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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제1장(第一課第一章)
이무영(李無影 1908-1960) 소설가. 본명은 용구(龍九). 충북 음성 출생. 문학에 뜻을 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의 집에서 기숙하며 작가 수업을 쌓았다. ‘의지 없는 청춘’과 ‘폐허의 울음’을 간행한 뒤 귀국했지만, 문명(文名)을 날리지는 못했다. 이후 의욕적인 창작 활동에 매달리면서 작품을 발표했다. 초기의 작품은 주로 아나키즘에 기초한 반항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자신이 직접 농사에 임하면서부터 ‘제1장 제1과’, ‘흙의 노예’와 같은 작품으로 농촌 소설의 대부로 자리잡았다. 이 농촌 소설은 1954년의 ‘농민’에까지 이어진다. 그 이후에는 도시 서민의 삶과 애정을 다루는 경향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여러 변모 과정을 거쳤지만, 역시 농민 소설로서 그 명성을 확립했고, 특히 장편 소설이 많다.
■ 줄거리
수택은 가족과 함께 소달구지에 이삿짐을 싣고 시골 신작로를 덜커덕거리면서 지나간다. 일찍이 수택은 열두 살에 고향을 떠나 중학교를 다녔다. 그 후 열일곱 살에 동경으로 유학을 갔고 귀국 후에는 서울의 어느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취직하여 잘 지내 왔다. 그러나 기자와 소설가로서 상당한 명예를 얻게 되었지만 신문사 일에 쫓겨 동경에 있을 때부터 써 오던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자 삶에 회의를 느껴 신문사를 그만 두게 된다. 평소 수택은 농촌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아버지를 경멸하여 자신의 결혼식에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s라는 동료와 청량리에 가서 매캐한 흙냄새를 맡고 마침내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에게서 여덟 마지지 논을 받고 퇴직금으로 집을 사서 이때부터 수택이네 가족의 농촌 생활은 힘들고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수택은 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뜻한 생활의 제1과 제1장을 익혀 가는 셈이다. 점차 수택은 농촌의 ‘흙’에 대한 애착을 갖고 적응해 간다.
■ 핵심 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농민 소설
▶배경 : 시간(1930년대 후반기). 공간(‘샌터’라는 시골)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 : 계몽성보다는 전통적 한국 농민들의 흙에 대한 열정과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구성 :
발단 - 시골로 가는 수택의 이삿짐
전개 - 신문 기자 생활의 회상. 시골로 떠나려는 수택의 결심과 그의 집안 소개
위기 - 힘겨운 농촌 생활
절정 - 농촌 생활의 괴로움과 생활의 적응
결말 - 농촌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수택. 진짜 농군이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주제 : 지식인의 귀향과 그 적응에 대한 몸부림 / 흙에 대한 애정과 농촌의 현실
▶출전 : <인문평론>(1939)
▶등장 인물
김수택 : 흙내음 때문에 귀농(歸農)한 농촌 출신 지식인
아내 : 농촌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인물
김 노인 : 수택의 아버지. 평생을 오로지 흙 만지며 살아 온 전형적 농민
■ 이해와 감상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촌 문학가 이무영의 작품으로 농촌과 농민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지고 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소설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수택이 아버지 김 영감이 사는 농촌으로 귀향한다. 도시 생활에 대한 반발과 농촌에서의 삶에 대한 낭만적 감정에 치우쳤던 수택이 농사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농촌의 현실, 그리고 농촌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중요성과 그 어려움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 드러나 있는 중요한 의미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이 작품에서 이무영은 농촌을 ‘현실적인 공간’으로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 나타남 농촌은 안락한 자연을 제공하는 쉼터나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는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다. 이 작품 속의 농촌은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 곳은 땀과 노력이 가득 차 있는 노동의 현장인 셈이다.
아버지 김 노인은 수택을 새벽부터 깨워 일을 시킨다. 땅을 대하는 일은 거짓이 있을 수 없으며, 흘린 땀만큼 거둘 수 있다는 아버지의 믿음 때문이다. 아내가 흘리는 눈물은 농촌에서의 삶이 혀영이나 낭만이 아닌 ‘현실’임을 일깨워준다.
