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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地氣)를 절대적으로 중요시한 상제님의 천지공사
인간으로 오신 참하느님, 강증산 상제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전대미문의 천지의 대 역사를 한마디로 천지공사(天地公事)라고 부른다. 천지공사란 실로 무궁한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하지만 아주 쉽게 얘기해서, 절대자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인간 생사존망의 모체(母體)가 되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하늘과 땅을 바로잡는 대공사를 우주의 주재자 위치에서
집행하셨다는 말이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늘과 땅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늘과 땅을 바로잡음으로써만이 인사의 모든 문제가 바로 선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선천 종교와도 확연히 구분되는 증산도 사상의 위대성이며 한 특징이다. 인간의 잘못과 타락과 원죄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인간을 낳아 기른 천지의 왜곡을 논해야
하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불교나 기독교 이슬람교 등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음양일체로 작용하는 하늘기운과 땅기운
천지공사 가운데 ‘하늘을 바로잡는 공사’는 선천 백대에 인간으로 다녀간 수억조 신명들의 맺히고 쌓인 철천(徹天)의 원(寃)과
한(恨)을, 인간에게 붙여 신인합발(神人合發)로 풀어버리는 대 해원(解寃)공사로 귀결된다.
그리고 ‘땅을 바로잡는 공사’는 기울어져 있는 천체의 축을
바로잡는 공사(그 핵심이 지축을 바로 세우는 공사)와 흐트러지고
분열되어 있던 지구의 정기, 즉 지운(地運)을 후천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부모산과 사명당(四明堂)을 중심으로 하나로 통일하는
지운통일공사로 귀결된다.
그런데 하늘 신명들의 해원공사와 지운통일공사는 각각 별개가
아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세계를 들여다보면 신인합발의 신명해원 공사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지운(地運)을 타고 인사로 이화되어 현실 역사의 사건으로 전개됨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비근한 예가 바로 지구촌 60억 인류의 생사존망을 가르는 오선위기(五仙圍碁) 공사이다. 상제님은 순창 회문산의 다섯 신선이
바둑두는 오선위기혈의 땅 기운을 만고원신(萬古寃神)들에게 감응시켜 이를 해원시키면서 20세기 이후 한반도의 국제정세가 4대 강국이 힘을 겨루도록 만드셨다. 즉 미·일·중·러의 4대 강국과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에 의해서 펼쳐지는 오늘의 세계 정세는 그
이면(裏面)에 원신의 해원과 회문산 오선위기혈의 땅기운이 하나로 교합되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육임 도꾼(道軍)의 행군(行軍)도수와 비인의 복종혈
전라북도 군산과 맞닿아 있는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을 가면
상제님이 천지공사의 핵심공사의 하나로 취해 쓰신 중요한 혈자리가 있다. 바로 비인(庇仁)의 복종(覆鍾)이라는 혈(穴)이다. 먼저
『도전』의 ‘행군하는 북 도수’ 공사내용을 살펴보자.
* 이 뒤에 황응종(黃應鍾)의 집에 가시어 “식혜 아홉 사발을
빚으라.” 하시고 응종을 태인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보내시어
‘새 수저’ 한 개를 가져오게 하신 뒤에 단지 한 개를 가져오라
하시어 식혜를 쏟아 부으니 단지에 꼭 차는지라.
이어서 양지(洋紙)와 백지(白紙)와 장지(壯紙)를 각각 준비하여
놓고 말씀하시기를 “비인(庇仁) 복종(覆鍾)이 크다 하므로 이에 행군하는 북 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 이
수저가 북채가 되리라. 행군할 때에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祿)이 진진(津津)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떼어 그 조각마다 글을 써서 단지에 넣으시니 그 종이가 단지에 가득 찼으나 식혜는 넘치지
않더라. 이에 단지 입을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으시니라. (道典 5:145:1∼10)
‘부내 복종(覆鍾)’으로 알려져 있는 비인 복종
취재진이 비인 복종혈을 취재하기 위해 서천을 방문한 것은 청명한 늦가을 무렵, 먼저
들른 곳이 서천 군청
문화공보실이었다. 취재진이 비인 복종혈을
말하자 반갑게 맞이하는 박수환 계장은 대뜸
‘부내 복종’이라는
말과 함께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곳 서천군청에서
자동차로 채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종천면(鍾川面)이 위치해 있습니다. 복종혈이란 그곳 종천면에 있다고 알려진 ‘부내
복종’의 명당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비인 복종’보다는 흔히 ‘부내 복종’이라고 합니다. 복종(覆鍾)이란 종(鍾)을 엎어놓은 형국의 혈자리란 말이겠지요. 그런데 그 혈자리가 바로 종천면에 있다는 믿음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부내 복종’이란 말이 전해져 왔습니다.
