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의 매운 아침
유기섭
쿠바의 하바나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멕시코 칸쿤 공항에서의 탑승 대기 시간도 길었다. 몇 번의 출발 지연 방송이 이어지고 검색대에는 공항경찰이 수색 견을 데리고 나타나서 짐들을 샅샅이 뒤진다. 수색 견은 코를 식식거리며 짐에서 코를 떼지 않는다. 마약을 소지한 사람을 찾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이방인에게는 생소한 광경이다. 쿠바는 물가가 비싸고 생필품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여 멕시코에서 생필품을 사가는 쿠바인들의 짐이 마치 이삿짐을 방불케 한다. 공항에서 긴장했던 순간들이 카리브 해 상공을 날며 조그만 섬나라에 대한 동경심으로 바뀐다.
배낭 여행객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 카리브 해의 흑진주 하바나에서 아침을 맞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숨은 매력을 찾아보고자 나선 아침 나들이 길에서 처음 만난 것은 택시의 행렬이다. 대개 5~60년 전부터 운행되었던 차종이라고 한다. 보기에도 모델이 오래되고 투박스러운 외형에다 많이 낡아있으나 차대는 튼튼하여 요사이 신형 차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고 자랑이다. 보기에도 튼튼하고 안정감이 있어 보이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가스가 자동차 뒤에서 뿜어져 나오며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어쩌다 우리의 시내버스에서 나오는 배기가스의 정도라면 참을만하다. 매캐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가스는 얼굴까지도 따갑게 한다. 한두 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길 위의 모든 차량에서 내뿜는 가스 때문에 걸음을 더 나아갈 수 없다. 차가 오래 되어서 그렇다는 설명이지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녹이 쓴 차들이 속력을 내며 경쟁이나 하듯 매스꺼운 냄새를 뒤로 남기며 하바나의 아침을 재촉한다. 관광업이 주요산업인 나라에서 하바나의 인상을 흐리게 하지나 않을지 염려스러웠다. 당국에서 손을 대기 어려울 만큼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손을 놓고 있는지, 행복지수면에서 세계에서 상위에 손꼽히는 나라라는 자부심에서 그대로 받아드리고 있는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내가 보기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오래전 시골길 신작로를 달리던 버스를 생각해본다. 그때는 그 차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차인 줄 알았다. 한적한 길에 어쩌다 그 차가 지나가면 먼지와함께 시꺼먼 연기를 내뿜어 코를 찌르곤 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들에게는 자동차가 드물고 생소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미군들이 쓰던 차를 개조하여서 버스로 둔갑시켰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때는 차의 모양이나 성능의 정도를 가려서 쓸 형편이 못 되었을 것이다. 가스와 먼지를 달고 달리는 버스를 타기만하면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동안 행복했었다. 그런 버스를 타고 객지 유학을 하며 젊은 꿈을 다듬었던 때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이곳 사람들도 본인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여름이 되면 세계에서 음악과 자유를 구가하는 젊은 여행객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는 하바나. 밤새도록 음악과 춤에 국적을 따지지 않고 한 몸 한마음이 된다는 곳.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크루즈선이 만약 쿠바와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배가 쿠바의 항구에 기항할 수 있었더라면 카리브 기행은 더욱 의미가 있었을 텐데. 미국 국적의 배는 쿠바 영해 안으로의 항해가 허용되지 않아서 아이티와 자메이카를 거쳐서 쿠바만 빼고 서 카리브 해 일정의 여행이 되었다. 미국과의 적대관계로 미국은 쿠바 입국사실이 있는 사람은 미국 입국을 불허한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세상에 안타까운 일이라 여겨진다. 한 나라의 지도부가 어떠한 정책을 펴 나가느냐에 따라서 국민의 생활과 사회의 발전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오늘을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이 안쓰럽게 생각된다. 미국 국적의 헤밍웨이가 살았던 나라, 혁명광장에는 체 게바라의 초상이 걸려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그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아직도 한기가 가득한 카리브 해의 냉기류는 가시지 않고 있다.
매연과 녹슨 택시들로 가득한 도시지만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사람의 삶의 질은 물질의 풍요나 편리성만이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밝은 얼굴로 살아가는 하바나의 사람들. 언제 두 나라가 화해하고 차가운 바다에 온기를 불러올까. 손을 잡지 못할 관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날이 오는 날 매운 아침으로 시작한 하바나의 하루도 지워지지 않을 추억의 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마침 오늘 아침 우리나라에서는 새 여성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잘 발휘되기를 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행. 불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임무를 떠맡은 대통령의 막중한 임무. 그에게서 나라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리라. 새삼스레 지도자에 대한 바람이 간절해지는 것은 왜일까.
-수필문학 2013. 7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