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2의 문묘를 건립하자
2022-02-05 오전 11:12:43김윤수
김윤수(성균관 부관장, 지리산문학관장)
필자가 살고 있는 지리산 함양에는 세계문화유산 남계서원이 있다. 남계서원의 주인공은 일두 정여창 선생이지만 설립자는 남명 조식의 제자 개암 강익이다. 강익은 자신이 세운 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설립자가 배향자가 된 몇 안 되는 경우에서 소수서원의 신재 주세붕에 이어 두 번째이다.
지난해 함양 남계서원의 서원 탐방단이 밀양 예림서원을 방문하였다. 서명요청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문묘에 종사하자는 내용이었다. 반문하였다. 문묘종사는 조선왕조 국왕의 권한이었다. 지금은 그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유교의 수장이라는 성균관장이 문묘종사를 추가로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답변할 수 없는 문제였다. 유교의 헌법이라고 할 성균관 장정에 문묘종사 권한은 명기되어 있지 않다. 그 뒤에 들으니 밀양향교 대표단이 성균관을 방문하여 관장에게 점필재 김종직 선생 문묘배향 청원서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이는 제2의 문묘를 건립하는 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유교를 개혁해야 한다. 성균관장에게 문묘종사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조선왕조 국왕의 제반유교권한을 부활하여 부여해야 한다. 선현에게 시호를 추증하는 증시권, 명현에게 관직을 추증하는 증직권,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를 명하는 명정권, 서원 사액권, 사액서원 추향 허가권, 문묘종사 허가권 등등. 성균관장이 국왕의 권한을 행사한다? 왕의 권한은 왕이 행사하는 게 명실상부하다.
공자는 유교의 교조이자 무관의 제왕 소왕(素王)이다. 문선왕이란 칭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나라 현종이 공자를 봉하여 문선왕이라 하였다. 높인 것 같은가. 실제로는 하대한 것이다. 당나라는 같은 이씨라고 노자를 시조로 존숭한다. 노자를 봉하여 현원황제라고 하였다. 노자는 황제로, 공자는 왕으로 봉하니 공자를 낮춘 것인데 어찌 하대한 칭호를 금과옥조로 떠받드나?
소왕은 주나라 시대를 기준으로 하니 당시 천자의 칭호는 왕이었다. 소왕은 천자의 칭호이다. 공자를 천자로 높이고 유교의 시조로 존숭하는 칭호가 소왕이다. 성균관장은 소왕의 교화권한을 부여받아 정무를 섭행하는 자리이니 섭정인 것이다. 성균관장의 칭호는 마땅히 한국유교 성균관 대한문묘 소왕섭정이라고 하고 약칭 섭정이라고 호칭해야 한다.
문묘는 성균관과 지방향교에 다 있다. 대성전이 문묘이다. 제2의 문묘는 성균관 및 향교의 문묘와 구별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건립한 것이니 대한문묘라고 하면 타당할 듯하다.
문묘18현이라고 한다. 신라 2현(문창후 최치원, 홍유후 설총), 고려 2현(문성공 안향, 문충공 정몽주), 동방오현(문경공 김굉필, 문헌공 정여창, 문정공 조광조, 문원공 이언적, 문순공 이황), 호남 1현(문정공 김인후), 기호 8현(문성공 이이, 문간공 성혼, 문열공 조헌, 문원공 김장생, 문경공 김집, 문정공 송시열, 문정공 송준길, 문순공 박세채). 기호 8현은 친구간, 사제간, 부자간, 친족간 인연의 명현이다. 전기 9현은 조광조 외에는 다 영남출신이다. 그런데 후기 9현에선 한 명도 없다. 편중이 심하다.
제2의 문묘종사운동이 필요하다. 전기 9현엔 추가로 동방도통의 4현을 연속시켜야 한다. 시골 스승이 아니다. 대현의 스승으로 대현이다. 어찌 문장가로 폄훼하며 스승을 배제할 수 있는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인 일두 정여창과 한훤당 김굉필이 저승에서 본다면 어떠할까. (사)일두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필자는 김종직의 문묘제외를 보면 제자 입장에서 미안하다. 대현의 스승 대현이다. 점필재 김종직을 당연히 추가로 문묘종사해야 한다. 점필재로 이어지는 도통의 선현 강호 김숙자와 야은 길재도 문묘종사되어야 한다. 그래야 동방도학이 포은 정몽주에서부터 대대로 전승되는 정통을 확립하게 된다.
고려에선 12사도의 대표주자 최충과 역동 우탁, 익재 이제현, 목은 이색, 삼우당 문익점도 문묘종사되어야 한다. 양촌 권근과 방촌 황희, 모재 김안국, 사재 김정국 형제 기묘명현 및 진일재 유숭조와 화담 서경덕도 문묘종사되어야 한다. 후기 9현에 없는 영남 유현도 문묘종사되어야 한다. 대표인물이 남명 조식이다. 남명의 제자 동강 김우옹과 한강 정구, 한강의 제자 여헌 장현광과 미수 허목도 종사되어야 한다. 퇴계의 제자 서애 유성룡과 서애의 제자 우복 정경세도 종사되어야 한다. 일재 이항, 미암 유희춘, 옥계 노진, 사암 박순, 고봉 기대승의 호남오현도 종사되어야 한다. 점필재 김종직, 탁영 김일손, 청음 김상헌, 수암 권상하, 둔촌 민유중의 오현종사운동이 있었으니 종사가 성사되어야 한다.
