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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로의 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인사와 감사 (1 코린1,1-9)
하느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그대들에게 인사를 드리오니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그대들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대들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은총 때문에
나는 언제나 그대들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으며
은총으로 온갖 언어와 온갖 지식마저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그대들 가운에서 자리 잡았으니
그리하여 그대들은 이제 어떠한 은사든지 부족함 없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을 끝까지 굳세게 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진실하시니
바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대들은 예수님과 친교를 맺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코린토 교회 분열에 대한 충고 (1코린 1,10- 17)
형제인 그대들이여,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고하니
모두 합심하여 그대들 가운에 분열이 없도록 애쓸 것이며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서로 일치하여 하나가 되십시오.
클로에 집안사람들에 의하면 그대들 사이에 분쟁이 있어
그대들은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라고 한다니
도대체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오로가 그대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그대들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까?
그대들 가운데 크리스포스와 가이오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일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오니
그대들이 내 이름으로 세례 받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고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1 코린1,18- 31)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음이나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시니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현자나 율사나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셨으니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가 드러나도 알아보지 못하였고
하느님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기로 기꺼이 작정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징을 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걸림돌, 이방인들에게 어리석음이나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니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우시며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의 몸으로는 지혜롭거나 유력한 이도 많지 않으며
가문이 훌륭한 이도 많지 않지만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어리석음을 택하시고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려고 세상의 약함을 택하셨으니
어느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들을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해 주셨으니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으니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한 성경 말씀대로 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신비, 하느님의 힘 (1 코린 2, 1-5)
형제 여러분,
내가 그대들에게 갔을 때 탁월한 언변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전하려 간 것이 아닙니다.
실상 나는 그대들 가운데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않았으니
그때 나는 약하고 두렵고 무척 떨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내 말과 복음 선포도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으니
그대들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 (2,6-16)
우리는 물론 성숙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합니다마는
그 지혜는 현세의 것도 멸망할 현세 통치자의 것도 아니니
오히려 그것은 하느님의 신비롭고 감추어져 있었던 지혜로서
그분께서 우리 영광을 위해 현세 이전에 미리 정하신 겁니다.
현세의 통치자들은 어느 누구도 이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겁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하셨도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계시하였으니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깊은 비밀도 통찰하시나이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사람들 중에 어느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 생각을 깨닫지 않고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받은 것으로 이는
그분이 베푼 은혜의 선물을 우리가 알아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지혜가 아닌 영으로부터 배운 말로 말하니
이를테면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현세적인 인간은 영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에게 그것은 어리석음으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오로지 영적으로만 판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영적인 인간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에게 조언할 수 있으리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밭, 하느님의 건물 (1 코린 3, 1- 9)
형제 여러분,
나는 그대들에게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들로 대할 수밖에 없으니
그대들에게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먹였는데
그대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며
사실은 아직도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대들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들이니
그대들 가운데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도
그대들은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나는 바오로 편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나는 아폴로 편이다.”하고 있으니
그대들은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도대체 아폴로는 무엇이며 바오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만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그대들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을 뿐이며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느님이시니
심는 사람도 물주는 사람도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같은 일을 하여
각기 수고한대로 자기 품삯을 받을 뿐이니
실상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들이요
그대들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하느님의 성전 (1 코린 3, 10-17)
나는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으니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어떻게 그 위에 집을 지을 지 살펴야 하며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으니
그 기초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면
심판 날에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저마다 한 일도 분명히 밝혀지게 될 것이며
실상 그 날은 불로 계시될 것이고
저마다 한 일이 어떤 것인지는 그 불이 가려낼 것입니다.
그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남으면 삯을 받을 것이며
그가 그 기초 위에 지은 건물이 타 버리면 손해를 입어
구원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입니다.
그대들은 하느님의 성전으로 영이 거쳐하심을 모릅니까?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도 그를 파멸시키십니다.
그대들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대들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니
그대들 가운데 현세에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며
실상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된 것임을 아신다.”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은 다 그대들의 것이니
바오로나 아폴로나 케파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의 것이나 미래의 것이나 모두가 다 그대들 것이지만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 신비를 맡은 관리인 (1 코린 4, 1-13)
우리는 그리스도의 시종이며 하느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이니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내가 그대들에게나 사람들 법정에서 심판받든 아무 상관없고
나 자신을 심판하는 것도 아니므로 양심에 꺼릴 것이 없지만
내가 무죄라는 것이 아니며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그분께서는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실 것이며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이니
그때 그대들 각자 하느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대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나와 아폴로에게 적용시켜 말하니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는 가르침을 우리가 배워서
그대들이 남을 얕보고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그대들을 남보다 더 잘났다고 보아 줍니까?
