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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천존회(天尊會), 그 거창한 태동(胎動) 만탑림(萬塔林). 그곳은 금릉교의 안산 산록에 있는 명소였다. 수천 개의 불탑(佛塔) 부도등이 가득 들어차 있어 흡사 석탑의 숲같이 보인다. 저녁 무렵, 붉은 노을이 만탑림을 신비롭게 물들이고 있었다. 한 명의 백삼청년이 저녁바람에 장포를 펄럭이며 만탑림으로 들어섰다. 아주 초탈한 인상의 미청년. 조각같이 수려한 그의 얼굴 위로 노을빛이 흘러 더할 수 없이 신비롭고 인상적이었다. 미청년은 허리에 세 자 가량의 고검을 차고 있었다. 바로 백리천궁이었다. "흠!" 백리천궁은 문득 발을 멈추며 만탑림을 둘러보았다. 한 차례 만탑림을 둘러 본 그의 입가로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__삼전주(三殿主)가 만탑림에서 천존의 왕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귓전으로 화옥란의 청아한 목소리가 옥구슬이 구르듯 파고들었다. __사대전주는 사부님 기절천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굴복치 않은 인물들입니다. 그들을 만나 보시고...... 직접 그들로 하여금 승복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화옥란의 고운 목소리를 되새기며 백리천궁은 손에 들고 있던 책자를 펼쳤다. 그것은 바로 천존부(天尊簿)였다. <만재전(萬才殿)> 일천(一千)의 재사(才士)들로 이루어진다. 개개인이 모두 천하를 덮을 만한 경륜과 재주를 지녔다. 특히 기관지학, 토목지학 기둔둔갑에 있어 그들은 가히 발군의 재주들을 지녔다. 만일 일천의 만재수사들이 일시에 손을 쓰면 한 성이 하루 이내에 모두 절진으로 뒤덮일 수 있었다. 전주(殿主)는 천학신유(天鶴神儒)라는 인물로 천기대제(天機大帝)와 기문쌍절(機門雙絶)로 불리던 명유(名儒)였다. "천학신유(天鶴神儒) 남궁천원(南宮天元)......" 백리천궁은 그 이름을 낮게 뇌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__천학신유(天鶴神儒) 남궁천원(南宮天元). 그는 당대의 천하제일사(天下第一士)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천하제일서원인 천학서원(天鶴書院)의 원주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휘---- 이이이잉! 만탑림에 들어선 백리천궁의 주위로 갑자기 음풍(陰風)이 불어왔다. 섬뜩한 마기(魔氣)가 서린 음풍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크크! 켈켈켈........ 여기저기서 음산한 귀곡성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시커먼 그림자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아수라(阿修羅), 맹수, 괴물...... 갖가지 섬뜩한 형상의 마물들이 구름같이 일어나 일제히 백리천궁을 뒤덮어 왔다. 범인(凡人)이라면 실로 놀라 기절할 지경의 끔찍한 형상들이었다. 그러나, 백리천궁의 입가에는 오히려 신비한 미소가 감돌았다. "마교비전(魔敎秘傳)의 명부음유진세(冥府陰幽陣勢)......" 백리천궁은 낮게 중얼거리며 거침없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환상(幻像)과 환청(幻聽)! 그것은 실제현상이 아니었다. 고도의 기문진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었다. "거의 완벽하지만...... 정서방(正西方)에 틈이 보인다!" 유현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 보던 백리천궁의 우수에서 문득 번쩍! 낙뢰(落雷)가 일어 정서방을 후려쳤다. 그러자,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스스스...... 백리천궁의 주위로 덮쳐들던 무서운 음풍과 환상이 일시에 사그러들었다. 거짓말같이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백리천궁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가 삼 보를 채 못 옮겼을 때 다시 폭풍이 몰아치며 뿌연 흙먼지와 돌조각들이 팔방을 뒤덮었다. "광풍세가(광風勢家)의 광풍팔방대진세(광風八方大陣勢)!" 백리천궁은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번 역시 삼 보를 움직이지 않아서 광풍팔방대진세는 백리천궁의 일거수에 수그러들었다. "육합개천진세(六合蓋天陣勢)!" 우르르...... 위이이잉! "풍뢰강의 풍뢰파황진(風雷破荒陣)!" "구천현홀대진(九天玄勿大陣)!" "반합음양전도진(返合陰陽轉倒陣)!" "칠성회천진세(七星回天陣勢)!" "유령미환심유진(幽靈迷幻深幽陣)!" "신무환몽대진(神霧幻夢大陣)!" "천뢰진세(天雷陣勢)!" 