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사 각황전 불사에 얽힌 이야기
의상대사는 화엄사에 주석하면서 문무왕 10년(서기 670)에 화엄사의 핵심인 장육전(丈六殿)을 창건하였다.
그 후, 조선 세종 6년(1462)에 세종대왕은 어명으로 화엄사를 선종 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조총과 화포로 왜군들은 지리산 승군의 총사령부인 화엄사를 공격하기 위해 성난 파도처럼 화엄사로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당시 왜군의 방화로 인해 화엄사의 웅장한 8가람, 81 암자의 모든 당우는 일시에 화마(火魔)에 휩싸여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육전(각황전)도 당시 왜군의 불길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장육전(丈六殿)은 부처님의 몸 크기인 16자(十六尺: 약 4m 85㎝)를 뜻하고, 그것을 황금장육불상(金色丈六佛像)이라고 불렀다. 장육전에는 2층 4면 7칸의 그 가운데 부처님을 모셨고, 부처님을 위요하듯 사방 벽에 옥돌로 화엄경을 새기었다. 그 옥돌에다 새긴 화엄경은 불교의 최고 경전으로서 팔십화엄(八十華嚴)으로 일컫고, 총 10조9만5천48자로 되어 있다. 화엄사 사부대중은 그 장육전의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고, 서원을 세우고 성취해왔는데 그 장육전이 왜군의 방화 때문에 불타 사라져버린 것이다.
화엄사 승려들은 왜란의 전쟁이 끝나고, 전국적으로 의병장과 의병들의 활약상이 비석에 새겨지고 충렬사에 봉안되어 만대의 충신으로 조정에서 공훈을 추서할 때, 승병들은 그것을 사양하고, 오히려 부처님께 불살생의 계율을 파한 것을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오직 불타버린 화엄사를 중창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 후, 효종 원년(1649)에 화엄사가 다시 선종 대가람으로 승격된 직후, 당시 화엄사 주지이며 화엄사 승군의 최고 지휘자인 총섭(總攝)의 직책을 겸하고 있는 계파선사(桂波禪師)에 의해 소실된 장육전 중건을 서원하는 간절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계파선사는 깊은 수행과 덕망과 자비를 실천하는 승려였다.
어느 날 밤, 계파선사는 부처님 전에 향 피우고 무릎 꿇고 합장하여 장육전 중건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기도를 하는 중에 비몽사몽 간에 금빛 광명 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났다. 감격하여 우러르는 계파선사에게 문수보살은 말했다.
“계파선사여, 큰 불사를 성취하려면, 그 불사와 인연 있는 진실한 화주승(化主僧)을 선발해서 그 화주승이 복 있는 시주(施主)를 만나야 하느니라.” 계파선사는 문수보살을 향해 물었다. “진실한 화주승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사옵니까.” 문수보살이 답하기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물을 담은 항아리와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를 준비하고, 먼저 물 항아리에 손을 담근 다음에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에 손을 넣어서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은 승려가 장육전 중건의 인연 있는 진실한 승려이니라.”
계파선사는 대중 스님에게 꿈속에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전하였다. 그리하여 대중 스님들은 그대로 시험해보기로 했다. 마침내 화엄사 산 내 스님들 천여 명이 모두 모여 시험에 응시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양간에서 공양을 짓는 공양주 스님이 한 명 남았다. 공양주 스님은 가난한 집의 아들로서 출가하여 수계한 이후, 오직 10년 동안 대중 스님의 공양만을 짓겠다고 원력을 세운 30대 중반의 승려였다. 그가 원력을 세운 10년 공양주의 기한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시험에 응했다.
하지만 대중 스님들은 이미 희망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공양주 스님의 손에 밀가루가 묻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계파선사는 대중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모든 대중과 함께 가사 장삼을 입고서 공양주 스님을 향해 삼배의 절을 올렸다. 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공양주 스님에게 장육전 중건 화주승의 중책을 부탁하였다. 계파선사는 공양주 스님에게 말했다. “그대가 10년을 공양주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어떤 대중 스님보다 복력(福力)이 수승하기에 오늘의 시험에서 이적을 나타낸 것이다. 그대는 문수보살이 선택한 화주승이다. 부디, 진력하여 장육전을 중건해주기 바란다.”