그대들이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그대들은 벌써 배가 불렀고 이미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우리를 제쳐두고 이미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들이 참으로 군림하여 우리도 함께 군림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으니
우리는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그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
우리는 약하지만 그대들은 강하며
우리는 멸시를 받는 몸이지만 그대들은 영예를 누립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까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우리 손으로 힘들여 일하니
사람들이 욕을 하면 축복해 주고, 박해를 하면 견디어 내며
중상비방을 당하면서도 좋은 말로 대해 주니
세상 쓰레기로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대들의 영적 아버지 (1 코린 4, 14-21)
그대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을 나의 사랑하는 자녀로서 타이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선생은 많을지라도 아버지는 많지 않으니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그대들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대들에게 권고하오니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대들에게 주님 안에 충실한 아들 티모테오를 보내니
그는 내가 어디서나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는 그대로
예수님 안에서 지켜야 하는 도리들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그대들 중에 어떤 이들은 마치 내가 다시는
그대들에게 가지 않을 것으로 여겨 우쭐거린다고 듣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나는 곧 그대들에게 갈 것이며 그때
그 우쭐거리는 이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은 어느 것을 원합니까?
내가 그대들에게 매를 들고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까?
패륜에 대한 단죄 (1 코린 5, 1-13)
그대들 가운데 불륜이 있다는 소문, 이교인들 중에도 없을 패륜,
심지어는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여전히 우쭐거리다니 오히려 통탄해야 하니
그런 짓을 행한 자는 공동체에서 제거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그대들과 함께 있어
나는 그대들과 함께 그런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으니
나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그대들과 나의 영이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대들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그대들의 자만은 좋지 않으니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그대들은 누룩 없는 빵이 되기 위한 새 반죽이 되십시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으니
우리는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을 쓰지 말고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지난 편지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했는데
불륜을 저지르는 이 세상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 강도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전혀 상종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대들이 아예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교우라고 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르면 상종하지 마십시오.
그런 자와는 식사도 함께 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찌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들이 심판할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손수 심판하실 것이오니
그대들은 그대들 가운데서 그 악한 자들을 제거해 버리십시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송사 (1 코린 6, 1-11)
그대들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해 송사가 있을 경우에
성도들이 아닌 이교도들에게 가서 재판을 받으려고 한다니
도대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습니까?
그대들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그대들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그대들에게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장차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그대들은 모릅니까?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난 경우에도
그대들은 교회에서 대우하는 않는 자를 재판관으로 앉힙니까?
나는 그대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하니
그대들 중 형제들의 시비를 가려 줄 지혜로운 이가 없습니까?
하여 형제가 형제를 고소하고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그대들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잘못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그대들이 불의한 일을 고스란히 당하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다른 이에게 그냥 속아 넘어가주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대들이 불의한 짓을 행하고 남을 속이며
그것도 형제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도둑도 탐욕자도 주정꾼도 중상하는 자도 강도도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그대들 중에 전에는 더러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대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이제 깨끗이 씻겨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 (1 코린 6, 12-20)
내게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으나 모두 다 유익하지는 않으며
내게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으나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으며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고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니
진정 우리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 권능으로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대들의 몸이 곧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 탕녀의 지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탕녀와 결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
실상 “둘이 한 몸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나니
주님과 결합하는 사람은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하여 그대들은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대들의 몸은 그대들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이니
그대들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는 값을 치루고 그대들을 속량해 주셨으니
이제 그대들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혼인 문제 1 (1 코린 7, 1-7)
이제 그대들이 내게 써 보낸 것에 관하여 말하니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불륜의 위험이 있으니
모든 남자는 아내를 두고 모든 여자는 남편을 두십시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아내의 몸은 아내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것이고
남편의 몸은 남편의 것이 아니라 아내의 것이니
서로 상대방을 혼자 지내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대들이 절제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사탄이 그대들을 유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기도에 전념하려고 얼마 동안 서로 합의한 경우를
특별한 예외로 하며 다만 그 뒤에 다시 합치십시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라지만
이 사람은 이런 은사, 저 사람은 저런 은사,
각자 저마다 하느님에게서 고유한 은사를 받습니다.
