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예술의 표현전략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변모하다.>
김영태 / 사진문화비평, 전시기획
서양미술(Art)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가들은 오랫동안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감 및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미술(Art)’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2세기가 채 되지 않았다. 이때부터 비로소 플라톤의 ‘미메시스 예술론’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특히 20세기 초반에 다다이스트 및 초현실주의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시각적인 것보다는 관념적인 것이 부각되었고, 표현수단과 영역이 확장되었다. 형과 색의 유희에서 탈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아방가르드적인 모더니즘미술이 포스트모더니즘미술 혹은 동시대미술의 원초적인 토대이다. 이상화된 현실이나 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두고서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으로 예술이 변모했다.
1960년대에 개념미술이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예술이 비 물질화, 관념화, 텍스트 text화 되면서부터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변모했다. 작업의 결과물보다 아이디어나 작업과정이 더 중요하게 되었고, 작품의 표면보다는 내재되어 있는 표현의도와 주제가 작품의 완성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한 예술과 철학이 밀접한 관계망을 형성하게 되었고, 예술 그 자체가 철학을 대체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회화와 조각에서 출발한 미술은 개념미술, 대지예술,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하게 영토를 확장하면서 주제와 표현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예술의 주제 및 표현대상은 신화적인 내용 및 종교적인 서사구조에서 출발하여 정치, 역사 등과 같은 거대서사를 다루었다. 또한 20세기후반에 이데올로기 경쟁체제가 종언하면서부터는 거대담론에서 탈피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이나 문화적인 현실에 주목했다.
김다운도 이러한 동시대미술의 주된 표현대상과 전략을 반영해 텍스트를 표현수단으로 선택했다. 현재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20대, 30대 초반 젊은 청년들은 스팩 spec 쌓기에 몰두하고 있고, 자기 소개서를 실제에 근거해서 서술하기 보다는 화려하게 포장해서 작성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자기 소개서’를 소설처럼 창작해서 쓰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와 소설을 합성한 ‘자소설’이라는 신종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대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문연구와는 거리가 멀어진 직업인양성소가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적인 현실을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다.
자기소개소를 본인을 대신해 작성해주는 업체도 생겨났는데, 작가는 이러한 업체에 가상인물의 정보를 제공하고 자기소개서 작성을 의뢰했다. 여러 업체에 의뢰해서 수집한 ‘자기소개서’를 재구성해 현실을 풍자 혹은 조소嘲笑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작가가 수집한 ‘자기소개서’는 특정한 기준에 맞춰서 작성되었기 때문에 획일화되고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자기소개서’의 일부 문장을 발췌하고 재조합해서 보여준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희화화 한 결과물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무한경쟁사회가 되었다. 그와 더불어서 개개인의 개성과 재능을 중요하게 여기기보다는 정해진 기준에 맞춰서 인물을 평가하는 획일적이고 비개성적인 시각이 보편적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치 사람을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다루듯이 평가하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개성과 창의성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가 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에 주목해서 비평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의 다양한 반응과 해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