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직 목사는 목회 외의 직업을 가진 목사다.
군인교회 담임 시절, 군인들에게 빵과 피자와
치킨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주중에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땄고,
한 대학교에서 저소득층 주민을 위해 개설된
수업의 강사로 일했다.
나의 재능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정말 보람되고 소중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보람된 것이 있었다.
난 계약직이었다.
난 사춘기도, 수능도 경험했다.
대학과 알바와 군대도 경험했다.
그래서 사춘기 중학생, 입시생, 대학생,
알바생, 군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장 보람된 것은
평신도의 삶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람됐다고 달콤한 건 아니었다.
쓰고 썼다.
그동안은 성경으로만 성도들의 삶을 읽어내려 했다.
그것만이 성도의 삶을 해석하고 조언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법이 나의 현실이 되었고,
비정규직, 연차 쓰기, 실업급여, 4대 보험,
눈치보기, 살아남기, 험담 참아내기,
그 와중에 그리스도인 모습 유지하기,
그 와중에 틈틈이 교회일 챙기기가
나의 현실이 되었다.
그것이 정말 감사하다.
성도들이 일터에서
어떤 감정과 경험을 느끼고 살아가는 지
공감이 아니라 직접 느끼게 되었다.
주중에 일을 하며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주말에
교회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힘들게 간 쓸개 다 떼어가며 비굴한 가면,
뭐든 다 괜찮다고 끄덕거리는 가면을 쓰고
번 돈에서 무려 십분의 일을 뗀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지를.
계약직은 곧 깨어질 살얼음판 같은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있음을
수시로 떠올리게 한다는 것을.
2년이 끝나면 실업급여를 받으며전
공과 상관없는 자격증을 따고
젊지 않은 나이에도 이력서를 찔러본다는 것을.
주중에 아이들 심방을 가고 토요일에 예배를 준비하던
교사들의 수고가 정말 귀했음을,
수련회, 성경학교를 위해 연차를 쓰는 것이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미친 것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상사든 고객이든 동료든 미친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시달리다가 교회에 왔는데,
목사도 미친 것 같으면 너무 지친다는 것을.
목사라도 자기 위치에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목회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생활이 가장 귀한 목회적 자산이 되었다.
주중에 평신도의 삶을 살다가
그 삶을 고스란히 들고 주일에 교회를 가면
목사와 성도 경계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지점에서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과 소통했다.
내 안에 성도 신재웅이 묻고
목사 신재웅이 답을 내리고
그것을 설교에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성도들의 삶은 생존이었다.
살아냄으로 살아남기였다.
그런데 믿음은 생활이라고 부른다.
생활이 생존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생존 중에 생활을 먼저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다.
생활이 생존을 이길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은 생활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명과 같았고, 그것이 생존을 초월하게 한다.
생명이 있어야 생존도 가능하다.
힘들었지만
평생 못했을, 평생 몰랐을
이런 경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