혼인 문제 2 (1 코린 7, 8-16)
혼자 사는 이들과 과부들에게 내가 말하니
그대들은 나처럼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겠으나
자제할 수 없다면 혼인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혼인한 이들에게는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분부하시니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만일 헤어졌으면 혼자 지내든가 남편과 화해해야 하며
남편도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아니라 내가 말하니
어떤 형제에게 신자 아닌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가 계속 남편과 살기를 원하면
그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부인에게 신자 아닌 남편이 있는데
그가 계속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그 남편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신자 아닌 남편은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해졌으며
신자 아닌 아내는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졌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대들의 자녀도 깨끗하지는 않겠지만
사실은 그들도 거룩합니다.
신자 아닌 쪽에서 먼저 헤어지겠다면 헤어지십시오.
그런 경우 형제나 자매가 속박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대들을 평화롭게 살라고 부르셨으니
아내 된 이여, 그대가 남편을 구원할 지 혹시 압니까?
남편 된 이여, 그대가 아내를 구원할 지 혹시 압니까?
주님께서 정해주신 삶 (1 코린 7, 17-24)
그 밖의 그대들 각자는 주님께서 정해 주신대로
하느님께서 부르셨을 당시의 처지대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내가 모든 교회에 내리는 지시이기도 합니다.
누가 할례 받은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려고 하지 마십시오.
누가 할례 받지 않은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만이 중요합니다.
저마다 부르심 받았을 때의 처지에 그대로 머무십시오.
그대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남의 종이었습니까?
그것에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자유인이 될 수 있더라도 지금의 상태를 잘 이용하십시오.
주님 안에 부르심 받은 종은 이미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심 받은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느님께서 값을 치루고 그대들을 속량해 주셨으니
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각자 부르심 받았을 때 처지대로 하느님과 함께 지내십시오.
혼인과 미혼 1 (1 코린 7, 25-31)
미혼자들에 관해서는 주님의 지시를 받은 바가 없으니
다만 주님의 자비를 입어 믿을 만한 사람으로서의 의견은
현재의 재난을 고려하면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대는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갈라서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아내와 갈라졌습니까?
아내를 다시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니며
처녀가 혼인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혼인하는 이들은 현세의 고통을 겪을 것이니
나는 그대들에게 그것을 면하게 해 주고 싶을 뿐입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마치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과 미혼 2 (1 코린 7, 32-38)
나는 그대들이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니
혼인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하고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하여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나는 그대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하니
그대들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받지 않고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가 만일 자기 약혼녀에게 잘못한다는 생각과 열정까지 넘쳐
꼭 혼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들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니 두 사람은 혼인하십시오.
마음속으로 뜻을 굳건히 하고 강요 없이 의지를 제어하여
약혼녀를 그대로 두겠다고 작정하였다면 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약혼녀와 혼인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고
혼인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 잘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만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원하는 다른 남자와 혼인할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은 주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의견으로는 과부도 그대로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나 역시 하느님 영을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1 (1 코린 8,1- 6)
우리가 모두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하니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관하여 말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자부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오나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알아주십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관련하여
우리는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한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며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마는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니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며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2 (1 코린 8, 7-13)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님을 고려해야 하니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렵혀집니다.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으며
그것을 안 먹는다고 우리 형편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우리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다만 그대들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지식인인 그대가 우상의 신전에서 먹는 것을 누가 본다면
그의 약한 양심도 용기를 얻어 그것을 먹지 않겠습니까?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으니
그대들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게 하여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나는 영영 고기를 먹지 않겠으니
그것은 내 형제를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도의 본보기 1 (1 코린 9, 1- 12)
내가 자유인이 아니며 사도가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말입니까?
그대들이 바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업적이니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그대들에게는 분명히 사도입니다.
그대들은 주님 안에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 증표입니다.
나를 심판하는 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변론하니
우리는 먹고 마실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케파처럼
신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
나와 바르나바는 따로 일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없습니까?
자기 비용을 대면서 군대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양 떼를 치면서 그 젖을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인간의 관례에 따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율법에 “타작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으니
하느님께서 소에게 마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고 율법에 그렇게 기록된 것입니다.
