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한국 복자 시복식 터 (희망의 순례자 성지 설명)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앞에서 거행되었다. 광화문 광장은 조선시대 의금부, 포도청, 서소문 형장 등 한국 제1세대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장소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다.
주교회의는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해인 2001년 10월 18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 안건을 통합적으로 추진해 온 결과, 윤지충과 동료 123위의 시복 시성 조사가 완료되고 이 시복 조사 문서들은 2009년 6월 3일에 교황청 시성성에 정식 접수되었고, 시복을 위한 절차도 완결되어 2014년 2월 7일 교황 성하의 재가를 얻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1주년을 맞아 시복식이 거행됐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 2015년 8월 23일 기념 표석(바닥돌)이 설치됐다.
■ 시복자
○ 1791년 신해박해 3위. ○ 1795년 을묘박해 3위. ○ 1797년 정사박해 8위
○ 1801년 신유박해 53위. ○ 1815년 을해 박해 12위. ○ 1827년 정해박해 4위
○ 1839년 기해박해 18위
1840년 1월 홍재영 프로타시오, 최조이 바르바라, 이조이 막달레나, 오종례 야고보가 전주에서 순교한다. 최양업 신부의 모친 이성례 마리아는 같은 달 당고개에서 순교한다 .
○ 1866년 병인박해 19위
한국순교자103위 시성 터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이 거행되었다. 한국 천주교회 순교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및 동료 101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전 교회에서 그들을 경건히 공경해야 함을 선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시성 선언으로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더욱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친히 한국 교회를 찾아와 103명의 복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림으로써 한국 교회에 새로운 빛과 평가를 부여하였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표석은 여의도 공원 세종대왕상 좌측 길로 약 50m 가면 잔디마당 언덕에 있다.
성인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두 번째 방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부친으로 충청도 홍주군 다래골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주교의 계명을 지켰다.
기해박해가 엄습하고 또 서울과 인근 지방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을 때, 회장으로 임명된 그는 많은 의연금을 모아 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고, 순교자의 시체를 매장하였다.
수리산에서 잡혀 온 최경환은 포장이 프란치스코를 두 차례나 주리를 틀게 하고, 뾰족한 몽둥이로 살을 찌르게 하여 배교한다고 할 때까지 고문을 하게 하였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포장대리 앞에 끌려 나가 치도곤 50대를 맞으니 그것이 최후의 출두요 형벌이요 신앙고백이었다. 옥으로 돌아온 그는 “예수께 내 목숨을 바치고 도끼날에 목을 잘리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옥중에서 죽는 것을 천주께서 원하시니 천주의 성의가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한 후 몇 시간 뒤에 숨을 거두었다. 때는 1839년 9월 12일이요,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