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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거두칠마 비류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 황망히 몸을 뒤로 젖히더니 데굴데굴 굴러 눈 깜짝할 사이에 일 장 밖으로 피해 갔다. 이때 네 개의 암기에서 폭발된 녹색 화염은 애초 비류신이 있던 곳의 바닥에 떨어지더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불길이 치솟아 방 안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었다. 비류신은 안색이 돌변하였다. ‘휴우, 큰일 날 뻔했구나. 내가 만약 장력으로 마주쳐 갔더라면 그 암기가 폭발되어 나는 벌써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 방 안에는 일제히 푸른 벽돌로 깔려 있기 때문에 다행히 불길이 멀리 번지지는 않았다. 홍부용은 그 녹색의 불길을 바라보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여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벽록분혼탄(碧祿焚魂彈)!” 그녀의 외마디 경악의 탄성이 떨어지자마자 그 기분 나쁜 음성이 즉각 말을 받았다. “흐흐흣… 벽록분혼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잠시 후면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도 잘 알겠구나.” 비류신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버럭 언성을 높였다. “이 비겁한 놈아, 어두운 곳에 숨어서 암습이나 가하는 네 따위 놈들이 감히 무림 인물이라고 자처할 수 있느냐?” “뭐라고?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고! 내 앞에서는 강호의 규범 따위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흐흐흐… 네놈이야 말로 우리 앞에 나설 용기가 없는 주제에 무슨 큰 소리냐?” 비류신의 분노는 점점 짙어지기만 했다. “나는 기어이 네놈들을 격상시키고 말겠다!” 그는 노발대발하여 이렇게 외치고서 뚜벅뚜벅 실내로 걸어갔다. 홍부용이 황급히 비류신 곁으로 달려가서 나직이 귀띔 해주었다. “적은 아마 무림에서 크게 명성을 떨친 바 있는 벽림거두칠마(碧林巨頭七魔)일 거예요.” 비류신은 그 말을 듣고서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귀신이든 도깨비든 가리지 않고 그놈을 때려잡고 말 테요.” 그가 이렇게 말하면서 첫 번째 방안에 들어서자 홍부용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일순, 한 줄기 인영이 번뜩하더니 거센 일진의 경풍이 몰아쳐왔다. 비류신은 상대방의 공세가 의외로 강맹한 것을 보고 섬뜩 놀랐으나, 추호도 당황하지 않고 오른손을 번쩍 쳐들어 일장을 내뻗쳤다. 그는 지금 넓이가 두 자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문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공세를 오로지 힘으로 맞닥뜨려야 할 뿐 몸을 솟구쳐 피해 내는 수법을 펼칠 수는 없었다. 비류신이 내뻗친 그 일 장은 위맹하기 짝이 없었다. 펑! 쌍방간의 장력이 맞닥뜨리자 견고한 석벽이 흔들릴 정도로 요란한 폭음이 일어났다. 순간, 비류신의 신형이 방문 밖으로 밀려나갔다. 비류신은 상대방의 장력이 상상외로 심오하여 내심 크게 놀랐으나 그 놀라움은 순식간에 노여움으로 변하여 그의 날카로운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알고 본즉 상대방은 두 사람이었다.단 일격에 비류신을 격퇴시킬 심산으로 그들은 두 명이 합세하여 동시에 맹공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 비류신으로서는 극히 불리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있을 그가 아니었다. 그는 곧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비호같이 날쌘 동작으로 덮쳐가면서 강맹한 기세로 반격을 가했다. 그 응변의 태세는 무척 신속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쌍방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충분히 경력을 발출하지 못하여 그가 내뻗친 장력은 상대방의 장력에 말려들어가 맥을 못 추었다. 진력을 기울여 시도해본 반격이 실패로 돌아갔으나 비류신은 순간적으로 한 가지 영감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더니 돌연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두 손을 옆으로 돌려 교묘한 장법으로 기습을 가하였다. 휙,휙! 강맹무쌍한 장풍이 태산이라도 휩쓸어 버릴 듯한 기세로 덮쳐 갔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홍부용도 맹렬한 기세로 쌍장을 휘둘러 무궁무진한 경력을 발출시켰다. 