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둔토리(서 루도비코 신부 은신 동굴)
성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동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둔토리 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가 박해를 피해 숨었던 동굴이 있는 곳. 성남 국사봉 등성이에 있는 이 동굴은 어른 5~8명 정도가 쭈그리고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다.
지금도 이 동굴에는 오르지 복음선포를 위해 낮선 이국땅에 왔다가 박해의 퍼런 서슬에 숨죽이고 지내야 했던 성인 신부의 숨결이 서려 있다.
서 루도비코 신부는 1864년 7월 15일 프랑스를 출발해 1865년 5월27일 조선에 도착했으며, 하우현성당 등 인근 지역에서 사목하다 조선땅에 발을 들인 지 1년도 채 안돼 1866년 병인박해 때에 체포돼 순교했다.
당시 나이 26살이었다. 성인은 우리말을 익히기 위해 둔토리 인근 교우촌에
머물렀다. 하지만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이 산 속 동굴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의왕시에서 57번 지방도로를 타고 판교 쪽으로 진행하다, 하우현고개 넘기 전 옛 도로로 들어서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문이 나온다.
여기서 계속 가다가 왼쪽 순두부 음식점에서 산길로 5분 걸으면 안내 표지판 나온다.
마지막 인가를 지나 계속 개울을 따라 7분 정도 오르면 서울 외곽순환도로 지하통로로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30분 오르면 성지가 나온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8년 7월 29일, 이승훈 기자]
* 성인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한국명 서몰례)(1840-1866)
프랑스 보르도교구의 랑공에서 태어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한국명 서몰례)는 1863년 사제품을 받고 2년 뒤 한국 땅을 밟는다.
서울을 거쳐 뫼논리(현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 교우촌으로 간 볼리외 신부는 그 곳에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장제철의 집에서 조선어를 익혔다.
고해성사를 들을 수 있을정도로 조선말에 능해졌고 1866년 2월 베르뇌 주교로부터 새 임지를 부여받았으나 출발 직전 병인박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청계산 중턱에 있는 동굴을 찾아가 은신했던 볼리외 신부는 낮에는 조선말을 익히고 밤에는 산을 내려가 교우들을 찾아서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배교자 이선이와 처음 기거했던 집주인 장제철의 밀고로 붙잡히게 됩니다. 이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드러내며 혹독한 고문을 당한 볼리외 신부는 결국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 도리 신부와 함께 서울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십니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볼리외 신부의 시신은 몇몇 교우들이 시신을 거두어 용산 왜고개로 옮겨졌다가 옛 용산 성심 신학교 성당과 명동 주교좌성당 지하묘소를 거쳐 현재 절두산 순교성지 순교기념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