밭을 가는 이는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 밭을 갈고
타작하는 이는 제 몫을 받으리라는 희망으로 그 일을 하니
우리가 그대들에게 영적인 씨를 뿌렸다면
그대들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두는 것이 지나친 일입니까?
다른 이들이 그대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갖는다면
우리야 더욱 그러하지만 우리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도의 본보기 2 (1 코린 9, 13- 18)
성전에서 봉직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양식을 얻고
제단 일을 맡은 이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갖고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이는 복음으로 생활하라 지시하였지만
나는 그러한 권리를 하나도 행사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이런 말을 쓰는 것은 더욱 아니니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아무도 나의 자랑거리를 헛되이 하지 못할 것이니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나에게 자랑거리는 아니며
나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이니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하니 품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겠지만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이니
그렇다면 내가 받는 품삯은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자유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모든 이의 종이 되었으니
유다인을 얻으려고 유다인들에게는 유다인처럼 되었으며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그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되었고
율법 안에 있으면서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 밖의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으니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고 복음을 위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월계관 (1 코린 9, 24-27)
그대들은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결국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모릅니까?
이와 같이 그대들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하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리 하는 것입니다.
하여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멍청하게 달리지 않습니다.
권투를 하면서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키니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주는 교훈 (1 코린 10, 1-13)
나는 형제인 그대들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라니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를 건넜으니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 똑같은 영적 음식과 영적 음료를 마셨고
그들은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을 어여삐 여기지 않으셨으니
실상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 일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으니
악을 탐했던 그들처럼 우리는 악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흥청거리며 놀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그대들은 어떤 자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주님을 시험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않도록 합시다.
그들은 뱀에 물려 죽었으니
그대들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으니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대들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견디지 못할 시련이 아니며
하느님은 성실하시고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지 않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
성찬례와 이교 제사 (1 코린 10, 14-22)
사랑하는 형제인 그대들이여,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나는 그대들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여겨 말하니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잘 판단하십시오.
우리가 축복하는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이며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역사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는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가 아닙니까?
우상에 바쳤던 제물이나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에게 바치는 거니
나는 그대들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대들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의 잔도 마실 수는 없으며
주님의 식탁에도, 마귀의 식탁에도 함께 참여할 수는 없으니
아니라면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혹은 우리가 주님보다 더 강하다는 말입니까?
무슨 일이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1 코린 10, 23- 33)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롭지는 않고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해서 다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자기에게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들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모두 다 드십시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니
불신자 가운데 누가 그대들을 초대하였고
거기에 그대들이 가고자 원하면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차려진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드십시오.
누가 그대들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그것을 먹지 마십시오.
내가 말하는 양심은 그대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무엇 때문에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대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교회에도 훼방꾼이 되지 마십시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니
나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유익한 것을 추구하였습니다.
전례 때에 지녀야 할 자세 (1 코린 11, 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그대들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모든 일에서 나를 기억하고 내가 전한 전통을 유지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칭찬하여 마지않습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심을 그대들이 알기를 바라니
어떠한 남자든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그는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그녀는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는 머리가 깎인 여자와 똑같으니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
주님의 만찬 (1 코린 11, 17- 34)
그대들의 모임이 서로에게 이익이 아니라 해를 끼치고 있으니
나로서는 그대들을 도저히 칭찬할 수 없으며
이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지시하려는 것입니다.
교회 모임을 가질 때 그대들 사이에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고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대들 가운데 분파도 있어야 참된 이들이 드러날 것이지만
그대들이 한데 모여서 먹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닙니다.
저마다 먼저 자기 것으로 저녁 식사를 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배가 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한다니
그대들은 먹고 마실 집이 없다는 말입니까?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그대들에게 전해 주었으니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으니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되니
각자는 자신을 돌이켜 보고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분별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오니
주님은 이 세상과 함께 단죄 받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대들은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에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미리 먹어
그대들의 모임이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그 밖의 일은 내가 가서 일러주겠으니 기다리십시오.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 (1 코린 12, 1-11)
형제 여러분,
나는 그대들이 성령의 은사에 관해서도 알기를 바라니
그대들이 이교인이었을 때 말도 하지 못하는 우상들에게 이끌려
정신없이 휩쓸렸다는 것을 그대들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일러두니
하느님 영에 따라 말하는 이는 “예수는 저주 받아라.” 할 수 없고
성령에 따르지 않고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며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공동선을 위해 성령을 보내 주시니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지며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성령 안에서 치유의 은사가 주어집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시니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1 (1 코린 12, 12- 27)
마치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를 지니고 있으며
그 몸의 지체는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니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여러 지체로 되어 있으니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온몸이 귀라면 냄새 맡는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이니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머리가 발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더 요긴하니
몸에서 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더 소중하게 감싸며
볼품없는 지체일수록 더 품위 있게 다루고 곱게 꾸밉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라는 지체일수록 더 큰 영예를 주시면서
몸을 짜 맞추셨으니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을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으며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니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대들 각자가 그 지체입니다.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2 (1 코린 12, 28- 31)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 둘째가 예언자들, 셋째가 교사들이며
그 다음 기적의 은사, 치유의 은사, 도움의 은사, 지도의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이들입니다.
