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는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재배된 게이샤 품종이다. 최상품이 작년 경매에서 1파운드당 2,755달러에 팔렸다. 1파운드의 생두에서 커피가 20잔 쯤 나오니 한잔당 137.75달러, 우리 돈으로 18만 6천원이다. 만일 내가 이를 낙찰받아 나의 공방에서 판매한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운송비, 통관비, 로스팅 등의 비용을 추가하면 적어도 잔당 30만원은 받아야 할 것이다.
뉴욕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커피는 파운드당 2.3달러에 불과한데 그 농장의 그 품종은 어찌 1,000배가 넘는 가격에 팔릴까? 향미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는 '큐 그레이더(Q Grader)'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 자격증은 CQI라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정 교육을 실시한 후 커피 향미의 감별능력을 평가하여 기준을 충족하면 발급한다. 전 세계적으로 6,000명 정도 되고 그 중 한국인이 10%나 된다는 글을 몇년전에 보았으니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자격증을 갖지 못했다. 그 자격증에 도전할 의사도 없다. 내가 기준에 충족되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늙었고 이제 미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기관이 많이 약해졌다. 십여년 전 커피 업계에 들어갈 때에도 이미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커피믹스를 애용했다. 일류 호텔의 커피숍에도 자주 갔는데 거기서 마시는 진한 커피는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간혹 분위기 있는 곳에 가면 커피메이커로 연하게 내린 커피를 얻어 마셨는데 그 향과 구수한 맛에 매료되곤 했다.
로스터로서의 일을 시작하기 전 반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 때부터 인터넷에서 원두를 사고, 페이퍼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맛을 보았다. 다양한 원두를 구매해서 원두간의 맛 차이를 인식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이미 많이 약해진 미각과 취각을 회복시키려는 훈련이었고 투쟁이었다. 커피를 많이 마셔야 했다. 종종 잠 자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미각 기능은 서서히 살아났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미각기능이 본격적으로 살아난 것은 로스팅을 하면서 부터였다. 로스팅의 수준이 다를 때, 로스팅의 속도가 다를 때, 로스팅의 프로파일을 달리했을 때 맛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아는 것은 로스팅 책임자의 생명이었다. 그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각이 살아있는 젊은 바리스타들과 함께 맛을 보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결과였을까,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맛을 감별하는 능력이 점차 살아났다. 맛의 평가에 자신감이 붙었고 카페를 찾아온 고객들과 특정의 커피를 마시며 맛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때 뜻밖에도 맛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맛을 잘 안다는 것은 맛을 분석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선생님 말씀대로 어제 로스팅한 만델링을 드립해서 마셔보았습니다.
로스팅한지 하루되어서 그런지 살짝 거칠은 떫은 맛이 느껴지고 카카오닙스의 쌉싸름함과 붉은 자두에서 느껴지는 새콤한 신맛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단맛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말린 과일에서 나는 쿰쿰하고 매운? 독특한 향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배출시간을 조금 더 늦춰볼까요 선생님??
위의 글은 지금 로스팅을 담당하는 한 직원과 수마트라 만델링의 맛에 대해 카톡으로 주고 받은 대화다. 이 직원은 미각, 취각, 청각, 시각 등 감각이 전반적으로 뛰어나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은 참 드물다. 바리스타나 아르바이트 직원을 채용할 때에도 나는 커피를 주고 맛을 묻는다. '맛있네요', "쓰네요.", "뒷 맛이 오래 가네요." 등 한두마디로 맛을 평가하고는 입을 닫는다. 간혹 길게, 서술적으로 맛을 말하는 젊은 지원자를 만난다. 그러면 나는 묻는다. "엄마 요리 잘 하시나?" 그러면 모계, 또는 부계 쪽에 미각이 뛰어난 분이 있다는 대답을 듣는다. 맛 평가능력은 유전이다. 위의 글을 쓴 직원은 부계쪽에서 물려받았다. 나는 이 직원에게 '당신처럼 뛰어난 미각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에 천 명도 없을 것이다'라고 격려하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글로벌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잔소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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