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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해체 시장, 한국이 유리한 이유
2023.12.04
이원영(국토미래연구소장)
때는 2013년 초.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직후이자 후쿠시마원전사고 2년 후, 불교계와 원불교계는 원전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에 요구하였다. 그것은 안전분야와 해체분야를 특별히 강화하라는 주문이었다. ‘안전’은 예전부터 강조되어온 바이지만 ‘해체’는 그 이전의 정부에게는 없었던 새로운 개념이었다.
종교계의 염원은 단순했다. 원전해체의 흐름이 활성화되면 낡거나 위험한 원전은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가급적 해체하라는 것이다. 노후원전은 더 이상 가동하지 말고 ‘해체’기술을 연마하는 기회로 삼아서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라는 것이다. 당시의 인수위원회는 이를 무시하지 않았다.
종교계의 염원이 불을 붙인 원전해체
그 흐름의 결과 원전의 안전과 해체를 주제로 하는 큰 국제심포지엄이 그해 3월에 프레스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해체기술과 해체시장’이라는 주제 아래 국내 독일과 미국 일본의 원전해체 전문가들과 함께 주무부서인 산자부의 담당관이 토론자로 나섰으니 원자력업계 종사자도 수백 명이나 참가하는 등 큰 관심을 모았다. 기실 해체는 ‘안전’과 ‘경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일거양득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전해체시장은 당시에도 천문학적 규모로 예측되었다. 세계적 회계법인인 딜로이트는 2015년 예측에서 “현재 전 세계 588개 원전 중 영구정지된 원전은 150기이다. 이중 19기만 해체가 완료되었고, 원전을 해체해 본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몇 개국에 불과하다. 2020년대 183기, 2030년대 이후 216기 등 크게 증가하는데 EU(40%), 미국/캐나다(25%), 일본 (9%) 등 선진국에 약 3/4이 분포되어 있으며, 해체에 소요되는 비용은 총 440조 원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원전 203기가 영구 정지 상태로, 해체를 기다리고 있다. 2022년 11월 운영중인 423기 가운데 65% 이상이 설계수명이 다했다는데, 현재까지 완전히 해체된 원전은 불과 21기다. 그러기에 미국 컨설팅업체 베이츠화이트도 전 세계 원전해체 시장 규모가 2116년까지 54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은, 미국 에너지솔루션스(Energy Solutions), 영국 아멕(AMEC), 프랑스 오라노(Orano) 등 초기 원전 도입국가들을 중심으로 10여 개 주요 기업들이지만 시장의 크기에 비하면 이제 시작이다.
500조원의 세계원전해체시장
그 이후 정부는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2015년 원전해체 인허가과정에 대한 제도가 확립되고, 2016년 고리1호기 폐기 결정이 난 후, 2017년 문재인 정부 초기에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을 공표한다. 2020년 8월 법인설립 후, 예비타당성을 다투는 우여곡절 끝에 2022년 10월 공사착공에 들어갔다. 2026년까지 방사선관리시설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위치는 고리원전 부근이다.
그러던 중 작년 2022년 3월, 드디어 낭보가 들려왔다. 원전시공 경험이 축적되어 있던 현대건설이 미국의 노후원전 해체 사업을 수주한 것이다. 코로나로 세계가 숨을 고르던 시절이다. 9년 전 원전해체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실적다운 수주가 이루어진 것이다. 2016년 고리1호기 해체 결정이 이루어진 후 정부측에서 해체분야의 육성의 필요성이 부각되어 나름대로 노력해오긴 했지만, 민간기업이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일 것은 예상치 못한 터이다.
흥미로운 것은 발주처인 미국 홀텍사의 선택이유다. 미국은 이미 16기나 해체가 완료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체 경험을 보유하였기에 홀텍이 자국기업 아닌 현대건설을 파트너로 낙점한 것은 의외다. 그 이유로 짐작되는 것은, 1)원전 시공 경험이 풍부한 데다 2)방사성 오염토양 복원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3)현대그룹에서 인공지능(AI) 로봇개인 스팟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마지막 부분이 눈길을 끈다.