종천면은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문수산(文殊山)과 고량산(叩梁山) 앞자락으로부터 채 십리도 안 되는 서해안까지 몇 개 마을이
있는데 그 이름들이 낭평리, 종천리, 심검리, 당정리, 장구리 등입니다. 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면(面)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내리는 종천(鍾川)이라는 냇가 좌우에 조그만 평야들과 마을이 있고, 어딘지는 모르지만 복종이라는 큰 혈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인군 종천면의 부내 복종
취재진은 『도전』의 해당 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물었다.
“그러면 ‘비인 복종’은 틀린 표현입니까? 또 ‘부내 복종’이라고 할 때 도대체 ‘부내’란 무슨 뜻인가요?”
“‘비인 복종’이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종혈이 있다고 알려진 종천면이 조선시대에는 비인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14년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개편이 되면서 당시의 서천군, 비인군, 한산군의 3개 군이 하나로 모아지면서 서천군으로 통합되었습니다. 1914년 이전에 비인군에는 종천면, 비인면,
판교면, 서면의 4개 면이 속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비인 복종’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요.
1914년 이전의 행정구역 개념으로 보면 ‘비인군 종천면의 부내
복종’입니다. 그리고
‘부내’란 종천면에
있는 자연부락의 한 마을 이름입니다. 지금의
부내초등학교가 있는
부근을 옛부터 부내라고 불러왔습니다. 부내는 한자로 마을 부(府), 안 내(內)라 쓰는데 그 자세한 의미는
알지 못합니다.”
취재진은 며칠 뒤 서천군 비인면 출신의 향토문화학자 유승광씨(현재 공주사대부고 역사담당교사, 서천군 향토문화연구회 임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부내’라는 말의 유래를 전해들었다. 종천면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내리는 시내의 이름이 종천(鍾川)인데, 이를 순수한 우리말로 옮기면 ‘북 종(鍾)’‘내 천(川)’해서 ‘북내’가 되었다가 발음의 편의상 기역 받침이 탈락하면서 ‘부내’가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부내란 마을을 흐르는 냇가 곧 종천(鍾川)의 순수한 우리말이었던 것이다.
종천(鍾川)면의 복종(覆鍾)혈! 지명과 혈자리 이름이 종(鍾)자
하나로 서로 통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고는 묘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현지의 지사(地士)들이 들려준 이야기 - 이항규
옹(75세)
서천군청의 공무원들은 본지의 취재에 적극적인 열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서천에서 이름나 있는 학자 몇 분을 추천하여 주었는데 취재진은 그 분들 중 가장 학식이 높으신 이항규(李伉珪, 75세,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 거주) 옹을 찾아가 부내 복종혈에 대한
설명을 청해 들었다.
“복종혈이 옛날부터 크다, 대지(大地)다 라는 전설이 끊이질
않고 내려옵니다. 부내란 마을 이름인데 따라서 ‘부내 복종’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부내 마을 안쪽 어느 곳에 복종의 혈자리가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 혈자리를 파면 ‘구리 금정이 나온다’ 혹은 ‘금싸래기 서 말이 나온다’ ‘작은
금종(金鍾)이 나온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그리고 종천면을 가보면 민씨가 밭을 갈았다는 의미의
‘민경뜰’이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이 붙었나 하면 조선시대 한양에 살던 지체 높은
어느 민씨 대감이 복종혈을
찾고자 종천면의 밭을 전부
사들여서 사람을 시켜 땅을
갈았다는 데서 붙은 것입니다.
