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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제3, 「흥법」제3
1. 순도조려
압록에 봄이 깊어 물가의 풀빛 고운데
백사장의 갈매기 한가로이 조는구나
부드러이 노 젓는 소리에 놀라 한소리 길게 우니
어느 곳 고깃배 타고 안개 속에 손님이 오는가.
2. 난타벽제
하늘이 원래 천지를 창조할 때는
대개 솜씨를 부려도 따르게 하기 어려운데
늙은이는 스스로 해득하여 노래와 춤으로
옆 사람 끌어들여 눈으로 보게 하네.
3. 아도기라
임금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사용법을 몰라서 사람을 시켜 향을 가지고 나라 안을 두루 다니며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보고 말하였다. 이것은 향이라고 합니다. 사르면 향기가 짙어서 신성에게 정성이 닿게 하는 것입니다. 신성은 삼보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만약 이것을 사르며 바라고 원하는 생각을 내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왕녀가 몹시 위독하여 묵호자를 불러들여 향을 사르며 서원을 표하게 하니 왕녀의 병이 곧 나았다. 왕이 기뻐서 예물을 후하게 주었는데 얼마 후에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4. 아도기라
이 나라는 아직까지 불교의 법을 모르지만, 이후 삼천여 월이 지나면 계림에 성왕이 출현하여 불교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그 서울 안에는 일곱 곳에 절터가 있다. 첫째는 금교 동쪽의 천경림 흥륜사이다. 둘째는 삼천기 영흥사이다. 셋째는 용궁 남쪽 황룡사이다. 넷째는 용궁의 북쪽 분황사이다. 다섯째는 사천미 영묘사이다. 여섯째는 신유림 사천왕사이다. 일곱째는 서청전 담엄사이다. 모두 전불 시대의 절터이며, 불교의 법이 오래 지속될 곳이다. 아도가 가르침을 받고 계림에 와서 왕성의 서리에 살았다. 지금의 엄장사로 그때는 미추왕 즉위 이년 계미였다.
5. 아도기라
금교에 쌓인 눈 아직 녹지 않았고
계림에 봄빛이 돌아오지 않았도다
어여쁘다 봄의 신은 재치 있는 생각도 많아
모랑댁 매화꽃을 먼저 피게 하였네
6. 원종흥법 염촉멸신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로 솟구칠 마음이 있고 큰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바다를 가로지를 기세를 품는다더니 그대가 이와 같도다. 가히 대사의 행이라 이를 만하다.
7. 원종흥법 염촉멸신
절들은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은 기러기 무리처럼 열을 지어 늘어섰다. 법당을 세우고 범종을 매어 다니 용상 같은 스님의 무리가 세상의 복전이 되고 대승법과 소승법이 서울의 자비로운 구름이 되었다. 다른 세계의 보살이 세상에 출현하니 분황의 진나 부석의 보개 등이다. 서역의 유명한 스님들이 이 땅에 강림하니 이로 말미암아 삼한을 병합하여 한 나라가 되었고 온 세상을 합하여 한 집안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덕 높은 이름을 패다라 나무에 쓰고 신성한 행적을 은하수 물에 비추었으니 어찌 아도 법흥왕 염촉 세 성인의 위덕으로 이룬 것이 아니겠는가.
8. 원종흥법 염촉멸신
아 이런 임금이 없었으면 이런 신하가 없을 것이고 이런 신하가 없었으면 이런 공덕이 없었을 것이다. 유비와 제갈량 같이 물고기와 물의 관계이고 구름과 용이 감응해 만난 것 같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9. 원종흥법 염촉멸신
(법흥왕에 대한 찬시)
거룩한 지혜는 만세를 도모하려는 것이니
구구한 여론은 가을날 터럭 같을 뿐
법륜이 풀리자 금륜이 따라서 구르니
태평세월이 불일을 따라 높아라
(이차돈에 대한 찬시)
의를 좇아 생을 가벼이 한 것도 이미 놀라운데
하늘 꽃과 흰 젖은 더욱 정이 많다 하는구나
잠시 칼날 한 번 번쩍 몸을 잃은 후에
절마다 종소리가 왕경에 진동하도다.
