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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성모발현 성지(포루투칼,3대성지)
▲ 파티마 성모님
가. 성모님의 발현
평화의 천사 발현 - 1916년 봄에서 가을까지
성모님의 발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6년,소년의 모습을 한천사가 강렬한 빛과 함께 세 명의 시 현자에 게 세 차례 나타났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카베수 언덕에서,두 번째는 루치아네 집 우물에서 나타났다. 천사는 “무서워하지 마라. 나는 평화의 천사이다. 나와 함께 기도하자”라고 하며 기도할 내용과 방법을 알려 주었고,세 아이는 열심히 기도하였다. 이어 천사는 “기도하여라! 예수님과 성모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은 특별한 자애로 너희를 통해 큰일을 하시 려고 생각하고 계신다”라며 앞으로성모님의 발현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 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나타나서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내할 것을 요구하였다. 세 번째에는 성찬식을 하며 루치아에게는 성체를,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에게는 성혈을 영해 준 다음 기도를 바치고 사라졌다. 세 아이는 천사와의 만남을 누구에 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였다.
첫 번째 발현 - 1917년 5월 13일
1917년 5월 13일 일요일,3명의 아이,곧 10세 루치아 두스 산투스와 그 사촌 9세 프란치 스코 마르투 7세 히야친타 마르투가 양을 돌보며 점심을 먹고 묵주기도를 마치자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코바다 이리아로 불리는 목초지에 갑자기 번개와 같은 섬광이 내리치며 작은 참나무 위로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으며 나이는 열여덟 살 정도로 보였는데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 듯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여인은 흰색 겉옷에 두 발까지 내려오는 흰색 베일을 두르고 있었으며 합장한 손에 묵주가 들려 있었다. 여인이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루치아가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세요?” 이에 여인이 “나는하늘에서 왔단다. 나는 너희가 매달 13일 이 시간에 여기로 나와줄것을 부탁한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는 나중에 말해 주겠다. 너희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참을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여인은 전쟁의 종말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라고 말한 후 하늘로 사라졌다.
두 번째 발현 - 6월 13일
발현 사실이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져 20〜30명이 따라왔다. 그러나 그들은 루치아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도,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루치아가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묻자 성모님은“다음달 13일에 다시 여기로 오너라. 날마다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읽고 쓸 줄 알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셨다. 루치아가 “저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청하자 “그래, 머지않아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를 데리러 오겠다. 그퍼나 너는 오랫동안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너를 통해서 이 세상사람들이 나를 더 알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신다”라고 답하셨다. 루치아가 “그럼 저 혼자만 남게 되나요?” 라고 묻자 “걱정하지 마라. 나는 절대로 너를 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너를 하느님께 인도하겠다”라고 답하셨다. 루치아가 주로 질문하고 성모님이 답을 하는 대화가 15분 정도 이어진 후 성모님은 동쪽 하늘로 사라지셨다.
세 번째 발현 - 7월 13일
성모님의 발현 소식이 널리 전해지자무려 5-6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성모님이 발현하시자루치아의 지시로 군중은 무릎을 꿇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루치아가 발현의 증거를 청하자 여인은 답하기를 “10월에는 내 이름과 내 희망을 알리 겠다. 그리고 누구나 너희들의 말을 믿도록 큰 기적을 행할 것이다. 너희들은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하여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성모님은 끔찍한 지옥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시며 인류 운명과 직
결되는 세 가지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이 중 첫 번째 비밀과 두 번째 비밀은 교회의 요청을 받아 1941년 8월에 쓰인 루치아의 세 번째 회고록에의해 세상에 알려졌고,세 번째 비밀은 오랜 세월이 지난 2000년 5월이 되어서야 알려졌다. 첫 번째와두 번째 비밀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비밀(지옥에 대한환시): 너희들은 가난한죄인들의 영혼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 하느님께서 나의 성심에 대한 헌신을 세상에 세우기를 바라시며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것이고 평화가오며 전쟁(제1차세계대전)은끝날 것이다.
