늘의 천사도 날개 접고 절하리”라는 애절한 추모시가 새워져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순교 신부는 7명이다.
앤서니 콜리어(Anthony Collier, 고, 1950.6.27.) 신부
제임스 매긴(James Maginn, 진, 1950.7.4.) 신부
패트릭 라일리(Patrick Reilly, 라, 1950.8.29.) 신부
패트릭 브레넌(Patrick Brennan, 安, 1950.9.23. ~ 26.) 몬시뇰
토머스 쿠삭(Thomas Cusack, 高, 1950.9.23. ~ 26.) 신부
존 오브라이언(John O’Brien, 吳, 1950.9.23. ~ 26.) 신부
프랜시스 캐너밴(Francis Canavan, 손, 1950.12.6.) 신부목포본당 주임 아일랜드인 쿠삭(Thomas Cusack, 高) 신부, 보좌 아일랜드인 오브라이언(John O’Brien, 吳) 신부도 끝까지 성당을 지키다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광주감옥에서 전주감옥으로 대전감옥에 이송되어 그곳에서 후퇴하던 인민군에게 수감자 1,200명과 함께 그해 9월 23~26일 새벽 사이 세 성직자는 1000여 명의 수감자와 함께 순교했다. 당시 목포에서 대전으로 이송되어 온 세 분의 성직자는 대전시 목동 성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수도원 입구 왼편 마루방에 민주 진영 인사와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감금되어 있던 인사를 죽이는 총성이 밤낮으로 들렸는데, 그때 착한 목자이신 세 분에게 마지막으로 마실 잔에는 순교의 피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만 브레넌 몬시뇰의 여권과 명함, 성무일도가 발견되었지만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첫댓글 지난 봄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더욱 반갑네요
정리된 글과 사진 너무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