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철님 박사학위논문, 命理學의 淵源과 理論體系에 관한 硏究 중에서 제 2장 1절 중국에서의 형성과 발전 부분 발췌한 내용입니다. 원문은 한자가 너무 많고 각주가 많아 읽기를 방해하더군요. http://blog.daum.net/kgw7000/304 에서 한글로 올려주신 버전을 찾았습니다. 혹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인간의 命과 運을 읽어내는 명리학의 정확한 유래는 자료 부족으로 알 수 없으나 전국시대 낙록자(珞祿子)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그러나 宋代시대의 낙녹자부주(珞祿子賦註)를 보면 태(胎)중에 만일 록(綠)이 있으면 귀한 가문에서 태어나고 만약 공망(空亡)에 놓여 있으면 빈궁하여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귀록자(鬼谷子)의 말을 인용한 것과 또한 淸代의 자평팔자사언집액(子平八字四言集腋)에는 명리학의 기원은 周나라의 낙녹자와 귀곡자라고 하는 두 문헌상의 구절로 보아 상당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이후 漢代의 동중서(董仲舒)와 사마계주(司馬季主), 동방삭(東方朔), 엄평군(嚴君平), 삼국시대의 관로(管輅), 진晉의 곽박(郭璞), 북제北齊의 위정(魏定)등이 명리학의 술법을 조술(祖述)하였다고 하나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이때가 명리학 태동기에 해당되는데 그 명리학 태동기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대표적인 두 인물이 낙녹자와 귀곡자가 된다. 이들이 실제로 사주를 통하여 운명을 이용하였는지는 자료 부족으로 고증할 수 없으나 역사성 있는 여러 명리서적에서 이들의 이름을 수시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게 한다.
또한 동중서의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의한 음양오행론 체계의 완성과 논형(論衡)을 지은 왕충(王充)의 정명사상(定命思想)의 정립에 있어 명리학의 정립에 이론적 초석을 제공하였다. 이들의 활동과 업적은 여러모로 명리학의 정립에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동중서의 본체론과 현상론을 망라하는 음양오행론이나 왕충의 天地 자연철학적 음양론과 명 〮‧ 천성기원설(命 ‧ 天星起源說) 같은 중심이론이 생성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을 통하여 唐代 초기 명리학 탄생 이전의 명리학의 여명기로 약 350년의 기간이 있었다.
이 시기는 삼국시대와 오호(五胡) 십육국(十六國) 시대로 정치적으로 실로 전국시대와 비교될 만큼 혼란과 불안의 시기였다. 이러한 혼란기가 정리될 무렵인 北周 말에서 수나라 초기에 소길(蕭吉)이 음양론과 오행론에 관한 기존의 학설을 집대성한 오행대의(五行大義)를 편찬하였고 이어 원천강(袁天綱)이 비로소 사람의 生年月日時를 干支로 대체한 사주를 통하여 사람의 운명을 논하는 이론체계를 그의 저서인 원천강오성삼명지남(袁天綱五星三命指南)에서 정립함으로써 사주명리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문헌 기록상에 나타난 사주명리학에 관한 이론체계가 성립된 것은 당나라 초기의 원천강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기존의 서자평기원설(徐子平起源說)과 이허중기원설(李虛中起源說)의 오류를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
唐代에는 干支論과 음양오행론이 명리학으로 결실을 보게 된 시기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천문과 점성학 그리고 역법의 발달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일찍이 上古時代부터 天象의 질서체계를 정리하는 역법의 발전이 있었으니 상고시대의 사분역(四分曆) 前漢의 태초역(太初曆), 삼통역(三統曆), 삼국시대 魏의 경초역(景初曆, 吳의 건상역(乾象曆), 東晋 384년 경 강급(姜岌)의 삼기갑자원역(三紀甲子元曆), 南朝 宋代의 영초역(永初曆)과 원가역(元嘉曆), 北朝 北魏의 현시역(玄始曆), 신구역(神龜曆), 정광역(正光曆), 北齊의 천보역(天保曆), 北周의 대상역(大象曆)이 그 사례이다. 이처럼 漢代 이후 南北朝 시대까지의 중국역법의 발전은 隋王朝에 의한 천하통일에 호응하여 수나라의 유작(劉焯 : 544-610)에 의하여 집대성되었다.