파다보면 금싸래기나 혹은 종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또
전설에 의하면 토정 이지함 선생도 끝내는 복종혈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종천면 곳곳에다 묘를 썼지만 아직도 그 혈자리에 쓰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전라도 사람들이 와서 묘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취재진은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혹시 복종이란 혈자리는 본래 없는 것인데 누군가 있는 것으로 그릇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요?”
“내가 공부한 것으로 보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에도 가
보았지만 우리나라 산천같이 좋은 곳은 없습니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우리나라 각 고을, 각 군에 명산 하나씩을 소개하고 있는데 비단 금강산이 있다고 하여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이곳 서천군에도 명산이 있습니다. 한산에
숭정산, 서천에 천방산, 비인에 월명산이 그것입니다. 내가 젊어서 공부할 때 어느 유명한 선생님에게서 부내 복종혈에 대한 결구시(訣句詩)를 전해 듣고 외워온 것이 있습니다. 누가 지은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혈자리를 직접 본 사람이 과연 좋구나 하고 감탄하며 은유적인 시로 노래한 것입니다. 이렇게 결구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도 분명 혈자리는 있습니다. 내 평생 많은
지사나 풍수가들이 부내 복종혈을 말하며 찾는 것을 보아왔지만
이런 결구시 하나 외는 사람을 보질 못했습니다.”
부내복종 결구시
상유황리심수명(上有黃? 深樹鳴)하니
간변유초독연생(澗邊幽草獨憐生)이라
춘조대우만래급(春潮帶雨晩來急)인데
야도무인주자횡(野渡無人舟自橫)이라
위로는 누런 꾀꼬리가 깊은 나무에서 울고
산골물 가에는 그윽한 풀이 홀로 어여삐 피어났구나
봄 조수가 비를 띠고 느즉히 왔다가 급해 나가는데
들을 건너는 사람은 없고 배만 스스로 움직이는구나
[? 꾀꼬리 리, 澗 산골물 간, 憐 어여삐 여길 연]
현지의 지사(地士)들이 들려준 이야기 - 이돈직
옹(65세)
다음은 이오(二五)풍수지리연구회 회장으로 있는 이돈직(李敦稙, 65세, 서천군 기산면 월기리 거주) 옹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이돈직 선생은 취재진과 함께 직접 종천면을 돌며 이곳 저곳 마을의 위치며 지형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부터 내포 8명당이란 말과 함께 복종혈이 큰 명당대지라는
말이 전해내려 옵니다. 내포(內浦)란 과거 백제 문화권 중에서 서산 당진 예산 홍성 보령 청양 서천 부여 등의 충청도 서해안쪽을
내포 문화권이라고 합니다. 그 8명당은 첫째 예산 대흥군에 있는
해복(蟹伏)혈, 둘째 비인의 부내 복종(覆鍾)혈, 셋째 보령 성주면에 있는 모란[목단(牧丹)], 넷째 부여 남면(예전에 홍산면)의 선녀직금(仙女織錦), 다섯째 청양 비봉면에 비봉(飛鳳)혈, 여섯째
서산에 서우(犀牛)혈, 일곱째 보령 웅천에 오공(蜈蚣)혈, 여덟째
부여 은산면에 상제봉조(上帝奉詔)혈입니다.
젊어서 웃어른들에게 공부하면서 복종혈에 묘자리를 쓰면 ‘삼제갈(三諸葛) 팔한신(八韓信)이 나온다’ 또는 ‘삼성칠현(三聖七賢)이 나온다’고 들은 것이 기억납니다. 이러한 표현은 복종혈이
그만큼 큰 명당대지라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함께 현지를 돌아보며 취재진은 실례를 무릅쓰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평생을 한학과 함께 풍수지리를 공부하신 분인데 혹시 복종혈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고 계신지요?”
“이런 대 명당대지는 욕심 가진 사람에게는 절대 보이질 않습니다. 또한 천장지비(天藏地秘) 귀신사(鬼神司)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좋은 혈자리는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기고 또한 귀신이 맡아서 지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보통사람 눈에는 보이질 않고 욕심 없고 오로지 명경지수(明鏡止水)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수양이 덜 되고 마음이 온당치 못한 사람에게는 안 보인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복종혈을 찾고자 하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곳 저곳에 묘를 썼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토정 이지함도 복종혈을 찾지 못했다?