두 번째 비밀(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만일 사람들이 여전히 하느님을 거역하며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음 교황(비오 11세) 때 더 나쁜 일(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만일 세상사람들이 내 요청에 귀를기울인다면 러시아의 개종과 평화를 보게 될 것이요,그러지 않는다면 러시아가 그 잘못된 사상을 세상에 퍼뜨려 전쟁을 일으키고 교회를 박해할 것이며 많은 나라가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최후에는 나의 성심이 승리할것이다. 교황은 러시아를 나에게 봉헌할 것이고, 러시아는 회심할 것이며 평화의 시대가 허락될 것이다.
네 번째 발현 - 8월 19일
성모님의 발현과 계시에 대한 내용이 알려지자수천 명의 사람들이 파티마로순례를오기 시작하였다. 순례자가 급증하자 1917년8월 13일 지방 정부 행정관은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포르투갈을 분열 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술책으로 믿고 순례를 금지 시켰다. 당국은 아이들이 코바 다 이 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체포하여 감금하고 심문하였으며 끓는 기름 가마 속에 한 명씩 산 채로 집어넣겠다는 협박까지 하였으나 어린 3명의 시현자는 죽기를 각오한 침묵으로 성모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때 코바다이리아에는 1만8천명이나되는 군중이 모여 있었으나 아이들이 없어서 발현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8월 19일 성모님은 감금 후 풀려난 세 아이에게 발리뉴스에 있는 목초지에서 발현하시어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바쳐라. 그리고 모인 봉헌금을 묵주기도 축일을 축하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경당 건축비로 사용하거라. 다음 달 13일에도 코바 다 이리아로 와야한다. 그리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거라”라고 말씀하시고 여느 때와 같이 동쪽 하늘로 사라지셨다.
다섯 번째 발현 - 9월 13일
수확기로 바쁜 와중에도 무려 3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다섯 번째로 발현하신 성모님은 전쟁의 종결을 위하여 묵주기도를 계속하여 바치고 봉헌금의 반을 성당 건축비로 사용하라고 하시며 다음 달 13일에는 큰 기적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루치아가 성모님의 말씀을 사람들에 게 전달하였다.
여섯 번째 발현 - 10월 13일(마지막 발현,태양의 기적)
오전부터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땅은 진흙탕이 되었고 사람들은 검은우산을 썼지만 비에 몸이 젖어 심한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코바다 이리아에는 신자와 일반인들,그리고 기자들까지 포함하여 약7만명이 모였고 이들은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이 요청하신 대로 매단마다 찬미가를 불렀다. 정오가지나자 루치아가 “빛,저곳에… 그분이 보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향 연기와 비슷한 작은 구름이 아이들 주변에서 피어나 공중 5~6m 높이까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발현하신 성모님은 “나는 묵주기도의 성모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거룩한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죄를 통회하고 보속하기를 권하러 왔다. 그리고 나의 영광을 위하여 이곳에 성당을 짓기 바란다. 인류가마음을 새로이 하고 회개한다면 머지않아 전쟁은 끝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이들과 작별을 고하시고 태양을 가리키면서 그쪽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치아는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태양을 보십시오!” 비가 그치고 새벽부터 하늘을 덮었던 구름도 사라지며 태양이 은으로 된 원반처럼 하늘 한가운데에 나타났지만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태양이 불 수레처럼 회전하면서 황색,홍색,청색,자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광선을 발산하였고 지상의 모든 것이 이 광선의 색으로물들었다.
잠시 후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갈지호자 모양으로 움직이다가 땅 위의 군중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태양의 회전은 10분 동안 계속되 었으며,이를 본 군중은 “기적 이다! 기적이야!”, “우리는 하느님을 믿습니다!”,“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여!”,“묵주기도의 성모님이시여,포르투갈을 구하소서!” 하고 저마다 소리 높여 외쳤다. 방금 전까지 쏟아졌던비로 흠뻑 젖었던 옷이 강한 열기를 받은 듯 순식간에 말라 있었고 진흙 바닥도 어느새 말라 있었다. 이 현상은 40 km 떨어진 인근 마을에서도 목격되었는데,이때 천문학자들은 태양 관측상 별다른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 전대미문의 기적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비하신 성모님께서 파티마의 세 아이들을통하여 당신이 전한 메시지가 특별히 중요한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 없다.
