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기신종 종조 마명보살에 대한 검토
-첫회-
학불(원효불교학술원 이사장)
-차 례-
Ⅰ. 머리말 Ⅱ. 『마명보살전』 검토 1. 마명의 출가 인연 2. ‘마명’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권화勸化 Ⅲ. 『대종지현문본론』에서 마명보살에 대한 검토 1. 마명의 전생 이야기 2. 『대종지현문본론』을 지은 인연 Ⅳ. 『석마하연론』에서 마명보살에 대한 검토 1. 여섯 명의 마명논사 2. 제8 부동지 마명보살 Ⅴ. 마무리 |
Ⅰ. 머리말
『대종지현문본론』(이하 『현론』)은 『대승기신론』(이하 『기신론』)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논서이다. 『현론』은 일반적으로 『기신론』의 주석서로 이해되기도 한다. 『현론』이 동북아 불교(특히 중국과 일본)에 널리 수용된 이유는 그 자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신론』의 권위에 힘입은 바도 없지 않다. 『기신론』과 『현론』 두 논서의 저자는 마명馬鳴(Aśvaghoṣa, 100∼160)이다. 『기신론』의 한역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제眞諦(Pramārtha, 499∼569)의 역본이고 또 하나는 실차난타實叉難陀(śikṣānanda, 652∼710)의 역본이다. 일반적으로 진제본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현론』의 저자도 마명이고, 한역자는 진제삼장이다. 저자와 한역자가 동일인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논서’라고 지적한 이유다. 따라서 저자에 관한 한 『기신론』으로 접근하든, 『현론』으로 접근하든 결과는 동일하다.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을 가장 간명하고 체계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기신론』은 대승불교의 종요서이자 교본으로 평가받는 논서이다. 중국 육조 시대에 나타난 이후 『기신론』은 현재까지 그 영향력이 전혀 감소하지 않고 있다. 특히 화엄종의 대성자 법장法藏이 『대승기신론의기』를 저술한 이후 중국 불교는 물론 동북아 전체에 널리 수용되었다. 『기신론』은 동북아 불교 교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논서로 자리 잡았다.
『기신론』은 한국, 특히 신라불교에서도 주석서가 10여 종이 나올 정도로 큰 역할을 하였다. 『기신론』은 무엇보다도 원효사상의 원천이었다. 이시이 코세이 교수는 원효는 『기신론』과 함께 살았으며, 원효 사상의 진전을 『기신론』에 대한 해석의 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원효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기신론』은 신라불교, 나아가 동북아 불교에서도 하나의 축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신론』과 『현론』의 저자 마명은 인도의 코살라kosala 혹은 마가다magada국 태생으로서 정통 바라문 출신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역자 진제삼장은 서인도 빈디야Vindhya 산맥 북쪽에 인접해 있던 우선니優禪尼(ujjayanī)의 바라문 출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신론』은 산스크리트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이밖에 인도경전이나 티베트 경전에도 『기신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수나라 때 법경法經이 편찬한 『중경목록衆經目錄』 권25 「중론의혹衆論疑惑」에는 『기신론』을 위경僞經에 포함시켰다. 이것이 『기신론』의 인도찬술을 의심하고 중국 찬술설이 제기되는 일차적 배경이다. 이후 『기신론』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위찬僞撰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신론』이 위찬으로 지적되는 다른 이유는 저자 문제이다. 저자인 마명의 실존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현론』도 위찬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마명의 행적은 파편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는 코살라 혹은 마가다국 태생으로서 정통 바라문 출신이며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아슈바고샤Aśvaghoṣa이다. 아슈바고샤라는 말의 뜻을 번역하여 한역 경전에서는 ‘마명馬鳴’으로 불린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대체로 2세기 초·중엽에 생존했던 인물로 보고 있다. 활동 시기는 100∼150년경으로 본다. 그는 원래 브라만 출신의 대학자로 널리 알려졌던 사람인데, 당시 인도의 학문중심지였던 마가다국의 여러 지방에서 불교학자들과 논쟁을 벌였으나 패하여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동북아 선불교 조사 전등傳燈법맥에서 서천 12조로 되어 있다. 일부 기록에는 그가 고대 인도의 불교 시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며 『불소행찬佛所行讚』과 같은 서사시집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불교 승려인 부나야사富那夜奢(Punyayasas), 혹은 협존자脇尊者(Parsva)와의 대론에서 패배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카니쉬카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마명의 행적은 이상의 파편적인 정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신론』의 저자 마명과 시인 마명이 동명이인이라는 설이 제기되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석마하연론』(이하 『석론』)에는 6명의 마명이 있었다 하고 『출삼장기집』에도 2명의 마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바로 이와 같은 마명의 생애에 대한 혼란은 그의 저작으로 전해지는 『기신론』은 물론 『현론』의 중국 위찬설이 제기되는 동인이 되었다. 『현론』의 저자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은 이시이 코세이(石井公城) 교수였다.
