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19일(금) 이사야 5:8-25 찬송 413장
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15.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다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24.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개역 개정)
- 들포도를 맺는 남유다에 대한 심판 경고 -
기대했던 포도원이 좋은 열매를 맺지 않고 들포도를 맺은 데 대한
하나님의 실망과 진노에 대해 노래한 어제 말씀(1-7절)에 이어
포도원인 선민 이스라엘, 보다 직접적으로는 남유다 백성들이 맺은 들포도,
곧 그들의 죄악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는 부분이다.
오늘 말씀은 유다의 죄악들을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열거하고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혼자만 잘 살려는 탐욕스런 부자의 가옥과 전토를 황폐케 하심(8-10절),
향락과 방탕을 즐기는 자는 음부에 빠지게 하시고
그들의 소유는 유리하는 자들이 취하게 하심(11-17절),
거짓되고 교만하여 백성들을 악으로 이끄는 거짓 선지자들과
불의한 재판관들의 시체는 거리의 분토같이 되게 하심(18-25절) 등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포도원 유다가 맺은 들포도에는
종교적 죄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도덕적인 죄악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 삶의 열매를 통해서 그의 하나님과의 보다 원초적인
교제 관계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마7:16-20)
굳이 종교적인 죄악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까닭으로 여겨진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하신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한편 여기서 지적되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의
세 가지 도덕적인 죄악 곧 탐욕, 방탕, 교만 등은
사회의 모든 불의와 모순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소들이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항상 경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과 성결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딤전6:10; 벧전1:15; 벧후2:17-22; 3:14)
24절)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여기서 ‘그루터기’와 ‘마른 풀’은 멸망의 자리에 처한
유다의 비참한 형편, 쇠약한 상태를 묘사한다.
이것들이 불에 삼켜진다는 것은
유다가 완전한 파멸의 자리에 떨어질 것임을 나타낸다.
실제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침공을 받아
그 흔적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망하였다.
그들이 자랑하던 예루살렘성도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어 돌무더기가 되고 말았다.
타락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용광로의 뜨거운 불과 같았고
유다는 그 진노의 불에 완전히 살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인 유다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망해야 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24절에서 이사야는 그 이유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다의 처참한 멸망의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데 있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세워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이방인들과 같이 행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유다를 심판하여 멸하셨다.
그런데 유다가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물론 그들이 근본적으로 완악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것은 그들이 완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선지자나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다 말기에는 이사야와 미가, 예레미야 선지자 등
참 선지자가 활동하기는 하였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하였다.
특히 예레미야가 활동할 당시에는 거의 모든 선지자들이 타락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대신에
권력자들과 부한 자들의 구미에 맞는 말만 하였다.
그것은 제사장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그들은 이방인과 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즉 유다가 망하게 된 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못한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의 책임이 컸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백성과 신앙 공동체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입증해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오늘 교회의 운명과 사활 여부 역시도
하나님 말씀이 바르게 전해지느냐, 또 그것을 바르게 받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한국 교회를 가리켜 위기에 처하여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 교회는 위기에 처하여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전하여지지 않고 있으며
성도들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제대로 전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 역시 비록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며 그 말씀의 권위 앞에 순복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신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