나. 발현 장소
1917년 파티마는 3,500명 정도의 농부들이 살고 있던 작은 마을로,포르투갈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보잘것없는 곳이었다. 이 지방의 땅은 주로 자갈밭에 바위투성이였는데,큰 샘도 없고 개천도 없어 농작이 어려웠으며,그나마 양을 치는 것이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게다가 1916년 포르투갈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이 작은 마을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1858년 프랑스의 루르드,1879년 아일랜드의 노크에서 그러셨던 것과 같이 성모님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가난한 곳,미 래의 희망조차 사라진 곳인 파티마에서 발현하신것이다.
성모님은6번의 발현 중에서 5번은코바다 이리아에서, 1번은 발리뉴스에서 나타나셨다. 코바 다 이리아는 움푹 파여 경사진 지형으로 양을 주로 방목하던 곳이었다. 성모님은 작은 참나무 위에 발현하셨는데,현재 그 나무는 남아 있지 않다. 성모님이 발현하실 때마다 몰려온 수많은 순례자들이 너도 나도 그 나무의 가지를 잘라 가는 바람에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그 나무가 있던 자리에 성모님의 발현을 기념하는 경당이 들어서 있다.
발현 기념 경당중앙에는 파티마성모상이 유리관속에 모셔져 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성모님이 발현하신 참나무가 있던 위치이다. 발현 기념 경당에서는 주로 순례자들을 위하여 묵주기도 봉헌이 진행되는데,특히 매일 밤9시 30분에 진행되는 봉헌과 그 후 이어지는 촛불 행진은 매우 경건하고 성모님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므로꼭 체험하기를 권한다.
다. 시현자
루치아는 1907년 5월 파티마의 가난한 농부의 집 1 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다른 시현자인 프란치스코는 1908년에, 히야친타는1910년에 11명의 자녀 중 열 번째와 열한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세아이는 친척 관계였고 살고 있는 집도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수시로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파티마에서는 나이가 차서 밭으로 나가 일을 하게 되면 그다음 아이가 양 떼를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루치아가 양 떼를 맡게 되자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는 부모를 졸라 루치아와 함께 양 떼를 돌보게 되었다. 발현 이후로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희생을 바치라는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하루 종일 허리에 굵은 밧즐을 묶고 더운 날에도 물을 마시지 않았으며 점심을 굶고 대신 묵주기도를 바치며 기도하였다.
루치아 두스 산투스
발현을 목격한 이후 루치아는 어머니와 언니로부터 많은 구박을 받았다 .
어머니는 루치아가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겨 사실을 고백하라고 종용하였다. 게다가 이웃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밭이 다 망가지고 농사를 망쳤다며 루치아에게 손해를배상하라고 요구하였다. 세 명의 시현자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루치아는 통상 시현자가늘 받아 왔던 모욕과 박해를 혼자 짊어져야 했다. 10월 13일 태양의 기적과 함께 성모님의 발현은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루치아는 더욱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방문객들의 뻔뻔스러운 부탁과 늘 똑같은 질문들,교묘하고 무례한 말들에 시달려야 했다. 정부에서 나온 조사원은 루치아의 말을 무조건 거짓말로 치부하여 사실을 말하라고 다그치며 협박했다. 성모님은 이러한 사실을 미 리 아시고 발현하실 때마다 시현자에 게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던 것이다.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가 선종하자 레이리아 교구의 새 주교인 조제 알베스 코헤이아다실바는 루치아를 군중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하여, 1921년 비밀리에 성 도로테아 수녀회의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러면서 어디로 가는지,자신이 누군지, 파티마 발현에 대해서도 함구할 것을 지시했다. 그 후 루치아는 1925년 스페인 폰테베드라에 있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에 입회하여 지원자로 머물다가, 1926년 투이로옮겨 수련기에 들어갔고, 같은곳에서 1928년 수도서원을, 1934년 종신서원을 하였다. 그때까지 루치아는 13년 동안 가족과 헤어져 지내며 주교의 지시를 따랐다. 1935년 12월 첫 회고록을 쓰기 시작하여 1993년 3월까지 여섯 권의 회고록을 남겼다.