나카무라 마사 후미는 『현론』에는 고려 본과 명본明本이 있고, 전자가 오래된 형태여도 되는 것은 신라 찬술 설이 있다. 『석론』 이외에 『현론』에 대해 신라 불교와의 관계를 시사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신라 성립이었다면 『현론』이 중국의 경록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것도 납득된다.
이에 본 논문은 『석론』과 마찬가지로 신라 찬술이며, 모치즈키望月가 설파하는 것처럼 『석론』과 '동일의 손이 되었다'거나 '그 한패'의 작품임을 밝히는 동시에 성립배경에 대해서도 검토해 나가기로 한다.
이시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현론』이 신라 친술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화엄사상의 연구』에서 『기신론』을 둘러싼 최근의 연구성과를 정리하는 가운데 『현론』의 성립문제를 다시 제기하였다.
『대승기신론』에 대헤서는 중국의 많은 승려들이 주석서를 썼으며 그것들이 신라에 들어오자, 「기신론』을 대승을 총괄하는 최고의 논서로 평가했던 인물이 원효이다. 원효는 그러한 기신론』 주석서를 참조하여 「해동소」와 「기신론별기』를 저술했다. 그것이 당나라에 들어갔고, 그 영항을 받은 법장이 「대승기신론의기』를 쓰자 그것이 다시 신라에 들어왔다.
원효의 저술이며 기신론』의 영향이 농후한 『금강삼매경론』도 당나라에 전해지고, 선종 승려들에 의해 읽혀졌다. 원효의 저술은 일본에 대량으로 들어왔으며 나라시대의 여러 사원을 중심으로 널리 연구되었다. 원효 이후 신라에서는 원효와 법장의 영향을 받아 용수가 썼다고 칭해지는 「기신론』의 특이한 주석인 『석마하연론』이 작성되었고, 그것과 같은 작자 혹은 아주 가까운 입장을 가진 인물에 의해 『대승기신론』의 강요를 설했다고 불리는 『대종지현문본론」도 만들어졌다.(밑줄-인용자)
이시이 교수에 따르면 『현론』은 신라에서 성립된 논서이며, 저자는 『석론』과 같은 저자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신라승려 월충이 된다. 아니면, 월충과 아주 가까운 입장을 가진 인물이다. 이시이 교수는 월충과 그 무리에 대한 성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원효와 법장의 영향을 받은 그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시이 교수는 『현론』의 저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불교학계에서 시작된 두 논서의 신라 성립설은 아직 정설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동의를 얻고 있다.
『현론』, 나아가 『기신론』의 위찬설이 정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저자 마명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저자 마명에 대한 본격적인 선행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현론』도 그렇지만 『기신론』이 동북아 불교에 미친 영향력에 유의할 때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본고는 『현론』의 저자 마명에 대한 연구이다. 마명의 생애에 대한 연구가 목적하는 정도에 이른다면 『현론』의 저자문제, 위찬설, 특히 신라성립 문제뿐만 아니라 『기신론』의 위찬설도 어느 정도 해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원문에 있는 각주는 생략됨(이하 같음)
첫댓글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