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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도 메갈라야, 노그리아트를 찾아서
김원배
제1부. TV 화면 속에서 만난 낯선 세상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유튜브 채널 ‘역마살 로드’에서 인도 북동부의 오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 온 다리와는 전혀 다른 다리가 놓여 있었다.
콘크리트도, 철근도 보이지 않았다. 굵은 밧줄이나 쇠사슬로 연결한 다리도 아니었다. 사람의 발이 닿는 곳마다 나무뿌리가 서로 얽혀 있었고, 그 뿌리들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하나의 다리로 자라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특수한 기술로 만든 관광 시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해설자의 설명은 뜻밖이었다.
이 다리는 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나무의 뿌리가 계곡 건너편까지 뻗어 가도록 방향을 잡아 주고, 오랜 시간 자라도록 돌보아 만든 다리였다.
장소는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에 있는 노그리아트(Nongriat).
이름부터 낯설었다. 지도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자연의 성장에 기대어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화면을 멈추고 생각했다.
나무뿌리가 어떻게 다리가 될 수 있을까. 가느다란 뿌리 몇 가닥으로 시작했을 텐데, 그것이 어떻게 사람의 무게를 견디는 구조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누군가는 어린뿌리가 자라는 방향을 살폈을 것이다. 누군가는 뿌리가 계곡 건너편까지 뻗어 가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란 뿌리가 서로 얽히고 굵어지면서 오늘날의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 기다림은 한 사람의 일생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앞선 세대가 시작한 일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또 다른 세대가 돌보면서 다리를 완성하고 유지해 왔을 것이다.
나는 노그리아트에 가본 적이 없다. 그곳의 흙을 밟아 본 적도, 계곡의 물소리를 직접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TV 화면에 잠깐 비친 뿌리 다리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결국, 화면 밖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왜 그들은 돌과 철 대신 나무뿌리로 다리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길을 오갈까.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직접 찾아가 본 곳만이 세상 전부는 아니었다.
그날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을 나선 것도, 비행기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호기심 하나가 나를 인도 북동부의 낯선 산골 마을로 이끌고 있었다.
제2부. 비와 안개가 빚어낸 세상
노그리아트가 있는 메갈라야는 인도 북동부의 산악 지역이다.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특히 일부 지역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많은 비가 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메갈라야라는 이름은 흔히 ‘구름의 집’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름만으로도 이곳의 자연환경이 어떤 모습일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TV 화면 속 숲은 짙은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나무와 바위는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물은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뭇잎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다가도 구름이 몰려오면 금세 어두워졌다.
산허리를 감싸던 안개는 바람을 따라 이동했다.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보이던 산봉우리가 희미해지고, 숲과 계곡의 윤곽도 하얀 장막 뒤로 사라졌다.
그곳에서 비는 단순한 날씨가 아니었을 것이다.
집을 짓고 길을 내고 강을 건너는 일까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비가 많이 내리면 강물이 불어난다. 평소에는 쉽게 건너던 물길도 갑자기 위험해질 수 있다. 나무로 만든 다리는 썩거나 물살에 손상될 수 있고, 돌과 철을 이용해 튼튼한 다리를 놓는 일에는 많은 노동과 자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주변의 나무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을지 모른다.
잘라서 쓰는 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채로 길러서 쓰는 나무.
한 번 만들어 놓고 수명이 다하면 버리는 구조물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단단해질 수 있는 다리.
물론 살아 있는 뿌리 다리도 저절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이 계속 살피고 돌보아야 한다. 하지만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활 방식 속에서 이런 지혜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놀랍다.
나는 화면 속 빗줄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자연과 싸우는 방법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연의 성질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도 배운다.
자연이 주는 불편을 무조건 없애려 하기보다, 그 환경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노그리아트의 뿌리 다리는 바로 그런 삶의 흔적처럼 보였다.
비가 내리는 땅에서 사람들은 비를 피하는 법만 배운 것이 아니라, 비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도 익혀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졌을 것이다.
제3부. 한 세대가 심고 다음 세대가 건너는 다리
노그리아트의 살아 있는 뿌리 다리는 주로 인도고무나무의 일종인 고무나무류의 공중 뿌리를 이용해 만든다.
