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일본리포트] 발로 가본 일본의 농어촌
지난주 3박 4일동안 일본의 남단인 마츠야마, 구마모토를 다녀왔다.
흔히 일본은 우리나라 크기의 4배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은 면적이 37만7835㎢(현재 러시아 영토로 되어 있는 구나시리 섬등
4개의 섬인 북방영토 포함)로 9만8000㎢ 인 한국보다 약 4배가 크다.
그런만큼 행정구역 또한 1개의 도(도쿄都)와 또다른 1도(홋카이道), 2개의
후(府:大阪府, 京都府), 그리고 43개의 현(縣)이 있다.
그동안 나는 약 20여년간 취재로 일본 전국을 돌아다녔다.
취재 내용도 유명한 도시, 잘 알려진 관광지보다는 일선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나는 내심 일본지리, 일본 지방도시에 관한한
취재를 통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이번 취재여행으로 인해 이런 자부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한 마디로 "신발견"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충격이라고 표현해야 될 지 나 자신
조차 매우 혼돈스럽다. 왜냐하면 그만큼 충격이 컸으므로.
갑자기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예정에도 없던 취재 여행을 떠난 나는, 우선
일본 국내선 공항인 하네다 공항에서부터 놀라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이 일본의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확인하기 위해 선택한 첫번째
목적지는 푸른바다, 푸른하늘, 푸른 섬, 드높은 태양으로 유명한 시코쿠(四國)의
마츠야마(松山).
우리 일행은 일본이란 섬나라 속에 또하나의 섬인 시코쿠 마츠야마행
비행기 티켓을 사러 하네다 공항의 카운터에 갔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바로 요금 때문이었는데 한사람 당 3만엔(31만원)이나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왕복이 아닌 편도요금으로 말이다.
물론 일본의 교통비가 세계적으로 비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편도
요금이 3만엔이나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홋카이도의 왕복요금이
5만2000엔 정도.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을 하면 5만엔 이하로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얼마전 잠시 서울을 다녀올 때 산 왕복 비행기 요금은 2만2600엔이었다.
평일에는 1만7000엔짜리 비행기 티켓도 있다. 그런데 일본 국내 편도 요금이
3만엔 이상이라니. 그래서 모두들 입을 쩍 벌렸지만 그래도 어쩌랴. 이것이 바로
일본의 현실인 것을. 그러나 우리가 더 놀란 것은 도쿄를 떠난 지 1시간 20분 후
도착한 마츠야마에서였다.
위로는 오사카, 아래로는 큐슈, 그리고 바다 건너 옆에는 히로시마가 위치해 있는
에히메현(愛媛縣)의 마츠야마(松山).
도쿄에서 마츠야마까지 비행기로 1시간 20분이 걸렸다.
우리 일행은 어스름 어둠이 깔린 마츠야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마츠야마 역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도고(道後)온천으로 향했다.
도고 온천은 일본 최고(最古)의 명물 온천지로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곳이다. 법흥 6년 596년에 성덕태자의 온천욕을 시작으로 무려 1400여년의 온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도고 온천의 본관건물은 오랜 역사속에 화재 등으로 개축을 되풀이,
현재는 100여년 전에 지은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본관 건물의 건축양식이 조그만 성(城)을 연상시킬만큼 특이하게 지어져,
지역 주민들이나 외부 관광객들이 온천앞에서 일부러 사진을 찍을 만큼 기념
촬영장소로도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나중에 우리 일행이 산책을 하다가 도고 온천 앞을 지날 때도, 예닐곱명의 남녀
학생들이 온천욕을 마치고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현재 이 도고 온천 본관 건물은 일본정부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도고
온천본관 보존위원회"가 결성되어 있다. 해마다 건물의 이상이 있나 유무를 파악,
보수작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온천수는 두말할 나위없이 "베리 굿"이다.
왜냐하면 온천욕을 하고 나니 차가운 날씨임에도 로션이 필요없을 만큼 피부가
촉촉하고 탄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헌데 문제는 우리 일행의 숙박에 있었다.
택시 운전사에게 도고 온천까지 가 달라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앞에서 설명한 그 유명한 도고 온천은 말 그대로 온천욕만 하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호텔이나 여관 같은 숙박시설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먼길을 달려온 우리 일행은 우선 너무나 배가 고팠고, 또한 잠시라도
두다리를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택시 운전사에게 도고 온천지
에서 괜찮은 호텔을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또 이것이 화근이었다.
약 20여년 가까이 일본에 살면서 일본의 여러 지역을 두루 돌아다녀보았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바가지 요금이라든가 관광가이드에게 속아 여행기분을
망친 기억이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이 늘 혼자 지방 취재여행을 하는 나를 안심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택시 운전사가 안내해주는 여관에서 짐을 풀고, 다다미방까지 날라다 주는
식사를 한 뒤 주변을 한바퀴 돌기 위해 밖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깜짝 놀랐다.
도고 온천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크고 깨끗한 호텔들이 무리지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숙박하는 여관은 그 중에서 가장 허름한 곳이었다.
나중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어간 카페 주인에게 들은 얘기지만, 아마도 택시
운전사와 그 여관 주인은 어떤 옵션을 맺고 있거나 혹은 친구 사이일거라고
귀띔해 주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지역에 낯선 손님들이 택시를 타고 숙박업소를
소개해 달라고 했을 때, 대개 운전사들은 일정한 소개비를 받을 수 있는 여관
으로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물론 큰 호텔은 유명관광지이니만큼 이런 옵션은
없다고 한다.
그때서야 우리 일행은 택시 운전사에게 당한(?) 걸 알고 한바탕 웃고 말았다.
