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구약성경 인용)
마태복음 11장 9-10절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이 말씀과 관련 있는 내용은 말라기 3장 1절으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이는 만군의 여호와와 그의 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요한에 대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정말 메시야인지를 그의 제자들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4-6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알리셨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맹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영안이 닫혀있는 자, 걷지 못하는 자는 앞을 보지 못하므로 걷지 못하는 것이다. 나병환자는 하나님께 죄인을 상징하는데, 죄를 용서받게 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못듣는 자가 귀가 열리며,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난한 자가 복음을 듣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이미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였던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3절『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그리고 세례요한은 그의 사명을 다 완수하므로 옥에서 목이 잘려 죽게 된다.
마태복음 11장 11절『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테 바실레이아 톤 오우라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테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τῇ βασιλείᾳ τῶν οὐρανῶν)은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임마누엘 신앙을 가진 자는 세례요한 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전이 예루살렘 건물이 아니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됨을 말해준다. 형식적으로 예배하던 바리새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질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며 참된 신앙을 소홀히 한 백성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말라기의 배경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지 약 100년이 흐른 시기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백성들의 뜨거웠던 신앙은 식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왜 기뻐하지 않으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믿음을 저버린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고 계신다.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제사장들 역시 그들의 마음에 간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 성전을 그분의 신, 곧 성령의 능력으로 완공하게 하셨다. 그런데 백성들은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성전을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웠다고 교만해할 때, 하나님께서 껍데기만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자 말라기를 보내어 경고하셨다. 하나님의 경고의 이유는 하나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제사로부터 돌아서서, 참되게 예배하여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회복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었다.
유다 백성이 포로에서 귀환한지 100년이 흘렀다. 귀환 후 성전을 재건하며 그들의 마음 안에는 이 성전이 완성되면 놀라운 격변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들에게는 다윗 시대와 같은 영광의 날이 펼쳐질 것이고, 자신들을 괴롭힌 이방국가들은 파멸하여 결국 자신들 앞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 고대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흘러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의 압제를 받았고, 이방나라는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런 부조리하다고 생각되는 현실 앞에서 유다 백성은 불만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 회의를 품고 조소 섞인 절망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다 백성은 성전을 재건하여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보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 절망스러움을 표현했지만, 정작 그들은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닿지 못했다. 바로 그들은 삶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어떠한 죄를 범하여 오고 있었는지 말라기 3장 5절이 잘 보여주고 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운운하면서 정작 그들은 하나님과 이방신을 동시에 붙들고 살았으며, 간음, 거짓증언을 일삼았으며, 약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고, 과부와 고아를 억압했다. 유다백성은 이방나라를 심판하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공의로울 수 있느냐며 불평했지만, 선민이라 스스로 여기면서도 이방나라와 별 다르지 않는 죄를 짓고 사는 자신들을 즉각 심판하지 않으시고, 인내하며 돌이킴의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알지도 보지도 못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비아스타이 하르파조우신)는 빼앗느니라』세례요한이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고, 천국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시 한번 천국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리고 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그들에 의해 침노를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천국을 폭력으로 빼앗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우리말 성경에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라고 되어 있으나, 헬라어 성경은 “폭력자가 빼앗는다” 라고 되어 있다. 비아스타이 하르파조우신 (βιασταὶ ἁρπάζουσιν)은 폭력으로 훔치는 자들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천국의 실체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여버렸다. 그리고 자신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13-15절『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율법에 대한 것은 요한까지 끝이고, 그 이후로는 엘리야의 영으로 온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들은 엘리야의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 증언은 예배에 대한 것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이 이루어지며 그 성전에 재림하여 들어온 그리스도에게 예배하는 것이다. 율법은 영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율법의 효력이 끝나고, 복음에 들어간 자들은 심령 속에서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통하여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들을 귀가 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