성주 출신의 양강 문묘종사운동이 있었다. 동강 김우옹과 한강 정구이다. 퇴계와 남명에게 양문에서 수학한 보람인가, 내암 정인홍처럼 남명문하라고 배척당하지 않고 문묘종사운동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한강 정구가 성주와 김천에 걸쳐 조성한 무흘구곡이 있는데 상류가 무흘정사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된 한강 무흘강도지이다. 작년 초에 김남형, 이상필 한문과 교수랑 무흘구곡을 답사하였다. 먼저 한강 정구를 제향한 성주 회연서원에 참배하고 구곡을 순서대로 찾아보고 한강 무흘강도지에 와서 보고 망연자실하였다. 1920년대에 세워진 서당 건물은 흉측하게 폐허화되고 있었다. 옆에 사는 아낙네가 설명하기를 터만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라서 건물은 손 못 대고 저절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문화재당국이 이상하다고 하였다.
그 직후 집사람이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한 코로나 예방 캡슐 건강기능식품을 1억원어치 경상북도에 기증하여 도지사실에서 기증식을 개최하였다. 도지사와 한담하며 한강무흘강도지 무흘서당이 무너지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고 수리하여 복원하는 것이 한강선생을 기리는 일이라고 역설하니 문화관광국장을 불러 조치를 지시하였다. 정치가의 발언은 대답만 시원한 정치적 제스처라서 기대를 안했는데 금년에 보니 수리중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제2의 문묘가 건립된다면 한강 정구는 당연히 종사될 명현이다.
금년초에 성균관장단 워크숍이 보은에서 있어 가는 길에 상현서원을 참배하였다. 상현서원은 1555년(을묘년,명종10)에 보은현감 성제원(成悌元)이 보은 출신 기묘명현 문간공 충암 김정을 향사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김정은 경연에서 김굉필의 문묘종사를 건의했었다. 김정도 문묘종사운동이 있었으나 성사되지 않고 다수의 서원에만 제향되었다. 고향에 세워진 상현서원이 대표유적이라고 하겠다. 충암이 문묘종사되면 모재, 정암, 사재, 충암 등 기묘명현이 4위나 된다. 다다익선 아닌가.
남명학을 연구하느라 남명절친 대곡 성운의 서당과 산소 및 금적산의 계당 최흥림 유적 금화서원를 물어물어 찾아간 것이 벌써 30년도 넘었다. 성운은 외손봉사라서 지금도 경주김씨들이 제향을 받들고 있다고 하였다. 김정의 당질로 충암집을 편찬한 김천우는 남명과는 친구였다. 성운은 동주 성제원, 중봉 조헌, 우암 송시열과 함께 상현서원에 배향되었다.
성제원은 당시 보은현감이었는데 남명 조식이 친구 성운을 만나러 속리산에 왔을 때 처음 사귀었다. 헤어지며 임기 끝나는 다음해 8월에 가야산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여 그 날짜에 가야산 해인사에 가니 억수같은 비를 뚫고 정확히 도착하여 양현이 상봉하였다. 그 미담이 해인사에 전해져 경상감사를 만나러 해인사를 방문한 안의현감 연암 박지원도 찬술하였다. 성제원은 비록 한훤당의 재전제자이지만 성운과 함께 은자로 인식되어 도학자와 성격이 달라 문묘종사운동은 없었다. 남명 조식은 당연히 문묘종사될 명현이다.
문묘종사 명현은 다 기본적으로 시호가 있고 증영의정이다. 정여창이나 김굉필은 문묘종사 초기에는 우의정이었으나 후기에 일괄 영의정으로 승급 증직되었다. 제2의 문묘종사가 실현된다면 기본은 똑같이 할 필요가 있다.
지금에 와서 누구는 문묘종사 되고 안되고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첫째 기준은 조선조에 문묘종사운동이 있는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문집 등 공사문적에서 문묘종사 청원운동 기록이 있는 인물을 제2의 문묘에 종사한다. 둘째는 독립운동가 서훈자로 유림 지도자급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팔도에서 골고루 각도의 향교와 유림서원의 수의 과반의 찬성을 받은 유교 인물을 종사시킨다. 팔도는 경기도(서울인천포함), 강원도, 충청남도(대전세종 포함),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광주제주 포함), 경상북도(대구 포함), 경상남도(부산울산 포함)이다.
문묘종사라고 범칭하나 정확한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문묘 정전에 공자에 배향된 인물은 사성과 공문십철과 송조육현이다. 같은 건물, 같은 방에 주향 앞에 모셔진 것을 배향이라고 한다. 정전 밖 동무와 서무에 제향된 것을 종사라고 한다. 문묘종사는 문묘배향보다 격이 낮다. 지금은 정전에 한꺼번에 모시니 문묘배향이다. 앞으론 문묘배향이라고 해야 한다.
제2의 문묘, 대한문묘를 건립한다면 새로운 문묘향사도에 의하여 유교의 시조 공자를 주향으로 사성, 공문십철, 송조육현을 종전대로 배향하고, 동서와 서서에 동국18현 및 추향 선현을 나이순으로 섞어 배향하는 것이다. 학덕, 공적, 관작 기타 조건 따지면 시비가 난무하니 무조건 배향은 나이순으로 위차를 정해야 한다. 제2의 문묘, 대한문묘 배향사업을 전개할 시대적 과제가 눈앞에 산적하다.
<김윤수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