공양주 스님은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수행방법의 하나로 오직 공양간에서 대중 공양만 지었을 뿐, 화주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문수보살과 대중의 뜻에 의해 장육전 중건을 책임진 화주승이 되었다. 그는 연신 한숨을 내쉬면서 백일 간 문수보살기도에 들어갔다.
화주승이 된 공양주 스님은 법당에 들어가 문수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며 울면서 발원했다.
“대지혜의 문수보살 님이시여, 저에게 지혜를 주시옵소서. 어찌하여야 온대중의 소원인 장육전을 중건할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하루속히 대 지혜를 주소서.”
화엄사에서 가까운 구례 쪽에 섬진강이 있었다. 섬진강이 환히 보이는 산 밑에 움막 같은 외딴집이 한 채 있었으며 그곳에는 팔순이 넘은 백발 노파가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돌보아줄 남편이나 형제자매, 그리고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가난하고 외로운 노파였다.
그녀는 가끔씩 화엄사에서 법회가 있을 때는 등에 걸망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서 맨 뒤에서 송구스러운 얼굴로 법문을 듣고, 법회가 끝나면 부엌의 반찬을 만드는 채공(菜供) 보살을 돕고, 궂은일을 해주고, 남은 식은 밥과 누룽지 등을 얻어서 걸망에 담아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화엄사에서 얻어온 식은 밥과 누룽지로 끼니를 때우면서 움막의 방에 정좌하여 염주를 한 알, 한 알 돌리면서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기도를 했다.
홀로 깨어 문수보살을 부르며 기도를 하였다. 그녀의 기도 속에 세월은 섬진강의 무심한 강물처럼 흘러서 이제 검은 머리는 백발이 되어 버렸고 이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오히려 마주치면 피하는 쭈글쭈글한 피부와 등에 다 떨어진 걸망을 메고 대지팡이를 짚고서 비틀거리며 걸음을 걷는 백발의 거지 노파가 되어 있었다.
장육전 중건의 서원을 세운 백일문서기도가 끝나는 전날 밤, 화주승의 꿈속에 금빛 광명의 문수보살 님이 나타났다. 문수보살 님은 자비로운 얼굴로 화주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육전의 불사를 하려면 시주자가 전생에 복을 많이 진 사람이어야 하느니라. 그러나, 그대는 너무 걱정하지 말지어다. 내일 이른 아침이면 새로운 장육전을 시주할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니라.”
화주승은 놀랍고, 감격하여 합장하여 우러르며 말했다. “제가 어디로 가서, 누구를 만나 뵈야 하는 것이옵니까? 하교하여 주소서.” “내일 아침 공양 전에 시주자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라. 그대가 만나야 할 시주는 그대가 산에서 내려가면서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라. 그대는 처음 만나는 그 사람에게 장육전 시주의 약속을 꼭 받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공양주 스님은 문수보살 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대답했다. “예. 하교대로 그분께 반드시 장육전 시주를 약속받겠사옵니다.”
화주승은 꿈에서 깨어나 문수보살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난 후 이른 새벽 설레는 가슴을 안고 산문을 나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화엄사 쪽은 이른 아침이면 안개가 많이 깔린다. 그는 안개 속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생각했다.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고관대작일까? 아니면 천석꾼일까? 만석꾼일까? 장육전을 중건하려면 큰 자금이 들어가기에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화주승은 속으로 문수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안개가 무성한 시야를 살피면서 길을 걸었다. 그때, 멀리서 안개 속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은 안개 속에 화엄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오오, 문수보살 님이 정녕 허튼 분이 아니시구나. 그는 설레는 가슴으로 그 자리에 서서 합장한 채 다가오는 사람을 기다렸다.