이때 실내에서는 두 마디 무거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적은 비류신과 홍부용이 내뻗친 장력에 의하여 크게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그 틈을 이용하여 신속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싸늘한 눈초리로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크게 어리둥절하였다. ‘설마 우리가 정말 귀신을 만나 싸웠단 말인가?’ 방 안은 텅텅 비어 있었고 희미한 등불이 밝혀져 있을 뿐이었다. 비류신은 방안을 샅샅이 살피다가 방바닥에 핏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핏자국은 두 번째 방으로 연결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그곳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청에 인접한 그 많은 방들은 모두 통할 수 있도록 문이 달려있었는데, 직선적으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꼬불꼬불 연결되었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그처럼 교묘하게 설계된 방에는 필시 어떤 매복이 설치되었으리라 추측하고 쌍장을 가슴 앞에 세운 채 만반의 경계 태세로 갖추고 서서히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앞장을 선 비류신이 방문 안으로 신속히 뛰어들려는 찰나, 갑자기 흑광(黑光)을 번뜩이는 예리한 병기가 문의 좌우에서 나와 비류신의 양쪽 옆구리를 향해 흉랄한 기세로 찔러왔다. 적들은 상대방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해도 좁은 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에 당한 갑작스런 암습으로 꼼짝 못하고 큰 상처를 입든지 후퇴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은 너무도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비류신은 괴이하기 짝이 없는 신법을 펼쳐 비호같이 날쌘 동작으로 덮쳐들더니 강맹한 장풍을 좌우로 뿜어냈다. 일순 출입구의 좌우에 숨어서 예리한 병기로 암습을 가했던 적들은 비류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처럼 신속하게 뛰어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들은 각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마치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날쌔게 양쪽 벽으로 몸을 날렸다. 펑! 펑! 그들은 모두 견고한 석벽에 부딪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심장의 혈기가 거꾸로 치밀어 오르는 듯하여 눈에서는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그러나 그들은 공력이 매우 심후한 고수들이었다. 비록 석벽에 부딪혀 큰 충격을 받기는 하였지만 석벽에 부딪힌 직후 반동에 의해 튀어나오는 순간 잽싸게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쏜살같이 세 번째 방을 향해 날아들어 갔다. 그 신법은 매우 절묘하여 비류신 같이 안력이 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희뿌연 그림자만을 보았을 뿐, 그들의 모습을 분별하지는 못하였다. “어디로 도망치려 하느냐?” 비류신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면서 신속히 그들을 추격하였다. 둘 중 한 명은 이미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머지 한 명이 문지방에 막 닿으려는 순간 비류신은 신속하게 그 자의 곁으로 덮쳐가며 맹렬한 기세로 왼손을 내뻗쳤다. 그 자는 비류신의 장세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서 별안간 획, 몸을 돌려 흑색 광채가 번뜩이는 괴이한 병기를 흉험한 기세로 휘두르며 비류신의 아랫배를 찔러갔다. 그 반격은 날카롭고 신속할 뿐 아니라 악독하기 짝이 없었다. 비류신은 그 악독한 초식에 맞서 감히 경거망동할 수가 없어서 재빨리 일 보 후퇴하였다. 상대방은 비류신이 일 보 후퇴하였으나 계속 격투를 벌일 의사가 없는 듯 다시 몸을 돌려 계속해서 세 번째 방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러나 적이 도망치도록 가만둘 비류신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 전 후퇴를 할 때 이미 왼손을 내뻗쳐 강맹한 일진의 잠력을 발출하여 적의 퇴로를 봉쇄해 놓았었다. 비쩍 마른 몸집에 키가 큰 흑의인은 몸을 벽에 기댄 채 괴상하기 짝이 없는 그 병기를 휘둘러 불운지월(拂雲指月)이라는 초식을 시전을 하여 비류신의 현기(玄機) 요혈을 찔러갔다. 그 반격의 일초는 공수(攻守)를 겸비한 무서운 살수로써 단 일 초에 세 가지 살수가 내포된 절초(絶招)였다. 비류신은 적이 반격을 가하는 그 초식이 몹시 교묘하고 신속했으나 경력을 아직 뿜어내지 않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비류신은 곧 왼발을 내디디면서 오른손을 쳐들어 창해박룡(蒼海搏龍) 초식을 펼쳤다. 