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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붓다의 뗏목 원문보기 글쓴이: 뗏목
[동국대 종교학 Term paper]
20510023 선 운
불교에 나타난 힌두교의 윤회설
♦ 목 차 ♦
Ⅰ. 이끄는 말
Ⅱ. 불교와 힌두교의 중심사상
Ⅲ. 불교 속 힌두교의 윤회설
1. 윤회설이 불교에 유입된 배경
2. 윤회설
3. 불교가 인도에서 쇠망한 이유
Ⅳ. 나오는 말
Ⅴ. 참고자료
Ⅰ. 이끄는 말
불교는 현실중심이다.
불교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현실의 인간 그 자체였다.
어디까지나 현실에 철저하고 현실의 문제를 현실 속에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주변 어디에도 붓다의 사상은 존재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사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윤회설이다.
윤회설은 인도불교의 역사 속에서 흡수된 힌두교의 사상이다.
그런데, 마치 윤회와 업설이 불교사상의 전부인 듯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불교 전체를 일관해 온 사상,
즉 현실을 직시하고 응시하는 근본입장을 망각한 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붓다는‘각자(覺者)’ 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끝없는 윤회와 한 쌍인 죽음과 태어남의 그 모든 허구를 분별하여,
티끌을 떠나 더러움 없이 청정하게 태어남을 부순 자라면 그는 깨달은 자입니다.”1)
[* 편집자(뗏목) 주 : 연기와 무아를 근본교리로 삼는
불교[무아견(여실지견, 정견, 중도, 연기법<5취온, 12연기, 4성제(8정도)>)]에서는
힌두교의 윤회설[유아견(상견) : 사후윤회, 사후업보, 사후세계]을 인정하지 않으니
경전에서 다시 태어남(재생)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다시 태어나는 주체는 5온[무상한 현상적 현실적 연기적 인간 존재]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현실에서
온갖 정신적 괴로움[5취온고. 고성제]을 발생시키는 근본원인[집성제]인
5취온[유아견(상견, 단견), 탐진치 등 오염원. 10결. 집성제]의 계속적인 드러남(생)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5취온의 계속적인 드러남(生)>을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쓸 수는 있겠으나
그 실질적인 의미는 힌두교의 사후윤회의 의미는 결코 아닌 것이다.
<태어남을 부순 자>라는 의미는 사후윤회에서 벗어나(해탈)
다시 태어나지(재생, 환생) 않게 된 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현실에서 온갖 정신적 괴로움[5취온고. 고성제]을 발생시키는 근본원인인
<5취온(집성제)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한 자>라는 의미이다.
(* 참고 : [해탈지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의 실질적 의미 http://cafe.daum.net/bd-dm/Ffus/75)
이런 표현의 실질적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알지 못하게 되면
결코 불교의 교주인 고타마 붓다께서 가르치신 연기가 뭔지 무아가 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12연기 유전문[유전연기, 연생법]은 5온의 연기관계를 설명해 놓은 것이 아니라
5취온의 연기관계를 설명해 놓은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바르게 알아야 한다.
즉 12연기 유전문[유전연기, 연생법]은 어떻게 5취온의 발생, 증장[집성제]의 연기관계로 5취온고가 발생, 증장[고성제]하게 되는지 논리적 인과관계를 설명해놓은 것이다.
12연기법은 결코 인간 존재(5온, 명색)의 발생(탄생), 소멸(죽음)을 설명해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5취온, 12연기, 4성제의 연기관계[동태적 이시 5취온 생멸변화연기]를 설명해주는 연기법 공식은
이것이 발생하면 저것이 발생하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즉 5취온이 발생, 증장[집성제]하면 5취온고가 발생, 증장[고성제]하고,
[12연기 유전문(유전연기, 연생법) : 집성제(5취온)=>고성제(5취온고)]
5취온가 소멸, 감소[도성제]하면 5취온고가 소멸, 감소[멸성제]한다는 것이다.
[12연기 환멸문(환멸연기, 연멸법) : 도성제(5취온 소멸)=>멸성제(5취온고 소멸)]
5온, 명색[정신과 육체]의 연기관계[정태적 동시 5온 존재유무연기]를 설명해주는 연기법 공식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육체가 있으면 정신이 있고, 육체가 없으면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5온[색수상행식], 명색[정신과 육체]은 그 어느 것이든 무상하기에 무아이고, [5온(제법)무아]
육체와 정신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상호의존하여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상한 연기적 존재인 5온, 명색[육체와 정신]은
죽음으로 육체가 사라지면 정신도 함께 사라지니
그 어떤 괴로움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며, [괴로움 완전 소멸]
사후윤회, 사후업보, 사회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힘으로 생길 수 없고
자기의 힘으로 머물 수도 없다.
다른 법들의 영향 아래
존재하고 생기고 형성될 뿐
자기는 무력하다.
다른 법들의 조건으로부터 생기고
다른 법들의 대상으로부터 일어난다.
이들은 다른 법들의 대상과 조건으로부터 생긴다.
배를 의지하여 사람들이 바다를 여행하듯이
물질을 의지하여 정신의 몸이 일어난다.
사람을 의지하여 배가 바다를 가듯이
정신을 의지하여 물질의 몸이 일어난다.