『토정비결』로 유명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 1517∼1578)은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이자 도인으로 알려져 있는 분이다.
서천에서 뵌 이항규, 이돈직 두 선생은 이토정도 복종혈을 찾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음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두 분은 설마 토정
같은 지도지사가 복종혈을 찾지 못했으랴 라고 말하며 그가 복종혈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는 전설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이토정의
부모형제의 묘가 비인이나 서천에 있지 않고 보령에 있다고 말한
이돈직 옹의 전언을 보면 이지함 역시 복종혈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마침 『서천군지』에 복종혈과 관계된 이지함 선생의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본다.
종천 땅에 부내복종의 명당터 이야기가 전국에 알려졌고 지관들이 발길을 재촉하여 이곳에 와서 헤매었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몇 년이 흐른 뒤 이지함에게도 이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펄쩍 뛰더니 “그게 명당이다” 하고선 그 길로 달려와서 이곳에 와선 백일 동안 기도를 올렸다. 그가 기도를 올린
지 백일이 가까워왔을 때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정성에 뜻이 있는 것 같아 내가 복종의 명당터를 가르켜줄 테니 그대는 구경만 하여봐라.”
하고 지형과 장소까지 가르쳐주므로 그는 여러 번 머리를 숙이고 꿈에서 깨어난 후 날이 밝아오자 그곳으로 달려가 봤다. 산신령이 가르켜 주는 장소를 발견하고 풀을 뜯은 다음 살짝 땅을 파봤다. 땅을 깊이 파지도 않았는데 금싸라기가 손에 잡혔다.
“바로 여기가 명당이다.”
그는 기뻐하며 땅을 도로 파묻고 장소를 알아두기 위해 곁에 있는 지장풀을 묶어서 표시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기쁨을
어쩔 수 없어 기꺼워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다시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산신령은 노한 듯한 얼굴로
“누가 명당자리를 구경하라 했지 그 장소에다가 표를 해 놓으라고 하였느냐. 다시 가서 찾아봐라.”
하곤 사라졌다. 토정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그 장소에 가 보았다. 헌데 막상 가보니 온통 그 부근은 지장풀이 모두 묶여 있었다. 그는 자기가 처음 땅을 팠던 곳이라 생각되는 곳을 파 봤다. 금싸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
옆을 또 파 봤다. 그래도 금싸라기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주위를 파 봐도 금싸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또 잠이 들었다. 그때 산신령이 또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대가 산세 지세를 잘 볼 줄 아는 학자이기에 내가 진짜 명당자리는 이런 곳이라고 명당 자리를 가르켜 준 것이지 그대가 쓸
명당은 아니야…”
하고는 사라졌다. 그래서 토정은 발견은 하였으나 두 번 보지를
못하고 떠나갔다. 그가 죽을 때 그도 천하의 명당은 종천에 있는데 하고 죽었다 하는데, 그의 말을 들은 지관들이 종천들을 쑥바다로 만든 것은 물론이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명당터는 종천리 1구 2구와 낭평리 신검리 근방의 들이라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지관들이 많이 드나들며 나름대로 명당터라고 하며 묘를 쓰고 있지만 금싸라기가 나오는 명당 자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출처: 『서천군지』)
몇몇 지리서에 소개된 비인 복종혈 이야기
서점엘 가면 한국의 풍수지리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는 지리서들을 손쉽게 접해 볼 수가 있다. 그 책들에는 한반도 안에 있는
모든 명당터가 총 망라되어 있으며 책을 쓴 저자는 지리에 통달한
대 지도지사인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천문보다 더 어려운 것이 지리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 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인류사를 통털어 지리학자는 100년에 한 명꼴도 안 난다”고 하신 안운산 종도사님의 법언 말씀을 비추어 볼 때, 세상에
나와 있는 지리서들은 절대적인 지침서로 볼 수는 없다. 독자들은
다만 복종혈이 얼마나 큰 기운을 간직한 혈인지는 인식하는데, 아래 내용을 참고 자료 정도로 보아주길 바란다.