노도와 같은 장풍이 휙휙 몰려나가는 순간, 그는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적의 팔목을 낚아채면서 팔꿈치를 이용하여 적의 장대혈을 부딪쳐갔다. 비호같이 적에게 덮쳐들면서 다섯 손가락과 팔꿈치로 동시에 공격을 퍼붓는 수법 앞에서는 아무리 막강한 인물이라도 반격할 틈을 찾지 못할 것이다. 과연 상대방의 초식은 순식간에 완전히 파해하여 버렸다. 흑의인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병기마저 팽개치고 허겁지겁 방 안으로 뛰어들려 하였지만 비류신은 적에게 도망칠 여유를 주지 않고 즉각 그의 왼팔의 맥문을 낚아챘다. 바로 그 순간 뒤에 있던 홍부용이 날카롭게 외쳤다. “비 공자, 머리 위를 조심하세요!” 방문의 한가운데 있던 비류신은 홍부용이 외치는 소리에 사태의 긴박함을 직감했다. 그는 위를 쳐다볼 여유도 없이 신속히 적의 팔을 낚아채어 출입문 한복판에 서게 하고 자신은 정반대로 적이 있던 곳으로 위치를 바꾸었다. 쾅! 위치를 바꿔 서자마자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비명은 오래 계속되지 않고 즉시 멎어 버렸다. 비류신은 간담이 싸늘해졌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흑의인의 몰골이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비류신이 홍부용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그대로 문턱에 서 있었더라면 그는 지금 흑의인의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비류신은 홍부용의 경고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이다. 위에서 떨어져 내린 예리한 호두갑(虎頭閘)은 흑의인의 목을 댕강 잘라 놓았다. 비류신은 지령보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 너무도 처절했기 때문에 그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간 시체를 발길로 한차례 걷어차고서 품속에서 잔금섭혼신편을 꺼냈다. 홍부용은 이미 물속에서 잔금섭혼신편의 위력을 구경한 바 있는 터라 마음속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잔금섭혼신편은 과연 무림 인물들의 마음을 미치게 하는 채찍이로구나… …’ 그녀는 곧 비류신 곁으로 달려가서 나직이 물었다. “비 공자, 그 채찍으로 저 철갑(鐵閘)을 파괴할 수 있을까요?” 아까 문 위에서 떨어져 내린 호두갑이 세 번째 방으로 통하여 출입구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초조한 심정으로 물었다. 비류신은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거야 시험해 보기 전에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오. 만약 이 장애물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이 방안에 갇히게 되는 거요.” 비류신은 곧 잔금섭혼신편을 휘둘러 철갑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후려쳤다. 휙, 휙… … 사람의 혼을 앗아갈 듯이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눈을 어지럽게 하는 현란한 금광이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잔금섭혼신편이 철갑에 부딪치는 찰나, 쨍 하는 청아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견고한 철갑에는 순식간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그 상황을 본 홍부용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여 탄성을 질렀다. “과연 예리하기 짝이 없는 신비로운 채찍이군요. 간장(干將)이나 막사(寞師) 등 일류 보검에 비해 추호도 뒤지지 않군요.” 비류신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오른손으로는 계속 채찍을 휘두르면서 왼손으로는 강맹한 장풍을 발출하였다. 꽝!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견고하고 거대한 철갑은 마침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비류신과 홍부용은 곧 세 번째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곳 세 번째 방도 아까 두 번째 방에 들어섰을 때처럼 인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류신은 더 이상 그곳에서 지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네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춤거렸다. 이 밤은 그들이 거쳐 간 다른 새 개의 방보다 비교적 넓은 편이었는데 방안에는 흑의를 입은 괴인 여섯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야윈 몸집에 키가 크고 얼굴은 징그러웠으며 살기가 등등하였다.