수택은 귀향 초기에 농촌에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택의 귀향은 처음엔 어느 정도는 낭만에 치우친, 이상적 감정에 이끌린 것이었다. 도시 생활에서 느낀 우울과 소설을 쓰지 못하는 허탈감에서 오는 욕구 불만에 대한 반발과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는 땀흘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으로, 농촌이 도시보다 열등한 삶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농촌과 농민을 소재로 하는 많은 소설들이 신학문을 배운 자, 도시의 세련된 모습을 갖춘 지식인에 의해 농촌이 지도되고 계몽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농촌은 그러한 지식인의 얕은 사명감에 의 해 주도되고 있지 않다.
수택이 고향의 경치가 별로 볼 것 없는, 즉 보잘것없는 자연처럼 느껴진다고 말하자 아버지 김 노인은 수택의 목덜미를 잡아 가랑이 사이에 밀어 넣으면서, 겉으로 그냥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곳을 제대로 본다면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실하고 건강한 삶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서 농촌과 농민은 더 이상 도시와 도시인의 기준으로 낮추어 평가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보다 우월한 삶의 공간, 그곳이 바로 농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촌의 삶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경우만을 따지고 법만 우선시하는 경직된 삶의 모습을 비판하는 김 노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진전한 공동체적 삶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흙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확대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간이 되는 변화의 과정이다.
이제부터 수택은 자신이 지금까지 지녀왔던 삶의 태도와 방향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처음 중의 처음. ‘제1과 제1장’인 셈이다.
덧붙여, 이 작품의 농촌 소설로서의 특색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주인공 수택은 농민보다 우월하다는 영웅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민과 동일해지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둘째, 주인공 수택이 반농반필(半農半筆)의 문필가 겸 농민이라는 점, 그리고
셋째, “흙”과 “상록수” 같은 작품처럼 계몽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수택의 귀향 동기이다. 작가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혹은 생활고 때문에 귀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그것보다는 이 작품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흙내'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규정짓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참고> 농민 문학의 등장 배경
농민문학이란 농촌의 문제와 농민의 삶을 그린 문학을 말한다. 한국문학사에서 농민문학은 1930년대와 1970년대에 특히 활발하게 나타났다.
1930년대에 농민문학이 활성화되었던 배경에는 더욱 가혹해진 일본의 경제 수탈 정책이 놓여 있다. 당시 조선의 전체 인구 중 80%가 농민이었으므로 일제의 경제 수탈은 농촌과 농민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토지는 소수의 일본인 지주와 친일 지주의 손에 집중되었고,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의 처지로 떨어졌다. 농민들은 궁핍에 시달렸고, 만주나 간도 등지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제의 수탈에 맞서 농민들은 농민조합을 결성하고 소작쟁의를 벌였다. 그리고 학생과 지식인들은 1920년대 천도교 중심의 조선 농민사의 활동을 시작으로 YMCA나 YWCA의 계몽 운동, 1929년 조선일보사의 문자 보급 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농민 계몽 운동을 벌이며 적극적으로 농촌 문제에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작가들이 계몽 운동과 농촌의 실상을 작품화함으로써 1930년대에 '농민문학'이라는 한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참고> 1930년대 농민 문학의 유형
1930년대 농민문학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카프 문학 쪽, 1920년대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문학을 논하던 카프 문학 진영은 1930년을 기점으로 농민 계급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면서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평론가 안함광과 백철의 이른바 '농민문학 논쟁'을 거치면서 이론적인 토대로 형성해 간 카프 진영은 그 성과물의 하나로 <농민소설집>을 묶어 낸다.
특히 카프 작가 이기영은 '서화(鼠火)'(1933), '고향'(1934) 등을 통해 농민의 현실을 깊이 있게 성찰함으로써 1930년대 농민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다. 이기영 외에 조명희의 '낙동강', 권한의 '목화와 콩'과 같은 작품을 선보이며 사실주의이고 계급주의적인 경향을 고수한 카프 진영의 농민 문학은 1930년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현실적인 농민문학 유형으로 평가 받는다.