10. 법왕금살
조서로 짐승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니 온 산에 은혜 미쳤고
가축과 물고기에게까지 은택이 흡족하니 사해가 어질구나
성군이 덧없이 별세했다 말하지 마라
하늘나라 도솔천엔 꽃다운 봄이 한창이리니
권제3, 「탑상」제4
1. 가섭불 연좌석
신라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는 가섭불 연좌석이 있다. 그곳은 곧 전불 시대 가람의 옛터이다. 지금 황룡사 지역이니 곧 일곱 가람의 하나이다. 연좌석은 불전 후면에 있었다. 일찍이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돌의 높이는 대여섯 자 정도이고 둘레는 겨우 세 발 남짓이며 돌기둥처럼 서 있고 위는 평평하였다. 진흥왕이 절을 세운 뒤로 두 번 화재를 겪어 돌에 갈라지고 쪼개진 곳이 생겼으므로 절의 스님이 쇠를 붙여 보호하였다. 이윽고 몽고의 대전란 이후 불전과 탑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이 돌도 파묻혀 거의 지면과 같이 평평해졌다.
2. 가섭불 연좌석
불교의 성쇠는 기억할 수 없이 아득한데
오직 연좌석만은 의연히 남았도다
뽕밭이 몇 번이나 변해서 푸른 바다가 되었느냐
애석타 아직도 우뚝한 채 옮기지 않았도다
3. 가섭불 연좌석
아육왕의 보탑은 세상 곳곳에 퍼져서
비에 젖고 구름에 묻혀 이끼마저 아롱졌네
그때 길손들의 안목을 상상하면
몇 사람이나 탑을 가리켜 알려 주었을까.
4. 금관성 파사석탑
호계사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이었을 때 세조 수로왕의 왕비 허황후 황옥이 동한 건무 24년 갑술에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 공주가 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바다에 떠서 장차 동으로 향하려다가 파도신의 노여움에 가로막혀 견디지 못해 돌아와 부왕에게 아뢰었다.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도록 하니 그제야 순조롭게 건너 남쪽 바닷가에 다다랐는데 배는 붉은 비단 돛과 붉은 깃발, 구슬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그곳을 지금 주포라 하고 처음 언덕 위에서 비단 바지를 벗었던 곳을 능현이라 하며 붉은 깃발이 처음 들어온 바다 언덕을 기출변이라고 한다.
5. 금관성 파사석탑
탑을 실을 붉은 돛배의 붉은 깃발 가벼우니
신령께 바다 파도가 잔잔해지길 빌었네
어찌 황옥이 해안에 닿는 것만 도왔으랴
천고토록 남쪽 왜의 성난 파도를 막았다네.
6. 황룡사 장육
티끌세상 어느 곳인들 진짜 고향이 아니라만
향화의 인연은 우리나라 으뜸일세
아육왕이 만들기 어려웠던 게 아니라
옛날 살던 월성이므로 찾아오신 것이어라
7. 미륵선화 미시랑 진자사
왕은 천성이 고상하고 신선을 숭상하여 민가의 낭자 중에서 아름답고 예쁜 사람을 택하여 받들어 원화로 삼았다. 무리를 모아서 인물을 뽑고 그들에게 효도와 우애 그리고 충성과 신의를 가르치려 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요이기도 하였다.
8. 영축사
공이 매의 방울소리를 듣고 찾다가 굴정현 관가의 북쪽 우물가에 이르렀다.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있고 꿩은 우물 속에 있는데 물이 온통 핏빛이었다. 꿩은 두 날개를 빌려 새끼 두 마리를 안고 있었다. 매 또한 측은히 여기는지 감히 잡지를 않았다. 공이 이를 보고 슬퍼하며 감동한 바가 있어 그 땅을 점쳐 물으니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하였다.
9. 고구려 영탑사
석보덕의 자는 지법이요 전 고려 용강현 사람이다. 그는 항상 평양성에 살았는데 산방의 노승이 와서 경전 강의를 청하였다. 법사가 굳이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가서 열반경을 강하였다. 법석을 마치고 성의 서쪽 대보산 바위굴 아래에 이르러 선관을 하니 신인이 와서 이곳에 주석하는 것이 어울리겠다고 청하였다. 석장을 앞에 놓고 그 땅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밑에 팔면 칠층의 석탑이 있소. 그곳을 파니 과연 그러하므로 정사를 세워 영탑사라 하고 그곳에서 지냈다.