1948년 3월 루치아는 교황 비오 12세의 허락으로포르투갈코임브라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으로 옮겨 가서 기도와 속죄의 삶을 살다가, 2005년 2월 13일 98세로 선종하였다. 루치아의 유해는2006년 2월 파티마로 옮겨져서 묵주기도(로사리오)의 성모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도 루치아처럼 부모에게 발현에 대한 추궁을 당하는 등 고통을 받았지만,머지않아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과 자주 묵주기도를 드려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성모님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프란치스코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분 의 목소리를 듣는 은총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두 소녀 못지않게 성모님께 충실하였고,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실천하였으며,기도를 바칠 때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 할 만큼 열심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스페인독감에 걸려 첫영성체와 병자성사를 동시에 받는 축복 속에 1919년 4월 4일 11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성모님이 예언하신 대로 히야친타도 독감과 그 합병증으로 1920년 2월 20일 밤 리스본의 한 병원에서 가족도 없이 병자성사도 받지 못한 채 1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들을 가경자로 공식 선언하였으며,2000년 5월 13일에는 직접 파티마를 방문하여 시복하였다. 히야친타는 이때까지 순교하지 않고 복자품에 오른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2017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파티마를 방문하여 파티마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고 남매를 시성하였다. 그리고 루치아 수녀도 포르투갈교회에 의해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다. 파티마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모님이 7월 13일에 알려 주신 세 번째 비밀은 루치아에 의해 문서로 작성되어 밀봉된 다음 교황청에 보내졌고,83년 동안 오직 교황만 열람하고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1960년 루치아는 “1960년에는 성모님의 비밀 메시지가 더욱 확실해질 것입니다”라며 세 번째 비밀을 공개하여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였지만 어떠한 발표도 없이1960년이 지나가자온갖 억측이 쏟아졌다.
2000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찾아가 그동안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 왔던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을 공개하였다.
파티마에서 요한 바오로 2세와 루치아 수녀가 10분간 면담한 이후 거행된 미사가 끝나자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50만명의 군중 앞에서 세 번째 비밀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향한 저격이라고 발표하였다. 마지막 환시에 대하여 추기경은 “하얀 옷차림의 주교가 십자가를 향해 순교자들의 시신 사이로 걷다가 총탄을 맞고쓰러지는 것이었다”라고 하면서,교황이 지난 1981 년 파티마 성모님이 발현하신 날짜인 5월 13일에 바티칸성 베드로광장에서 피격을 받은 사건을 의 미 한다고 설명 하였다.
교황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것이 모두 성모님 덕분이었다고했으며 피격 직후 병원 침대에서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이 담긴 봉인 봉투를 가져오게 했다. 교황은 그 즉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기로 마음 먹고 직접「의탁 기도문」이라 이름을 붙인기도문을 작성하였다. 파티마의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일체 대성당 앞에는 파티마와 매우 인연이 깊었던 교황요한 바오로2세의 성상이 있는데, 그기단에는교황의 행적과 관련한주요 일자가표시되어 있다.
라. 러시아에 대한 성모님의 메시지
1917년 7월 13일 세 번째로 발현하신 성모님은 러시아가 전 세계에 잘못된 사상을 퍼뜨리고 전쟁을 일으키며 교회를 박해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셨지만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2월 혁명이 일어나황제 니콜라이 2세가 폐위되고 러시아제국은사라졌으며 2개월 후 러시아 공화국이 들어섰다. 하지만사회는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에 머물렀고 6개월 후 1917년 11월 7일 레닌을 중심으로 하는 볼셰비키汗 소련 공산당의 별칭)세력에 의한 무장봉기로 러시아공화국은 전복되었다. 레닌은 국내의 적대 세력을 진압하고 1922년 12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인 소련(소비에트연방)을 결성하였다. 레닌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최초 공산주의 제국을 건설 하기위하여 전 세계에 공산주의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향은 레닌이 사망한 이후에도 소련의 근본적인 정책으로 계속 이어졌다. 파티마의 첫 번째와두 번째 비밀이 출간된 1942년에도 서구권은 소련 공산당이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1924년 레닌이 죽자 소련의 지도자 가된 스탈린은 대숙청을 통하여 독재 정권을 확립하였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였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큰 피해를 입자 연합국에게 보상을요구하여 대부분의 동구권 국가들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그 국가들에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한 후 인접국을 다시 침략하는 전략을 세우며 공산주의 제국을 실현하려는 목표를 달성해 갔다.