콰르르......츠츠츠......... 그 외에도 수십 개의 절세기진(絶世奇陣)들이 연이어 백리천궁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그 어떤 진세도 백리천궁을 주춤거리게조차 만들지 못했다. 백리천궁은 기절천존의 능력조차 능가한지 이미 오래였다. 그 어떤 안배도 백리천궁의 안목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르르르.... 츠츠츠...... 또 다시 엄청난 강기의 폭풍이 일면서 가공스런 반탄지기가 백리천궁의 발길을 가로막았다. "폭풍탄천강벽진세!" 백리천궁은 비로소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__폭풍탄천강벽진세! 기문진세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진세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강력한 강풍이 일어 백 장 내의 모든 것을 퉁겨 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절진. 이 진세는 외부에서는 파해할 방법이 없다. 있다면 단 하나, 폭푹탄천강벽진세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폭풍탄천강벽진세마저 보게 될 줄은 몰랐는걸!" 백리천궁은 갈수록 고난도의 진세를 만나자 저으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진세를 마주보고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길들이 있었다. (무엇을 하려는걸까?) (설마...... 폭풍탄천강벽진세를 깨뜨릴 생각이란 말인가?) (그런 바보 같은 일을...... 기절천존께서도 폭풍탄천강벽진세는 피해가셨는데......) 수많은 눈길들이 형형하게 백리천궁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길들의 주인들이 바로 지금까지의 기문진세를 베풀어 놓은 장본인들이었다. 이때, 그 눈길들이 하나같이 경악과 감탄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으...... 저럴 수가......) (으...... 벌써...... 기절천존이상이셨다니......) (아...... 어쩌면 폭풍진세가 무너질지도......) 눈길의 주인들은 경악지색을 감추지 못하며 격동과 찬탄의 빛을 떠올렸다. 그 수많은 눈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리천궁의 몸이 문득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그와 함께 그의 일신은 온통 찬란한 광휘에 뒤덮였다. (금라대접인신공(金羅大接引神功)! 접인공력으로 폭풍진세를 깨겠다는 말씀이신가?) 많은 눈길들은 일순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마주보았다. 백리천궁의 의도를 선뜻 간파할 없었던 것이다. 그 때였다. "오랏!" 백리천궁의 입에서 한소리 우렁찬 벽력성이 터졌다. 그의 활짝 벌린 양팔에서는 찬란한 금광(金光)이 뻗혔다. 그러자, 실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콰르르르르...... 막강하기 이를 데 없는 흡력(吸力)이 주위 백 장을 뒤덮었다. 모든 것이 일시에 백리천궁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집채만한 석탑들이 마치 나뭇잎같이 뽑혀져 백리천궁에게로 밀려 들었다. 우두두둑! 아름드리 고송이 뿌리째 뽑혔으며 폭풍진세의 강풍마저 그 일부가 백리천궁에게로 끌려왔다. __금라대접인신공(金羅大接引神功)! 그것은 기절천존의 기절일백천예에 속하는 절정기공이었다. 금라대접인신공은 극에 이르렀다. 츠츠츠...... 폭풍진세 전체가 굉음을 일으키며 무섭게 뒤흔들렸다. "......" 백리천궁의 이마 위로도 땀방울이 흘렀다. "우우우!" 갑자기 백리천궁의 입에서 벼락 같은 함성이 터졌다. 그와 함께 거대한 화산이 터지듯 엄청난 강류가 폭풍진세로 쏟아져 나갔다. "패황강뢰!" 천번지복의 굉음이 잇달아 장내를 뒤흔들며 금라대접인신공에 의해 흔들리던 폭풍진세의 틈으로 백만 근의 압력이 담긴 가공할 강류가 터져 들어갔다. __패황강뢰. 아아....천존십절예(天尊十絶藝)의 서열 제삼의 절대강기신공! 이는 강함에 있어서는 무적이 되는 공력이었다. 일격에 가히 백만 근의 압력이 담긴..... 그 절대강기신공이 최초로 펼쳐진 것이었다. 콰---- 콰콰쾅! 거창한 굉음이 만탑림을 뒤흔들었다. "크윽! 저...... 저럴 수가......" "과...... 과연 천존이시다!" 만탑림 사이에서 여러 명의 서생들이 경악지색을 띄우며 걸어나왔다. 그들은 믿어지지 않는 시선으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__폭풍탄천강벽진세. 그 절세기진의 정면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천...... 천존(天尊)!" "천존(天尊)이시여!" 