사람과 배가 서로 의지하여 바다를 가듯이
정신과 물질은 둘이 서로서로 의지한다.
- <청정도론> 중에서 - ]
불교근본의 실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붓다의 근본교설을 살펴보며 불교로 유입된 윤회설의 근거를 밝혀
힌두이즘에 파묻힌 불교의 정체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Ⅱ. 불교와 힌두교의 중심사상
1. 불교의 중심사상
불교는 현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그 실체를 밝히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결과를 중요시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관찰함으로서 실체를 자각하고자 한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불교의 주요사상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1) 연기(緣起)
연기법은 붓다가 깨달은 내용이다.
여러 경들이 기록하고 있는 바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소부경전』의 자설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으로 연기의 법칙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둘째는『상응부경전』에 실린 것으로 연기의 내용은 상의성(相依性)임을 밝혀 주고 있다.
“비구들아, 연기란 어떤 것인가?
태어남에 의해 늙음과 죽음이 있다.
이 사실은 내가 이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정해진 법이다.
그 내용은 상의성(相依性)이다.
그것을 나는 깨달았다 깨닫고 이제 너희들에게 설하여 너희들도 보라고 하는 것이다.”2)
셋째는『율장』의 대품 첫 머리에 보면 붇다가 연기를 사유한 부분이 언급되어 있다.
괴로움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밝혀 나가는 과정으로서,
괴로움은 무명이나 갈애 등의 번뇌와 행(行), 취(取), 유(有) 등의 행위를 원인으로 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마을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계셨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신 세존께서는 다리를 맺고 앉은 채 7일 동안 오로지 한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그러던 중 밤이 시작될 무렵에 연기를 발생하는 대로 그리고 소멸하는 대로 명료하게 사유하셨다.
무명(無明)에 기대어 행(行)이 있고,
행에 기대어 식(識)이 있고,
식에 기대어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에 기대어 6처(六處)가 있고,
육처에 기대어 촉(觸)이 있고,
촉에 기대어 수(受)가 있고,
수에 기대어 애(愛)가 있고,
애에 기대어 취(取)가 있고,
취에 기대어 유(有)가 있고,
유에 기대어 생(生)이 있고,
생에 기대어 늙음, 죽음, 슬픔, 눈물, 괴로움, 근심, 갈등이 한꺼번에 있게 된다.
그리하여 이 괴로움의 뿌리들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3)
모든 현상이 개별 요소의 복합체인 조건지어진 현상이라는 것이 연기이다.
불교의 기본입장은 지금의 삶 안에서 고통의 실상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연기법은 고통의 실재를 바라볼 수 있는 불교의 존재관이자 세계관이다.
2) 중도(中道)와 4성제(四聖諦)
『율장』의 대품에 실려진 중도와 사성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아,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들은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이고 범부의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그것도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그러면 비구들아,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고, 고요함과 수승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8정도(八正道)4)를 말하는 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여래가 원만히 깨달았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이다.
그리고 비구들아, 여기에 성스런 고제가 있다.
곧 태어남도 괴로움, 늙음도 괴로움, 병듦도 괴로움, 죽음도 괴로움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도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5)
간단히 말하면 오온에 집착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이다.
과보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욕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가 그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이다.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없는 것이 그것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이다.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길이 그것이니,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6)
일반적으로 종교가 성스런 것과의 만남이라고 정의될 정도로, 성스럽다는 말은 종교에서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이 성스러움의 모습을 중도라고 한다.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떠나 깨달음과 열반을 향해 수행하는 것이 중도이다.
또한 불교 수행의 처음이자 끝인 괴로운 심리 상태와 그것의 소멸을 제시한 길이 사성제이다.
모든 존재의 생존 형태는 오직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그런 사실을 자각함으로서 비로소 지극한 자유를 얻을 수 있기에 성스러움의 구체적 모습이 사성제이다.7)
3) 무아(無我)
무아의 교설은 존재의 오온에 따른 분석과 연기법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다.
무아란 모든 존재가 지속성이 없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에는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붓다는 존재가 지닌 무아의 실체를 아는 것이 곧 해탈’ 이라고 말한다.
『율장』의 대품에 실린 무아의 법문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아, 색(色)은 무아(無我)이다.
비구들아, 만약 색이 참된 자아라면 이 색에 병8)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색에게 ‘나를 위해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지 마라’라고 하면 뜻대로 되어야9) 할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아, 색은 무아이기 때문에 병이 생기고 색에게 ‘나를 위해 이렇게 되어라. 저렇게 되지 마라’라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아, 수(受)는 무아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어떤 색에 대해서도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열등한 것이든 고상한 것이든,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그 모든 색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그 모든 색, 수, 상, 행, 식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아, 들은 것이 많은 나의 성스러운 제자라면, 그것들을 무아로 보는 까닭에 색도 싫어하고 수, 상, 행, 식도 싫어한다. [5취온(집성제) 염오]
그런 까닭에 그것들에 대한 탐착을 제거하여 [이욕]
해탈한다.”10)
[5취온(집성제) 소멸(도성제)=>5취온고(고성제) 소멸(멸성제), 해탈(자유), 열반(평온)]
무아라는 개념은 존재를 시간과 공간적으로 경계를 정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개별인자가 조건에 따라 다른 존재와 결합하여 특정한 현상을 형성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존재는 공간과 시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는 조건지어진 존재는 조건에 따라 항상 변하기에 특정한 존재를 나 또는 나의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구속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본 것이다.