1917년부터 1931 년까지 14년 동안 소련 공산당은 소련 내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파괴를 자행하였는데 이 기간동안 681개의 교구와 980개의 성당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160만 명의 신자가 체포되거나 추방 또는 살해되었다. 또한 1954년부터 소련이 동구권 국가들을합병하기 시작한 후 15,700명의 사제들에게 다른직업을 갖도록 강요했으며 3,334개의 신학교가 해체되었고, 1,600여개의 수도원이 국유화되었으며 31,779개의 교회가 폐쇄되었다. 또한 레닌 집권 7년 동안 2천만 명, 스탈린 집권 30년 동안 4천6백만 명이 살해되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성모님이 왜 그렇게 러시아와 공산주의에 대하여 걱정을 하셨는지 알수 있다.
1985년부터 이어진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에 의하여 자유화 물결이 일어났고,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며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었다. 1991년 옐친이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여 마침내 공산주의는 붕괴하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이런 과정에 앞서 1952년 7월 7일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 교서를 통하여 러시아와 그 백성을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이 모든 것이 파티마 성모님이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마. 성지 소개
파티마 성지는 중심 성지(대성당과경당등이 있는성지)와시현자성지(시현자의 생가와 발리뉴스가 있는성지),그리고 교구 성당이 있는 성지로 구분할 수있다 . 파티마 버스 터미널에서 중심 성지까지는 거리가 400m 정도로 걸어서 갈 만큼 가깝지만 시현자 성지는 동쪽으로 3km,교구 성당은 4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선 중심 성지에는 대로변에 원형으로 지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이 있으며, 성지 내로 들어가면 발현 기념 경당과 묵주기도의 성모 대성당이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관련 시설과 성상이 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발현 기념 경당까지는 참회의 길이 놓여 있는데,무릎걸음으로 가면서 참회의 기도를 바치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여 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그 길을 걷는다.
성지의 맨 안쪽에 위치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묵주기도의 성모 대성당은 1953년 10월 13일에 봉헌되었으며,1954년 대성당으로 승격 되었다. 전면에는 64m 높이의 첨탑이 있으며,내부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파티마 발현 내용이 그려져 있고, 제단좌우측에는 시현자 3명의묘소도 있다. 1928년 대성당 건축을 시작하며 대규모 광장도 같이 조성되었는데 최대 30만 명까지 수용할수 있다고 한다.
2007년 10월 12일에는 파티마 발현 90주년을 기념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이 봉헌되었는데,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큰 성당이다. 2004년 6월 착공하여 총공사비 8,000만유로를 순례자들이 전액 기부하여 만들었다. 원형의 외관을 가진 이 대성당은 길이 95m,너비 115m,높이 20m이며 수용 규모는 약 8,500석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증한 초석은 성 베드로의 묘소에서 나온 것으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설할 때도 사용되었던 대리석 조각이다. 입구에는 세계에서 가장큰 묵주가 걸려 있는데, 묵주기도의 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성당 주위에는 파티마를 세 차례나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46년 파티마 성모상의 대관식을 위하여 라디오로 메시지를 낸 교황 비오 12세,1967년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념하여 파티마를 방문한교황바오로6세의 조각상이 있다. 광장주위로는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성상,베를린장벽 전시관 등을 볼 수 있으며,묵주기도의 성모 대성당 회랑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높은 기둥 위에 예수성심상이 서 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성지지만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영광과 재림을 위한 과정이니 예수성심상이 성지 한가운데 있는것은 당연할것이다.
시현자 성지로 가면 카베수 언덕에는 평화의 천사가 성체와 성작을 들고 있고 그 앞에서 세 시현자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치는 모습의 성상이 있다. 그 근처에는 시현자들이 감금에서 풀려났을 때 성모님이 네 번째로 발현하신 발리뉴스가 있고,파티마 성모상을 모신 발다키노도 거기 있다. 십자가의 길이 큰길에서부터 발리뉴스와 카베수까지 이어지니 그 길을 걸으며 평화의 천사와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소를둘러볼수 있다. 발리뉴스에서 500111 거리에는세 시현자의 생가 가 보존되어 있다. 루치아의 생가와 프란치스코,히야친타의 생가는 서로 200m 떨어져 있는데, 시현자들의 침대도그대로 있어 당시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루치아의 생가 근처에는 세 시현자와 천사의 성상이 세워져 있어 천사가나타난우물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끝으로교구 성당으로 이동하면 시현자들이 세 례받은 곳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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