서생들은 백리천궁을 향해 일제히 오체복지했다. 그들의 안면은 온통 감격과 격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하...... 지독한 시험이구먼!" 백리천궁은 호쾌하게 웃으며 백삼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표표히 몸을 움직여 만탑림의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드...... 드디어 때가 왔다!" "아...... 십 년을...... 천학서원에서 간 칼을 천하를 위해 쓸 때가 왔다." 백리천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생들은 기대와 흥분으로 벅찬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일찌기 신동(神童)의 소리를 듣던 천하재사(天下才士)들이며, 천존회 만재전(萬才殿) 소속의 회원들이었다. 얼마나 걸어들어 갔을까? "......" 백리천궁은 몸을 멈추었다. 그의 앞에 높이 십 장의 석탑이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석탑의 전면으로 한 폭의 천년매화도(千年梅花圖)가 새겨져 있었다. (뛰어난 솜씨......) 백리천궁은 감탄의 표정을 지으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탑에 새겨진 매화도는 마치 실물과도 같이 생생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얼핏 보면 진짜 매화목(梅花木)이 서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매화도는 뛰어난 명품이었던 것이다. 백리천궁은 입가에 신비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방금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만보전(萬寶殿)의 재인(才人)이 나를 시험하기 위하여 그린 것이리라!) 그는 빙긋 웃으며 우수를 쳐들었다. 파파---팟! 백리천궁의 손 끝에서 무형의 지력이 일며 석탑의 한 면에 한 가닥의 매화가지가 새겨졌다. "핫하! 이만하면 실패작은 아니지!" 백리천궁은 낭랑한 웃음과 함께 손을 거두며 석탑을 지나쳐 갔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스스슥! 백리천궁이 사라진 석탑 앞으로 문득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한 명은 화려한 금포를 걸친 살집좋은 후덕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눈빛이 혁혁한 노인으로 화필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공(畵公)인 듯이 보였다. "음......" 석탑 앞으로 내려선 양인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매화(梅花)! 한 가닥의 매화 가지가 그들 앞에 있었다. 바람이 불면 진한 매향(梅香)이 물씬 풍길 듯 생기가 도는 매화였다. "일...... 일절이시오. 아...... 황실제일화공이라던 나 신화수(神畵手)는...... 일 갑자 동안 헛 배웠소!" 노화공은 감탄을 금치못하며 문득 탄식성을 불어냈다. 그의 손에 들렸던 화필이 두 동강이 나버렸다. "음...... 기절천존께서는 진정한 제천존(帝天尊)을 보내셨다." 금포중년인의 안면에도 경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양인(兩人)은 망연히 백리천궁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그즈음, 백리천궁은 뼈를 깎는 듯한 예기(銳氣) 사이에 서 있었다. 삭풍(朔風)이 무색할 지경의 예기들이 천지사방을 뒤덮은 채 백리천궁을 조여 오고 있었다. "흠! 놀랍다. 만병금천기진(萬兵禁天奇陣)이 오백 년 만에 나타나다니!" 백리천궁은 다소 놀란 빛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만병금천기진(萬兵禁天奇陣)> 오백 년 전, 병기(兵器)에 미친 한명의 인물이 있었다. 천병자(千兵子)라는 인물로 그는 평생 만종(萬種)의 병기를 만들고 구하여 그것으로 하나의 절세기진(絶世奇陣)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만병금천기진이었다. 이는 오직 병기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신병(神兵)들의 예기가 그물 같이 이어져 진세를 이루며, 누구라도 이 진세에 빠지면 병기들의 예기(銳氣)에 전신 심맥이 갈가리 찢겨 죽고 마는 것이다. 이는 가히 무적이었다. 처음에는 예기가 미미하지만 그것을 느끼고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예기는 점점 더 강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견디지 못하고 심맥이 마디마디 끊겨 버리는 것이었다. "지독한 안배에 걸렸는걸!" 