2. 힌두교의 중심사상
힌두교란 말은 서구인들이 힌두인들의 종교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힌두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사다나 (Sadhana)’ 로 이해한다.
이 말은 삶의 최고의 목표에 이르는 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곧 힌두교에 대한 이해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 목표란 바로 윤회로부터의 해탈이다.
힌두인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상황과 세계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파악하였다.
각자의 업에 따른 삶을 되풀이하는 것을 윤회라 믿는다.
이러한 윤회의 원인은 인간의 무지와 욕망, 집착 등으로 하는 행위, 즉 업[業(Karma)]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윤회가 고통으로 파악되므로 거기서 벗어난 해탈의 삶을 최고의 목표로 제시하게 된다.
따라서 힌두교는 ‘윤회로부터 해탈에 이르는 길 또는 진리’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11)
이런 힌두교의 전제에 나타난 중심사상들을 살펴보겠다.
1) 브라만(Brahman)과 아트만(Atman)
힌두인들은 인간의 고통은 현상계를 구분의식을 가지고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현상계의 모순과 불일치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일원론적인 실재관이고 그 핵심개념이 바로 브라만이다.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브라만은 나타난 모든 존재와 현상들의 궁극적이며 비인격적인 근원이자 원리로서 모든 것의 존재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통합적인 모체이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브라만이 스스로 많은 것이 되고자 갈망해서 고행을 하고 스스로를 많은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전 세상을 낳은 후 그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브라만은 모든 존재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각 개별존재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서 숭배나 인식의 대상일 수가 없다.
그것은 깨달음과 실현의 대상인 비인격적인 실재로서 어떠한 형태나 속성도 지니지 않는다.
이 점에서 유일신의 종교체계의 속성과 다르다.
또한,『챤도갸 우파니샤드』에 의하면 개별적인 존재나 현상들간의 차이는 형태와 명칭의 차이일 뿐이고 그들의 본질은 모두 그들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브라만이다.12)
힌두인들의 관심이 대상세계로부터 인간 내부세계로 이동되면서,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위대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양시켰다.
이것은 자아의 본질인 아트만과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이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아와 우주를 동일시하는 범아일여 사상은 ‘즉 네가 바로 그것이다’라는『챤도갸 우파니샤드』의 구절에서 분명하게 표현된다.
결코 죽지 않으며 무한한 깨달음과 영원한 기쁨이 인격의 저변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무한한 중심이며 감추어진 자아, 즉 ‘아트만’ 은 다름 아닌 ‘브라만’ 이다.13)
그러므로 모든 개체의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이 우주적 자아인 브라만과 같으므로 인간은 소우주로서의 자신을 앎으로서 대우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업(Karma)과 윤회(Samsara)
현상계의 다양성 배후에 통합성이 존재하며 그 통합성이 브라만이자 아트만이란 사실을 인간이 깨닫지 못하고, 나타난 현상계를 진정한 실재라고 믿는 한 그의 모든 행위는 업을 쌓게 되어 죽음과 재생을 되풀이하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업은 행위, 인과관계, 운명 등의 의미로『리그베다』에 나타난 세계의 질서가 엄격한 인과율에 의해 지배된다는 전제에 근거가 된다.
즉, 우주와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우연이란 있을 없다는 사고이다.
따라서 개인이 행한 어떤 행위이든 그것의 선악에 따라 미래에 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는 효능을 남긴다.
그 결과가 현재의 삶을 규정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다음 생에 태어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경험해야만 한다는 믿음이다.
냉엄한 도덕률인 업의 개념과 관련되어 발전된 것이 바로 윤회의 개념이다.
윤회 또는 재생의 개념은『우파니샤드』에 잘 드러나 있다.
“선행을 한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고 악을 행한 자는 악하게 태어난다.
선한 이의 영혼은 선한 사람의 자궁으로, 악한 사람의 영혼은 악한 이의 자궁으로 들어간다.”
여기에서도 나타나듯이 인간의 선과 악의 행위에 따라 그의 내생의 형태가 결정된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내생의 형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생명체로 태어남이 가능하다.
그래서 업과 윤회사상을 믿는 힌두인들은 자신의 현 위치와 조건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그대로 수용한다.
이런 사상은 사회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를 정당화 시켜주고 있다.14)
3) 해탈(Moksa)
명상과 요가 수행을 통해 모든 대상을 마음에서 비워버림으로써 자발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로, 통합된 순수의식인 해탈의 상태이다.
인간은 모든 것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아트만이 모든 존재의 근원인 브라만과 같다[범아일여]는 사실을 실현하는 순간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즉, 해탈은 브라만과 하나가 되는 실현의 문제이다.
지난날의 업은 물론이고 윤회에서 벗어나 고통 속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해탈은 힌두교에서 최고의 종교적 목표이다.15)
3.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점
불교와 힌두교 사이에는 몇 가지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첫째, 불교는 반 베다적이다.
불교는 당시 인도사상계의 전부인 베다의 신조와 전통을 거부하고 그것의 권위와 신뢰를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불교는 창조자와 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일부 힌두교의 철학 체계에서는 다른 존재들의 근원이자 목적으로서의 신격을 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힌두교는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유신론적 성격이 다분하다.