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녹색에 가까워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들 여섯 명은 흉랄하고 악독하기로 이름 높은 벽림거두칠마 중 여섯 명이었다.그 중 한 명은 조금 전 철갑에 맞아죽었기 때문에 현재 여섯 명만 남아 있었다. 비류신이 막 문턱을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비류신의 손에 들려있는 잔금섭혼신편을 향하고 있었다. 일순 그들은 입을 모아 경악의 탄성을 질렀다. “앗! 저것은 바로 잔금섭혼신편… …” 비류신은 살기등등한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며 우렁차게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핫… 그렇다! 이 채찍은 너희들 같이 악랄한 놈들을 상대하는 데만 사용되는 무기다. 너희들 중 죽을 각오가 된 놈이 있다면 얼마든지 나서서 이 채찍을 빼앗아 보아라!” 그의 기세당당한 호통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벽림거두칠마 중에서 한 명이 불쑥 앞으로 나서더니 다짜고짜 급습을 가해왔다. 비류신도 우렁찬 함성을 지르면서 신속하게 일장을 내뻗치자 한 줄기 강맹한 장풍이 몰려 나갔다. 그러나 상대방은 이미 몸을 솟구쳐 비류신을 덮쳐 오던 터라 그의 강맹한 장풍을 미처 피할 여유가 없었다. 상대는 임기응변으로 쌍장을 쳐들어 비류신이 내뻗친 장세를 마주쳤다. 비류신은 소대호로부터 정명(精明)한 진윈(眞元)을 전수받은 이후 공력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증진되었다. 벽림거두칠마 역시 흉흉한 악명을 떨친 바 있는 일류 고수들이었으나 경력에 있어서는 비류신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펑! 쌍방 간의 장력이 맞닥뜨리자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이 일어났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칠마 중 한 명의 흑의 괴인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비류신은 그 여세를 몰아 더욱 살기등등한 기세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주며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비호처럼 덮쳐가면서 잔금섭혼신편을 휘둘러 정묘한 초식으로 속공을 퍼부었다. 일순 현란한 금빛 광채가 무궁무진하게 폭사되어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하였다. “으아악!” 이윽고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그 흑의괴인의 몸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잔금섭혼신편이 몸에 닿자마자 그의 몸통은 마치 예리한 칼날에 가느다란 나뭇가지 잘리듯 허망하게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나머지 다섯 흑의괴인들은 자기네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 잔금섭혼신편의 신묘한 위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 다섯 명은 돌연 벽력같은 함성을 지르더니 쌍장을 쳐들어 일제히 협공을 가해 왔다. 열 줄기가 되는 장력이 동시에 발출되자 산이라도 집어삼킬 듯이 거대한 광풍이 몰려나와 비류신에게 덮쳐갔다. 비류신은 날쌔게 치솟아 오르면서 왼손을 연속 후려쳐 상대방의 공세에 맞섰다. 그가 발출해 낸 몇 줄기 장풍이 적의 장풍과 맞닥뜨리기 직전, 홍부용도 맹렬히 쌍장을 휘둘러 그와 합세하였다. 펑! 펑! 쌍방 간의 내뿜는 장풍이 연속 맞닥뜨리자 경천동지할 정도의 마찰음은 그치질 않았고, 산이라도 집어삼킬 듯이 위맹한 경기(勁氣)는 휙휙 소리를 내며 옆으로 회오리쳐 갔다. 일순 비류신은 울컥 한 모금의 선혈을 뿜어내며 세 보나 후퇴하였다. 홍부용 역시 잠시 비틀거리더니 일 보 물러섰다. 비류신이 정면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굉장한 충격을 받은 데 반하여, 홍부용은 측면에서 충돌한 까닭에 그다지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들을 후퇴시킨 다섯 명의 괴인 역시 비류신과 홍부용이 내뻗친 경력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일제히 이 보 후퇴하였다. 본래 벽림거두칠자는 강호 무림에 크게 명성을 떨친 막강한 일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막강한 일진의 무공 때문에 자신도 소대천에게 인정을 받았고, 소대천은 그들 일곱 명으로 하여금 이곳을 지키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처럼 위세당당한 그들은 강호에서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두 젊은 남녀에 의하여 순식간에 동료가 두 명이나 살해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본래 흉악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크게 노발대발하여 흉랄한 기세로 맹공을 퍼부었던 것이다. 