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2024년 2월 17일 여주시를 다녀왔다.
여주는 남한강이다. 여주를 관통하고 있다. 서울을 향하는 남한강의 여주시는 상수원보호구역이다. 개발이 일정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도농복합 도시로 최근 2013년에 시가 되었다. 수도권에 있음에도 11만을 조금 넘는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승용차 3대에 11명이 함께 했다. 오전 9시 천호역을 출발해 첫 번째 도착지는 파사성이다. 파사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파사산성에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다. 다행인 것은 거리가 짧다. 다리가 불편하거나 연로하신 분이 오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파사성 성문에 이르렀다면 필히 정상까지 오를 일이다. 정상을 오르지 않으면 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풍광을 놓치고 말기 때문이다.
파사성에
강엔 구불구불 푸른 쌀이 만석이고
푸근한 넉넉함에 들녘은 충만하고
마음 가득 하늘은 달항아리에 담겼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는
성벽마저 돌 틈을 비켜내고
소나기 소리 평안과 쉼의 노래라
파사성이 떠는 까닭은
오롯이 맞닿은 심장이니
이포보는 파사성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야 한다. 계란처럼 생긴 것이 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여주에는 이포보를 비롯해 여주보, 강천보 등 세 개의 보가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것이다.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민주적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권력의 일방통행에서 비롯된 일이다. 역사적 퇴행은 언제든 눈앞에 가시화되어 나타난다.
세종대왕·효종대왕릉은 넓고 여유로웠다. 입장료가 400원으로 비싸지 않았다. 돈에 미친 장사가 아니라면 어디든 입장료는 최소한으로 정해지면 좋겠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발걸음도 느긋하게 돌아볼 곳이다. 효종이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다면 사대주의 조선의 역사는 좀 더 자주의 역사로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조선의 왕 중에 인조는 최악이다. 무능하고 모자라고 시기와 질투는 하늘을 찔렀다. 인조, 선조, 고종 조선의 모지리다. 최근에 우리는 이 세 모지리를 합쳐놓은 촛불혁명의 대통령 5년을 보냈다. 그 결과는 용산 대통령실이고 우리는 전쟁의 위험에 놓여 있다.
여주 한글시장의 맛집으로 유명한 성흥분식을 어렵게 찾았으나 때마침 쉬는 시간으로 문이 닫혔다. 근처에 있는 일성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늦은 점심에 하나같이 맛이 좋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다행이었다.
신륵사는 남한강의 언저리에 자리한 사찰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강 바위에 자리한 정자는 저절로 콧소리가 흥얼거려진다. 시멘트 철근 건물이 보이지 않던 시대의 정자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랑하는 그녀의 손길에 술잔이 출렁인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주중에 찾아오면 호젓하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절간이 그나마 밉지 않게 작용하는 이유는 자연의 풍광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러다가도 기와 한 장에 만 원, 수험생 합격을 비는 복채를 내라는 현수막 등을 보면 마음이 닫히고 만다. 종교는 근본에 사기를 깔고 있다. 사기를 전제하는 것으로부터 종교 종사자는 이웃에 봉사와 세상에 이로움으로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한다. 신륵사가 있는 곳은 여주기념박물관, 여주도자세상 등 둘러볼 곳이 여럿이다.
강천보 전망대를 둘러보고 강천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서 강천섬까지는 20분 정도를 걸어야 한다. 여러 곳을 둘러본 후라 힘들고 지친 형편이었다. 강천섬 유원지는 추후 아름다운 사람과 ‘나 잡아 봐라.’ 하면서 걷는 것으로 남겨 놓았다.
저녁 식사도 하고 좀 더 즐겁게 보냈으면 좋았으련만, 아쉬움을 뒤로 했다. 3월 24일 일요일에는 운길산역에서 팔당역까지 한강을 끼고 걷기로 했다. 다산 정약용 생가, 유적지, 생태공원 등이 경유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