셋째, 힌두교에서의 아트만의 존재는 영원불멸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자아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영원성을 부정한다.
존재의 무아와 무상설이 그 일례이다.
넷째, 불교는 힌두의 사회계급제인 카스트제도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행위에 따라 신분이 얼마든지 달라진다고 주장하며 신분적 차별이 없는 사회를 표방한다.16)
Ⅲ. 불교 속 힌두교의 윤회설
1. 윤회설이 불교에 유입된 배경
힌두교의 윤회설이 어떠한 과정으로 불교와 결합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붓다가 활동하던 B.C.E. 7 ~ 6세기 중엽은 브라만신의 질서, 윤회설, 카스트 제도가 정착되고 있던 시기였다.
붓다와 제자들도 그런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행을 통해
브라만신의 질서와 윤회설의 본질에 대한 허구성을 알게 되었다.
[연기법(유무 존재 연기법 : 5온의 상호의존성. 정신와 육체[명색]의 상호의존성)
=> 5온(색수상행식 : 명색) 무아(無我)]
그래서 붓다는
신을 부정하고, [우파니샤드(힌두사상) [유아견(상견)] 등에서 신, 영혼, 아트만(자아, 진아, 참나 등) 등 항상하는 본질적 실체적 존재로 상정했던 모든 허망한 관념들 부정!]
윤회설을 믿지 않았고, [사후윤회, 사후업보, 사후세계 부정!]
불평등한 신분제인 카스트의 철폐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인간 사회 평등, 세계 평화 주장]
불멸 후 약 250년 뒤 마우리아의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면서 통일철학의 기반이었던 불교에 대한 우대정책을 폈다.
그때 힌두교와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이 불교 수행자로 개종하면서
불교 진흥정책은 오히려 불교사상의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특히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
모든 교리에 온전히 귀의하지 않은 채 개종한 수행자가
그들이 믿던 윤회설을 불교에 결합시켜 이해하고 전파했다.
이러한 내용들은『선견율비바사』,『마하보디왐사』등 스리랑카 전승에 실려 있다.
아쇼카왕 시대에 파탈리푸드라의 상가에 싸움이 일어났다.
원인은 아쇼카 왕이 불교 교단에 귀의하고, 교단이 풍요로워지자 수많은 외도들이 출가한 것이 원인이었다.17)
또한,『도사』등에 의하면 아쇼카왕이 불교교단을 지원해 줌으로서
교단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안이한 생활을 바라고 출가하는 자가 많아지니 상가의 계율이나 수행이 어지러워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가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목갈리풋타 팃사가 아쇼카왕의 지지를 받아 상가를 숙정하였다.
즉, 불교를 ‘분별설’ 이라고 말한 사람은 불교도이며,
이에 반하는 비구는 불교도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상가로부터 추방했다고 한다.
모든 것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분별설이다. (???)
진리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거기에는 싸움이 일어난다.
현실은 그러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다.
이런 인식으로 구별해서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분별설의 입장이다.18)
남전(南傳)에 의하면
파탈리푸트라에서의 승가의 분란과 정통적인 분별설부의 법의를 유지시킨
장로 목갈리풋타 팃사에 의한 그 수습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살펴보건대,
아쇼카왕 시대 불교옹호정책으로 비 불교도들이 대거 불교승단으로 귀의하는 과정에서
힌두교의 수행자들도 많이 귀화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붓다의 근본교설을 잘 모르는 힌두교 수행자들이 불교수행자로 살아가면서
붓다의 교설 대신 그들의 의식과 윤회와 업 사상을 일반대중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아쇼카왕이 분열된 승단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목갈리풋타 팃사를 불렀던 사건이 주는 의미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이설(異說)을 배척하고 분별설을 받아들이는지의 여부에 따라 이단자들을 색출해내었다는 부분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여기서 이설(異說)은 불교사상을 가장한 힌두교의 윤회사상이었을 것이다.
분별설의 수용여부를 물어 색출했다는 것은
윤회를 수용하지 않고 현실적인 붓다의 근본교설을 잘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였을 것이다.19)
다른 한편으로는 붓다의 가르침 속에 윤회설로 발전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 있었다. (???)
붓다는 모든 것은 조건 지어져 있으며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열반의 상태는 모든 것이 소멸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20) (???)
불멸 후, 부파불교 시대에 붓다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윤회주체, 생명의 연속에 관한 문제, 행위와 행위의 영향력의 지속에 관련된 것은 오랫동안 불교 담론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논의의 주제는 항상 윤회하는 주체로서 뭔가가 있다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윤회설이 불교사상으로 들어오는 통로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힌두교에서 주장하던 아트만과 같은 기능을 하는 존재를 설정했다.
설일체유부[상좌부 분파]의 계열과
유가행파[유식철학]에서는 윤회설을 적극적으로 불교 교리에 도입했다.
그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3생(三生)으로 이전되는 주체(아뢰야식. 재생연결식)가 있으며 그것이 유식이라고 주장했다.