한국이 유리한 이유
방사능이 가득한 원전해체 현장은, 원격조종에 의한 작업이 필수적이고, 강한 방사선량을 견뎌낼 소재로 만든 로봇들이 정밀하게 계측을 해가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AI를 통한 시뮬레이션이 원활해지면 난이도 높은 작업의 진행이 더 수월해진다. 과거의 해체기술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고준위폐기물의 양을 대폭 줄일 수 있고 비용절감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IT첨단기술이 융합된 해체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해체현장은 보통 40년간이나 가동된다. 산자부 등이 주최하여 열린 2021원전해체비즈니스포럼에 참여한 이탈리아의 엔지니어 마리오 라체리( Mario Lazzeri)는 “1999년부터 해체공정을 시작한 현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혁명적 기술진화의 속도를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일찍이 원전가동 중단을 선언한 나라로 해체기술 선구자다. 그런 그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이다. 이런 ‘혁명적 기술진화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몇 개 국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국이 가진 원전 원천기술이 부족한 한국이지만, 해체분야만큼은 다를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여러 기술분야에서 선발주자를 뒤쫓아가는 형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수 있다. 서범경 한국원자력연구원 해체기술연구부장은, 2022년 1월 칼럼에서 중점적으로 개발해야 할 기술을 다음의 9가지로 꼽는다. 1)작업 안전성 분야, 2)환경 위해도 저감 분야, 3)AI와 디지털 트윈 4)고방사성 해체 대상 방사선학적 특성 평가기술, 5)원격 절단공정 모니터링 및 이상 감지기술, 6)원전 해체용 레이저 절단 안전특성 강화기술, 7)원전 해체 가연성 폐기물 감용 및 분산성 폐기물 안전화 기술 8)삼중수소 분리 핵심소재, 9)레이저 기반 H-3 및 C-14동위원소 분리 핵심기술 등이다. 그 기술의 명칭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원자력공학과는 성격이 다른 기계공학, 신소재공학의 영역에 IT기술이 접목되는 첨단 기술영역이다. 한국은 해체의 직접 경험은 없지만 그 간의 시공경험에 더불어 첨단기반의 기술역량이 있다.
해체기술은, 안전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놓고 봤을 때는 부가가치가 큰 기술이다. 특히 노후원전의 해체는 안전과 안심을 국민에게 선물한다. 경제적 부가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부가가치가 큰 것이다. ‘안심’할 때까지 비용과 투자의 무제한적 투입도 가능한 분야다. 게다가 시대가 주는 선물인 첨단기술이 장착되면 획기적인 비용절감도 가능하다.
독일이 가르쳐주는 원전해체에의 길
이런 기술은 현장에서의 실행을 위한 훈련이 중요한 법이다. 필자는 2014년 가을 독일의 KIT(칼스루에 공대)와 기술감리공사에 해당하는 TÜV-NORD사를 방문하여 원전해체 부문을 견학한 바 있다. 그때의 교훈은 원전을 만드는 것과 해체하는 것은, 원자력공학을 공통기반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기술영역이라는 것이다. KIT의 원전해체 분야의 주임교수인 샤샤 겐테스(Sascha Gentes)는 원전 전공자가 아니라 안전기술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필자에게 자신이 대만의 고속철도 공사 때 내진설계와 시공분야의 책임자였다는 경력을 이야기하였다. 전자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면, 후자는 ‘고준위 방사능의 부피를 줄이는 안전한 공정’이 핵심이다.
