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구약성경 인용)
요한복음 5장 2-9절『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서른여덟 해 된 병자는 하나님 백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우상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백성들이 정탐꾼을 보내자고 모세에게 요구했다. 그래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들여보냈는데, 사십일간 정탐하고 온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가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모세에게 보고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전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들을 광야에 38년간 머물게 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약속하셨지만 백성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은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 아래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과 출애굽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만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셨고, 그 메시야가 유대 땅에 왔지만 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이는 미신의 한 유형으로서, 당시 우상숭배가 얼마나 만연했는지를 보여준다. 선지자들은 대부분 우상숭배를 지적하고 돌이킬 것을 말했다. 로마시대 당시 유대인들은 법궤 위에 있는 그룹(체르빔)이라는 천사들의 모양을 조각하여 벽에 장식으로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므로, 그 대신 천사의 모양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숭배한 것이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그 우상을 하나님이라 여겨서 숭배하는데, 그 마음 속에는 탐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골로새서 3장 5절에서『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예수님이 그 병자에게 다가가서 낫기를 원하느냐 라고 질문했는데, 그 병자의 대답은『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듯하다. 그 병자는 육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어서 누워있었는데,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함에도, 누워있으므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육체의 문제에 대해서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ἔγειρε ἆρον τὸν κράβαττόν σου καὶ περιπάτει)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καὶ εὐθέως ἐγένετο ὑγιὴς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ἦρεν τὸν κράβαττον αὐτοῦ καὶ περιεπάτει.) 이 날은 안식일이니(Ἦν δὲ σάββατον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헬라어로 된 성경을 번역하면, 개역개정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먼저『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ἔγειρε에게이로 ἆρον아론 τὸν톤 κράβαττόν 크라바톤 σου 수 καὶ 카이 περιπάτει 페리라테이)』에게이로는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아론 톤 크라바톤 수”를 “네 자리를 들고” 라고 번역했는데, 아론은 제거하라는 의미이고, 톤 크리바톤은 자리, 침대를 의미한다. 말하자면 불편한 육체를 쉬게하는 침대인 것이다. 수는 당신이다. 그래서 다시 번역하면 “네 자리를 제거”하고 라는 의미다. 페리라테이는 동행하여 가다 라는 의미로서, 예수님이 함께 가자라는 의미로 말씀하는 것이다.
죽은 영을 일으켜 주시고, 죄에 물든 육신에 대해서는 제거해 주시고(옛사람의 죽음), 나와 함께 동행하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 요한복음 5장 9절에서는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καὶ εὐθέως ἐγένετο ὑγιὴς ὁ ἄνθρωπος καὶ ἦρεν τὸν κράβαττον αὐτοῦ καὶ περιεπάτει.) 번역해보면, 즉시 죽은 자 가운데서 영이 일어나고, 그의 자리를 제거하고, 함께 동행했다는 것이다. 이 날이 안식일이라는 말은 이 병자가 드디어 안식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는 안식이 되는 것이다.
아모스 3장 12절에서『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열국으로 흩어질 것을 말하고, 장차 그리스도로 인해서 다시 회복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네 자리』의 침상은 바로 아모스 선지자가 표현한 병자 같은 이스라엘이다.
안식은 쉬는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38년 된 병자에게도 안식을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안식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다 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의 주인이시다. 예수님과 연합되지 않는 자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때가 무엇인가? 바로 안식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져서,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38년된 병자는 이스라엘을 나타내지만,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병자가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병을 고침을 받은 자가 누가 병을 고쳐준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배운 지식으로 알 뿐이다. 심령 속, 호 로고스로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그 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경 말씀 속에서 성령으로 감동되어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분이다.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죄로 인해 영이 육체에 갇혀 죽어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이와 연합되는 자도 함께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그도 부활시켜주신다.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이 아니라 지금 현재 부활시켜 주신다. 그래서 심령 속에 천국이 도래하는 것이다. 새성전이 세워진다는 말이다. 이 새성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임재하므로 주인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말로 영접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성도가 현재적으로 부활을 믿지 않으면, 영적으로 여전히 죽어있는 상태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안식이 없는 것이다. 안식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를 찾아 헤매는데,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