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지혜와 명상 / 파드마 카포 강설 (박성준 번역)
둘째 특별한 기초수행
5. 절 (Prostration, 拜)
절(拜)은 자기가 의지하는 분에 대해 행해지거나
구루 요가(Guru Yoga)의 한 부분으로써 수행된다.
절은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특히 육체적 카르마)의 씨앗을
정화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의 하나다.
카르마의 장애와 번뇌를 소멸시키며 특히 我漫을 꺾는 효능을 발휘한다.
티벳어 '착첼(phyal tshal)'은 '손을 청하다' 란 뜻인데,
붓다의 手中에 있는 몸·말·마음의 德性을
자신도 부여받기를 청하는 것이다.
몸의 정해진 부위와 관련된 절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수리와 이마, 목, 가슴 등 네 부위의
한 가운데를 차례차례 닿게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정수리와 목·가슴을 닿게 하는 방법이다.
뒤의 방법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정수리를 닿게 하는 것은 붓다의 몸을 얻으려는 바램을,
목을 닿게 하는 것은 붓다의 말씀을,
가슴을 닿게 하는 것은 붓다의 마음을
얻으려는 바램을 각각 상징한다.
이 세 가지(붓다의 몸·말씀·마음)를 성취하려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지혜와 方便을 마스터해야 한다.
몸의 세 부위를 닿게 할 때,
우리의 합장한 손이 바로 이 지혜와 방편을 상징한다.
合掌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마하야나(Mahayana, 대승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주붙인 손바닥 안에 엄지 손가락을 숨긴다.
단지 무릎이나 이마 그리고 손바닥을 땅에 닿게 하여 절할 수도 있고,
몸 전체를 완전히 땅에 닿게 하여 완벽한 절을 행할 수도 있다.
공간이 넉넉하다면 언제나 완벽한 절을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아무튼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것이 포인트다.
휴식은 땅에 엎드려 있는 동안이 아니라,
몸을 일으키고 난 후에 취한다.
모든 사항이 올바른 절차에 걸맞도록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규칙을 잘 알면서도 그것에 따르지 않는 일은
예사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절하는 도중에 게으른 생각을 일으켜
엎드린 채로 쉬는 행위는 불운한 再生을 초래한다.
몸을 일으킬 때에는 반드시 손바닥으로 땅을 짚어야 한다.
손가락 관절로 떠 받치고 일어나는 것은
절의 대상에 대한 輕視(귀찮고 진지하지 않다는 표시이므로)를 의미한다.
그 댓가로 그는 장래에 鼓脹症 있는 동물로 태어난다.
잘못 행해지는 절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영양가 높은 음식물도 잘못 조리해 먹으면 목숨을 앗아가듯이.
절은 완벽할수록 효과적이다.
쭉 뻗친 몸에 닿는 땅의 원자(atoms)수에 비례하는 공덕이
절의 결과로 축적되는 까닭이다.
올바른 의도로 절차에 맞게 행해진 절의 결과는 굉장히 커서,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장차 轉輪聖王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만주쓰리 비끄리디따 쑤뜨라(文殊師利 神變經)에서
붓다 번뇌 있는 절의 허물과
순수한 절의 이익을 자세히 설명하신다.
이와 같이 절은 德을 쌓는 강력한 수단이다.
만일 절의 수행을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잠재적 효능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는
그 방법이 옳지 않았거나.
자기 자신의 마음밭에 모든 행복을 초래하는
카르마의 生育을 방해할 정도로 강한 迷惑이
무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경에 붓다는 문수보살에게 말한다.
모든 번뇌 가운데에서 憎惡가 가장 파괴적이다.
증오는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행복을 부르는 행위를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절을 하는 동안 트리스칸다 경(Triskandha sutra)을 암송한다.
35분의 붓다 이름을 부르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성실히 지키지 못해왔던 허물을 참회하는 것이다.
한 차례의 암송이 끝날 때마다 약 40여 회의 절을 하게 된다.
세 가지 측면의 절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몸을 움직이면서 육체의 절을,
경을 암송함으로써 언어(言語)의 절을,
대상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짐으로써 정신의 절을 성취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50회 정도의 절을 시도하다가 100회,150회 ? 로
차츰 횟수를 늘여가는 게 현명하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목표를 세웠다가는
마음 먹었던 것과 딴판으로 지쳐버리기 일수다.
첫댓글 네.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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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