이때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지더니 그 다섯 중 두 명이 동시에 비류신에게 성난 사자처럼 덤벼들었고, 나머지 세 명은 피에 굶주린 이리 떼처럼 흉험한 기세로 홍부용을 향해 덮쳐 갔다. 그들은 한 손으로는 장력을 뿜어 댄 채 다른 한 손으로는 각각 병기를 뽑아들고서 맹렬한 기세로 후려쳤다. 비류신은 조금 전 적의 합공에 의해 피를 토해 낼 정도로 타격이 컸지만 천성이 촌보도 후퇴할 수 없는 성격인지라 심장의 혈기가 온통 거꾸로 치솟는 듯한 고통을 억제하면서 사력을 다하여 왼손을 내뻗쳤다. 그 일 장의 기세는 겉으로 보기에 조금도 경력이 어려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암암리에 소대호로부터 전수받은 공력을 끌어올려 발출한 그 일 장의 기세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쌍방 간의 경풍이 충돌하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흉악무도한 기세로 덮쳐 오던 두 명 중 하나가 어느 틈엔가 비류신의 일장에 요혈을 맞아 울컥 선혈을 내뿜으며 고꾸라졌다. 비류신은 조금 전 큰 타격을 입은 데다 방금 적 한 명을 격살시키느라 공력을 크게 소모하였기 때문에 휘청거리며 풀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틈을 이용하여 다른 한 명이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신속하게 일장을 내뻗치자 걷잡을 수 없는 광풍이 휘몰아쳐 비류신을 이 장 밖으로 굴러가게 하였다. 비류신의 입에서는 다시 선혈이 흘러나왔다. 그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 듯 안면 근육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상태는 적에게는 청신호였다. 더욱이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악마들이 그처럼 좋은 기회를 헛되이 흘려버릴 턱이 없었다. 흉명(凶名)이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벽림거두칠마 중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비류신을 향해 비호처럼 덮쳐왔다. 적은 허공에서 아래로 맹렬한 기세로 속공을 퍼부었다. 그 일격에 격중되는 날이면 비류신은 도저히 생명을 부지 못할 것이다. 비류신으로서는 생사존망이 걸린 일대 위기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나 이상한 현상이었다. 그처럼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비류신의 두 눈에서는 날카로운 광채가 번뜩임과 동시에 그는 돌연 우렁찬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비류신의 신형은 용수철처럼 튕겨져 올랐고, 수중의 잔금섭혼신편이 비호처럼 덮쳐오는 상대방을 향해 매섭게 후려쳐갔다. 흑의괴인은 자기가 적에게 덮쳐가는 순간, 비류신이 그처럼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역습을 가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때 비류신의 역습을 눈치를 채고 응전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곧 상대방의 채찍에 맞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처참한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비류신은 적을 격살시키기는 하였으나 극렬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비틀거리다가 다시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순 비류신의 귓전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섬뜩한 전율을 느끼며 재빨리 홍부용을 찾았다. 만화신검 홍부용은 정광이 번쩍이는 장검을 휘둘러 송이송이 매화꽃 같은 검화를 그려내며 맹렬한 기세로 불꽃 튀기는 열전을 벌렸다. 벽림거두칠마 중 살아있는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이미 그녀의 검에 맞아 처참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홍부용의 절묘한 검법을 바라보던 비류신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는 한편 몹시 어리둥절하였다. 그녀의 검세는 극히 정묘하여 이 세상에서 두 번 다시 찾아보기 힘든 검법이라고 느껴졌다. 벽림거두칠마 중 여섯 명은 이미 죽었고, 유일한 생존자 한 명은 자기 동료들 여섯 명이 순식간에 격살당한 것을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서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앞의 큰 방으로 달아났다. 홍부용은 돌연 날카로운 냉소를 터뜨리더니 달아나는 적의 등을 향해 수중의 장검을 휙 던졌다. 그녀는 강호에서 크게 명성을 떨친 바 있는 여걸로써 과연 추호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과시하였다.