독일을 다녀온 후 필자는 칼럼에서, “해체는 경험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가르칠 사람이 없다. 원전해체의 육성은 무엇보다 현장과 학교가 연계하여 이루는 게 효율적이다. 산학연으로 전개하되 대학에서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적은 돈으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장기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그런데 기존 국내 원자력 관련 학과는 해체부문이 미약하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는 전공교수도 없고 학부 교과목에는 원자로 안전 부문이 선택과목으로만 1개가 있고, 해체와 폐기에 대한 과목은 아예 없다. 이는 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지금이다. 8년이 지난 2023년 지금도 그 추세가 바뀌지 않았다. 국내 대학인 서울대 KAIST 한양대 경희대 조선대 등 5군데의 원자력 관련 학과 학부와 대학원 커리큘럼을 조사했더니, 학부에서는 해체를 가르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전공교수가 없는 것이다. 대학원은 서울대 KAIST에는 해체 관련 과목이 아예 없고, 한양대는 2과목, 경희대는 1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있을 뿐이다. 조선대는 3개 과목(해체기술, 해체비용, 해체안전성)이 개설되어 있으나 전임교원 중에는 해체분야를 전공한 교수가 없다. 이래서야 어찌 전문인력을 길러내겠는가? 한수원 스스로 2026년에는 해체전문 인력 1500명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위기와 기회
기존 원전분야는 에너지시장에서 이미 위기에 놓여 있다. 사고와 위험은 별개로 하더라도, 현실의 시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RE100경제체제다. 원전을 포함시킨 ‘한국형CF100’이라는 꼼수는 세계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태양광이 기저에너지로 등극한 이 시점에 원전을 지금처럼 가동하면 전력계통에도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이미 부하추종(시시각각 변하는 전력수요에 맞춰 계통에 투입한 발전기 출력을 빠르게 높이거나 낮춰 공급)이라는 전력계통 기술의 한계 때문에 원전에서 만드는 전기는 사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과 같은 고립된 전력계통환경에서는 태양광과 원전이 상극인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고립국인 영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영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전력공급 비중이 40%를 넘어선 2020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지는 봄, 여름 5개월 동안 사이즈웰 원전을 50% 출력으로 운전했다. 원전 전용 비상발전기들을 가동하는 것보다 애초에 원전 출력을 줄여 정전위험을 줄이는 게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석광훈 박사)” 이처럼 원전은 아무리 증설한들 개점휴업을 면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리 진흥을 외쳐도 이미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려고 내세운 SMR(소형모듈원자로)은, 최근 미국 아이다호의 실패사례에서 보듯 경제성이 없음이 이미 판명되었다. 사용후핵연료의 저장공간이 한계에 봉착하는 시각도 다가오고 있다. 게다가 널리 홍보해왔던 원전의 탄소배출제로도 사실과 다르다. 원전에서 24시간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양의 온배수는 화력발전소보다 훨씬 많다. 직접적 열오염으로 지구온난화를 촉발하고 있는 데다, 바다 위 뜨거운 표층수막을 빠르게 도포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바닷물 속으로 저장되는 길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숨길 수 없는 큰 결함이다.
장래가 어두운 이런 시절이긴 하지만, 매년 각 대학 원자력공학과에서 배출되는 300여 명 졸업생은 관점을 바꾸면 소중한 자산이다. 이 학과 교수들은 제자들에게 새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가령 1)모든 학교에 해체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하여 육성하는 방안 2)이들 학교에 해체전공을 신설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의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국가가 지원하도록 한다. 학문적 업적의 학자보다 실무를 가르칠 기술자를 초청한다. 경험 있는 기술자를 교수진으로 초빙하여 산학연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 된다. 이 운영을 위한 재정에는 국가가 지원한다. 이런 일이 국가의 역할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미국이나 이탈리아나 러시아 같은 해체 경험이 있는 나라라 할지라도, AI와 접목되는 IT융합형 첨단기술이 발휘되어야 할 이제부터의 해체시장에는 기술우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미국이 해체프로젝트를 한국의 기업에 맡긴 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난제는 남아 있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더욱 적극적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지난 정권 때 폐로가 결정된 월성1호기와 같은 중수로형 원전의 선행적 해체 경험은 캐나다에 앞서 세계시장을 주도할 기회가 된다. 고리2호기도 마찬가지다. 수명연장이 아니라 수명만료 즉시 해체로 가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보다 본격적인 장기적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
그 로드맵은 전후방 경제효과나 안보정책에도 유효하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와 같은 사례가 한반도 남쪽에도 언제든지 불거질 수 있다. 해체가 활성화되면 안전도 업그레이드 된다. 해체하면 구조의 결함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가동중에는 의심이 있어도 열어보지 못했던 내부의 문제점이 정확히 파악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제가 남아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저장문제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건설해온 원자력업계의 비극이다. 원전을 찬양하면서 단물을 빨아온 언론과 기득권의 책임이 크다. 처분장의 입지조차 거론하지 못하는 현실에, 발전소 마당에 임시저장시설을 갖추는 것조차 가능성이 미지수인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 온 독일 TÜV-NORD 기술자가 가장 우려하던 한국의 현실이다. 해체시스템의 구축과정과 비전을 갖춘다 하더라도, 그 어려움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수용의 필요성을 설득할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출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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