두 번째 유형은 민족주의 문학 쪽. 합법적인 농민 계몽 운동과 관련된 작품이 대부분인데, 이를테면 수양동우회의 이념에 따라 펼쳐진 농민 교육 운동의 산물인 이광수의 '흙'(1933)이나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를 중심으로 펼쳐진 브 나로드 운동의 산물인 심훈의 '상록수' 등이 그것이다. 일반 대중의 호응은 컸으나 지식인 중심의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계몽 사상 고취라는 한계를 가져 관념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농민 자각형의 유형. 박영준의 '모범 경작생'이나 이무영의 '제 1과 제 1장' 등이 대표작이다. 이것은 농민 계몽 운동과 맥을 함께하는 측면도 있지만 비판적인 농민 의식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앞의 것과 차이가 있다.
그 외에 김유정의 '봄봄'(1935), 이태준의 '농군'(1939), 박화성의 '고향 없는 사람들”(1936) 등도 농민문학을 대표하는 소설들이다.
[지문 읽기]
“얘들아,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이 물가 비싼 세상에 마룬 들여 뭣한다든? 마루가 없어 밥을 못 먹진 않는다.” 도회지
하는 바람에 아내는 실쭉해하면서도 대꾸만은 없었다. 김 영감은 아들 내외가 대처사람인 체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양복때기를 꼬이고 나오는 것도 눈에 가시처럼 대했고 며느리의 트레머리도 못마땅해한다. 그래서 그 처는 쪽을 쪘고 수택은 고의적삼을 장만했다.
“시골 시골 해두 난 이런 시골은 못 봤어요. 산이 하나 변변한가 물 한 줄기가 시원한가. 이런 곳에 와 살 바에야 만주 벌판에 가서 황무지를 일구어 먹지.” ▸아내의 냉소적인 태도
사실 수택이도 이 아내 말에는 동감이었다. 【전에는 무심히 보아 그랬던지 자연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나 멀쑥한 포플러와 아카시아숲이 실개천 가에 하나 있을 뿐 이렇다는 특징도 없는 산천이다. 장성해서는 가본 일도 없었지만 어렸을 제의 기억대로라면 그 아카시아숲 앞에는 상당히 깊은 물도 있고 큰 고기도 은비늘을 번득이었고 숲에서는 매미며 꾀꼬리도 울었던 것같이 기억이 되었으나 다시 가 보니 조그만 웅덩이에는 오금에 차는 물이 괴었고, 가문 탓도 있겠지마는 송사리떼가 발소리에 놀라서 쩔쩔맬 뿐이다. 숲속의 원두막 정취도 그지없이 시적인 듯이 기억이 되었으나 막상 가 보니 그도 평범하기 짝이 없다. 숲속은 그나마도 습했다. 월여를 두고 가물었다건만 발을 드놀 때마다 지적지적한다. 꾀꼬리가 울었다고 기억한 것도 그의 착각이었다. 이런 숲에 들어오면 꾀꼬리도 목이 쉬리라 싶었다. 이런 데서도 우는 꾀꼬리가 있다면 필시 청상과부가 된 꾀꼬리라 했다.】과거의 고향에 대한 느낌과 현재의 고향에 대한 느낌이 대조됨
‘이렇게 보잘것없는 자연이었던가?’
속기나 한 것처럼 허무해서 우두머니 섰으려니까 김 영감이 꼴지게를 지고 나온다.
“옜다, 이건 네 거다. 이런 데 와 살자면 모두 배워야지!”
숫돌물이 뿌옇게 그대로 말라붙은 낫이다. 수택은 아무 말 없이 받아 들고 따라가다가 자연 말을 했다.
“뭐? 경치? 얘, 넌 경치만 먹구 살 작정이야? 여기 경치가 어때? 산이 없냐 물이 없냐. 숲이 있것다, 십 리만 나가면 수리조합 보가 있것다…….”