드디어 안개 속에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식별했을 때, 공양주 스님은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다가오는 사람은 그가 잘 아는 백발의 거지 노파였다. 화주승은 10년간 공양주로 일할 때 공양간을 찾아온 그녀에게 누룽지를 모아 보시했기 때문에 그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성과 이름을 물으려 하면 그녀는 미소를 띠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른쪽 이마의 점을 가리키며 점박이 노파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녀는 화엄사에 자주 올라와서 잔심부름을 해주고, 대중 스님이 먹고 남은 음식과 누룽지 등을 얻어 가서 끼니를 때우며 목숨을 연명했지만, 이제는 늙어서 화엄사를 찾아오는 횟수도 줄어 있었다.
화주승은 순간 절망했다. 아아, 저 거지 노파가 어떻게 장육전 중건자금을 시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절망, 낙담했다. 문수보살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공양주 스님의 가슴속에는 문수보살의 계시가 소리쳤다.
"그대는 처음 만나는 그 사람에게 장육전 시주의 약속을 꼭 받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화주승은 절망에 빠져 있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문수보살의 계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지 노파 앞의 맨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때마침 거지 노파는 끼닛거리를 얻기 위해 이른 아침 화엄사를 찾는 길이었다. 거지 노파는 길에서 맨땅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승려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스님, 무슨 짓입니까. 왜 저 같은 노파에게 맨땅에서 큰절하십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이래서는 안 됩니다.”
화주승은 엎드린 채 목이 멘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대보살 님, 부디 장육전을 지어주십시오!” 거지 노파는 땅 위에 엎드려 있는 화주승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딱한 얼굴로 슬프게 말했다. “스님, 천지에 의지할 데 없는 거지 노파가 어떻게 장육전을 지을 자금을 시주할 수 있겠어요. 저를 놀리지 마시고, 부자를 찾아보세요.” “저는 어젯밤 꿈에 문수보살 님의 계시를 봉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장육전 중건에 시주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예? 문수보살 님이 꿈속에서 계시하셨다고요?” “거짓이 아닙니다. 분명 문수보살 님이 계시하시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나, 가난하지만 저도 일생을 통해 문수보살 님을 향한 기도를 해왔는데, 큰일 났네요. 수중에 한 푼의 돈이 없으니….” “제발, 장육전을 시주하시겠다고 약속의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엎드려 애원하는 화주승을 측은하게 내려다보는 거지 노파의 양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슬픈 음성으로 대답했다. “문수보살 님의 뜻이라면 약속하지요. 장육전 중건 시주금을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어요. 하지만, 금생에는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 불사금을 드리겠어요? 몸을 바꾸어야 오늘의 약속을 지킬 수 있지 않겠어요?”
“대보살님,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좋은 스님, 나의 기도처로 가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터이니 따라서 오세요.” 거지 노파는 돌아서 문수보살의 명호를 부르면서 앞장서 걸었고, 화주승은 기운 빠진 몰골로 뒤를 따랐다. 그녀의 움막에 다다르자 그녀는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녀는 화주승을 평소 자신이 기도하든 섬진강의 바위 위로 데려갔다.
그녀는 화주승과 바위 위에 앉아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본래 경주의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서 명문가로 시집을 가서 아들 딸 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시아버지가 고위 관직에 있으면서 무고를 받아 역모죄의 누명을 쓰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답니다……. 온 가족이 처참하게 죽고, 저와 두 아이는 관노의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두 남매를 데리고 탈주하려 했지만, 두 남매는 뒤쫓는 병사들의 화살에 모두 죽고 나 홀로 이곳에 와서 이름을 숨기고 움막에서 숨어 살아왔답니다. 멸문지화를 당하고 난 후, 나는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움막에서 나 홀로 기도하면서 소원이 다시는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런데, 스님께 장육전 중건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어찌합니까. 또 한 번 환생의 슬픔을 겪어야 하겠군요." 화주승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다시 환생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거지 노파는 슬프게 웃었다.
