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 [황해문화] 2007년 봄호
오늘 이 땅에 되살아오는 김산
김 영 범
결국 부지런과 뚝심이 일을 내도 내는 거지! 작가 이원규의『김산 평전』(이하, 『평전』)을 앞에 놓고 문득 드는 생각이다. 재작년 가을에 6백 쪽 넘는 분량의 전기물인 『약산 김원봉』을 내놓더니, 1년 만에 그만큼 분량의 묵직한 평전을 또 내다니......나같이 허방하고 게으르게 사는 먹물은 부끄러움에 어디 고개를 들겠는가. 솔직한 심정이다. 10년 전쯤 만주지역의 우리 독립전쟁 현장을 답사하고 그 르포기록을 인상 깊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펴냈을 때의 굳은 초발심이 다시금 솟구치며 크게 위력을 발하는가 보다. 하긴 두 책의 연이은 집필과 출간은 단숨에 해치운 일이기보다 오래 묵히며 소리 소문 없이 진행시켜 온 근실한 준비작업의 결실일 것이다. 저자에게 축하와 함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몇 해 전부터 우리 출판계에 평전 붐 비슷한 게 일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인물평전 쓰는 법』이라는 대중적 저작도 나와 있다고 들었다. 이는 두 갈래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하나는, 지식대중들의 자기성찰 욕구가 강해지면서 그 준거로서의 인물 전기나 평전에 대한 수요가 점증세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래저래 어려운 세상살이에 지친 대중들의 집단적 불안과 환멸감 같은 것이 과거의 위인․영웅․걸물들을 영상물 또는 출판물을 빌려 현실로 자꾸 불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전』의 출간을 꼭 이런 맥락에 집어넣고 해석해야만 할 건 아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하고 누군가는 준비하고 있어야 할 일이었다. 적어도 님 웨일즈(Nym Wales)의 『아리랑』이 준 감동을 오래 기억하거나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 아주 사라져버리지 않는 한에서는. 그러고보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것도 단순한 학구적 관심이나 지적 탐구욕과는 다른 차원의 어떤 역사적 사명감이랄까 절실한 책무의식이 발동해서인 듯하다. 이 책의 집필을 마치 숙명처럼 느꼈고, 집필하려고 마음먹었더니 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발견했으며, 결국은 김산과 심리적 동일시에 빠져갔음을 저자는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행복한 경험이었다 하겠는데, 그런 동일시는 저자만의 경험인 것도 아니다. 이영희선생도 그랬었음을 『아리랑』의 서문에서 고백했고, 평자도 20여년 전 『아리랑』을 처음 읽었을 때 그랬었다. 다른 수많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김산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집필에 착수했으면서도 저자는, 바쿠닌(M. Bakunin)에 대해서 카(E. H. Carr)가 그랬듯이, 혹은 최근에 정운현이 임종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그랬듯이, 평전작가로서 대상 인물과의 ‘비판적 거리’를 상당 정도 유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서술의 전면에 절대 나서지 않고 완전히 자기를 감추면서 일체의 평언 없이 오직 객관적 입장의 관찰자요 보고자로서 묘사하고 진술한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태도의 효과가 기대하는 방향으로만 나타나거나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판적 거리’ 취하기란 그 이상으로, 균형 잡힌 비판과 냉정한 평가를 포함하는 ‘비판적 개입’과 같이 가야만 효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전』에서는 그런 균형추가 제대로 잡혀있질 않아 보인다. 김산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 또는 평가들이 분명 있는 것 같긴 한데, 직접 표출되지는 않고 거의가 간접화되어 있다. 건조한 사실 전달의 서술과 묘사 일색이지, 비판적 접근이 반영된 판단문이나 평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테면 한용운을 통해서 고은이, 김수영을 통해서 최하림이 그랬듯이, 혹은 박홍규가 늘 그렇듯이, 평전 대상과 일체화한 듯하면서도 수시로 떨어져나오면서 자유로운 호흡으로 자기식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데서 평전 읽기의 진짜 재미가 만끽될 터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시도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너무 조심스러운 것이고, 어떻게 보면 너무 눌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 김산이라는 인물 자체의 무게, 『아리랑』이라는 선행 텍스트의 무게, 그 후의 2차 주해서나 관련 연구물들의 무게, 그러니까 사실과 자료의 총량 무게에 말이다. 그런 상태라면 저자와 김산과의 관계 맺기가 완전한 내포적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뜻밖에도 김산이 안창호의 경륜과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고 자기 인생에 두 번째로 큰 영향을 끼친 이로 꼽고 있는데, 그 이유 혹은 심리적 기제가 무엇일지를 『아리랑』의 표면적 서술을 넘어서 한번 추적해 보는 것이다. 저자의 비평이 기대 또는 요구되는 대목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좋은 인물전기라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 골고루 관심과 역량이 배분 투입되고 있어야 한다. 자료로써 아우러지는 사실적 지식계몽의 측면, 자료 공백을 메꿔줄 폭넓은 상상력 가동의 측면, 깊이 있고 설득력 높은 독창적 비평의 측면, 그리고 재현의 리얼리티를 극대화시켜 줄 풍부한 표현력의 측면이 그것이다. 특히나 ‘평전’임을 표방했을 때는 비평의 측면을 절대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이고, 독자가 저자 자신의 목소리도 충분히 들을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맞다.