백리천궁은 고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우웅____츠츠츠츠! 이미 기진의 신병(神兵)들이 지닌바 위력을 모두 발휘하여 어디를 둘러보아도 서릿발 같은 병기의 그림자 뿐이었다. 그러자, 천존귀원대천심결(天尊歸元大天心訣)이 절로 반응하여 막강한 호신강벽을 이루었다. "흠!" 백리천궁은 호신강벽 안에서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신병(神兵)에는 신병(神兵)으로 대해 주지!"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갑자기 주위 일백 장의 모든 예기(銳氣)가 일시에 사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신검(神劍) 절정(絶頂)___! 그 지존신병(至尊神兵)이 마침내 웅자를 드러낸 것이다. "핫하! 절정(絶頂)은 만검지존(萬劍至尊)이다! 무엇이 맞서겠는가?" 백리천궁은 절정신검을 치켜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우우----웅! 신검 절정도 주인과 뜻을 같이하는 듯 자랑스럽게 웅혼한 검명을 발했다. 절정신검의 검명이 이는 곳에는 어떤 신병도 그 예기를 발하지 못했다. 마치 보름달과 반딧불 차이랄까? 신검 절정의 그 패도적인 기세 앞에서는 어떤 병기도 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곳이군!" 백리천궁은 절정신검을 치켜든 채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우측 이백 장 밖, 신검(神劍) 절정(絶頂)의 기도에 눌린 상태에서도 여전히 삼엄한 예기(銳氣)가 무지개 같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저곳에 만병금천기진을 지휘하는 신병(神兵)이 있으리라!" 스스스스...... 백리천궁은 물이 흐르듯이 우측으로 날아나갔다. 신검 절정의 기도가 이르면 병기들의 예기가 눈녹듯이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마치 앙탈하는 여인의 교성 같은 울림이 일면서 삼엄한 예기가 전면에서 뻗쳐나오고 있었다. "대단한 진세다. 어떤 신병이기에 절정(絶頂)에 대항한단 말인가?" 백리천궁은 눈을 빛내며 예기를 뿌리는 신병쪽으로 다가갔다. 우---- 우웅! 절정이 가까이 다가들자 예기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수그러 들었다. 그러자, 예기가 사라진 곳에 한 자 반 정도 길이의 한 자루 금검(金劍)이 나타났다. "금린어장검(金鱗魚腸劍)...... 역시!" 백리천궁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광(金光)이 무지개같이 뻗치고 은은히 고기 비늘(魚鱗)의 그림자가 비쳐 보이는 단검, 그것은 흔히 어장검(魚腸劍)이라고 불리는 춘추시대의 명검(名劍)이었다. "하하! 절정(絶頂)의 좋은 짝이 되겠군!" 백리천궁은 호쾌하게 웃으며 금린어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만탑림을 뒤덮고 있던 예기가 일시에 사그러 들었다. 이로써 만병금천기진이 해체된 것이었다. "......" 금린어장검을 뽑아든 백리천궁은 유현하게 눈을 빛내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천존(天尊)!" "천존이시여!" 이때, 삼 인(三人)이 서 있다가 일제히 백리천궁 앞에 부복하였다. 맨 좌측의 인물은 청학(靑鶴)같이 고아한 인상의 유생(儒生)이었다. 나이는 사십 전후로 보였으며 매우 초탈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대는?" 백리천궁이 절정신검을 거두며 유생에게 시선을 보냈다. "만재전주(萬才殿主), 천학신유(天鶴神儒) 남궁천원(南宮天元)! 삼가 천존을 알현하나이다!" 유생은 즉시 백리천궁의 앞에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 뒤를 이어 중앙의 금포중년인이 머리를 숙였다. 매우 후덕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만보전주(萬寶殿主), 만보천불(萬寶天佛) 독고후예, 천존의 하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고후예___ 그는 천하제일부(天下第一富)라는 만보장주가 아닌가? 그런 그가 천존의 만보전주임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만병전주(萬兵殿主) 독비천수(獨臂天手) 가효람(加效藍)! 천존께 불경한 대죄를 바라나이다!" 마지막으로, 마의(麻衣)를 걸친 강팍한 인상의 독비인이 백리천궁의 발 밑에 이마를 대고 부복하였다. __독비천수(獨臂天手). 당대제일장인이라는 그 역시 천존회의 요원이었다. 실로 세인의 상상을 무참히 짓밟는 기절천존의 안배였다. 