[* 편집자(뗏목) 주 : 불멸 후 불교의 힌두화로
힌두교의 윤회설[유아견(상견)]을
불교교리[무아견(여실지견, 정견, 중도, 연기법<5취온, 12연기, 4성제>)]로 정당화시키기 위해
12연기를 유아견(상견) 입장에 서서 3세양중인과로 해석하고,
사몰식, 재생연결식 개념을 설정하고,
업(력)이 윤회한다[업력윤회설]는 둥,
무아이기에 윤회할 수 있다[무아윤회설]는 둥,
무아가 바로 진아이기에 윤회한다[진아윤회설]는 둥
자아도취, 전도몽상, 비몽사몽,
오락가락, 우왕좌왕, 뒤죽박죽,
오리무중, 애매모호, 횡설수설
온갖 해괴망측한 반불교적 친힌두교적 황당무계한 망설
[희론, 힌두잡론, 망상, 토끼뿔, 거북털]이 등장했던 것은
바로 이런 참으로 부끄러운 불교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 참고 : 불교란 무엇인가? http://cafe.daum.net/bd-dm/APsK/30
제법본경 http://cafe.daum.net/bd-dm/APsK/18
붓다는 단멸론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일체의 느낌이 다 사라져서 남음이 없느니라. http://cafe.daum.net/bd-dm/BGji/446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http://cafe.daum.net/bd-dm/BGji/219
각묵스님[남방불교 입장]의 윤회에 대한 시각에 대한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1
김성철교수[북방불교 입장]의 윤회에 대한 시각에 대한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4
사후윤회는 없다고 하면 단멸론(단견)자로 몰아부치는 어리석은 유아론(상견)자 http://cafe.daum.net/bd-dm/JPlw/33
남방 아비담마의 특징 / 비판 http://cafe.daum.net/bd-dm/ALkM/33
정견(正見)이 먼저 정립되어야...[사견(邪見)이 괴로움의 원인!] http://cafe.daum.net/bd-dm/BGji/257
[양머리]를 걸어두고서 [개고기]를 팔지는 말아야 한다! http://cafe.daum.net/bd-dm/Fa4t/8]
이렇듯 윤회설은
불멸 후 250년 정도 뒤부터 불교 담론의 주제가 된 이래
700~800여 년의 토론 과정을 거치면서
붓다가 부정했던 윤회의 사유 체계를 불교에 자리 잡게 하고 말았다.21)
* http://www.youtube.com/embed/9xxv_au015I
2. 윤회설
윤회설은 모든 존재가 자신의 의지적 행위와 그 영향력에 따라서 시간22)과 공간적23)으로 끊임없이 돌고 돌면서 각각에서 다른 삶이 전개된다고 믿는 것이다.
윤회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대략 B.C.E. 10세기 무렵 오늘날 서북인도 펀잡 지역이다.
인도 대륙의 침입자였던 아리안인이 토착민을 지배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때 함께 만들어진 것이 카스트 제도와 브라만 신의 질서였다.
이 세 가지 상징 조작은 만들어진 이래 오랫동안 인도 대륙의 정신과 현실을 지배하는 사상으로서 뿌리 깊게 존재하게 되었다.
힌두교의 윤회설은 우주의 질서로서 모든 생명체는 지금 뿐만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에도 현재와 똑같은 삶의 방식이 있었고, 죽고 난 이후에도 현재와 똑같은 삶의 방식이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신(神)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윤회설은 자신의 행위가 그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지배 구조에 대한 민중의 반발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힌두교의 이런 사유 구조는 카스트 제도로 판 박힌 현재의 삶을 변혁시키려는 개인의 의지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에 기초를 두고 있다.
즉, 영혼과 같은 실체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불교에 영혼불멸하는 주체가 있어, 업에 따라 윤회한다는 사상이 존립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모순을 담고 있다.
붓다는 당시 힌두교 계통의 철학자들이 벌이고 있던 아트만 논쟁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
왜냐하면 붓다의 무아설은 형이상학적으로 아트만의 존재 여부를 검토하여, 그 존재를 부정했다는 의미의 무아설이 아니 였기 때문이다. (???)
아트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존속되고, 또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진정한 아트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아설을 설파한 것이다.
[* 편집자(뗏목) 주 : 무아의 특징경(S22.59, 無我相經) (붓다의 두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LiV/105
오온과 오취온 http://cafe.daum.net/bd-dm/ALiV/83
오온-무아(五蘊-無我) http://cafe.daum.net/bd-dm/ALiV/107
잡아함 109. 모단경(毛端經) : 붓다의 우파니샤드 사상(힌두교 사상)인 유아견 비판! http://cafe.daum.net/bd-dm/GM7Y/62
잡아함 153. 불이경(不二經) : 힌두사상(불이론 : 범아일여)[유아견(상견)] http://cafe.daum.net/bd-dm/JPlw/40
범망견 62견 부정! 정견(正見)이 먼저 정립되어야...[사견(邪見)이 괴로움의 원인!] http://cafe.daum.net/bd-dm/BGji/257
사후윤회는 없다고 하면 단멸론(단견)자로 몰아부치는 어리석은 유아론(상견)자 http://cafe.daum.net/bd-dm/JPlw/33]
그러나, 붓다 입멸 후 약 백 여년이 지난 부파불교의 시대에의 무아설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변화되어 갔다.