『평전』은 사실과 표현의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성취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인다. 십여 차례의 현지답사 덕택일 지리적 현장감과 국내외에서 수집한 광범위한 자료 활용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 되어주고 있다(그러나 드문드문 달린 문헌주는 엄격한 기준 없이 상당히 임의적․선별적인 것 같다). 책의 첫머리부터 마지막 장까지 세부적 사실과 정황들을 일급 역사가 이상으로 충실하게 제시하고 매우 정확하게 재현시켜 놓았다. 광주봉기 발발에서 해륙풍 탈출까지의 상세한 서술과 박진감 넘치는 상황 묘사는 정말로 압권이다. 대화 장면이 빈번히 삽입된 것도 평전 치고는 특이한데, 그것들이 소설적 장치랄까 연극영화적 시퀀스를 이루어 자아내는 실감의 크기도 대단하다(다만 대화의 맺음 부분이 일관되게 서울말체여서 어색해 보이는 곳이 많았다는 점도 지적해 둔다).
그런데 자잘한 일화의 소개나 세부묘사에까지 지나칠 정도의 정성을 쏟은 것과는 달리, 비평은 아주 미약하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모름지기 평전이라면 대상 인물의 언설, 행동, 사고방식, 가치관에 대한 비판적 평설이 적시에 나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때 일반독자들은 저자의 평가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자기의 느낌이나 판단과 견주어보면서 사고의 폭과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평전』은 개정 보완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김산에 관한 얘기를 『평전』에서 처음 접하는 어린 세대라면 지금 수준에서도 얻게 될 정보나 감흥이 대단히 클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을 먼저 읽었거나 해서 김산의 생애와 행적을 상당 정도 알게 있는 경우에는 단순한 세부묘사의 보강이나 사실의 확장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안에서 찍은 김산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연전에 작고한 경제평론가 정운영선생이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풍모만 아니라 성격도 비슷한 데가 많은 것 같다. 고지식하달 만큼의 원칙주의자, 오직 진정성에 터해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던 사람, 무서울 만큼의 자기극복 의지로 늘 스스로를 규율하고 몸과 지성과 정신을 단련시키던 금욕주의자, 사고의 극한까지 밀고나가지 않으면 못배기는 래디컬리스트, 만사에 최선을 다하고 성(誠)을 실천하면서 그 결과가 낳을 이득이나 손해에는 둔감한 사람. 오죽하면 김산을 체포, 취조했던 일제 기관의 조사보고서에 그는 “절대로 전향하지 않을 놈”이라고 씌어있었겠는가. 그런 면모가 님 웨일즈에게도 바로 간파되어, 그는 “거짓과 허위를 전혀 모르는 사람”, “참된 도덕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동지들 간에는 ‘로베스피에르’로 통하기도 했지만, 해륙풍 소비에트에서 숙반위원(肅反委員) 직을 맡기는 내켜하지 않았다. 동지의 죽음을 너무도 슬퍼하며 조시(弔詩)를 짓고, 동지의 투쟁 이력을 기어코 소설화시킬 만큼, 더없이 다정다감한 내면을 지닌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인간적 매력이 여러 여성들과의 인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작 김산 자신은 늘 거부하려 애를 썼지만.....그러고보니 그를 일컬어 ‘고결한 낭만주의적 인텔리 혁명가’라고 한 이영희선생의 인물평은 대단히 함축적이다.
김산에 대한 저자의 인물평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그의 지력, 사고력, 의지력, 체력, 다양한 경력을 모두 높이 평가한다.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면 자결할 사람”으로 그리면서 김산의 너무도 꼿꼿한 삶의 자세를 부각시켰다. 그 표현은 김산이 거의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명예심과 자존심이 강했음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이런 성격이 결국 그를 죽음의 길로 몰고 갔다. 중공당 당적 회복을 위해 연안(延安)에 갔다가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한 것인데, 그에게 당적은 ‘존재의미’와 같은 것이었고, 당적 회복은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왜? 당적 회복은 동시에 전향혐의자의 누명을 벗는 것이기도 했고, 그래야만 비로소 삶의 가치가 회복되는 것으로 김산은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강행했던 연안행은 끝내는 육신의 죽음의 길이 되고 말았지만, 거기서 님 웨일즈라는 탁월한 기록자를 만나게 됨으로써 그의 이름과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고 부활하게 되었다. 그렇게 김산을 역사적 존재로 살려놓은 『아리랑』 책에 대한 평설도 『평전』의 어느 부분에선가는 있었으면 좋았을 법했다.
