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조단
마사단(馬社壇)은 말을 타는 방법을 창시한 마사(馬社), 국토를 맡은 신(神) 후토(后土)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祭壇)으로 조선시대에 마사단은 처음 말을 기른 선목신(先牧神), 말을 해롭게 하는 마보신(馬步神) 등을 제사하는 마신(馬神)에게 제를 올려 말의 번식과 성장을 기원하는 제단(祭壇)과 함께 한성(漢城) 흥인지문(興仁之門) 밖 사근사리(沙斤寺里)에 있었다.
작은 제사 소사(小祀)인 마사단은 그 크기가 모두 너비 2장 1척, 높이가 2척 5촌이고 작은 담이 하나이며 묻는 구덩이는 모두 묘단(廟壇)의 북쪽 임방(王方)의 땅에 있게 하되 남쪽으 로 계단을 내고 네모지고 깊어서 물건을 넣어 둘 만하다. 벽돌을 층이 지게 쌓아올려서 조그마한 천정(天井)을 만드는데 깊이와 너비를 3,4 척쯤 되게 하고 그 남쪽에 오르내리는 통로를 만들어서 일이 없을 때에는 흙을 메워 두고 제사지낼 때에는 흙을 파내고 깨끗이 소제(掃除)하였다가 제사를 마치면 사람을 시켜서 폐백(幣帛)과 축판(祝版)을 가지고 밟고 다니는 길로 내려가서 구덩이 안에 집어넣은 다음에 흙을 부어서 꼭꼭 다지고 예(例)에 따라 사람을 두고 지키게 하였다.
'마조단'의 유래를 살펴보면 성동구 사근동, 용답동, 성수동 일대는 조선시대의 군사적 요 충지였다. 청계천, 중랑천, 한강 등 3개의 하천이 만나는 지리적 특성으로 땅은 기름졌으며 지형은 평탄해 군사훈련을 하고 군마(軍馬)를 양성하기에 맞춤인 장소였다.
조선 세종시대 경상도 지방에 들끓던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이종무 장군을 필두로 대마도 정벌을 떠났던 조선 해군도 지금의 살곶이 공원에서 출병식을 했을만큼 사근동, 용답동, 성수동 일대는 조선시대 국방을 상징하는 장소였으며 국방의 안녕과 국력의 신장을 '마조단 (馬祖櫃)터'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마조단(馬祖壇)은 말의 수호신인 방성(房星)에 제사 지냈던 제단이며 방성(房星)은 천사성 (天星)이라고도 하며 곧 말의 조상을 의미하는데 우수 후에서 곡우(穀雨) 전까지인 중춘 (仲春)에 길일(吉日)을 택하여 조선 국왕이 신하로 하여금 흥인지문(興仁之門) 밖 마조단에서 제사지내게 했다. 마조단에서 지내던 제를 마조제(馬祖祭)라고 하며 고려시대부터 원에 의해 대규모 목장이 세워지면서 돌림병으로부터 말을 지켜 달라는 기원을 담아 제사를 지냈다.
1276년 몽골이 설치한 탐라 목장이 제주도 목장(牧場)의 효시이다. 조선시대에는 중산간 지대에 장성을 쌓아 말을 생산했던 십소장(+所場)과 산마장(山馬場), 해안 목장인 우목장(牛 牧場), 도서 목장인 가파도별둔장(加波島別屯場)이 있었다.
1894년부터 공마제(貢馬制)가 폐지되면서 이러한 국영 목장들은 사라졌으며, 마조단에서 지내던 마조제(馬祖祭)는 1909년 일제 통감부에 의해 산천단제 등과 함께 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