금릉사절(金陵四絶)이 모두 천존회의 요인들이며 금릉 그 자체가 천존회의 총단이 됨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 백리천궁은 한차례 삼 인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가히 한 방면에서 천하제일의 경지에 이른 명인(名人)들이 아닌가? "만통전주(萬通殿主)는 천하를 부유하는 분인지라...... 삼가 천존의 배견을 하지 못했소이다." 군사(軍師)가 되는 천학신유 남궁천원(南宮天元)이 머리를 조아린 채 보고했다. 그 때였다. "우하하! 그러기에 내가 무어라 했소? 당신들의 솜씨로 감히 주공(主公)을 시험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다니......" 갑자기 만탑림이 온통 들썩거릴 정도의 호통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허공으로부터 한 명의 구 척 거한이 선풍을 휘몰아 날아내렸다. 그런 거한의 모습은 흡사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주공!" 일 장 길이의 묵창(墨槍)을 비껴든 장한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백리천궁 앞에 한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뒤덮은 시커먼 구레나룻, 이글거리는 호목(虎目), 무릎을 꿇었으되 여전히 백리천궁의 키만큼 큰 거구! "패왕(覇王)!" 백리천궁은 그 철탑거한을 바라보며 반가운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는 거한의 솥뚜껑같은 손을 덥썩 쥐었다. 거령패왕(巨靈覇王), 그 거한은 바로 거령패왕(巨靈覇王)이었다. 숲(林)! 음산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숲이었다. 스스슥! 한 줄기 인영이 스물스물 움직이는 안개 사이로 유령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이는 약관 정도 되었을까? 일신에 은삼을 걸치고 단극(短戟)을 짊어진 자였다. 제법 반듯한 용모를 지닌 그는 지금 무엇인가 바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중에는 필시 이유가 있다." 은삼청년은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리며 다급히 몸을 날렸다. "무형쇄심산(無形碎心散)은...... 만독존후(萬毒尊后) 이외의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거늘......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은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스스스...... 은삼청년은 의혹에 찬 중얼거림을 흘리며 입술을 악물고 전면으로 몸을 날렸다. 이내 그는 하나의 높직한 석벽 앞에 이르렀다. 석벽은 등나무 줄기로 뒤덮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영주(令主)!" 은삼청년은 석벽을 향하여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석벽 안쪽에서 섬뜩한 냉갈이 들려왔다. "팽조천(彭操泉)! 이야기는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영...... 영주...... 그것이......" 은삼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그자는 석벽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을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듯이 보였다. "무...... 무형쇄심산(無形碎心散)을...... 사용하는...... 데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상식대로라면...... 이미 한 달 전에......" "닥쳐랏!" 석벽에서 벼락 같은 일갈이 터졌다. 그와 함께 석벽에서 무형의 경력이 일어 사정없이 은삼청년을 후려쳤다. 콰---- 릉! "크윽!" 은삼청년은 선혈을 토하며 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으... 영... 영주(令主)... 다시 한 번... 만.... 기회를...." 은삼청년은 엉금엉금 기어 일어나며 석벽 안쪽을 향해 애원했다. "좋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파---- 앗! 냉갈과 함께 덤불 사이에서 하나의 철통이 날아와 은삼청년의 발 아래 떨어졌다. "이...... 이것은......" 은삼청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길로 철통을 집어 들었다. "혈폭신독침통(血爆神毒針筒)이라는 것이다." "혈폭신독침통(血爆神毒針筒)!" 은삼청년의 안색이 홱 변했다. <혈폭신독침통(血爆神毒針筒)>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사용이 금지된 독랄한 암기였다. 