김산과 님 웨일즈, 두 사람 관계의 정확한 성격과 밀도에 대해서는 『아리랑』 독자라면 누구든 관심과 흥미를 보일 법했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그럴 듯한 추측들이 제시된 바 있다. 상당히 곤혹스럽기도 했을 그 부분을 『평전』의 저자는 깔끔하고 솜씨있게 처리해놓아서 보기가 참 좋다. 동양과 서양이, 또는 강자와 약자가, 상호 배척하는 타자로서 마주서는 게 아니라, 서로 받아들여 혼융이 되는 일자의 모습으로 껴안는 상징적 장면인 듯이도 여겨진다. 그러나 김산과 한위건과의 화해 부분은 『아리랑』의 서술 톤을 감안해 볼 때 너무 매끄럽고 좋은 분위기의 결말로 몰아간 듯하고 작위성이 지나치게 강하다. 김산의 성격이나 당시의 심리적 정황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쉽게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졌을지 의문시된다.
역사에 가정법은 허용되지 않는다지만, 이런 상상을 잠시 해본다. 만약에 김산이 연안에서 당적이 회복되고 살아서 상해로 곧 귀환했다면......당적이 회복되지 않은 채로라도 상해나 남경으로 돌아왔다면......아마 그는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직을 통해서 중일전쟁 발발 이후 8.15 해방 때까지의 재중국 독립운동 진영의 형세를 크게 흔들거나 바꾸어놓았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조직의 결성과 김산의 참여의 의미가 별로 주의 깊게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개정시에는 보충 서술되었으면 한다.
저자도 상당히 고심했겠지만, 책 제목을 『장지락 평전』으로 고쳐붙이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김산이란 이름이 저자의 주장처럼 수많은 무명 독립투사들의 대유어 또는 상징적 기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름을 표제에 드러내는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바로 그만큼 신비화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게다가 ‘김산’은 오직 『아리랑』 출간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가명으로 실재감이 없다. 이에 비해 ‘장지락’은 서른 네 해의 생애를 살다 간 한 자연인의 실존적 존재감을 그대로 드러내 줄 수 있는 고유명사이다.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Song of Ariran을 지금까지처럼 『아리랑의 노래』로 촌스럽게 번역하지 말고, 우리말 표현 그대로 『아리랑 노래』로 표기하도록 하자.
김산의 생애는 비록 짧았지만, 그의 삶의 기록은 여러 관점에서 읽고 달리 해석해 볼 수가 있다. 지식인의 관점, 노동자의 관점, 운동조직 활동가의 관점, 민족주의자의 관점, 여성의 관점 등등....『평전』에서는 주로 지식인의 관점이 관류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앞으로 다른 여러 관점에서의 평전이 새로 씌어질 수도 있을 것이고, 각각의 관점을 대표하는 이들에 의한 공동저술의 평전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김산은 자꾸 복제되고 거듭나면서 우리의 정신 속에 부활해야 한다.
사람들이 갈수록 의(義)를 등지고 이(利)만 좇기에 급급한 부정의, 몰염치의 상태로 우리 사회는 치닫고 있다.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관료, 법조인, 의료인, 대학인 등 소위 ‘힘 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좁은 시야에서 자기 집단, 자기 개인의 소리(小利)에 매몰되어, ‘더불어 존중하며 평화롭게 삶’의 대의(大義)를 몰각하거나 팽개치고 있다. 일반지식인층도 전문직업인층도 온갖 궤변과 억지 논리로 자기기만을 불사하면서 입신출세의 기회만 이리저리 엿본다. 최소한의 품격과 절조도 내던져버리고 다들 그렇게 윤리적 벌거숭이가 되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흉하다. 그렇게 마음 붙이기가 어려워져만 가는 세상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의인을 갈구하고 기다릴 때, “내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 내 자신에 대해서는 승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며 다가오는 사람, 그가 김산인 것이다. 혼돈의 시대에 더욱 그리운, 우리 마음 속의 북극성으로서 말이다.
----------
김영범: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955년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주요논저 『한국 근대민족운동과 의열단』, 『동아시아 근대의 폭력』(공저), 「신채호의 ‘조선혁명’의 길」, 「독립운동전선의 혁명이념과 신국가건설 비전」, 「기억에서 대항기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