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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스크랩 [연재소설] 한(恨) -생존 1회-
최석영 추천 0 조회 22 07.08.27 19: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恨)

-최석영-

3부 생존 1회

 

청동기 시대 운성(운봉)은 이름도 뭣도 없었다. 그저 산허리를 둘러 성을 쌓고 힘 있는 가문이 터를 잡았으니 그 가문의 이름을 따 고 씨네 땅 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러나 남쪽의 고원분지 운성(운봉)은 대륙의 급변하는 정세에 무관할 수 없었고 고남산 일대에 근거지를 세우고 부족 국가의 틀을 세우고 있던 고영해는 밤잠을 설쳐도 뾰족한 수가 없는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두고 해가 뜨는 동쪽과 해가 지는 서쪽 그리고 남쪽과 북쪽 일부 지역이 씨족국가를 형성하고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아옹다옹 세력 확장을 꿈꾸고 있을 무렵 대륙의 정세가 급변하고 그 영향력이 반도의 끄트머리 지리산 인근까지 내려온 것이다. 때는 서기 전 백 년쯤 의 일이다. 고조선의 유민들이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의 후광을 얻은 십제(백제)는 마한의 땅을 빌어 근거지를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아리수 이남을 장악한 마한이야 말로 이 반도의 명실상부한 장자 국이었다. 북으로는 낙랑과 십제(백제) 그리고 변한과 동예에게서 조공을 받았고 동으로는 진한과 가야 그리고 서나벌(신라)에게서 조공을 받았으며 남으로는 탐라와 왜에게서 조공무역을 하였고 한나라에 사신을 주고받을 만큼 대등한 교외를 펼치는 명실상부한 반도의 주인이었다. 그런 마한이 제후국이던 진한과 변한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도성이 있는 웅진을 지리산 속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이제 마한의 영향권 아래 있는 땅은 나주를 비롯한 남도 이십 여 개의 제후국뿐이었다. 지리산 반선 계곡을 끼고 들어 깊은 산속 덕동에 궁을 짓고 마한은 천혜의 요새에 궁을 짓고 그곳을 달궁이라 불렀다. 달궁에 피난을 온 마한 국이 팔랑치에 성을 쌓아 금관가야를 경계하고 정령치에 성을 쌓아 진한과 변한을 경계 하면서 북으로는 충청과 전라도로 밀고 들어오는 진한과 변한 국 군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고남산에 근거지를 두고 운성(운봉) 땅을 다스리던 부족장 고영달의 고민이 여기에 있었다. 정세를 아무리 살펴도 마한 국이 국권을 회복해 밀려났던 땅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 중요한 요인으로 제후국의인 진한과 변한의 반란에 십제(백제)가 동참하여 밀고 내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제가 누군가? 그는 온조가 아닌가, 온조는 북방대국 고구려왕 유리의 씨 다른 형이 아닌가. 유리는 또 누군가, 주몽의 아들로 낙랑국까지 병합하며 그 위세를 떨치는 고구려의 왕이다. 그 왕이 반도의 세력들을 통제하기 위해 십제를 내세웠다. 고구려의 후원을 입고 마한 땅을 어부지로 얻은 십제가 이 전쟁에 직접 개입 했다면 십제가 반도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들어낸 것이고 그것은 힘의 흐름이었다. 그러니 마한은 곧 무너질 나라다. 무너질 나라에 목을 들고 찾아갈 일은 없었다. 그러나 고영해의 고민은 운성(운봉)이라는 땅이 기회에 따라 자리를 바꿔 앉을 만큼 용이하지를 않다는 것이다. 마한의 후광을 얻은 석씨 일가가 고룡 땅을 점령하고 섬진강을 줄기를 따라 그 세력을 키워 마한의 제후국 행세를 하며 철제 무기를 만들고 대륙과 무역을 하고 있으니 고남산 운성(운봉)땅에 근거지를 둔 고영해 일가로서는 고립무원이 따로 없었다. 망해가는 나라에 소 몰고 들어갈 수도 그렇다고 다른 방도를 찾을 수도 없는 일…. 그저 고남산 아래 토성을 굳건히 쌓고 협곡을 돌아 큰 방어진을 치고 시위를 하며 때를 기다릴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지리 한 대치가 삼십년이다. 고작 몇 년이면 무너질 것 같던 마한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칠십 여년을 버티더니 급기야는 옛 수도로 천도를 하고 그 왕궁을 석타래에게 물려주며 제후국으로 삼았다. 용성(남원)에 근거지를 두고 철제 무기를 만들던 석씨 일가는 요즘으로 말하면 무기상이었다. 인도에서 들여온 철제무기 제조술로 마한에 무기를 만들어 대 주며 땅을 얻어 나라를 세운 석타래는 요천을 끼고 구례와 담양을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섬진강을 이용해 왜와 탐라(제주)와 한나라를 있는 무역 길을 열어 막대한 재화를 챙겼고 그 재물은 다시 저 멀리 석씨 일가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도 남방 타밀과 연결되어 선진 제련기술이 계속해서 들어 왔다. 전쟁만이 살길 이었던 시대, 대장장이 집이라고 불려 지던 석씨 일가는 누구도 홀대할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안 이었고 부를 가진 집단이었따. 그와 반면 고남산에 갇혀 있는 고씨 일가의 형편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궁핍하였다. 처음에 고영해는 석씨 일가를 일개 거상쯤으로 무시 했었다. 상인들이야 칼로 위협하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일개 상인이 아니었다. 마한 왕 측근에 있으면서 으로 왕을 따라 피난을 왔던 석씨 일가는 마한이 웅진(공주)으로 천도를 하면서 그 자리를 물려받아 용성국 이라는 국호까지 쓰며 이 일대를 호령하지 않는가.