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장검은 무지개 모양의 현란한 광채를 발출하면서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던 적의 등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적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는 찰나, 적의 등에 꽂힌 예리한 장검은 바로 앞가슴을 꿰뚫고 나왔다. 벽림거두칠마 중 최후의 한 명마저 이처럼 처참한 비명에 죽어갔다. 그들 일곱 명의 악마들은 장장 이 십 년에 걸쳐 강호를 종횡하며 갖가지 악행을 일삼아 왔으나 아직까지 적수를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새파랗게 젊은 두 남녀의 손에 의해 순식간에 전멸을 당하고 만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런 결과가 초래되리라는 상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처럼 악명 높은 칠마를 섬멸시킨 비류신과 홍부용의 등등한 기세에는 사악한 무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홍부용의 아름다운 두 눈에서는 아직도 살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시체 곁으로 다가가서 시체에 꽂혀 있는 장검을 쓱 뽑아들더니 시체를 발길로 툭 차 버렸다. 그녀가 뽑아든 장검에서는 음산한 광채가 번뜩일 뿐 방금 사람의 심장을 꿰뚫었으나 핏자국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쳐 죽여도 결코 피가 얼룩지지 않은 그 장검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보검이다. 이윽고 홍부용은 보검을 검집에 꽂아 넣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비류신 곁에 다가가서 나직이 물었다. “공자의 상세는 어떻습니까?” 비류신은 방바닥에 정좌를 한 채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소. 열화같이 치밀어 오르던 혈기도 이제는 약간 가라앉았소.” 홍부용은 비류신의 상처를 염려하다가 그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서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고했다. “비 공자는 다음부터 그렇게 당돌한 행동은 삼가세요. 싸울 때 반드시 무공만을 가지고 이기려 해서는 안돼요. 비 공자의 일신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적을 동시에 상대하고 나면 결국은 피로가 쌓여 죽게 되고 말 거에요.” 비류신은 그녀의 말이 아니꼽다는 듯 냉랭하게 대꾸했다. “낭자가 그처럼 염려해 주니 고맙기 짝이 없소.” 홍부용은 비류신이 그처럼 비꼬아 대꾸하자 무척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원망스러운 듯 따져 물었다. “제 말이 틀렸단 말씀인가요?” 비류신은 그때야 잔금섭혼신편을 채찍집에 집어넣은 후, 벌떡 일어서서 싸늘한 눈초리로 그녀를 주시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낭자의 의견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았소.” 홍부용은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꽃같이 요염하며 서리같이 차가운 여자 홍부용은 강호에서는 악독한 여마성(女魔星)이라는 평이 나 있었다. 그처럼 냉담한 여자가 비류신의 신상을 염려하여 무척 부드럽게 대하였는데, 비류신은 그녀의 진심을 무시하고 너무나 무정하게 응수했던 것이다. 이윽고 비류신은 혼자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겨 면전의 방으로 다가갔다. 홍부용은 비류신의 언행이 너무도 냉담하여 잔뜩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그 불길 같은 분노를 달랠 길이 없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마지못해 비류신의 뒤를 따랐다. 만화신검 홍부용이 강호에 발을 디딘 지 벌써 이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그는 수많은 미남자들을 만났지만 아무리 늠름한 미남자도 결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비류신을 알게 된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호수와 같이 잠잠하던 그녀의 가슴에서는 서서히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파문은 점점 크게 번져 갔고 마침내 비류신에 대한 애틋한 연정을 도저히 혼자 간직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녀는 여자로서의 자존심마저도 외면한 채 노골적으로 애정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비류신은 홍부용의 그런 감정을 눈치를 챘으면서도 더욱 냉담하게 대했다. 홍부용은 비류신이 냉담하면 냉담할수록 그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강렬했다. 