철통 속에는 화약과 일곱 가지 절독을 묻힌 독침(毒針) 일천 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화약의 폭발로 일시에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십 장 내의 그 누구라도 혈포신독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화약의 화력을 이용하는 것인지라 호신강기로도 막지 못하며, 하나라도 격중되면 일곱 가지 절독을 동시에 해독하지 못하는 한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크큿...... 지존(至尊)께서 주위에 계심을 명심하라. 만약 실패한다면...... 흐흐......" 석벽 속의 인물은 음악하게 웃었다. "......" 그 웃음을 접한 은삼청년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크크...... 네녀석 뿐만이 아니고...... 네녀석의 마음 속에 있는 그 계집도..... 본부의 수하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사지가 찢겨 죽을 것이다. 클클...... 명심하라!" "......" 은삼청년의 안색이 몇 번이고 거듭 변했다. 그러더니 그는 아무런 말도 않고 몸을 날려 저쪽으로 사라졌다. 스---- 슥! 은삼청년이 사라지고나자 문득 석벽의 덤불이 걷히며 한 명의 인물이 걸어 나왔다. 석벽에는 하나의 동굴이 뚫려 있었고 무성한 덤불이 석동의 입구룰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 동굴에서 나온 자는 음침한 시선으로 은삼청년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았다. "팽조천.... 네놈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국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한 번 배신을 한 자는 또 한 번 배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 그 자는 음악한 미소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나이는 오십 정도. 일신에는 칙칙한 회포를 걸쳤으며 안색이 푸르죽죽하고 두 눈에서는 섬뜩한 벽광(碧光)이 번뜩이고 있었다. 일견하여 독문(毒門)의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보다...... 천신(天神) 그자가 무형쇄심산(無形碎心散)에서도 죽지 않다니...... 이해가 가지 않......" 혼자 중얼거리던 회포인의 몸이 갑자기 경직되었다. (누군가 있다.) 회포인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심장을 박살낼 듯한 한 쌍의 시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휘---- 익! 그자는 벼락같이 몸을 휘돌렸다. "......" 그러나 숲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쌍의 눈길이 계속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언제...... 칼날이 목을 벨지도 모른다!) 회포인은 시퍼런 칼날이 자신의 목에 바짝 대어진 느낌이었다. 그자의 두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누...... 누구냐! 그곳에 있는 줄 안다! 나오랏!" 회포인은 공포를 누르기 위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 고함소리의 여운이 한 참만에 가시고나자 문득 나직한 한 소리 빈정거림이 들려왔다. "후훗! 당당한 벽안독제(碧眼毒帝)가 타인의 주구가 되었다니... 살황독성(薩荒毒聖)이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군!" 스스슷! 벽안독제라 불린 회포인 앞으로 문득 한 명의 녹삼청년이 유령같이 날아내렸다. 오 척이 약간 넘는 단구에 미인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미청년이었다. 그는 온통 녹색 일색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머리카락마저 금방 풀냄새를 풍길 듯한 녹색을 띠고 있었으며 이마에 두른 영웅건도 산뜻한 녹색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몸에 걸친 장삼의 색이 녹색이었고 요대와 가죽신까지 모두 녹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의 무기인 듯한 옥소(玉簫)까지 녹색이었다. 녹색일색의 미청년은 여인처럼 붉고 도톰한 입술에 가득 비웃음을 담은 채 회포인을 바라보았다. "당당한 살황독교의 삼대부교주 중의 한 사람이 천마(天魔)의 주구가 되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미청년의 싸늘한 힐책에 벽안독제는 흉칙한 안면을 실룩거렸다. "녹옥천비룡(綠玉天飛龍)! 