이제 고씨 일가가 염원했던 대륙과 연계된 제국의 제후국이 되려던 꿈은 요원해 지고 말았다. 아니, 운성(운봉) 땅이라도 보장을 받았으면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를 않을 것 같다. 그 동안 마한과 용성국에 미보인게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 제국이 될 것이라 믿고 그와 연줄을 대려 했던 백제는 물 건너 가고 망하리라 믿었던 마한이 다시 부활 했으니 고씨 일가의 고민이 날로 깊어만 갔다. 용성국 사람들은 쌀 이라는 농사를 짓고 비단을 잘 만든다는 마한의 농업 기술을 가졌고 섬진강을 따라 왜와 한나라 그리고 저 멀리 서유타국까지 무역으로 해서 부를 쌓아 용성국은 강아지까지 비단 옷을 걸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다 보니 고씨 족 사람 중 성을 바꾸고 용성국의 백성이 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나 둘 사람이 빠지다 보니 할 수 있는 짓이라고는 노략 질 밖에 없었고 그나마 용성국이 토벌대를 내지 않을 만큼의 노략질을 해야 하는 수위 조절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비루함까지 겪어야 했다. 옛 영화를 꿈꾸며 강경했던 고씨 일가는 용성국 용왕 석타래와 교섭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을 이대로 굶겨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서기 백이십년 쯤 되었을 때였다. 박혁거세가 진한을 복속시켜 강원도 고성에 도읍을 세우고 십제(十濟)라 불리던 온조가 아리수에 도읍을 세우고 마한의 영토를 복속 시키면서 백제라는 나라 이름을 세울 때였다. 그 뿐인가, 저 멀리 대륙에 기반을 둔 고구려는 동옥저를 복속시킴으로서 동진을 마치고 남진정책을 쓰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백제가 더 이상 밀고 올라갈 북쪽 땅이 없다는 말도 되었다. 서나벌이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상북도로 왕궁을 옮기며 백제와 맞서 보았지만 태백산맥을 넘지를 못하고 태백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령이 큰 국경으로 고착되는 현상이 드러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서나벌은 진한과 가야를 복속시키며 세력을 확장시키며 백제가 아닌 마한을 넘보게 되었고 백제는 마한을 서나벌에게 내어주면 자신의 위치 마자도 위협 받게 되어 있었고 백제는 이제 비로소 서나벌 이라는 나라와 직접 부딪칠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그 피바람은 다시 용성국(남원)까지 밀려왔고 섬진강 유역을 빼앗긴 용성국(남원)은 중요한 무역통로를 잃어 버렸다는 얘기고 이 얘기는 국가의 존립 기반이 흔들린다는 얘기였다. 이때 용성국 왕 석탈해는 고남산에서 여원치를 지키는 고씨 일가를 비롯 정령치를 지키는 정씨 일가 팔랑치를 지키는 황씨 일가를 버려둔 채 궁을 버리고 김해 땅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한 동안 왕궁이 있던 후방이었던 운성(운봉) 땅은 졸지에 백제를 맞닥뜨린 최전방이 되고 말았다. 석탈해가 김해에서 땅을 얻어 남관가야를 세우고 김수로의 뒤를 이어 서나벌의 왕이 되고 신라가 되기까지 잇몸을 가리기 위한 입술이 되어야 했던 운성(운봉) 땅은 그 후 신라가 백제 땅을 점령할 때까지 오백여년을 전쟁터가 되었고 그 땅에 사람들은 죽고 죽이는 아수라의 지옥을 살아야 했다. 이제 이 땅에 사람들은 나라도 왕도 필요치 않았다. 어제는 적이었고 오늘은 동지였고 동지가 다시 내일은 적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눈앞에 있으면 죽이고 없으면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세월이 흘렀다. 누가 얼마나 흘렀느냐고 물으면 대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땅도 그대로고 백제도 그대로고 신라도 그대로다. 다만 바뀐 게 있다면 고남산을 지키던 고씨도 정령치를 치키던 정씨도 팔랑치를 지키던 황씨도 사라지고 백제 사람이기도 하고 신라 사람이기도 한 사람들이 서로의 말투를 흉내 내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숨어 버리는 사람들만 남았을 뿐이다. 하루에도 수 백 명씩 죽어 가는 사람들….