10. 황룡사 구층탑
그대 나라 왕은 천축의 찰리종족 왕으로 미리 부처님의 수기를 받았으므로 남다른 인연이 있어 동이 공공 오랑캐 종족과는 같지 않소. 그러나 산천이 험하기 때문에 사람의 성품이 거칠고 도리에 어긋나 잘못된 견해를 많이 믿어 때때로 천신이 화를 내리기도 하나 다문비구가 나라 안에 있어서 임금과 신하가 편안하고 만백성이 화평한 것이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자장은 이것이 바로 문수 성인의 변화임을 알고 감격하여 울며 물러났다.
11. 황룡사 구층탑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가서 청하였다. 아비지라 이름하는 대목 장인이 명을 받고 와서 목재와 석재를 다듬었다. 이간 용춘이 소목장인 이백명을 인솔하며 일을 주관하였다. 처음 탑의 기둥 찰주를 세우는 날 대목 장인은 꿈에 본국 백제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았다. 대목 장인이 의심하여 일손을 멈추니 홀연히 대지가 진동하고 컴컴해지더니 한 노스님과 한 장사가 금당 문으로부터 나와 그 기둥을 세우더니 스님과 장사는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목 장인이 이에 뉘우치고 그 탑을 완성하였다. 찰주기에 철반 이상의 높이는 사십이자이고 이하는 일백팔십삼자라고 하였다.
12. 황룡사 구층탑
신라 이십칠 대 왕은 여왕이라 비록 법도는 있어도 위엄이 없으므로 구한이 침범한다. 만일 용궁의 남쪽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로 인한 재난을 누를 수 있으니 제1층은 일본, 제2층은 중화, 제3층은 오월, 제4층은 탁라, 제5층은 백제, 제6층은 말갈, 제7층은 거란, 제8층은 여진, 제9층은 예맥이다.
13.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경덕왕은 또 당나라 대종 황제가 불교를 우대하고 숭상한다는 소문을 듣고 장인에게 명하여 오색의 모직담요를 만들게 하고, 또 침단목과 밝은 구슬 아름다운 옥에 조각한 산의 모형을 한 발 남짓하게 만들어 모직담요 위에 놓았다. 산에는 가파른 바위와 괴석, 개울과 동굴이 구역을 나누어 있는데, 각 구역 안에는 노래하고 춤추며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과 여러 나라 산천의 형상이 있었다. 미풍이 문으로 들어가면 벌과 나비가 훨훨 날고 제비와 참새가 날아올라 춤을 추니 어렴풋이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지 못하였다. 그 가운데 일만 불을 안치하였는데 큰 것은 사방 일촌이 넘고 작은 것은 팔구 푼 쯤 되었다. 두상이 혹 큰 기장 낱알만 하거나 콩알 반쪽만 하며, 나발과 백모 눈썹과 눈이 뚜렷하여 상호를 다 갖추었으나 다만 방불하다 말할 수 있을 뿐 상세한 것은 다 말할 수 없어 만불산이라 불렀다. 다시 금과 옥을 새긴 유소·번개와 망고, 치자꽃 등의 꽃과 과일로 장엄하였으며, 백 계단이나 되는 높은 누각과 누대, 전각, 당우, 정사는 모두 작기는 하지만 다 살아 움직이는 형세였다. 앞에는 빙 둘러 도는 비구상이 천 여구가 있고 아래는 자색 금빛의 종 세 구를 벌려 놓았는데 모두 종각과 포뢰가 있고, 고래 모양으로 된 종치는 방망이인 당목을 삼았다. 바람이 불어 종이 울리면 정근하며 돌고 있던 스님들은 모두 다 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였다. 은은히 염불 소리가 들렸으니, 대개 그 중심체는 종에 있었다. 비록 만 불로 부르나 그 실상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완성되자 사절을 보내어 선사하니 대종이 보고 감탄하여 신라의 기교는 하늘의 조화이지 사람의 기교는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구광선을 그 바위 사이에 덧붙여두고 인하여 불광이라 불렀다. 사월 파일에 양가의 승도에게 명하여 내도량에서 만불산에 예를 드리게 하고 불공삼장에게 명하여 밀부진전을 천 번이나 읽게 하여 찬탄하고 경축하니, 보는 자가 모두 그 정교함을 탄복하였다.