지역 주민들은 나무에서 뻗어 나온 뿌리가 강이나 계곡을 건너도록 유도하고, 필요한 방향으로 자라도록 도와준다. 뿌리가 서로 얽히고 굵어지면서 사람과 짐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다리였던 것은 아니다.
가느다란 뿌리가 길을 찾고, 뿌리와 뿌리가 연결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굵어진다. 다리의 크기와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완성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사례도 있다.
TV 화면에서 본 다리는 그 오랜 시간을 한눈에 보여 주는 결과물이었다.
나는 문득 처음 그 다리를 만들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이 시작한 일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온전히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린뿌리를 이끌어 놓고, 자라는 방향을 살피고, 다음 세대에 돌보는 일을 부탁했을 것이다.
오늘의 다리는 어쩌면 오래전 사람들의 손길과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길이 함께 만든 결과인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다리는 설계도를 그리고 재료를 모아 일정한 기간 안에 완성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뿌리 다리는 자연의 성장 속도를 기다려야 한다. 사람의 계획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다. 나무가 자라야 하고, 계절이 지나야 하며, 누군가가 그 과정을 꾸준히 돌보아야 한다.
그 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 만들고 빨리 얻으려 한다. 성과가 늦으면 조급해하고, 기대한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어떤 것은 서두른다고 빨라지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신뢰도 그렇고, 오랜 경험이 쌓여 비로소 단단해지는 삶의 지혜도 그렇다.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고, 오랫동안 이어 온 관계가 깊어지는 데에도 세월이 필요하다.
노그리아트의 뿌리 다리는 내게 말하는 듯했다.
서두르지 말라고.
오늘 심은 뿌리가 내일 당장 다리가 되지는 않는다고.
나는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사실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내가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니라, 앞선 사람들이 오랜 시간 가꾸고 남겨 준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모 세대가 마련한 생활의 터전,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다가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안에 담긴 수고를 깨닫곤 한다.
뿌리 다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발밑의 뿌리만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함께 얽혀 있다.
누군가의 시작이 있었고, 그 시작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오랜 세월 다리를 돌본 손길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뿌리 다리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세대가 시작한 일을 다음 세대가 이어 가고, 그 결과가 훗날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것.
나는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 남겨 줄 수 있는 소중한 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꼭 거대한 건축물이나 많은 재산만이 유산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다른 사람이 이어서 가꿀 수 있는 것을 남기는 일도 귀하다.
나무뿌리 하나가 다리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의 삶에서도 오래 기다리고 돌보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들이 있다.
제4부. 계곡 아래에서 만나는 무지개 폭포
TV 프로그램은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을 보여 주었다.
노그리아트의 살아 있는 뿌리 다리를 만나려면 산 위쪽에서 계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여행자들이 걷는 길에는 수많은 계단이 이어지며, 구간에 따라 가파르고 힘든 곳도 있다.
화면 속 여행자들은 산 봉우리에서 한 걸음씩 3500개 계단을 아래로 내려갔다.
대나무 지팡이를 현지 가이드가 권장하여 구입하여 짖고 내려와서 마을에 도착하자 1/3로 줄어든 지팡이를 보여 주었다.
계단 옆으로는 초록빛 숲이 펼쳐졌고, 나무 사이로 아래쪽 마을과 계곡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길은 때로 좁아졌고, 축축한 돌계단 주변에는 이름 모를 식물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그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계단 앞에 서 있었다.
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도시와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질 것 같았다. 자동차 소리와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물 흐르는 소리와 새의 울음이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내려가는 길이 있다면 다시 올라가는 길도 있다. 계곡 아래에서 뿌리 다리를 구경하고 폭포까지 다녀온 뒤에는 자신이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젊은 여행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여정일 것이다. 무릎이 불편하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더욱 신중한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화면 속 계단을 바라보며 여행의 또 다른 모습을 생각했다.
여행은 아름다운 장소에 도착하는 일만이 아니다.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간도 여행 일부다. 때로는 풍경을 보는 것보다 그 풍경에 이르는 길이 더 많은 생각을 남긴다.
계단은 한 번에 열 개씩 뛰어넘을 수 없다. 결국, 한 칸씩 오라가야 한다. 아무리 목적지가 궁금해도 자신의 체력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
계곡 오르다보면 두번째 살아 있는 뿌리 다리가 다시 나타났다.
