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인 것 같다.
벤쳐스 악단이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한다고 야단이다.
난 그저 기타를 치는 악단이려니 하고 별 생각없이 공연장면을 TV로 봤다.
그런데 공연을 보는 순간 난 무엇에 홀린 듯 정신을 뺐기고 말았다.
공연을 본 후 난 부모님을 졸라 당장 키타를 샀다.
그때 이병석이라고 나와 무척이나 친한 친구가 있었다.
둘은 열심히 키타학원을 다녔고 온 정열을 키타에 바쳤다.
한 창 키타붐이 일어 난 때라 너도 나도 키타를 들고 다녔고 키타를 못 치면 공산당이란 유행어까지 돌고 있었다.
그 친구와 난 일년이 좀 넘으니 기초단계를 벗어나 교회 행사에 키타연주 초청도 받고 나름데로 바쁜 연주일정(?)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끝내 그 친구는 밤무대로 향하게 되었고 난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군인학교로 향하게 되었다.
가끔 그 친구가 연주하는 싸롱에 들려 그 친구의 연주를 들으며 옛날을 회상하는 재미도 있었는 데 몇 년 그런 일을 하더니 미국으로 그 친구는 이민을 가고 말았다.
깁슨키타를 그렇게 갖고 싶어 했고 지미헨드릭스를 좋아했던 그 친구!
지금은 미국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도 무척이나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 번에 LA에서 트럭을 하고자 하는 미사모 회원 7명이 모여 소주 한 잔을 하면서 미국 생활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들을 나누었다.
꼭 트럭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설계하는 회원님들의 각오에 희망이 보여 마음이 흐뭇했다.
다음 날 전에 내가 요새미타 산을 넘어 올 때 순대국을 사 들고 몇 시간을 기다리며 나를 반겨주었던 회원님과 LA시내에 째즈카페를 가게 되었다.
너무도 옛 날을 생각나게 하고 음악에 도취되어 연주를 하는 그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 했다.
드럼 앞에 눈을 지그시 감고 학이 덩실덩실 춤을 추듯 온 몸을 온 팔을 하늘로 치솓았다 내려지는 모습이 나의 혼을 흔들어 놓았고 섹스폰에 흐르는 음률은 정신을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무도 값진 LA에서의 밤이였던것 같아 회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