모두가 다 사도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예언자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교사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기적을 행할 능력을 지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치유의 은사를 지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두가 다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대들은 더 큰 은사를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십시오.
사랑 (1 코린 13, 1-13)
이제 내가 그대들에게 더욱 더 탁월한 길을 보여드리오니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를 말한다 할지라도
나에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소리 나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의 은사를 지니며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달으며
내가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마저 넘겨준다 해도
사랑이 없다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찾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다만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뿐이오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이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때의 것들을 그만두었으니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 뿐이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이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니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될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신령한 언어와 예언 1 (1 코린 14, 1- 12)
사랑을 추구하며 성령의 은사, 특히 예언의 은사를 구하십시오.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드리오니
사람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며 성령의 신비로 말합니다.
예언하는 이는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격려하고 위로의 말을 하며
신령한 언어는 자신을 키우지만 예언하는 이는 교회를 성장시키니
나는 그대들이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보다는 그대들이 모두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누가 해석을 해 주어 교회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보다는 예언하는 이가 더 훌륭하니
내가 그대들에게 가서 신령한 언어로 말한다 한들,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가령 피리나 수금처럼 생명 없는 악기들도 나름대로 소리를 내지만
그 가락이 분명하지 않으면 피리나 수금의 곡을 누가 알아듣습니까?
나팔이 확실하지 않은 소리를 낸다면 누가 전투 준비를 하겠습니까?
그대들도 신령한 언어로 말할 때에 분명하지 않은 말을 하면
그 말을 어떻게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셈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언어가 있지만 의미 없는 언어는 없으니
내가 어떤 언어의 뜻을 알지 못하면 그 언어를 말하는 이에게
나는 외국인이며 그 언어를 말하는 이는 나에게 외국인입니다.
그대들도 마찬가지이니
그대들은 성령의 은사를 열심히 구하는 사람들로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그것을 더욱 많이 받도록 애쓰십시오.
신령한 언어와 예언 2 (1 코린 14, 13- 25)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이는 해석도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내가 신령한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은 기도하지만
나의 이성은 아무 수확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면서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그대가 영으로만 찬미하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초심자가
어떻게 그대의 감사 기도에 “아멘”하고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야 감사를 드리지만 다른 이는 성장에 도움 받지 못합니다.
나는 그대들 가운데 누구보다 더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 있으나
나는 교회에서 신령한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기보다
남을 가르칠 수 있게 내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형제인 그대들이여,
생각하는 데에는 어린 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에 대해서는 아이같이 되고 생각하는 데에는 어른이 되십시오.
율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내가 또 다른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 자들을 통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술을 통하여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신령한 언어는 믿는 자가 아니라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징이나
예언은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위한 표징입니다.