◇ 乙辰方三十里許 伏鍾形 萬壽山 太祖
을진방삼십리허 복종형 만수산 태조
金枝山 中祖 月明山 祖山 三番起落 甲卯行龍
금지산 중조 월명산 조산 삼번기락 갑묘행룡
壬坎剝換 亥坐巳向 壬坎得坤 權鼓峰案
임감박환 해좌사향 임감득곤 권고봉안
左右仙女護衛 而 前舞童列立 三千將僅
좌우선녀호위 이 전무동열립 삼천장근
八白炯花 施中列立 穴下 馬蹄聲 不絶 鍾川之上
팔백형화 시중열립 혈하 마제성 불절 종천지상
開伏之下 寅葬卯發 三聖七賢 公侯將相
개복지하 인장묘발 삼성칠현 공후장상
代代不絶 千軍守護之地
대대불절 천군수호지지
(비인현에서) 을진방 삼십리 허락하는 곳에 복종혈이 있다. 만수산이
태조산이고 금지산이 중조산이며 월명산이 조산이다. 삼번기락에 갑묘행룡이요 임감박환에 해좌사향이며
임감득곤이다. 권고봉이 안산으로
좌우에 선녀가 호위하여 있고 앞에는 무동이 열립하여 있다. 혈 아래에 말발굽 소리가 끊이질 않는데
종천의 위와 개복의 아래에 혈이
있다. 인시에 장사를 지내면 묘시에 발복한다.(아주 속히 발복한다는 말인 듯) 세 명의 성인과 일곱
명의 현인이 나오며 공작, 후작을
비롯한 장상이 대대로 끊이질 않는 곳으로 천의 군대가 수호하는
땅이다.
(당나라 때의 풍수지리학자인 두사천이 썼다라고 전해 내려오는 이
글귀는 종천면에 소재한 서해종합자동차정비공장 대표 권혁구 씨가 소장하고 있었다. 권혁구 씨는 평생을 복종혈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하며 현재 살고 있는 집터가 복종혈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 비인(庇仁) 월성남(月城南)인 종천상(鍾川上)이요 개복교하(改服橋下)의 복종혈(伏鐘形), 임감용(壬坎龍)의 갑묘입수(甲卯入首)의 해좌(亥坐)다. 만대영화(萬代榮華)에 장상(將相)의 땅이다.
이는 희세(稀世)의 보(寶)이지만 상인(商人)이 남래(南來)하여 부시(負尸)하고 입장(入葬)한다고.
비인(庇仁)에 복종형(伏鐘形)이다. 백자천손(百子千孫)이요. 삼성칠현(三聖七賢)과 장상(將相)이 세세(世世)로 불핍(不乏)하는
땅이다.
(풍수지리 『만산도萬山圖』(김영소 저)에 나오는 글귀. 여기서
상인商人이란 단순히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힘없는 하층민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보여진다.)
◇ 문수산 아래 부내
복종(伏鍾)은 옥룡자(玉龍子)도 결록(訣錄)에 남기기를 우리 한반도의 제일갑지(第一甲地)는 금강산(金剛山)
천황봉(天皇峰)의 상제봉조(上帝奉朝)형이 제일(第一)이요, 둘째로
말한 것이 문수산 아래
복종을 말하고, 삼성칠현(三聖七賢)이 연출(連出)한다고 하였고
해좌(亥坐)라고 하였다. 차혈(此穴)인즉 곤득을진파(坤得乙辰破)로써 당대(當代)에 발복(發福)하여 부(富), 귀(貴), 수(壽) 불가형언(不可形言)이요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이다.
(『유산록(遊山錄)』(장익호 저)에 나오는 글귀)
복종혈은 이미 100년 전에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에서
그 기운을 걷어서 쓰셨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세상에서는 아직도 복종혈에 대한
수많은 풍설이 떠돌고 있다.