불교도들 사이에 이미 수용된 윤회설은 마땅히 업을 지니고 윤회하는 주체를 묻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무아설과의 관계도 의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윤회설은 원래가 불교 근본사상과는 무관하게 발생한 민간신앙이었다.
그 민간 신앙적 관념이 불교도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교단의 역사적 발전 과정 속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현상이었다.24)
무아의 가르침은 어떤 개인이나 법 속에서도 자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아함경』에 보면 붓다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장면이 나온다.
[* 편집자(뗏목) 주 : M022. 뱀에 대한 비유의 경(Alagaddupama sutta) : 뗏목의 비유 http://cafe.daum.net/bd-dm/AHz7/34]
“비구여, 슬픔과 비탄, 고통, 재난, 좌절을 일으키지 않는 영혼설(我論)이 있다면
그를 받아들여라.
그러나 비구여, 슬픔과 비탄, 고통, 재난, 좌절을 일으키지 않는 영혼설을 본 적이 있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확실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비구여, 나도 역시 슬픔, 비탄, 고통, 재난, 좌절을 일으키지 않는 영혼설을 보지 못했느니라.”
붓다가 어떤 영혼설을 받아들인 적이 있다면 분명 이런 장면에서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 영혼설이 있다면 그를 받아들이라고 수행자에게 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영혼설은 없으며, 존재하는 어떤 영혼설도 고통을 낳으며, 모든 종류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거짓이며 환상일 뿐이었다.
붓다는 이어서 계속 설법했다.
“오, 비구여. 자아와 관련된 어떤 것이 진실로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주는 아트만이다.
나는 죽은 후에 영원불변하고 영속적이며 불변하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고 하는 사변적 견해는 진정 전적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붓다는 자아나 영혼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그러한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25)
붓다가 말한 무아의 주장은 그가 깨달은 존재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냉철하게 관찰한 결과로 얻어진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붓다의 사상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26)
어떤 사람이 붓다에게 물었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어찌 그렇게 밝을 수 있는가.”
이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들은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으며, 미래를 가꾸지도 않는다.
그들은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 환한 것이다.
미래를 설계하거나 과거를 후회하는 바보들은 잘려진 갈대가 햇볕에 마르는 것처럼 말라갈 것이다.”
실제적인 삶이란 현재의 순간일 뿐이며, 이미 사라져 버린 과거에의 회상이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의 꿈이 아니다.
현재의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만이 실제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순간에 살고 현재의 행위 속에 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27)
여기서 현재, 불교교리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윤회설에 대한 근거를 살펴보는 것은 불교사상 속에 내재된 힌두교의 윤회설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붓다가 말하고자 했던 실제의 의미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나무의 뿌리가 가지 끝에 매달려 있다면 그 나무는 곧 죽어버릴 것이다.
지금 불교의 현실이 본질을 벗어나 겉 가지에만 매달려 있다는 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분이다.
결국 윤회설은 붓다의 입에서 나온 근본교설이 아니라, 여타의 이유로 유입되어 흡수된 힌두교의 사상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3. 불교가 인도에서 쇠망한 이유
7세기 이후 인도에서의 불교는 점점 밀교화됨과 아울러 사실상 힌두교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래서 불교 나름의 독자적 창조성이 고갈되어갔다.
뚜렷한 교학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하며 쇠퇴의 길을 가다가 이슬람교도의 인도에 대한 침입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13세기 경에 이르면 제도종교로서의 불교는 인도에서 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이슬람교도의 침입에 함께 부딪쳤던 힌두교와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비하여, 왜 유독 불교만 발생지에서 쇠망하고 말았을까?
그에 대한 설명은 복합적인 것으로 몇 가지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불교의 조직이 주로 출가를 전제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즉, 수행자를 위한 교리나 수행형태를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승단의 경제적 여유가 은둔적인 승단불교로 전략하게 한 것이다.28)
또한, 이들 사원의 부유함은 이슬람교도의 침입 당시 유력한 약탈의 표적이 되었다.
이 사원들의 파괴는 곧 불교세력의 결정적 제거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략 12~13세기를 정점으로 벵갈과 비하르의 불교 사원의 파괴와 비구의 학살 등, 이슬람교도의 불교 박해는 인도 불교의 종말을 분명한 형태로 매듭짓고 말았다.
당시 불교의 3대 사원인 날란다, 오단타푸리, 비크라마실라을 중심으로 형이상학, 논리학, 문법학 등이 교육되고 있었다.
이러한 지식 위주의 교육은 일종의 대학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이것은 당연히 불교신도들의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을 감싸주는 측면은 소홀히 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승려들은 교학연구에 치중하고 있었으므로 불교는 대중과 유리되어 민중 속에서 지지기반을 상실하였다.
둘째는 불교의 힌두화이다.
불교는 사원을 중심으로 재가신자와의 연결 관계를 상실함과 아울러 한편으로는 힌두교와의 동화작용을 보여주었다.
민간신앙의 주문이나 주술적 의례의 불교적 적용은 일반대중과의 친밀감을 유도하기는 했으나 차츰 힌도교와의 구별점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불교가 본래 지니고 있던 독특한 차원은 인식되지 못했다.
이러한 힌두교와의 융합은 불교가 민중과 떨어져 고답적인 형이상학을 추구했던 불교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29)
셋째는 불교도의 단일 사회집단의 부재이다.
