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조 남 훈
만우절은
용서받을 만큼의 거짓말에
웃음을 꾹꾹 눌러 선물하는 날
각박하기 그지없는 세상
일 년에 단 하룻만이라도
웃음농사 넉넉히 지어보라고 만우절 있다
귀 열고 웃음꽃 피워보라고
일 년에 단 하루 허락받은 날이건만
하루라도 거짓말을 안하면
혀에 가시가 돋는 정치인에게는
일 년 삼백 예순 닷새가 만우절이라 해도 모자랄 것이다
오늘은 만우절
슬픔만 보채어 힘들어하는
민초들에게
웃음으로 용서받을 만큼의 거짓말을 선물하라
나 원고청탁 받았다
나를 詩人이라 불러다오
소설 쓰는 소리 마라
아니면 말고
오늘은 만우절
만우절시편(1)
매품
놀부형 집에서
매품 팔고 돌아오는 저녁
흥부의 서러움을 대신 울어주던
무논의 개구리 울음을 삼키며
우리 이 차제에 삭발하고 머리띠 두르자 한다
만우절시편(2)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 영수증을
제 애비 무릎에 올려놓고
연말정산에 쓰라며
다음은 아빠가 뛰어들 차례라는
그 말도 잊지 않는
청이는 신세대
역시나 신세대는 신세대
물바지 입은
푸짐펑펑한 엉덩이가
눈이 부시게 훤히 비친다
백년에 꼭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다
만우절시편(3)
미화원의 독백
저에게 하고싶은 말 있으시면
바람으로 쓰세요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당신이 다녀가셨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왕 쏘실바엔
제 심장을 겨냥해
한 발짝만 당겨 꾹꾹 눌러
정조준 해 쏘세요
만우절시편(4)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
마스크 쓰고 경주하다 말고는
잠이 든 토끼를 깨워
마스크 쓸 일 없는
용궁으로 가자 꼬득인다
만우절시편(5)
마지막 고백
하루가 어둡게 그늘로 쌓이도록 구박하는
아내를 향해
당신 애인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 했다
그 말도 내 진심이다
만우절시편(6)
옥수수 먹는 밤
영감의 수염을 움켜쥐고
젊은 날 시집살이 환하게 피어올리며 분풀이하듯
요놈 요놈하며
수염을 사정없이 당기며
할머니 혼잣말로
“이빨은 청춘이네”
조용히 얼굴 붉혀
무슨 살풀이라도 하듯
요놈 요놈하며
할아버지 수염을 마구마구 뽑아댄다
옥수수 먹으며
쿠데타 일으키는 밤
만우절시편(7)
단수
여보, 여보, 여보가 숨가쁘다
물이 단수됐어요 하며
우리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하지요
물의 단절이 호재인 양 호들갑이다
외식하자는 신호를 받고도 시침 떠는 사내
어디 단절된 물이 수돗물단지 뿐인가
수돗물단지도 늙었는가 봐 한다
늙은 아내 이마에 불빛이
반생의 나이를 지우며
숨가쁘게 흔들렸다
만우절시편(8)
반짝반짝
뒤안 밭두렁에서 주은
마악 깎지를 찢고 나온
포르라니한 녹두 몇 알
아내의 결혼반지
비취알 같아
흰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지
녹두알 반짝반짝
어디서 외색했느냐 묻는
아내의 눈빛도 반짝이는
훈훈한 저녁
만우절 시편(9)
特種記事(특종기사)
그대가 명색이 大記者라면
特種記事 하나쯤 날려야지
내 기사하나 제공하랴
역병이 창궐하는데도
칸막이도 없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13人이 모여(최후의만찬 레오나르도 그림)
열두제자와 만찬을 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발하라
저 최후의 만찬을 고발하라
추시라(추미애장관의 젊은 날의 애칭)의 말을 빌면
K방역을 지키지않은
죄의 정황이 차고 넘친다
그대가 그리스도를 고발하면 특종기사다
외신들도 지칠 줄 모르고 퍼나를 것이다
그대가 대 기자라면
최후의 만찬을 알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함께 고발하라
더불어 예수의 무면허 의료행위도 고발하라
대기자가 쓰는 기사는
특종이다 특정
역시 역시나다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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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촌 36집 종간호/ 조남훈 동인 작품
지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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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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