“볼 게 뭐 있어요?”
그것이 자기 아버지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퉁명스럽게 사방을 훑어보려니까,
“그래, 여기 경치가 서울만 못하단 말이냐.”
하기가 무섭게 지게를 벗겨 내던지고는 상스러울 만큼 수택의 목덜미를 잡아 가랑이 속에다 집어넣는다.
“자, 봐라! 먼 산이 보이고 저 숲이며 저 물이며 이만하면 되잖았느냐.”
수택은 너무 흥분이 돼서 서두는 통에 어리둥절하고만 있었다. 엄한 독선생을 만난 때처럼 부자유했다. 수택이에게 생각의 전환을 요구함
“그래, 보렴. 세상이란 모두 거꾸루 봐야 하는 게다. 경치 경치 하지만 제대루 볼 땐 보잘것없던 것이 가랭이 밑으로 보니까 희한하잖으냐. 사람 산다는 것두 그러니라, 너들 눈엔 여기 사람들 사는 게 우습지? 허지만 여기 사람들은 상팔자야. 더 촌에 들어가 보면 조밥이구 꽁보리밥이구 간에 하루 한 낄 제대루 못 얻어먹는다. 그런 걸 내려다보면 되나. 거꾸루 봐야지! 너들 눈엔 우리가 이러구 사는 게 개돼지같이 뵈겠지만서두 알구 보면 신선야, 신선. 너들 월급쟁이에다 대? 그 연기만 자옥한 돌판에서 사는 서울 사람들에다 대? 보렴 네, 여기 사람들이 어떻든? 너들처럼 얼굴이 새하얗진 않지? 그게 신선이 아니구 뭐냐?”
이 급조(急造)된 ‘젊은 신선’은 그 날 해가 지도록 끌려다니며 억새에 서뻑서뻑 손을 베며 풀을 베었다. 하면 되리라고 생각한 낫질이 그 좁은 원고지 칸에 글자를 써 넣기보다 이렇게 어려우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중략>
수택이 부처는 처음에는 허영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세숫물까지 떠다 바치라던 수택이와 처가 매일처럼 그 드센 일을 한다 해서 동리에서 한 화젯거리가 될 것을 상상만 해도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수택이가 헌 양복조각을 입고 밭을 맨다거나 삽을 집고 물꼬를 보러 간다거나 비틀비틀 꼴지게를 지고 개천을 건너올 때마다 동리 사람들은 경이의 눈으로 그를 맞았던 것이었다. /그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비탈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동이를 해먹었을 때도 그들은 웃는 대신 동정의 눈으로 보아 주었고, 호미를 들고 남편 뒤를 따라 나서는 것을 보고는 이웃집 달순이며 앞집 봉년이를 큰일이나 난 듯이 불러다 구경을 시키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동리 사람들의 이런 경이의 시선을 등뒤에 느끼며 일을 했다. 이런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심지어 위안이기도 했다. <중략>
수택은 빨래 자리로 놓은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양치를 쳤다. 아침 저녁으로 반죽한 치분으로만 닦아 온 이가 물로만 웅얼웅얼해 뱉어도 입 안이 환한 것이 이상한 정도다. 그는 삽을 질질 끌고 징검다리를 건너 논길로 들어섰다. 광대 줄 타듯 하던 논두덩도 어느새 평지처럼 평탄해진 것 같고, 아래 종아리에 채이는 이슬이 생기 없는 감촉을 준다. 아스팔트를 거닐다가 상점에서 뿌린 물이 한 방울만 튀어도 시비를 걸던 일이 마치 옛날 꿈 같았다.
“이만하면 나도 농촌 제1과는 마친 셈인가?” 도시적인 삶과 사고에 젖은 수택이 점점 농촌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그 첫걸음을 마쳤다는 의미이다. 이 말에는 이 소설의 제목인 ‘제1과 제1장’의 의미가 담겨 있다.
허영 -힘든 시골 생활 →위안-시골 생활에 적응함→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