14.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옛날 당나라 황제가 연못 하나를 팠다. 달마다 보름 전에 달빛이 휘영청 밝을 때면 못 가운데 산이 하나 나타났는데, 꽃 사이에 은은하게 비치는 사자같이 생긴 바위 그림자가 못물 위에 어리곤 했다. 황제는 화가에게 명령을 내려 그 산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심부름꾼을 파견하여 온 천하에 이 산을 찾게 했다. 심부름꾼이 우리나라에 와서 백월산을 보니 거대한 사자바위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림 속의 산과 흡사하였다. 그러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었던 그는 신발 한 짝을 사자바위 꼭대기에 걸어두고, 돌아가서 황제에게 보고했다. 신발의 그림자가 못에 얼비치자, 황제가 기이하게 생각하고 백월산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5.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가 참으로 좋기야 하지만, 옷과 음식이 생각하는 대로 생겨나서 저절로 배부르고 따뜻한 것만은 같지 못하다. 아내와 집이 진실로 좋기는 하지만, 연화장세계의 무수한 성인들과 함께 노닐며 앵무새, 공작새와 더불어 서로 즐기는 것만은 같지 못하다.
16.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절은 아녀자와 함께 있으면서 더럽혀도 되는 곳이 아니라오. 하지만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또한 보살이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이지요. 하물며 깊은 골짜기에 밤도 이미 캄캄한데, 아가씨에게 어디로 가라 하겠습니까.
17. 남백월 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谷暗何歸已暝煙 어딜 가랴? 골 어둡고 날도 이미 캄캄한데
南窓有簟且流連 남쪽 창 대자리에 하루 묵고 가시구려
夜闌百八深深轉 밤늦도록 백팔염주 고요히 굴리나니
只恐成喧惱客眠 시끄러워 나그네가 잠 못 들까 걱정일세
18. 남백월 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
첩첩 산길에서 날은 저물고
가도 가도 사방 이웃 뚝 끊어졌네
대나무 솔 그늘은 점점 더 깊고
골짜기 시내 소리 더 콸콸 우네
길을 잃어 묵고 가려 함이 아니고
스님 갈 길을 가리켜 주려 함일세
원하노니 나의 청을 따라 주시고
누구냐고 묻지는 마시옵소서
19. 분황사 천수대비 맹아득안
竹馬葱笙戱陌塵 죽마 타고 파피리 불며 거리에서 놀던 아이
一朝雙碧失瞳人 느닷없이 푸른 두 눈, 동자 잃은 사람 됐네
不因大士廻慈眼 보살님이 자비의 눈길 아니 돌려주셨다면
虛度楊花幾社春 몇 번이나 버들꽃 봄, 헛되이 보냈을꼬
20.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의상이 칠일을 재계하고 좌구를 새벽에 물 위에 띄웠더니 용천팔부가 시종하여 굴속으로 인도하였다. 공중을 향하여 참례하니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내어 바치었다. 의상이 받아 가지고 물러 나왔다. 동해용이 또한 여의보주 한 알을 바치었다. 의상법사가 받들고 나와 다시 칠일을 재계하고 나서 곧 진신의 용모를 보았다. 진신이 자리 위의 산정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법사가 듣고 굴을 나오니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와 있었다. 이에 금당을 짓고 소상을 모시니 그 원만한 용모가 타고난 것 같았다. 그 대나무가 다시 들어갔으므로 비로소 이곳이 바로 진신이 머무는 곳임을 알았다.
후에 원효법사가 뒤이어 와서 예를 올리고자 하였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니 논 가운데서 흰옷을 입은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농으로 벼를 달라고 청하자, 여인도 벼가 잘 영글지 않았다고 농으로 답하였다.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니 한 여자가 월수백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자 여자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법사가 엎질러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그때 들 가운데 소나무 위에 있던 파랑새 한 마리가 그에게 제호화상은 그만두시오라고 말하고는 홀연히 숨어 버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 소나무 아래 벗어 놓은 신발 한 짝이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니 관음보살상의 자리 밑에 또 앞서 본 벗어 놓은 신발 한 짝이 있었다. 비로소 전에 만난 성녀가 관음의 진신임을 알았다.