불교도를 하나의 집단으로 응집시킬 수 있는 독자적인 생활 규칙이나 통과 의례도 인정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자이나교가 재가신자들을 위한 12계율과 12종의 통과의례를 지니고 있었던 점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 각종 카스트의 구성원으로서 윤리적인 삶의 방식에 힘쓰는 사람들이 불교도였다.
불교의 본의에 충실히 따랐기에 세간적인 현세 이익을 위한 각종의례도 그다지 발전시킬 수 없었으며, 신자로서의 통일성도 없었다.
불교는 카스트화 하지 않았고 카스트 규칙의 제약을 받지도 않았기에 인도 땅에서 정착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 힌두 사회 속에 흡수되어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30)
그 무엇보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불교의 근본사상을 고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불교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채, 역사적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힌두교 사상과의 접목은 발생지에서의 쇠망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Ⅳ. 나오는 말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이런 인간의 욕망에 부합된 윤회설은 물질적인 육체적 요소는 소멸하지만 정신적인 주체는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했던 것이다.
윤회설은 인간의 내면에 축적된 근원적 욕망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윤회설은 믿는 자에게 금생에 절제한 만큼 내생에 보다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안겨 주며, 직면한 현실의 고통에 대한 진통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반면, 전생의 행위가 지금 처한 자신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현재 삶의 무게에 검증되지 않은 전생의 행위까지 짊어지게 하여 인간의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들기도 했다.
윤회설은 신(神)을 믿는 자들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인간 현생의 행위가 전생의 결과이며, 현생의 대가를 내생에 받는다면 그것은 그러한 대가를 이끌어내려는 존재의 상징적 표상일 것이다.
붓다는 항상 현실의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
붓다는 현실에 있어서 인간 존재의 괴로움 극복과 관계없는 논의를 희론으로 여겼다.
그래서 내가 과거에 어떻게 존재했으며, 내가 미래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을 붓다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초기경전 안에서의 붓다의 교설은 현실에서 경험된 것이라든지, 시간을 가로막지 않는 것, 지금 여기에 와서 보아야 할 것 등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구체적이고도 경험적인 인간 존재,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 불교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불교는 이러한 붓다의 근본교설 대신 통과의례나 내세를 준비하는 일에 너무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제 근본으로 돌아가 불교의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이에, 불교사상 속에 내재된 힌두교 사상에 관한 문제는 빠알리어 원전을 중심으로 깊이 고찰되어야할 문제이다.
변화되는 모든 실체에 영원불멸하는 그 무엇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설과
영원한 주체가 존재하여 업에 따라 생(生)을 거듭한다는 윤회설과의 문제,
해탈이란 결과 대신 현재 일어난 문제의 실체를 밝혀가는 과정을 중시했던 문제 등이다.
이런 고찰들은 현재 불교사상 속에 내재된 힌두이즘을 비판하고자하는 입장이 아니라, 붓다가 그의 교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실제를 통찰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붓다의 근본입장을 고찰하는데 있어 적절한 독화살의 비유31)가 있다.
[* 편집자(뗏목) 주 : M063. 말룽끼야뿟따에 대한 작은 경(Cula-malunkya sutta)과 중아함 221) 전유경(箭喩經) http://cafe.daum.net/bd-dm/R2Wv/9]
인도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상실한 불교가 존립할 수 없었듯이,
지금 불교도 그 때의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자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Ⅴ. 참고자료
막스베버,『힌두교와 불교』, 홍윤기 옮김, 한국신학연구소,1986.
나까무라 하지메,『불타의 세계』, 김지견 역, 김영사, 1980.
휴스톤 스미드,『세계의 종교들』, 이상호 외 역편, 연세대출판부, 2004.
中村元 외,『바웃드하 불교』, 혜원 역, 김영사, 1990.
후지타코타츠 외, 『〮초기 〭부파불교의 역사』, 권오민 옮김, 민족사, 1992.
히라카와 아키라,『인도불교의 역사』上, 이호근 옮김, 민족사, 1989.
마쓰야 후미오,『불교개론』, 이원섭 옮김, 현암사, 1997.
한국종교연구회,『세계종교사입문』, 청년사, 1991.
월폴라 라훌라,『스스로 찾는 행복-붓다의 가르침』, 진철승 역, 대원정사, 1988.
『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4.
붇드하빠라,『불교 수행의 이론과 실제』, 근본불교학교출판부, 2002.
정승석,「무아와 윤회의 양립 문제」,『인도철학』v.4, 인도철학회, 민족사,1994.
어거스틴 토타카라,「힌두교와 인도문화에 끼친 불교의 영향」,『불교문화연구』제3집, 동국대불교사회문화연구원, 2002.
불교신문 홈페이지, www.buddhistnews.net.
1) 『숫타니파타』, 전재성 역주(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4), p. 293.
2) 곽철환 ,『불교 길라잡이』(시공사, 1999), pp. 27-29. 참조.
3) Bhikkhu J. Kashyap ,『마하박가』1, 최봉수 옮김(시공사, 1998), pp. 40-41.
4)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
5) Bhikkhu J. Kashyap, 같은 책, pp. 59-60.
6) 곽철환, 같은 책, p. 24.
7) Bhikkhu J. Kashyap, 같은 책, pp. 59-60. 주해 참조.