네놈 따위가 감히 본좌를 우롱하다니........" 벽안독제는 버럭 폭갈을 내지르면서도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시선의 주인은...... 천록성의 망나니인 이놈이 아니다......) 그자는 여전히 한 쌍의 시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후훗! 자림누나의 부탁을 받았으니...... 늙은이의 목을 가져가야겠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벽안독제을 노려보며 미청년은 녹옥천비룡은 들고있던 녹색옥소를 겨누었다. 그러자, 옥소로부터 새파란 녹색의 강기가 벼락같이 일어났다. "헉! 녹옥신강!" 정신을 분산하고 있던 벽안독제는 질겁을 하였다. "크윽!" 아차하는 순간 벽안독제의 왼쪽 옆구리가 녹옥신강에 관통되어 선혈이 확 튀었다. "핫하! 목을 늘여라!" 쐐---- 애액! 일순 득수한 녹옥천비룡은 당당하게 웃으며 수십 줄기 소영을 일으켜 벽안독제를 뒤집어 씌웠다. "빌어먹을....." 벽안독제는 벼락같이 뒤로 물러났다. 실수로 일격을 당하기는 했으나, 그는 절정의 대열에 드는 고수자였다. 그의 반응은 더할 수 없이 쾌속했다. 그러나, 녹옥천비룡 역시 신진층의 절정에 드는 청년고수였다. "핫하, 천록절기(天綠絶技)를 얕보지 마랏!" 파파팟! 녹옥천비룡의 옥소가 선풍을 일으키며 벽안독제를 뒤덮었다. (이놈을...... 빨리 누이지 않으면......) 벽안독의 두 눈에서 벽광이 뇌전같이 뻗쳤다. "큿!" 그 직후, 갑자기 허공에 뜬 녹옥천비룡의 신형이 휘청하더니 그대로 나뒹굴었다. "비...... 비겁하게...... 암수(暗手)를......" 녹옥천비룡은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며 입술을 악물었다. 그의 안면에 검은 기운이 치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독된 증상이었다. "흐흣! 암수라해도 좋다. 네놈은 무형지독(無形之毒)에 중독되었으니 살 생각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슥! 벽안독제는 사신처럼 음산한 표정으로 녹옥천비룡에게 다가들었다. "비겁한 늙은......" 중얼거리던 녹옥천비룡의 동그란 두 눈이 갑자기 크게 떠졌다. 그의 시선은 곧장 벽안독제의 등 뒤로 향했다. (흑!) 벽안독제의 전신으로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뒤에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휘---- 익! 벽안독제는 가슴을 방어하며 다급히 뒤로 돌아섰다. "헉!" 돌아서던 벽안독제는 숨넘어 가는 신음을 토했다. 그의 이 장 앞, 구 척의 거한이 철탑같이 우뚝 선 채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얼굴을 뒤덮은 시커먼 구레나룻, 뇌전(雷電)이 흐르는 부리부리한 호목, 쇠로 빚은 듯한 구리빛 피부. 그 외양만으로도 혼백을 집어 삼킬 듯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으......" 벽안독제는 자신도 모르게 비칠비칠 물러섰다. "누...... 누구냐?" 그는 공포의 기색으로 거한을 올려다 보았다. "제천존(帝天尊)의 좌비위(左臂衛) 묵강패황령이...... 벽안독제 그대의...... 목을 취하려 왔다!" 거한은 천둥 같은 웅혼한 목소리로 말하며 벽안독제를 노려보았다. "제...... 제천존(帝天尊)!" "미친놈! 죽어랏! 혈독강류!" 벽안독제는 발악하듯이 시뻘건 독강류를 거한의 가슴으로 쏟아내었다. "크악!" 독강류는 여지없이 거한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러나, 벽안독제는 손이 부서져 나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퉁겨져 나갔다. 마치 철벽인 양, 거한은 벽안독제의 일격을 맞고도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저럴 수가!" 그것을 지켜보던 녹옥천비룡은 불신의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준미한 얼굴은 금방 독기로 시커멓게 변하여 갔다. "벽안독제! 독종(毒宗)을 배신한 대가니라!" 점차 흐릿해져 가는 녹옥천비룡의 눈에 거한이 일 장 길이의 묵창(墨槍)을 쳐드는 것이 들어왔다. "으아......" 벽안독제는 공포의 비명을 지르며 벼락같이 이십여 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거령패왕이 어떤 인물인가? "누구라도 제천존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 설사 마종지주(魔宗之主)나 천마부주(天魔府主)라고 해도!" 거한의 입에서 천둥 같은 음성이 터졌다. 그와 함께, 그가 쳐든 묵창(墨槍) 끝에서 시커먼 묵강류가 폭포수같이 쏟아졌다. 