그녀는 비류신이 냉담하게 대한다고 해서 결코 낙담하지는 않았다. 가지기 힘든 물건일수록 일단 수중에 넣고 나면 더욱 값어치가 크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장서서 가던 비류신은 마침내 거대한 방의 문 앞에 이르렀다. 그는 문이 잠겨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문을 밀어 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방문은 스르르 열렸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일진의 짙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방 안을 살펴보던 비류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얼굴을 붉혔다. 뒤따라 온 홍부용 역시 얼굴이 빨개졌다. 그곳은 마치 신선의 거실처럼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현실의 세계 같지가 않고, 꿈을 꾸고 있거나 환상의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수많은 촛불이 밝혀진 방 안에는 열두 개의 침상이 놓여있었고, 침상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꽃다운 절세미녀들이 요염한 자태를 과시하고 누워 있었다. 입으로 훅 불면 금방 터질 듯한 젖무덤, 만지면 손에 은가루가 묻어날 듯이 고운 살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물씬 풍기는 여자 특유의 강력한 체취… … 그 요염한 자태는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의 눈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도 남을 정도였다. 열두 명의 요염한 나부(裸婦)들은 마치 오랜 가뭄에 시달린 목마른 나무처럼 애타게 물을 기다리듯 이따금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비류신은 그 절세의 미인들이 벌거벗고 있는 정체가 무엇인지 도저히 짐작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채 넋이 나간 듯 그녀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비류신은 차마 그 방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어 그냥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나 홍부용이 그의 심정을 눈치를 채고 재빨리 손을 내밀어 비류신을 저지시켰다. 그녀는 나직이 속삭이듯 말하였다. “돌아가면 안돼요. 다시 돌아가 봐야 아까 우리가 들어왔던 길 뿐이고,게다가 나가려 해도 이미 길은 막혀 있어 나갈 수도 없어요.” 비류신은 겸연쩍게 웃으며 역시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 여자들은 혹시 이곳에 감금된 사람들이 아니오?” “저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어쨌든 우리는 저 여자들을 못 본 척하고 우리 갈 길이나 가도록 해요.” 그들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열두 개의 침상을 지나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침상의 나부들은 깊은 잠에 빠진 듯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그녀들은 한결 같이 남자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을 듯한 교소(嬌笑)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 상황은 실로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짙은 의혹을 품은 채 그대로 열두 명의 나부가 누워있는 침상을 지나쳐 갔다. 이때 그들이 그녀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커다란 실수였다. 그들 열두 명의 나부는 지신도 소대천이 심혈을 기울여 훈련을 시키고 있는 열두 명의 파신음부(破身淫婦)인 것이다. 그러나 비류신과 홍부용은 그녀들이 훗날 강호 무림에 커다란 파문을 던질 화근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치 못하고 서둘러 그 환상적인 요지경에서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 방에서 연결된 음산한 통로를 따라 계속 발길을 옮겼다. 다행히 통로에는 등불이 밝혀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별로 곤란을 겪지 않고 이십 장쯤이나 걸어갔다. 좁다란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나가자 길은 옆으로 꺾어졌고 그 앞에는 석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돌문 앞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지옥의 마귀들이 들끓고 있으니 들어갈 생각은 말아라.