굵고 가느다란 뿌리들이 서로 얽혀 다리의 바닥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짙은 초록빛 숲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발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넜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그곳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했다.
힘들게 계단을 올라 온 끝에 만난 다리였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그동안의 수고도 잠시 잊혔을 것이다.
이어 화면에는 레인보 폭포(Rainbow Falls)가 나타났다.
바위 사이로 흘러온 물줄기가 아래로 떨어지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짙은 초록빛 숲과 회색 바위, 흰 물줄기가 한 화면에 어우러졌다. 햇빛과 물방울이 만나는 조건이 맞으면 폭포 주변에 무지개가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그곳의 소리를 상상했다.
폭포 소리가 얼마나 클까. 바로 옆에서 말을 한다면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까. 물보라가 얼굴에 닿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직접 그곳에 서 있었다면 그 소리에 말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무지개는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햇빛의 방향과 물방울의 상태가 맞아야 한다. 같은 폭포라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선명하게 나타나고, 어떤 순간에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을 만나기 위해 멀리 있는 길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 식사, 친구와 나누는 짧은 안부, 아침 산책길에 마주친 햇살처럼 평범한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한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순간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노그리아트의 폭포를 직접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면 속 물줄기를 바라보며 세상에는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만나는 방법이 꼭 하나뿐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찾아가 몸으로 경험하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 화면 속 풍경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아 가는 여행도 있다.
물론 두 경험이 같을 수는 없다. 화면은 풍경을 보여 줄 수 있지만, 물소리와 습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의 숨 가쁨까지 온전히 전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화면 속 한 장면이 마음에 질문을 남기고, 그 질문이 새로운 세상을 알아보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여행일 것이다.
제5부. 안개는 풍경을 감추고 마음을 열어 준다.
노그리아트를 소개하는 화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는 산과 숲을 감싸고 흐르는 안개였다.
짙은 초록빛 숲 위로 희뿌연 구름이 낮게 흘렀다. 산허리를 감싸고 있던 안개는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어느새 계곡 아래까지 내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명하게 보이던 맞은편 산봉우리가 흐릿해졌다. 푸른 나무들의 윤곽도 하나둘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하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누군가 세상의 풍경 위에 거대한 흰 장막을 드리운 것 같았다.
카메라가 숲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축축하게 젖은 돌계단 양옆에는 이름 모를 나무와 양치식물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넓적한 잎사귀 끝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숲속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바위틈을 지나가는 개울물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의 낮고 묵직한 울림이 뒤섞였을 것이다.
눈앞의 풍경은 안개에 가려져도 소리는 오히려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카메라가 계곡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나무뿌리 다리가 희미하게 나타났다. 굵고 가느다란 뿌리들이 서로 얽혀 다리의 바닥과 난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건너편은 안개에 가려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안개가 움직였다.
바람이 산자락을 타고 지나가자 하얀 장막이 조금씩 옆으로 밀려났다. 감춰져 있던 나무의 줄기가 드러났고, 그 뒤로 계곡의 바위가 모습을 보였다. 뿌리 다리의 윤곽도 잠깐 선명해졌다.
그러다 다시 안개가 밀려와 다리의 한쪽 끝을 덮었다.
보였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마치 자연이 사람의 호기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 주지 않고, 궁금해하는 만큼만 조금씩 허락하는 듯했다.
나는 안개가 산을 감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가지 사실을 생각했다.
안개는 산을 없애지 않는다. 나무를 지우지도 않고, 계곡의 물을 멈추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의 눈에서 그것들을 잠시 가릴 뿐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다. 믿었던 사람의 마음이 안개 속에 가려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이 예상치 못한 일로 흔들리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안개를 억지로 걷어 내려고 애쓴다. 당장 답을 얻으려 하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미리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연의 안개는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공기가 달라지고, 시간이 흘러야 서서히 걷힌다.
인생의 안개도 비슷하지 않을까.
당장 이해되지 않는 일이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훗날 다른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서운함을 느꼈다가도 세월이 흐른 뒤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른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직접 부딪쳐야 하고, 때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만 지금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남았다.