가령 온 교회가 한자리에 모여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하는데
초심자들이나 믿지 않는 이들이 들어 와서 그 모습을 본다면
그들은 그대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예언을 할 때 믿지 않는 사람이나 초심자가 들어온다면
그는 모두에게 질책과 심판을 받고 마음 속 숨은 것이 드러나서
그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절하면서
“과연 하느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에 계십니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1 코린 15, 1-11)
형제들이여,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그대들에게 상기시키니
그대들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그대들이 내가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그대들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그대들에게 우선 전해 준 복음은 이러하니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나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고
그 중에 세상을 떠난 이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야고보, 이어서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배냇병신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실상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이며
더구나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니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그 은총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니
나는 그들 가운데 다른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 은총이 한 것으로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그대들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 1 (1 코린 15, 12-24)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선포하는데
그대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어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았다면 우리 복음도 그대들 믿음도 헛되니
우리는 또 하느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정말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되살리지 않으셨을 터인데도
우리가 그렇다고 하느님을 거슬러 거짓 증언을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의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대들의 믿음은 덧없고
그대들 자신은 아직도 그대들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이들도 멸망하였을 것이니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련한 인생들일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으니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왔으니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이지만
각각 차례가 있어,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며
그러고는 종말이니
그때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고 나서
그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 2 (1 코린 15, 25-34)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들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 놓으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다스려야 하니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할 원수는 죽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모든 것이 굴복되었다고 할 때 굴복시키신 분은 제외됨이 명백하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죽은 이를 위하여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죽은 이들이 전혀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우리는 또 무엇 때문에 늘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형제인 그대들이여, 내가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품고 있는 긍지,
곧 그대들에 대한 나의 긍지를 걸고 말하니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내가 에페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한들 내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야
우리는 “먹고 마십시다.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말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나쁜 교제는 훌륭한 습관을 망칩니다.
그대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기에
그대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활 때 완성되는 인간의 구원 1 (1 코린 15, 35- 49)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어떤 몸으로 올 것인가?”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으나,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도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않으니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이든 곡식의 씨앗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에 몸체를 주시니
씨앗 하나하나에 고유한 몸체를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라고 하여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사람, 집짐승, 날짐승, 물고기의 육체가 각기 다 다릅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도 있고, 땅에 속한 몸들도 있으니
하늘에 속한 것들과 땅에 속한 것들의 광채가 각기 다릅니다.
해의 광채가 다르고 달의 광채가 다르며 별들의 광채가 다르니
별들은 또 그 광채로 서로 구별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되살아나며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나니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첫 인간 아담이 자연적인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으니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으며
영적인 것은 그 다음입니다.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이며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으니
흙으로 된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이도 마찬가지이며
하늘에 속한 그분이 그러하면 하늘에 속한 다른 이도 같습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 2 (1 코린 15, 50-58)
형제인 그대들이여,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러하니
살과 피는 하느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며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 주겠으니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될 것이며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불멸의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될 것이니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을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며
그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구나!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이니
주 예수님을 통하여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하십시오.
그대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그대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 (1 코린 16, 1-4)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해서 말하면
내가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 지시한 그대로 그대들도 하여
주간 첫날마다 그대들 각자 형편대로 얼마씩을 모아두십시오.
내가 갔을 때야 비로소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면
그대들이 선정하는 이들을 보내면서 편지와 함께
그대들의 고마운 선물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하겠으며
나도 가는 것이 마땅하다면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바오로의 방문 계획 (1 코린 16, 5-12)
나는 마케도니아는 그냥 거쳐 지나 그대들에게 가겠으며
그대들과 함께 한동안 지내든가 아예 겨울을 나든가 하겠고
그러면 그대들의 도움으로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나는 그저 지나는 길에 그대들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얼마동안 그대들과 함께 지내고 싶으나
오순절까지는 에페소에서 지내겠습니다.
적대자들이 많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큰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티모테오가 가면 두려움 없이 함께 지내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도 나처럼 주님의 일을 하고 있으니
아무도 그를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나는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그대들 도움으로 평안히 내게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폴로 형제에 관해 말하면
형제들과 함께 그대들에게 가라고 내가 간곡히 권고하였지만
아직은 갈 마음이 전혀 없으나 적절한 기회가 되면 갈 것입니다.
마지막 권고와 인사 (1 코린 16, 13-24)
그대들은 깨어 있으면서 믿음 안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기를 내고 힘을 내십시오.
그대들이 하는 모든 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형제인 그대들에게 권고하니
스테파나스 집안사람들은 아카이아의 첫 열매로서
성도들을 위한 직무에 헌신하였으니
그대들도 그들과 또 함께 일하는 모든 이에게 순종하십시오.
나는 스테파나스와 포르투나투스와 아카이코스가 와서 기쁘고
이 사람들이 그대들에 대한 나의 아쉬움을 채워주었으며
나와 그대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니
그대들은 이러한 이들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그대들에게 인사하니
아퀼라와 프리스카가 자기들 집에서 모이는 교회와 함께
특별히 인사하며 모든 형제가 그대들에게 인사하니
그대들도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쓰니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받으라!
마라나 타! 주님, 오소서!
주 예수님의 은총이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대들 모두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