"곧 아시게 되겠지요. 훗날, 저와 해후하시게 되면 두 가지의 징표를 스님께 반드시
보이겠으니 꼭 기억해주세요.” 그녀는 왼 손바닥에 ‘장육전’이라고 붓글씨로 작게 적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른쪽 이마의 검은 점을 가리키었다. 그녀는 슬프게 웃으면서 화주승을 작별했다. “스님, 내생에 또 봅시다. 어서, 화엄사로 돌아가세요.”
화주승은 거지 노파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발길을 돌이키는데, 거지 노파는 항상 기도하던 섬진강 강가의 바위에 정좌하여 두 눈을 감고 합장하고서 문수보살의 명호를 애타게 부르며 기도에 들어갔다. 그녀는 울먹이는 소리로 문수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기도에 들어가고 있었다.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임,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임……."
화주승이 고개를 저으면서 터벅터벅 걷다가 멀리서 돌아보니 그녀는 슬픈 음색으로 마치 한 서린 창(唱)을 하듯 문수보살을 부르면서 비틀비틀 검푸른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화주승은 그녀가 자살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만류하기 위해 소리를 치며 뛰어왔다.
“노보살님, 안돼요!” "나무 대지문수사리보살임……." 거지 노파의 슬픈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그녀의 치마가 강물에 잠기자 곧이어 하얀 백발도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섬진강은 불쌍한 노파의 한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가냘픈 육신의 생명을 거두고 무심히 흐르고만 있었다. 그녀의 한 서린 창(唱) 같은 염불 소리가 강물 위에서 살아 메아리치는 듯했다. 그녀가 기도하던 섬진강의 그 바위 위에서 화주승은 강물을 향해 애통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화엄사의 사하촌(寺下村)과 나아가 구례읍에서까지 사람들의 입에서는 화엄사
화주승이 불쌍한 거지 노파에게 장육전 시주를 요구하였고, 거지 노파는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섬진강 물속에 투신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노파의 주검을 슬퍼하는 공양주 스님의 고백에서 나왔다고도
했다. 저자의 주막집에서 술잔을 나누는 사람들, 저자의 여인네 등 사람들은
울분 섞인 입방아를 찧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거지 노파를 동정했으며 화주승을
욕하고, 화엄사 승려들을 욕했다.
“쳐 죽일 놈들, 돌봐 주는 이 없는 불쌍한 노파에게 거액의 시주를 요구하여 죽게
하다니…. 관아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그 화주승과 배후를 철저히
조사해서 살인죄의 형벌을 내려야 해!”
화엄사의 승려들도 낙심천만이었다. 장육전 시주인으로 거지 노파가 선택되었다는
소식과 또 그 노파가 섬진강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천만이었다.
오직 계파선사만은 묵언 속에 잠잠히 기도만 할 뿐이었다. 화주승은 자신의
시주약속에 거지 노파가 자살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했다.
일이었다. 문수보살은 다시는 화엄사 승려들의 꿈에 나타나 게시하지 않았다.
화주승은 지리산을 벗어나면서 문수보살을 원망하였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정처 없이 속죄의 길을 떠났다.
아아, 내가 그날 노파에게 시주약속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점박이 노파에게 참회했고, 천도의 기도를 드렸다.
그는 정처 없이 걸으며 천도의 기도를 드렸고 무상한 산색은 여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 무렵, 임금은 50살이 넘어서 공주를 얻게 되었다.
공주는 예쁘고 귀여웠다. 늦게 얻은 공주에 대한 황제의 총애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된 연유인지 공주는 태어나면서 왼손을 감아쥔 손이 펴지지 않았고,
웃지를 않고 항상 슬피 울었다. 황제가 달래면 울음을 그쳤다가 혼자가 되면 슬피
울었다. 그리고 황제가 억지로 쥔 손을 펴려고 하면 비명을 지르면서 싫어하는
것이었다. 귀여운 딸에 대해 황제는 크게 걱정했다. 이러한 공주의 병은 소리
소문 없이 궁궐 밖으로 퍼져 나갔다.