산은 안개 속에서도 그 자리에 있고, 나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라며, 계곡물은 여전히 아래로 흐른다.
그러니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잠시 걸음을 늦추어도 좋겠다. 발밑을 살피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고 다음 길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TV 화면에서는 다시 폭포가 나타났다. 바위 위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아래쪽 웅덩이에 부딪히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햇빛이 물방울 사이로 스며들자 폭포 주변에 희미한 무지개가 걸렸다.
조금 전까지 감춰져 있던 세상이 어느새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노그리아트의 안개는 내게 세상이 늘 모든 것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풍경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알아 갈 세상도 그만큼 남아 있다는 뜻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6부. 노그리아트에서 사파를 떠올린다.
TV 화면 속 노그리아트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오래전 직접 다녀왔던 베트남 사파가 떠올랐다.
노그리아트는 아직 내 발자국이 닿지 않은 곳이다. 나는 그곳의 계단을 내려가 본 적도, 나무뿌리로 만든 다리 위에 서 본 적도 없다. 계곡을 울리는 폭포 소리를 직접 듣거나 산허리를 감싸는 안개 속을 걸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화면 속 풍경은 낯설면서 낯설지 않았다.
산과 숲, 계곡을 덮은 구름과 안개를 바라보면서 사파에서 만났던 풍경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베트남 북부의 산악 지역에 있는 사파는 산과 구름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여행지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과 소수민족 마을, 깊은 골짜기와 굽이치는 산길은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산등성이가 멀리까지 펼쳐지지만, 안개가 짙게 내려앉으면 바로 앞의 풍경조차 희미해질 때가 있다.
나는 사파를 직접 여행하면서 자연이 여행자의 기대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다.
멀리 있는 길을 달려 도착한 여행지에서 꼭 보고 싶었던 풍경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맑은 날씨와 아름다운 전망을 상상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구름과 안개가 모든 것을 감추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였고, 오랫동안 기대해 왔으니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가 들인 노력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더라도 비가 내릴 수 있고, 짙은 안개가 산을 덮을 수도 있다.
노그리아트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곳까지 힘들게 찾아간 여행자도 날씨에 따라 뿌리 다리와 폭포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기대했던 무지개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다 발길을 돌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날의 여행이 반드시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사파를 떠올리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그날의 자연이다. 맑은 날의 산도 자연이고, 안개에 가려진 산도 자연이다. 선명하게 드러난 계단식 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논밭에도 나름의 정취가 있다.
보지 못한 풍경에 대해 아쉬움은 남겠지만, 그날 날씨와 그곳에서 느낀 감정 역시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행은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이다.
노그리아트와 사파는 서로 다른 곳이다.
노그리아트에는 오랜 세월 사람과 자연이 함께 길러낸 살아 있는 뿌리 다리가 있고,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 사파에는 산비탈을 따라 펼쳐지는 계단식 논과 산악 마을의 삶이 있다. 두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같지 않다.
하지만 두 곳을 마음속으로 연결해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풍경은 매 순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햇빛이 비치면 산은 선명해지고, 구름이 몰려오면 산의 윤곽이 흐려진다. 비가 내리면 계곡물은 힘차게 흐르고, 안개가 짙어지면 익숙했던 길도 낯설게 느껴진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우리는 그 변화 가운데 어느 한순간을 만나 여행의 기억으로 간직한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젊은 시절에는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기를 바랐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고, 기대한 만큼 보람을 얻기를 원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했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찾아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답답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고, 기다리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야 한다. 당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안개가 낀 산을 바라보며 산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보이지 않을 뿐, 안개 너머에는 여전히 산이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방향을 바꾸어야 하고, 다음 기회를 준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만으로 세상 전부를 판단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이번에 TV를 통해 노그리아트를 알아보면서 나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했다.
직접 다녀온 여행은 몸으로 경험한 기억을 되살려 준다. 그날 날씨와 길의 모습, 함께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글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반면 가보지 못한 곳을 알아 가는 여행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낸다.
왜 저곳에는 그런 다리가 생겼을까.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을까. 내가 알고 있던 세상 밖에는 또 어떤 삶이 펼쳐져 있을까.
