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聞香)
예로부터 난향(蘭香)은 코로 맡으면 속인(俗人)이요, 귀로 들으면 선인(仙人)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난을 대하기가 흔하다 보니 자칫 그 고결하고 청초한 품을 잊기가 싶지만 난이 가진 고결한 자태와 난꽃의 맑은 향은 능히 우리의 심성을 가다듬어 주는 기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해서 선인들은 난꽃을 보려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그 진정한 아름다움을알 수 있고, 향기를 맡으려거든 코로 맡지 말고 귀로 들어야 비로소 자연을 아는 달인(達人)이 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사람의 인품은 일생을 살면서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하여 그 삶의 깊이를 쌓고, 옳고 그름에 대한 많은 고뇌와 오랜 인고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그 내면의 세계가 완성되어 집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나타내어진 외적인 모습과 화려한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심중에서 뿜어내는 말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그 내면의 품격과 인생의 깊이를 느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같이 우리는 사물을 마음으로 판단하는 눈(眼目)을 가져야 합니다.
오랫 동안 사귄 지기지우(知己之友)라도 서로의 삶의 모습이 다르듯 우리는 부단한 그런 자기 성찰을 통해서 자신만의 향기와 생의 빛깔을 지녀야 합니다.
내 마음에 봄의 기쁨이 가득해야 비로소 눈앞에서 활짝 핀 봄꽃을 느낄 수 있듯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꽃의 향기를 듣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며 우리가 꽃을 보고 그 향기를 듣는 이치와 같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읽어야 비로서 올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제가 아호로 사용하고 있는 문향 (聞香)은 오래 전, 제 서예선생님께서 제게 내려주신 이름으로 멀고 가까이에 있는 많은 지인들이 불러주셔서 문향거(聞香居) 라는 제 당호(堂號)와 함께 이십 오륙년 전부터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聞香은 제가 가진 자신의 품에는 훨씬 넘치는 큰 이름입니다.
지난 목요일의 우리 형제님들 만의 단합의 자리에서 아호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생의고개 반이상을 훌쩍 넘기고, 자녀들의 혼사와 손자 손녀를 보게 되었으니 삶의 품격을 높일겸 이름보다는 서로의 아호를 불러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아직 아호가 없는 이는 서로 숙고하여 좋은 아호를 지어 드리기로 하고, 우선 최 스테파노 형님의 제안으로 이미 아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아호에 대한 作號의 辯을 밝히기로 하였습니다.
자신의 발에 맞지 않은 작거나 다소 큰 새 신발을 신게되면 한 동안 발이 끼여 조이거나 헐렁한 불편을 느끼게 되고 심하면 발 뒷축이 상하기도 하지만 오래 신다보면 어느새 그 불편함이 가시게 됩니다.
저 역시 문향이란 아호가 제 품에 넘치는 이름이어서 한동안 거북하고 송구스러웠지만 오래토록 사용하다보니 어느새 입에 귀에 익은 이름이 된 듯 합니다.
작호의 변에 드린 말씀처럼 제게 어울리지 않는 큰이름이지만 여러 단원님들께서 해량해 주시고 불러주시면 늘 삼가하는 마음으로 이름의 품에 걸맞는 삶의 모습이 되도록 스스로 가다듬으며 살겠습니다.
끝으로 우연히 들렸던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 광교산 끝자락에 위치한
"聞香" 이라는 아름다운 전통 한옥 찻집에서 얻었던 시 한편을 옮깁니다.
四靈의 새 鳳凰이
보물 제9호
현오국사탑비 품은
빛의 산 한 자락
솔향 묻은
오색 찬란한
날개를 퍼득이며
신선처럼 노닐던 곳
이 신봉동(新鳳洞)의 젖줄
홍천(洪川) 개울 벽계수
전통 한옥 문향(聞香)
포근히 감돌아 흐르고
은은한 다향(茶香)
콧끝으로 스며드는데
속진(俗塵)을 떠난 나그네
한 잔 차
맛과 향기에 취하고
그윽한 한옥 정취에 취해
발길을 멎는다
2007. 구월의 초하루. 온종일 가을이 안개비로 내리던날... 聞香 拜
첫댓글 아호도 좋지만 어쩌면 이렇게 해설도 좋은가요 문향 선생! 오늘 아침 우리 집 베란다에 핀 난향이 더욱 그윽하네요.
아오님! 제 글보다는 님의 평글이 더욱 향기롭습니다^^* 좋은 느낌으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을 다시듣기위해 와 있습니다......글로 표현하는 일은 항상 부담스럽게 느끼기에 聞香님의 아름답고 깊이있는 표현들을 좋아합니다....음악을 선곡하는 안목또한 놀랍습니다.
陽村 선생님! 감사합니다. 부족함을 늘 격려의 칭찬으로 대신하시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시면 기분이 아주 좋아집니다.^^*
늘 해박함으로 우리를 일깨워주는 聞香아우님. 우리에게 아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좋은 자료와 글로 눈을 넓혀 주심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杏村 형님! 그 무슨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까? 형을 따라갈 아우가 어디있답디까? 저야 늘 스스로 얕음을 드러내지만 杏村형님의 해학이 넘치고, 삶의 여유가 담긴 말씀들을 들을 때면 늘 해박하시기 이를데없는 형님의 내면세계의 작은 부분들이 아닐까 여깁니다. 가끔씩 이 아우의 천방지축을 꾸짖어 주시길요...
행님 한동안 뜸 하더니 기력을 회복하셨습니까. 재미있는 것 좀 구경시켜주이소. 기다리고 있을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