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일 (월)
오전 – 구 선생님과 친해지기
지난 당사자 면접 이후로 두 번째로 만났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과연 활동 진행에 앞서서 친해질 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슈퍼바이저 선생님 없이 셋이 이야기하는 데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진 않을지 두렵기도 했습니다.
역시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일까요? 이런 두려움과 걱정이 무색하게도 구 선생님은 대답도 잘하셨고 “좀비 영화 알아요?” “드래곤 알아요?” 등 질문도 많이 하셨습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찾아오신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구 선생님은 진작 가시고 둘이 이야기나 회의하고 있을 줄 알았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하신 걸 보면, 오늘의 오래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만남이 구 선생님께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일지에 기록했듯이, 이제는 사람다움, 사회다움,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간접 칭찬은 어떻게 하는지 더 꼼꼼히 익힌 상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계속 다시 한번 접는 방법을 보여달라고 하거나 어떻게 하는지 반복하여 질문하고, 역시 종이접기는 선생님과 해야 한다는 좋은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먼저 제안해주시거나 좋다고 하시다가도 다시 여쭤보면 “아 그거 싫은데...”라고 말씀하시면서 지난 시간에 목이 쉬어서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다는 모습이 또 드러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일 그리고 남은 기간 더 많이 이야기해보고 여쭤보면 다시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도 됩니다.
오늘 오전 시간 동안 구 선생님과의 만남을 아래의 세 파트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구 선생님과 종이를 접어보았다>
색종이를 또 가져와서 이번엔 어떤 것을 접어보면 좋을지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구 선생님께서 직접 칠판에 모양을 그려주시기도 했습니다. 다이아몬드, 표창 등등. 이외에 만들 수 있는 종이접기를 칠판에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이는 다음에 만날 때 적어오겠다는 약속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길게 찢어 다이아몬드같이 생긴 것을 만들었는데, 이름이 없다고 해서 구 선생님께서 다이아몬드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람개비, 공도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접어보았습니다.
준비물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 접기들이었습니다. 풀이나 가위는 복지관에서 빌릴 수 있지만, 바람개비를 완성할 수수깡이나 압정 같은 것은 다음에 선생님과 함께 다이소나 문구점에 가서 직접 구매해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간에 칠판이 사라져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저의 커다란 아이패드가 미니 칠판으로 변할 수 있었고, 선생님의 그림 설명이 이어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림으로 그리면서 소통하다 보니 “이건 뭔지 알아요?”라고 질문하시고 대답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종이를 다 접고,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으신지, 어떤 접기를 같이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쉬운 것은 이런저런 것이 있고, 어려운 것은 이런저런 것이 있다고 말씀해주실 줄 알았는데 구 선생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뭘 접고 싶은지 골라야죠.” “제비뽑기로 정해도 좋고요.”
순간 일주일 동안 복지요결을 구 선생님과 같이 공부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습니다. 계속 다시 읽으면서 주인 되게 한다는 것에 꽂혀 ‘구 선생님이 어떻게 선생님으로 돋보일 수 있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아이들을 단지 구 선생님의 마을 선생님 활동을 위한 방청객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계획서와 가상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전에, 슈퍼바이저 선생님께서 구 선생님도 당사자고, 아이들 또한 참여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그와 비슷하게 고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흘리듯이 하신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확 떠오르고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어쩌면 구 선생님께서는 지난 구시네마 준비과정과 당일을 기억하면서, 아이들을 얼마나 초대해야 하는지, 그 아이들이 좋아할 접기(영화)는 무엇일지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 선생님과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오늘의 할 일은 모두 마치고, 내일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이야기하다가 영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계획표 상으로도 영화를 같이 보면 좋겠다고 적어두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바타, 해리포터, 신비한 동물 사전, 강시, 드래곤, 좀비, 나 홀로 집에 등 참 다양한 영화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비록 정확한 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키워드와 비슷한 영화를 찾아서 포스터를 보여드리고 다음에 구시네마를 하면 어떤 영화가 좋을지도 간단히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오려면 19세나 15세 영화는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으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좀비와 강시는 아무래도 탈락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금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겠습니다. 영화 선정 외에 장소 대관도 구 선생님께서 직접 카페에 여쭤보시거나 복지관에 대여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방향으로 안내할 예정입니다.
<구 선생님과 겨울에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놀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바람개비를 접다가 바람개비는 밖에 나가서 바람 부는 곳에서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겨울에 할 수 있는 놀이로 이어지고, 또 이는 자치기, 팔방뛰기. 오징어 게임 등 추억의 놀이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이런 놀이를 설명하실 때마다 미니 칠판을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동서남북 접기를 맞췄던 것처럼 이번에도 퀴즈 시간이 생겨서 다음에 아이들과도 이렇게 친해지실 수 있지 않으실까 희망이 보였습니다. 시간과 날씨만 허락된다면 아이들과 같이 바람개비를 만들어서 밖에서 직접 사용해서 노는 것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 외에도 연날리기를 위해 연을 만들 수도 있고, 윷놀이, 제기차기 등 다양한 놀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엔 젠가도 해보자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가시는 모습이 정말 멋지게 보였습니다. 3~5명인지 35명인지 모를 인원을 말씀해주신 구 선생님. 이제 오늘 첫 발걸음 뗀 날부터 여러모로 반성하고, 다시 깨닫고, 좋은 벽지와 형광등이 되기 위한 아주 큰 걸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은 더 친해지고, 다양한 이야기도 나누고, 영상 혹은 영화도 함께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제 예상을 깨는 구 선생님의 면모가 기대되는 첫 만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