한쪽은 기억에서 시작하고, 다른 한쪽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두 여행 모두 내게 새로운 생각을 안겨 준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나는 이제 노그리아트를 직접 다녀온 사람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다. 화면으로 본 풍경과 자료를 통해 알아본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할 뿐이다. 실제로 그곳에 가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도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차이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노그리아트의 뿌리 다리를 직접 보고 싶다. 계곡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그곳의 공기를 느끼고, 오랜 세월 자라 온 뿌리들이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싶다.
다만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체력과 이동 여건, 날씨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려는 욕심 때문에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큼 안전하게 돌아오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선 TV 화면에서 시작된 이 작은 여행을 글로 남겨 두려 한다.
언젠가 노그리아트를 직접 방문하게 된다면 오늘 쓴 글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화면 속에서 상상했던 풍경과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파에서의 기억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직접 걸어 본 산길과 화면으로만 바라본 뿌리 다리, 실제로 경험한 안개와 아직 만나지 못한 폭포. 서로 다른 경험이 한 편의 글 안에서 만나면서 내 여행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호기심까지 늙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모든 곳을 찾아갈 수는 없더라도, 세상을 향한 관심은 계속 이어 갈 수 있다. 책을 읽고, 지도를 살펴보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낯선 곳의 이야기를 알아 가는 일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이 많다. 직접 찾아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화면과 글을 통해서야 비로소 관심을 끌게 되는 세상도 있다.
노그리아트는 아직 내 발자국이 닿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곳을 알아보는 동안 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했고, 오래된 뿌리 다리에 담긴 시간의 의미를 헤아렸으며, 사파의 기억까지 다시 꺼내 보았다.
결국, 여행은 어디에 도착했느냐 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향해 품었던 호기심과 새롭게 발견한 생각,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에도 마음속에 남는 이야기가 여행을 완성한다.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마을이 있고, 그곳의 숲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며, 계곡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세상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궁금한 곳이 남아 있다는 것.
그곳을 알아보고, 생각하고, 글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여전히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이유가 충분하다.
글을 마치며
이번에 유튜브 ‘역마살 로드’를 통해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의 중심도시 실롱은 푸른 산과 완만한 구릉이 어우러져 ‘동양의 스코틀랜드’라고 불리는 매력적인 산악도시다. 이곳을 거점으로 남쪽으로 이동하면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노그리아트를 만날 수 있다.
실롱이 메갈라야의 산악 풍경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노그리아트는 인간과 자연이 오랜 세월 함께 만들어 온 살아 있는 나무뿌리 다리와 폭포의 신비를 간직한 마을이다. 메갈라야의 노그리아트를 알게 되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다. 세상에는 돈과 시간만으로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많다는 사실이다. 험한 산길을 내려가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곳도 있으며, 건강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곳도 있다.
어렵게 찾아가더라도 날씨 때문에 기대했던 풍경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안개가 짙게 내려앉으면 산과 계곡이 감춰지고, 무지개를 기대했던 폭포에서는 끝내 무지개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연은 우리가 들인 비용이나 노력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곳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지 못한 순간에도 산은 그 자리에 있고, 폭포는 흐르며, 나무뿌리는 조금씩 자라고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화면 속 풍경에서 시작되었다. 직접 경험한 여행은 아니지만, 그곳을 알아 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오래전에 다녀온 사파의 기억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직접 다녀온 곳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 동시에 이번 노그리아트처럼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알아보고,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에 관해 글을 써 보고 싶다.
직접 경험한 여행에는 그날 날씨와 사람들의 표정, 내가 느꼈던 감정이 담길 것이다. 간접 체험 여행에는 새로운 세상을 알아 가는 호기심과 상상, 그 과정에서 얻은 생각이 담길 것이다.
두 글은 출발점이 다르지만, 결국 세상을 조금 더 넓게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여행은 새로운 장소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알던 세상 바깥에도 또 다른 삶과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궁금한 곳이 많다. 직접 가볼 수 있는 곳은 찾아가고, 갈 수 없는 곳은 책과 화면을 통해 만나며, 그렇게 알게 된 세상의 이야기를 내 글 속에 하나씩 담아 가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내가 여행을 계속하고, 글을 쓰고 싶은 이유다.
김원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