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날씨가 며칠 계속되더니 주말을 맞아 반짝 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경기/강원지역에는 눈도 내렸다고 하지요.
월요일 되면 풀린다고 하는데 포근하다가 추워져서인지 매섭게 느껴집니다.
사실 예전의 추위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난주는 시간 여유가 있어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큰녀석을 맡아 15개월간 새벽잠을 잃어버리시고
수험생이라는 부담감으로 노심초사하시며
집을 비울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좋아하는 여행도 제대로 못다녀오셨지요.
큰녀석이 명문대는 아니지만 원하던 대학/학과에 합격하여
어머니의 마음고생, 몸고생이 조금이나마 보상된듯하여 이제는 마음 편합니다.
어머니의 노고에 어떤 보상이 답이 되겠습니까만
여행 좋아하시는 어머니 조금이나마 즐겁게 해드리고자 여행을 계획하였던 것입니다.
계획을 잡는 중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며칠 숙박 대신 당일치기로 여기저기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아내는 강의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만....
어머니와 둘이서만 여행하는 것보다는
가까운 분들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둘째이모, 세째이모와 함께 하기로 권유드렸더니
어머니는 물론, 이모들도 참 좋아하시더군요.
그래서 첫날은 우포늪, 운문사, 통도사에 다녀왔고
둘째날은 호미곶해맞이공원을 거쳐 죽도시장 구경을하고 왔습니다.
세분 다 노래를 좋아하시기에
원래 항상 CD체인저에 꽂아놓고 있던 박강성, 김광석 노래 외에
양희은, 올드팝송 등의 CD를 준비하였습니다만
전혀 쓸모가 없었습니다.
처음, 김광석의 노래 한두곡을 들으시더니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했지만'을 따라하기 시작하시더니
여행기간 내내 듀엣 혹은 트리오로 노래를 이어가셨습니다.
중간중간에 살아오면서 어려웠던 얘기, 좋았던 기억,
외할머니에 대한 회상 등의 대화가 오가기도 했지만
차안은 세분의 환상적인 화음이 어우러진 노래방이 되었습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 합창반활동을 하고 계시는 엄마, 둘째이모와
60대 중반의 연세에도 젊은 주부들과 함께 가요교실에 열심인, 노래짱 세째이모는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엘토로 화음을 이루시기도 하고
세분 모두 소프라노로 돌림노래를 부르기도 하시며
경치에 따라, 대화 주제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노래를 함께 하셨습니다.
갈대가 보이면 '숨어우는 바람소리', '짝사랑'
바다가 보이면 '초록바다', '섬집아기'
호미곶에서 철을 잊고 핀 민들레를 보시고는 '민들레 홀씨되어'
가을같은 따스한 날씨를 즐기시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외 누가 먼저 제목을 대면 함께 노래를 하시는데
너에게로 또다시, 겨울아침 창가에서, 꽃밭에서, 얼굴, 고향의 노래,
친구여, 큐, 만남, 이마음 다시 여기에, 초연, 그날, 님그림자, 천년바위,
사랑으로, 사랑이야, 봉숭아, Unchanged melody, 라노비아
그외에도 기억해내지 못한 수많은, 주옥같은 팝송, 깐쏘네부터
동요, 가곡,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에 흠뻑 취하였습니다.
간간이 시를 암송하기도 하였는데 신석정님의 '산수도'가 기억에 남네요.
하긴, 굳이 유명시인의 시가 아니라도
이틀동안 노래하신 모든 노랫말들이
감성적이고 자연을 보듬고 잔잔한 감흥을 주는 시어였지요.
그 연세에 그렇게 감성적이고 감동을 잘 받으신다는 사실,
세분 모두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셨음에도 4남매를 보두 반듯하게 키워놓으신 점,
지난날을 회한으로 돌아보시기보다는 잔잔하게 추억의 한페이지로 남겨두고
오늘에 만족하실 줄 아는 긍정적 인생관,
세분의 인생사와 현재의 가치관이 모두 제게는 금과옥조이며
제가 나이들어가며 닮아가야할 모습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세자매의 우애처럼
우리 형제자매도 더욱 가까이, 마음으로 다가서야겠다 싶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저는 더욱 큰 것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행복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냅니다.
山 水 圖(모셔온 글)===================================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여……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가마귀 소리 골작에 잦은데
등넘어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듯 맑아라
푸른산 푸른산이 천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흘러 만년만 가리
-- 山水는 오롯이 한폭의 그림이냐 ----신석정 시인
첫댓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게 사시는 세자매이십니다. 그 연세에도 같이 화음을 만들 수 있는 열정과 감성... ^^
대학 합격도 축하드리고, 효성스런 그대 모습! 더욱 보기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