> 비류신은 곧 홍부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문 역시 사문과 생문으로 갈려있는 것이오?” 홍부용은 비류신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슬며시 손을 내밀어 거대한 석문을 밀었다. 끽,끽-- 고막을 찢을 듯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석문이 스르르 열리자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석실 안을 살펴보던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음산한 석실 안에는 열세 개나 되는 관이 뚜껑이 열린 채 줄줄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 뽀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뚜껑이 열린 관 입구에는 거미줄이 쳐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만들었다. 석벽에는 등불이 다섯 개나 걸려 있었는데 녹색에 가까운 그 불빛은 음산한 석실에 더욱 귀기(鬼氣)가 서린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각각 병기를 뽑아들고 서서히 관 앞으로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관 속에서 귀신이 뛰어나올 것만 같은 전율 때문에 등줄기에서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렀다. 한발 한발 관 앞으로 다가서던 그들은 돌연 서너 발자국이나 물러섰다. 열세 개나 되는 관에는 모두 시체가 들어 있었는데 그들의 머리는 모두 삭발한 채였다. 그리고 눈동자의 흰 자위가 유난히 커 보이는 두 눈을 무섭게 부라린 채 긴 혓바닥을 쓱 내밀고 있는 광경은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사적으로 물러서는 것은 고사하고 기절을 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포감이 들게 했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겨 지옥과 같은 그 석실을 지나쳐 갔다. 사실 그들은 다시 한차례 악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셈이었다. 관 속의 괴시체들은 지신도 소대천이 심혈을 기울여 훈련시키고 있는 열세 명의 육사자(肉死者)들로서 훗날 열두 명의 파신음부들과 함께 무림에 나서게 된다면 필시 커다란 풍파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지옥과 같은 석실에서 빠져 나온 비류신과 홍부용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고서 곧장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이때 비류신이 기겁을 하며 황망히 외쳤다. “아차! 이제 보니 우리는 정말 사문으로 들어왔구려. 길은 여기서 끝장이 났으니 이제 어디로 빠져 나간단 말이오?” 그들이 지옥과 같은 그 석실을 지나쳐 당도한 방은 마지막 방으로써 더 이상 빠져 나갈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홍부용은 비류신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으나 그녀 역시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벽면을 쭉 훑어보다가 좌측 석벽 한 쪽의 움푹 파인 곳에 검은 손잡이 같은 것이 두 개 나란히 달려 있음을 발견하고 담담히 웃어 보였다. “비 공자, 지금 우리의 생사 문제는 오로지 천운에 맡길 수밖에 없군요.” 비류신은 힐끗 그쪽을 살펴보더니 쓴 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 이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소. 낭자가 한 번 저 손잡이를 당겨보시오. 설사 그것이 우리를 무서운 함정으로 몰아놓은 화근이 된다 해도 할 수 없는 노릇이오. 이미 우리의 목숨은 천운에 맡겨졌으니 말이오.” 홍부용은 잔뜩 긴장한 채 손잡이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일순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우렁찬 폭음이 일어났다. 우르릉 꽝! 우르르… … 그와 때를 같이하여 견고한 좌측의 석벽이 그대로 덮쳐 왔다. 비류신과 홍부용은 기겁을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일촉즉발의 찰나에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지면이 아래로 푹 꺼지면서 그들 남녀는 깊이를 알지 못할 컴컴한 지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계속 지하에서 들려오던 그들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갑자기 뚝 그쳐 버렸다. 지면을 향해 덮쳐 내리던 좌측의 견고한 석벽이 그들 남녀를 삼켜 버린 커다란 구멍을 완전히 덮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재미납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