콰---- 콰쾅! "케에엑!" 묵강류는 여지없이 벽안독제의 등을 박살내고 말았다. (무.... 무서운 인물... 제왕천신(帝王天神) 황보숙부보다도....더 강한......) 녹옥천비룡은 경악의 표정을 지으며 입 안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독기가 치밀어 그의 시야는 점점 뿌옇게 흐려지고 정신도 흐릿해져 갔다. "흠...... 천마부(天魔府)마저 나타났단 말인가?" 그런데, 흐릿해진 녹옥천비룡의 시야 앞으로 하나의 자영(紫影)이 거한 옆으로 날아 내리는 것이 보였다. (제천존인가?) 그 생각을 끝으로 그는 그만 아득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녹옥천비룡은 녹림맹(綠林盟) 총단인 천록성(天綠城)의 소성주입니다." 백삼을 곱게 차려입은 미소부(美少婦)가 녹옥천비룡의 상세를 살피며 말했다. 그녀는 화중월(花中月) 화옥란이었다. "녹림맹주 천록신제(天綠神帝)에게는 여제자가 하나 있을 뿐인 줄 알고 있는데?" 초탈한 자삼 차림의 문사는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녹옥천비룡의 앞으로 다가섰다. 물론 그는 백리천궁이었다. (짓궂으신 분, 녹옥천비룡이 곧 남장한 녹옥비봉(綠玉飛鳳)이심을 아시면서......) 화옥란은 곱게 눈을 흘기며 녹옥천비룡, 아니 녹옥비봉에게 해독약을 먹였다. "표면적으로 천하는 천하쌍정(天下雙正)의 천지보(天地堡)와 제왕부(帝王府)가 장악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 오패(五覇)가 분할하고 있어요!" 화옥란이 능란한 솜씨로 녹옥비봉의 상세를 보살피며 말했다. "오패(五覇)라......" 백리천궁은 중얼거리며 녹옥비봉의 남장한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점차, 녹옥비봉의 옥용에서 독기가 사그러들고 있었다. "만독부(萬毒府), 독황전(毒皇殿), 살황독교(薩荒毒敎)의 독종삼대주류, 그리고 사존(邪尊) 악굉의 사존궁(邪尊宮)과 녹림칠십이파의 맹주인 천록성(天綠城)을 일컫는 말이지요." 화옥란은 백리천궁에게 설명하며 문득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하면...... 오패(五覇)마저 수렴하셔야 하실 거예요. 마종지주(魔宗之主)나 천마부(天魔府)는 개인의 힘으로 상대할 수 없는 것들이나......" 화옥란의 말에 백리천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거한 거령패왕을 돌아보았다. "마종지주(魔宗之主)가 주위에 있음이 틀림없네. 패왕(覇王)은...... 지시한 대로 잠복하여 기다리도록 하게!" "존명!" 거령패왕은 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는 거구답지 않은 날렵한 경공으로 숲 밖으로 사라졌다. "제왕부(帝王府)에서...... 향후 천하무림의 정세를 뒤흔들 대풍운(大風雲)이 일 것이오." 백리천궁은 서쪽을 바라보며 뒷짐을 지었다. 그곳에는...... 강남무림을 영도하는 하나의 거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제왕부라는 이름의 거인이...... (진정한 대풍운은...... 바로 당신이거늘......) 백리천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화옥란의 시선이 애틋하게 빛났다. 그녀에게 있어 백리천궁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는 이미 자신의 남편으로 예정된 사람이며 그녀의 영원한 지존이었다. __제왕부! 그 이름은 이십 년 동안 강남(江南)의 하늘로 군림하여 왔다. 누구도 그 하늘의 이름을 거스릴 꿈도 꾸지 못했다. 그만큼 제왕부라는 이름은 대단한 것이었다. 제왕천신(帝王天神) 황보강(皇甫岡)____! 벽라대전(碧羅大戰)의 신화를 창조한 남정신탈(南正神奪)이 바로 제왕부주(帝王府主)이다. 제왕천신은 부언을 필요치 않는 절정고수자이고...... 그의 휘하로 십만의 정병(正兵)들이 정검(正劍)을 갈고 있었다. 외형적인 규모만으로라면 제왕부는 당금 천하에 존재하는 최강의 문파였다. 절정(絶頂)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고수가 무려 일천이며, 일류라 할만한 정예만도 이만에 이른다. 남칠성에 삼백육십 개의 지부가 있으며 십만의 수하들이 남칠성에 모래알같이 박혀 있었다. 따라서, 합비(合肥)에 자리한 제왕부, 그 무적의 하늘을 손에 넣음은 곧 천하의 절반을 얻음을 뜻한다. 대풍운(大風雲)은...... 바로 이런 이유로 하여 합비 제왕부에서 시작된다. 때는...... 제왕부주 제왕천신(帝王天神) 황보강의 오십 회 생일이었다. 그것을 기화로, 남북 십삼 성의 강자들이 속속 합비로 모여들고 있었다. 풍운(風雲)과 음모(陰謀)의 그림자는...... 그 중에서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제왕부의 대풍운(大風雲)이......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