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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 째는 득우(得牛), 즉 '소를 얻다' 이니,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목우(牧牛)
다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게 꼬뚜레를 꿰어 끌고 가고 있는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랜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三毒)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여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망우재인(忘牛在人)
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망우재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 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인우구망(人牛俱忘)
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無) 속으로 사라졌다.
무(無)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 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이 그림의 포대화상이 누구인가?
십우도를 그린 곽암선사에 의하면 바로 이 포대를 짊어진 화상이 미륵부처님이다 결국 십우도는 저자거리로 나서는 미륵부처를 찾아야 산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첫댓글 절에 가면 이 그림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 하지요. 세월에 옅어진 그림이나 사라질 듯한 그림도 있지만 한 바퀴 돌면서 생각에 잠기는 맛도 괜찮습니다. 설명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