그런데 100년전 하늘 땅 기운을 자유자재로 잡아 돌리시며 천지공사를 집행하셨던 상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인(庇仁) 복종(覆鍾)이 크다 하므로…”
이 말씀은 ‘세상사람들이 비인에 있는 복종 혈자리가 어디인지
모르면서도 다만 큰 기운을 갈머있는 대 혈자리라는 것을 알고는
지금까지 얘기해 왔다’라는 의미이다. 아울러 세상사람들이 명당대지라고 일컬어온 복종혈이 말 그대로 큰 기운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구절 다음에 나오는 상제님 말씀이다.
“이에 (복종혈의 기운을 걷어서) 행군(行軍)하는 북 도수를 보노라.” (괄호안의 말씀은 『도전』에는 없으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임시로 삽입한 말)
상제님의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수천년 동안 주인을 기다려온
복종혈의 기운은 그 방향이 정해졌다. 과연 복종혈의 기운은 어디로 간 것인가? 바로 100년 천지공사를 마무리하는 3변 추수도운에서 대병겁기에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상생의 육임 도꾼(道軍)에게 그 기운이 온 것이다. 옛 서적에 나와있는 그대로 삼제갈(三諸葛) 팔한신(八韓信)과 같은 대군사(大軍師)와 장군(將軍)들이 나오고 삼성칠현(三聖七賢)과 같은 성인(聖人)과 현인(賢人)들, 그리고 공작(公爵) 후작(侯爵) 등 장상(將相)이 나오는 기운이 증산도의 육임 도꾼, 제세핵랑군의 출범과 함께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육임 도꾼에 적극 참여하는 자에게는
천지의 진진(津津)한 녹(綠)이 붙는다
취재진의 얕은 지식으로 상제님이 집행하신 이 ‘행군하는 북도수’공사의 핵심을 뚫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씀의
전체 내용을 서로 연관시켜 보면 공사의 대의를 피상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으레 군대가 열을 지어 행군을 할 때는 북을 쳐서 사기를 북돋운다. 그 북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전장터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고 승리에의 용기를 북돋우는 강력한 무형의
에너지이다.
그런데 이번 개벽기에 사람을 살리는 상생의 도꾼(道軍), 증산도의 육임군이 결성되어 세상을 향해 나갈 때 치는 북은 가죽으로
된 북이 아니라 쇠로 된 북이다. 바로 복종혈의 쇠북 종(鍾)이다.
한편 이 종을 치는 북채가 독특하다. 다름 아닌 수저다. 상제님은 황응종 성도를 태인의 신경원 성도에게 보내어 새 수저 한 개를 가져오라 하셨다. 신경원 성도는 복록소를 맡은 성도이며 수저는 밥을 먹는 기본적인 도구다. 그 수저로 종을 치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행군할 때에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祿)이 진진(津津)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따라서 이 공사는 육임군, 핵랑군에게 녹을 붙이시는 공사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핵랑군에 가입하여 세상을 살리는
육임포교의 대열에 앞장서는 자에게는 진진(津津)한 천지의 녹이
붙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진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솟아나듯 푸짐하거나 매우 재미스럽다’이다. 솟아나듯 푸짐하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떨어지지 않는 천지의 녹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鍾)을 치는 수저는 태을주와도 일맥
그런데 『도전』 말씀을 살펴보면 수저란 단순히 밥 먹는 유형의 도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다. 상제님은 태을주를
밥숟가락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하루는 공사를 행하실 때
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
이와 같이 태을주를 써 놓으시고 성도들에게 “이 형상이 무엇
같으냐?” 하시니 김갑칠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밥숟가락 같습니다.” 하니 내가 동서양을 밥 비비듯 할 터이니 너희들은 이 숟가락으로 먹으라.” 하시니라. 또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 모양이 숟가락 같으니 녹표(祿票)니라. 이 녹을 붙이면 괴질신명이 도가(道家)임을 알고 들어오지 않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59:1∼4)
행군할 때 치는 종은 비인의 복종이며 이는 수저를 북채로 하여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수저는 태을주이다. 그렇다면 복종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란 무엇일까? 바로 천지의 율려 기운을 끌어모으는 태을주의 소리가 아니겠는가?
본 취재에 큰 도움을 주신 서천군청 사회복지과 이기원 과장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