이러한 역법의 발달은 곧 천문학의 발달을 의미하고, 이는 동시에 점성학의 발달 초래하게 한다. 원천강의 星命學은 이와 같은 천문과 점성학의 발달을 토대로 성립하게 된다. 중국에서 이처럼 역법이 발달한 배경은 자체에 뿌리내린 역법체계와 후한後漢으로부터 수隋와 당대唐代까지의 수 백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온 불교돠 사이의 천문역법가로부터 새로운 천문 역법을 전수 받았기 때문이다.
당나라의 이러한 학문은 천문 ‧ 역법 ‧ 점성학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힘입어 명리학의 학문적 기초가 정립되기에 이른다. 여재呂才의 합혼서(合婚書)가 있고, 천문역상天文曆象과 역학易學에 밝았던 일행一行은 대연역(大衍曆)이라는 역서와 성역서(星曆書), 일행선사천원부(一行禪師天元賦)라는 명리서를 만들었다. 一行의 학문은 이필(李泌)에게 이어지고 이필의 학문은 다시 이허중李虛中에게 전해졌다. 이허중은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 3권을 지어 원천강 이후 명리학의 중흥을 이루었다. 그는 사주상 오행의 왕상휴수사와 납음오행 그리고 연간과 日主위주의 간명방식으로 명운을 논하였다. 이허중명서를 보면 그 당시 日主가 日干을 규정한다는 말은 없으나 이 당시에 이미 일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일주의 현대적 의미가 이허중 때부터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五代 말에서 북송대 초기에 살았던 서자평徐子平의 낙녹자삼명소식부주(珞琭子三命消息賦註)가 있었으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책은 곽정(郭程)의 응천가(應天歌)와 낙녹자삼명소식부주 정도이다.
장남(張楠)의 명리정종命理正宗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사람의 태어난 해의 납음오행과 身命의 한도(旺相休囚死)를 主로 삼고 일월오성의 칠요(七曜)와 사여(四餘, 神煞을 의미)를 用으로 삼아 감명하였다. 明代에는 개국공신 유기(劉基)가 적천수를 저술하고 주석하여 명리학의 철학적 입지를 심화시켰고 서대승이 서자평의 학문을 계승하는 명분으로 자평삼명통변연원(子平三命通變淵源)과 연해자평을 지어 격국론 등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당시 서대승의 명리학은 당대唐代의 이허중이 태어난 年 月 日 時 전반에 걸쳐 오행의 생극왕상生剋旺相과 휴수제화休囚制化로 인생의 길흉화복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진보하여 日主(日干)를 근거로 10神를 나누어 운명을 논하였으니 그 간명이 정밀하였다고 평주연해자평(評註淵海子平)은 밝히고 있다.
장남張楠이 신봉통고명리정종(神蜂通考命理正宗)을 지어 동정설(動靜說), 개두설(蓋頭說), 병약설(病弱說) 등의 독창적인 학설을 제시하였고, 만육오(萬育吾)는 삼명통회(三命通會)라는 12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명리학 이론서를 지었는데, 명리이론을 다루기 전에 앞부분에서 음양오행론과 간지干支의 원류原流를 논한 점은 명리학의 역사적이면서 철학적인 존재근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명리학계에서 상당한 가치를 담고 있는 책이라 하겠다.
청대淸代에는 심효첨(沈孝瞻)이 음양오행론과 간지 법칙을 중심체계로 삼아 1776년에 자평진전子平眞詮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저자 여춘태余春台에 의해 궁통보감(窮通寶鑑)이 간행되었는데 이 책은 원문의 뜻은 수백년간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오자와 누락된 구절이 많이 생겨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청조淸朝에 이르러 초남(楚南) 余春台에 의해 지나치거나 번잡한 내용이 제거되고 책으로 간행되면서 다시 이름을 붙여 궁통보감이라 하였다.
또한 진소암(陳素菴)의 명리약언(命理約言)이 간행되었고 임철초(任鐵樵)가 유기(劉基)가 주석(註釋)한 적천수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내어 적천수천미를 간행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가히 명리학의 부흥기라 할 만큼 명리학 이론서의 활발한 발간사업이 대만과 한국,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대만에서는 궁통보감, 자평진전, 적천수 같은 명리학 고전을 주석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니 서락오가 그 대표적인 선두주자이다. 서락오는 조화원론평주(造化元論評註), 평주 궁통보감(評註 窮通寶鑑),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 등을 지어 명리학의 이론체계를 정리하고 심화시켰다.