어느 화창한 봄날, 황후와 후궁들은 여섯 살 난 울보 공주를 달래기 위해 궁궐 밖 대로변에 있는 누각에 올라서 대로변에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시키고 있었다.
이상한 공주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다투어 누각 밑에 모여서 공주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군중들은 예의를 갖추면서 공주에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공주는 기뻐하지 않고 울면서 군중들을 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울기만 하던 공주가 울음을 딱 그치고 활짝 웃으며
손으로 군중 속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저기, 우리 스님이 있어요.”
황후가 놀라서 공주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이국의 승려 한 사람이
초라하게 서 있었다. 그는 화엄사에서 청나라까지 온 화주승이었다.
그도 이상한 공주의 소문을 듣고 구경을 나와 있었다. 그는 돌연 누각 위의
황후와 시녀들과 함께 군중들의 시선마저 자신에게 모이자 깜짝 놀랐다. 관원에 분
잡히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황급히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공주는
도망치려는 승려를 손으로 가리키며 또 울음을 터트렸다.
황후가 공주에게 말했다.
“저 스님을 데려올까?”
공주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황후는 어전 시위를 시켜서 승려를
데려오게 했다. 승려는 황후 앞에 부복하여 자신은 조선에서 왔으며 죽을죄를
지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때, 공주가 달려와 승려의 옷을 잡으며 웃고는
‘우리 스님’이라고 좋아하는 것이었다.
공주는 승려의 눈앞에 꼬옥 쥔 손을 활짝 펴 보였는데 손바닥에는 ‘장육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공주는 웃으며 손으로 오른쪽 이마를 가리키었다.
그곳에는 팥알 크기의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화주승은 그제야 눈앞에 안개가 걷힌 듯 깨달음이 왔다.
지난날, 거지 노파가 말한 광경이 여름날의 뭉게구름처럼 피워 올랐다.
손바닥에 쓴 붓글씨, 이마의 검은 점……. 화주승은 공주가 장육전의 중건 약속을
한 점박이 노파의 환생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이한 인연의 이야기를 보고 받은 황제와 황후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비로소 인간의 육신은 멸해도, 그 영혼은 인연 따라 윤회전생 한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고 확신하였다. 황제는 조선에서 온 승려를 특별히 접견하여 치하했다.
황제는 공주의 전생 약속을 지켜주었다. 황제는 그리고 인과응보 사상을 선양하며
생명존중 사상 속에서 정치를 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국에서 옥고를 치르는
수형자들에게 대사면을 내렸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화주승에게 장육전을
중건할 수 있는 불사 금을 시주했다. 그는 마침내 전생의 시주약속을 공주로부터
받은 것이다.
아름답고, 애달프며, 신비한 환생의 이야기 속에 마침내 장육전이 중건된다는
보고를 접한 조선의 왕 숙종도 깊은 깨달음이 왔다. 장육전 불사를 통해 점박이
노파가 청나라 공주로 환생하여 시주약속을 지키는 것을 보고 비록 육신은 죽어
없어져도 영혼은 불멸한 가운데 스스로 지은 인과에 따라 윤회전생 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리고 숙종 자신도 장육전 중건 불사의 시주에 동참을
하는 시주금을 하사했다. 그리고 그는 큰 붓으로 중건되는 장육전의 이름을
‘황제를 깨닫게 한 전당’이라는 뜻에서 각황전(覺皇殿)이라고 써서 시주하였다.
그때가 숙종 25년이 되는 기묘년(1699)이었다.
각황전은 숙종 25년(1699)에 시작하여 숙종 28년(1702)에 완공을 보았고, 1703년에는 삼존불 (三尊佛)· 사보살상(四菩薩像)을 완성하여 일주일에 걸쳐 경찬대법회(慶讚大法會)를 열었으며 숙종은 각황전(覺皇殿)이라 친히 사액(賜額)하고, 화엄사를 선교양종대가람 (禪敎兩宗大伽藍)이라 하였다.
각황전은 황제와 많은 중생에게 윤회전생을 깨닫게 한 영험한 법당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