21.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지금 사람들이 모두 인간 세상의 즐거움만 알고, 기뻐하면서 그걸 더 얻으려고 죽을 둥 살 둥 애를 쓰지만, 다만 깨닫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22.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
快適須臾意已閑 잠시 즐거울 땐 마음도 한가하더니
暗從愁裏老蒼顔 가만히 시름 속에 내 얼굴이 늙어가네
不須更待黃粱熟 좁쌀밥 다 익기를 기다릴 것도 없지
方悟勞生一夢間 인생이 한바탕의 꿈이란 걸 깨닫겠네
治身臧否先誠意 몸 다스림 잘잘못은 참마음이 먼저인데
鱞夢蛾眉賊夢藏 홀아비는 미인 꿈을 도둑은 창고 꿈을
何似秋來清夜夢 어찌하면 가을날의 맑은 밤 그 꿈으로
時時合眼到清涼 때때로 눈을 감고 청량 경지에 이를까나
23. 전후소장사리
위대하여라 초조스님 빼어나신 그 모습
오월에 두 번 가서 대장경 수입 성공하셨도다
보요 작호 주시고 황제 조서 네 번일세
그 덕을 묻는다면 밝은 달 맑은 바람 같다 하겠소
중국과 동방이 연진으로 막혔는데
녹야원과 학수로부터 이천 년이 되었구나
해외로 유전해 오니 참으로 기쁘구나
동국과 서축이 한 세상이로다.
24. 대산오만진신
가라파좌낭은 일체법을 깨달았다는 말이요, 달예치구야는 자성이 무소유라는 말이요, 낭가사가낭은 이와 같이 법성을 알았다는 말이요, 달예노사나는 노사나불을 곧 본다는 말입니다.
25. 대산오만진신
보천은 항상 그 신령한 골짜기의 물을 길어 마셨으므로 만년에 육신이 공중을 날아 유사강 밖 울진국 장천굴에서 멈췄다. 수구다라니를 외우는 것을 밤낮의 과업을 삼았더니 그 굴의 신령이 몸을 나타내어 말하였다. 내가 굴의 신이 된 지 이미 이천 년이 되었으나,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수구다라니의 참 도리를 들었으니 보살계를 받기를 청합니다. 이미 받고 나서 다음날 굴이 또한 형체가 없어졌다. 보천이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이십일을 머물고 나서 이내 오대산 신성굴로 돌아갔다.
26. 대산오만진신
이 오대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인데 각 대는 진신이 항상 머무는 땅이다.
청색방은 동대의 북쪽 모퉁이 아래와 북대의 남쪽 기슭 끝에 있으니 마땅히 관음방을 두고, 원상의 관음보살과 푸른 바탕에 일만 관음상을 그리어 봉안한다.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필권 금광명경과 인왕경 반야경 천수주를 읽고 밤에는 관음예참을 염송하되 원통사로 이름한다.
적색방인 남대의 남면에 지장 방을 두어 원상의 지장보살과 붉은 바탕에 필대보살을 수위로 한 일만의 지장보살상을 그리어 봉안한다. 복전승 다섯 명에게 낮에는 지장경과 금강경 반야경을 읽고 밤에는 점찰 예참을 염송하되 금강사로 이름한다.
백색방인 서대의 남쪽에는 미타 방을 두고 원상의 무량수불과 흰 바탕에 무량수여래를 수위로 일만 대세지보살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팔권 법화경을 읽고 밤에는 미타예참을 염송하되 수정사로 이름한다.
흑색방인 북대의 남면에 나한당을 두고 원상의 석가불과 검은 바탕에 석가여래를 수위로 오백나한을 그리어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불보은경과 열반경을 읽고 밤에는 열반예참을 염송하되 백련사로 이름한다.
황색방인 중대의 진여원 안에는 진흙으로 빚은 문수보살의 부동상을 봉안하고 뒷벽에는 황색 바탕에 비로자나불을 수위로 한 서른여섯 가지로 변화하는 모양을 그려 봉안하고 복전승 다섯 명이 낮에는 화엄경과 6백반야경을 읽고 밤에는 문수예참을 염송하되 화엄사로 이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