원수산(袁樹珊)은 유기(劉基)와 임철초(任鐵樵)의 주석을 모아 편찬한 적천수천미와 공자를 비롯한 역대 인물의 사주해석과 일대기를 모아놓고 명보(命譜), 명리이론에 대한 주체적 입장에서 古今 名家의 제설(諸說)을 추려 정리한 명리탐원(命理探源)을 각각 저술하였으며, 위천리는 위천리명학강의(韋千里命學講義)와 팔자제요(八字提要), 정선명리약언(精選命理約言), 고고집(呱呱集) 등을 지었는데 특히 八字提要는 甲日 寅月부터 癸日 丑月까지 120개 경우의 수로 나누어 각 경우마다 日干과 月支와 時柱의 배합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주의 형국이 달라짐을 핵심적으로 설명한 사전식의 사용 명리서이다.
첫댓글 선생님, 귀한 자료 찾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혹시 고전이 필요하시면 알려주세요. 올려드릴께요
크리스티님
잘 쉬고 계시지요
지난밤 한숨도 않자고 기도 드렸사오니
근방 좋아 지실꺼예요 ㅎㅎ
남편분 한테 죽 이라도 끊여 달라고 하셔서 조금 드시고 주무셔요
푹 자고 있는지 ... 🙆🍓🍒🍅🍇🍑🍊
문병 다녀 갑니다
우리 hana 언니가 걱정해주셔서 이 크리슷히 건강하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매운 맛을 봤으니 이제 까불지 말고 일찍일찍 자야쓰겄어요. 오메... 몸이 누구한테 두둘겨맞은 것처럼 아팠었어용.
리자 쌤 감사합니덩 ✏️😘
읽는 데 한참 걸렸어요. 호호
저도 한참 걸렸어요 호호..뭔 말인지 잘 모르겠또요.. 호호
헉~~~ 이게 다 뭐대요 ??
@@@ 끙~ㅎㅎㅎ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를것이고, 읽혀지지 아니하므로 그냥 지나기로 결심 !!
제가 명리학의 연원을 찾다가 이 논문을 찾았는데, 정리가 잘 되어 있길래 올렸어요. 저처럼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것 같아서요. 근데 어렵네요.
인내심을 가지고 오기로 끝까지 읽었어요.^^
그러나 분명 머릿속엔 안 들어갔을거예요;;
하얀색님은 다 흡수하셨을 것에요. 토극수 하셨으니까.
한눈에 봐도 어렵지만 천천히 읽어볼께요 항상 공부에 도움 주시니 감사합니다~
도움되시면 제가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명리학의 역사ᆢ🙏
명리학의 시초는 곽박 이라고 생각합니다
낙록자는 실존인물인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
와 월도님의 시험지를 구경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도님의 의견을 감사히 받아 두루 살피는 눈을 갖도록 하겟습니다.
네 좀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해서 기회되면 올릴께요^^
선생님들 학구열이 참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월도님. 요점만
월도님 시간되실때 ^^
주변지인들이 저 사이비에 빠졌다고 쑥떡쿵 하더라구요 ㅋㅋㅋ
이거 복사해서 들고 다니면서 보여주면
하나가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는
증거제시물로 ㅎㅎㅎ
부탁드립니다😄
사실상 명리학은 청대에 들어오면서 광동성을 중심으로 무역을 기반으로 하던 명대에서 내려온 호족이 청의 한족우대과거제도에 두파로 나뉘는데 한파는 오랑캐 정권이라도 들어가서 백성의 삶을 위무하는 것이 도리다 파고...그반대하는 엿이나 먹으셈파가 입신양명을 포기하니 배운것은 학문이고해서 명리학을 파고들어서 중흥기가 왔고 청이망한후에 상해가 거점이었는데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홍콩과 대만으로 흩어지는데 주류는 홍콩으로 들어갔고 그 홍콩에서 부산과 무역을 하는 와중에 부산으로 유입이되어서 부산을 기점으로 전국으로 학문이 퍼진것으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ㅎ...
아우 공부해야되는뎅...아마도 일제시대에 상해와교류하던 인천과 평양을 중심으로 상해에서 배워왔던 배워온분에게 전수받았던 소위 점쟁이라는 분들이 생겨났고 625전쟁때 모두모두 부산에모여서 몇년을 있으니 또한 625이후로 홍콩에서 최신조류와 서적들이 유입되면서 한국명리학의 메카가 부산이 되었나 하고 짐작합니다...ㅎㅎㅎ...
한국명리학의 제2의 중흥기는 90년대 천리안과 하이텔이라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역학모임동아리카페등이 활성화되면서였고 전국에서 날아다닌다 기어다닌다 하시는 분들은 이 시기를 거치신 것으로 보이구요 제3의 중흥기는 유투브를 통해서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있네요...아우 공부하자...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