옛날 지리산 산신령과 태백산 산신령이 큰 싸움을 하였는데 고 씨 조상 중 한 사람이 우유부단하여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하는 사이 두 산신령이 우유부단한 고 씨 조상에게 진노하여 큰 벌을 내렸다는 전설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성씨도 없었고 가문도 없었다. 그저 산 짐승을 잡고 화전을 일구며 근근이 목숨이나 연명하는 처지였지만 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말 한마디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기필코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깊은 산 초막에 숨어살던 사람마저 잡아다 전쟁터로 내모는 백제와 신라는 막바지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한 뼘의 땅이라도 서로 뺏으려는 그들에게 현지에서 땅을 파먹고 사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보이질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한 부락을 일구었던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고남산에서 살았다는 전설만 남긴 채 죽어갔고 고남산 고씨의 유일한 후손인 남자 하나가 살아남았다. 그 남자는 고남산의 영화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절박감 보다는 아버지에게 들은 전설을 대를 이어 전해 주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떨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가문에 내려오는 교훈이이라는 절박감을 절실히 깨달으며 이를 맞부딪치며 부들부들 떨었다.

어느 날,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뚫고 한 그림자가 신라군 막사를 숨어들었다. 이쪽이고 저쪽이고 군인만이 사람이고 군이 아닌 자는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시절이라 인가는 폐허가 된지 오래여서 사람이라도 구경을 할라치면 군영을 찾아야 했다. 그림자는 짐승처럼 벌거벗은 채였고 그 몸은 산을 타고 살아서인지 단단하여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야음을 틈타 깊숙이 파고든 남자가 병사들의 옷을 정리 하는 여자를 발견하고 그 여자가 행하는 곳을 뒤따라갔다. 그리고 뒤에서 급소를 눌러 여자를 기절시킨 다음 여자를 들쳐 업고 다시 산속으로 살아졌다.

여자를 잡아 온 남자는 여자를 멧돼지나 살았을 법한 움막 같은 곳에 여자를 가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절했다 깨어난 여자는 너무 겁에 질려 정신이 들었음에도 인기척을 못하고 죽은 듯이 있다가 남자가 사라진 틈을 타 눈을 떴지만 토굴 같은 움막을 나갈 수는 없었다. 손과 발이 묶여 있었고 우선은 여기가 어디인지를 몰랐다. 도망을 가더라도 어디에서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남자가 다시 돌아 왔다. 그 손에는 산 과일과 토끼 한 마리가 들려 있었는데 과일을 여자에게 던져준 남자가 토끼 머리를 칼로 베어 가죽을 찢더니 찢겨진 가죽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오른발로 소나무를 버텨 서서는 찢겨진 머리통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힘껏 잡아 당겼다. 살갗이 벗겨지는 소리가 찌지직 나면서 토끼의 머리통이 삐져나오더니 산도에서 아기가 출산하듯 토끼 고기가 가죽을 벗고 나왔다. 모가지, 앞다리, 그리고 가슴팍과 허리 부분에서 토끼의 내장이 주르륵 쏟아졌지만 사내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를 않고 기어니 토끼 뒷다리에서 꼬랑지까지 다 빠지도록 잡아 당겼다. 무심히 내장을 훑어내 버린 사내가 토끼 주둥이에서 꼬랑지까지 꼬챙이를 꿰어 나무에 달아 두고서 부싯돌로 불을 피웠다. 어떻게 한 것인지 연기는 별로 나지 않으면서 불꽃이 확~ 일며 불이 피워지자 먼 불빛에 고기를 걸고 여자를 힐끔 쳐다봤다.

“조금만 기다려 곧 먹을 수 있게 해 줄 테니….”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안도하는 것이 역역했다. 적어도 지금당장 죽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왜 잡아 왔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막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 엄마가 걱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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