모두 중소기업의 사장들로 숙박비를 걱정해야 될 정도가 아니었던만큼, 하필 그
많고 많은 호텔 중에 유독 가장 허름한 여관을 소개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껄걸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그만큼 없게 보였나보지."
그러나 이 정도의 여관은 그래도 나은 수준이었다.
일본의 좋은 점은 어디를 가더라도 공공질서가 잡혀있고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돌아본 일본 지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 마츠야마에서 구마모토까지 가려면 하루종일 걸릴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비행기 직항편이 없어 천상 기차나 버스로 가야하는데,
하루종일 가도 다 못 갈 것이라는 마츠야마 주민들의 말이었다.
사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 일행은 "설마"했다.
이웃나라인 한국에도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하루권 세상인데, 아무리
넓은 일본 땅이라 해도 설마 하루종일 걸리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 말대로였다.
도고 온천에서 벳부까지 가는데도 택시-기차-택시-배를 타고 가야 했다.
배에서 있던 시간이 꼬박 3시간이었으니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5시간
정도가 걸렸다.
배 안은 비교적 깨끗했다.
하지만 도쿄나 오사카 대도시에서 보던 질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의자없이 그냥 주저앉을 수 있는 2등석은 손님이 많지 않아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바깥 휴게실의 의자에는 젊은이들이 큰 대자로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매점 또한 자타가 인정하는 일본 특유의 친절이나 상냥한 서비스는
온데간데 없고 아무런 표정없이 물건만 팔고 있었다.
다만 인상적이 것이 있었다면 1등실에 배치된, "이방에는 구명복세트가 여섯
벌이나 있습니다"라고 큰 글씨로 써붙인 문구였다. 실제로 벽장을 열어 보니
비닐봉지 속에 단정하게 개어 놓은 구명복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날 우리 일행은 결국 교통편이 끊겨 최종 목적지인 아시기타조까지 가지
못했다. 벳부에서 택시로 기차역까지 가서 다시 특급기차를 타고 구마모토역에
가서 다시 일반기차를 갈아 탔으나, 우리가 가는 목적지가 워낙 시골(?)이어서
인지 기차는 물론 버스도 끊긴 뒤였다.
여기서 다시 역장한테 호텔을 소개받아 관광온천지로 소문난 히나구
야츠시로의 가장 큰(?) 호텔에 여장을 풀고 이튿날 목적지로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일본시골을 제대로 봤다는 것이다.
이튿날 날이 밝아 돌아 본 히나구 지역의 곳곳은, 내가 20여 년 가까이 일본에
살면서도 처음 볼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관광 온천지로 유명하다는 히나구의 가장 크다는 호텔은 너무 낡아 벽과
문들이 사각사각거렸으며, 프런트에서 접수를 받는 이는 80대의 노인이었다.
마츠야마에서도 그랬지만 서빙을 하는 아줌마(?)들은 모두 60세 이상이었고
온천에 들어가서도 젊은이를 거의 보지 못했다.
또한 곳곳에 폐가가 많이 눈에 띄었고, 재개발주택 사업이 아직 덜 됐는지
바닷가 옆이나 농가가 유난히 허름해서 왠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아리게
했다. 이같은 현상은 중소도시에서 시골로 들어갈수록 더욱 심했다.
말하자면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듯 젊은이들이 떠난 고향을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절실하게 느꼈던 또 한가지 사실. 일본인, 특히 얼굴이 까맣게 탄 농어촌
의 일본노인들이 왜 단체로 한국으로 몰려오는가 하는 그 이유 말이다.
물론 일본 국내를 여행하는 것보다 한국여행 경비가 월등하게 싸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3박4일 정도의 한국여행은 일류호텔에 묵으면서도 3,4만엔(3,40만원)
하는 곳이 많다. 일본 국내 항공 편도요금이다. 이러니 일본 시골 노인네들 누가
일본국내 여행을 하겠는가? 한국이나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는 둘째치고 가까운 곳에 가더라도 지저분하고 낡은
호텔에서 노인들만 덩그러니 남아 서비스를 하는 곳에 구태여 일부러 비싼
신칸센이나 비행기를 타고 가서 즐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젊은이들이 떠난 휑한 일본의 시골길, 한국영화 "집으로"에서 희뿌연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비포장 도로처럼 비록 그런 길은 아니었지만, 그 길
못지 않게 일본 시골길도 아스라한 향수만이 그렇게 고즈넉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 yoo jae soon >
첫댓글 松山, 참 좋은 곳이지여..... 松山는 나츠메소세키가 쓴 봇짱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또한 거리에 하이구가 써 있기도 하지요... 미리 알았으면 그곳의 맛있는 우동집을 알려드렸을텐데...혹, 大黑屋에서 우동을 드셧는지여...참, 호텔은여, 다음에 가시게되면 하나야에서...(강추)
혹시, 나고야에 오실 일 있으시면 저희 남편한테도 꼬~~옥 연락 주세여~~~ 직접 하시기 뭐하시면 tjkim 님을 통해서라도...꼬옥이여....연락없이 나고야에 다녀 가신거 난중에 제가 알면 섭섭해 할꺼예여...
아이쿠 반갑습니다. 마츠야마에 가서 나츠메 소세키와 하이쿠의 대가들이 자주 갔다는 찻집에 가서 차 한잔 하고 왔습니다. 나고야에 살고 계신다는 거 정말 몰랐습니다. 다음에 갈 때 꼭 연락 드릴께여. 읽어 주셔서 감사하구요. 도쿄에 오시면 전화주세요. 차 한잔, 혹은 맛있는 팥빙수라도 ...03-3200-9644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