8) 병은 일종의 변화이다. 색이 자아 즉, 영속하는 실체라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9)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은 일종의 구속이자 속박이다. 색이 참된 자아라면 색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뜻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10) Bhikkhu J. Kashyap, 같은 책, pp. 67~69.
11) 한국종교연구회,『세계종교사 입문』(청년사, 1991), pp. 26-27. 참조.
12) 한국종교연구회, 같은 책, p. 44.
13) 휴스톤 스미드, 『세계의 종교들』, 이상호 외 역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p. 16.
14) 한국종교연구회, 같은 책, pp. 46-49. 참조.
15) 한국종교연구회, 같은 책, p. 46. 참조.
16) 어거스틴 토타카라, 「힌두교와 인도문화에 끼친 불교의 영향」,『불교문화연구』제3집(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2002), p. 271. 참조.
17) 차차석,《불교신문》2112호, 3월 15일자 기사 참조.
18) 히라카와 아키라,『인도불교의 역사』上, 이호근 옮김(민족사, 1989), pp. 135-136.
19) 이에 반한 북방 상좌부의 대표적인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과거, 현재, 미래, 곧 3세(世)가 실재한다는 것을 토대로 교리를 해석하였다. 이것은 이미 힌두교의 사상을 흡수하여 발전된 증거이다.
20) 붇드하빠라,『불교 수행의 이론과 실제』(근본불교학교 출판부, 2002), p. 453.
21) 붇드하빠라, 같은 책, pp. 456-457. 참조.
22) 전생, 현생, 내생.
23) 六道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24) 나까무라 하지메,『佛陀의 世界』, 김지견 역(김영사, 1980), pp. 434-436. 참조.
25) 월폴라 라훌라,『스스로 찾는 행복-붓다의 가르침』, 진철승 역(대원정사, 1988), pp. 88-89.
26) 마쓰야 후미오,『불교개론』,이원섭 옮김(현암사, 1997), pp. 84-86. 참조.
27) 월폴라 라훌라, 같은 책, p. 108-109. 참조.
28) 히라카와 아키라, 같은 책, p. 132. 참조.
29) 한국종교연구회, 같은 책, p. 205.
30) 나까무라 하지메, 같은 책, pp. 513-515. 참조.
31) 후지타코타츠,『〮초기 〭부파불교의 역사』, 권오민 옮김(민족사, 1992), p. 70.
이 비유는『중부경전』에 실린 것으로 제자 마룬캬 풋타가 형이상학적 문제를 붓다에게 제시했을 때 한 대답이다.
“어떤 사람이 독이 많이 묻은 화살에 맞았다고 치자.
그의 친구, 동료, 친척, 혈족들은 그를 위해 의사를 부르러 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쏜 사람이 왕족인가, 바라문인가, 서민인가, 노예인가를 알지 못하는 한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고 치자.
또 그가 ‘나를 쏜 사람의 피부색이 검은 색인가 황색인가, 혹은 금색인가를 알지 못하는 한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 ’고 하였다고 치자.
또 그가 ‘나를 쏜 사람이 시골 출신인가 도회지 출신인가, 혹은 대도시 출신인가를 알지 못하는 한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고 치자.
또 그가 ‘나를 쏜 활이 보통 활인가 강한 활인가를 알지 못하는 한 이 화살을 뽑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고 치자.
마룬캬 풋다여, 이 사람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곧바로 죽어버릴 것이다.”
불교에 나타난 힌두교의 윤회설 http://cafe.daum.net/bd-dm/Ffus/97
* 위 사진은 불멸 후 불교의 힌두화로
불교의 교주인 고타마 붓다께서 가르친 원가르침[근본불교]을 벗겨내고 있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아래 사진은 그 이후 양머리[불교, 무아견(중도, 여실지견, 정견, 연기법)]를 걸어놓고
개고기[힌두교, 유아견(상견 : 사후윤회, 사후업보, 사후세계)]를 팔기 시작한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http://www.youtube.com/embed/9xxv_au015I
* 참고 : 불교란 무엇인가? http://cafe.daum.net/bd-dm/APsK/30
불교의 핵심교리[4성제, 12연기 유전문, 환멸문, 4법인] 간략하게 정리 http://cafe.daum.net/bd-dm/ALiV/80
불교의 핵심교리 논리적 체계 http://cafe.daum.net/bd-dm/ALiV/1
올바른 구도자의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http://cafe.daum.net/bd-dm/AIWV/23
불교수행이란 무엇인가? [고성제] [5취온고(苦)] [3특상 중 일체(5취온)개고(苦)] [3고(苦) 중 행고(行苦)] http://cafe.daum.net/bd-dm/ANKx/180
열반경(涅槃經) - 29연기 http://cafe.daum.net/bd-dm/ALiV/16
[4성제]를 중심으로 불교의 수행 [29연기관계] 체계적 종합 정리 http://cafe.daum.net/bd-dm/ALiV/39
제법본경 http://cafe.daum.net/bd-dm/APsK/18
초전법륜경(붓다의 첫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LiV/19
무아상경(붓다의 두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HxP/29
연소경(붓다의 세번째 법문) http://cafe.daum.net/bd-dm/AHxP/27
붓다는 [해탈(자유), 열반(평온, 행복, 자비, 평등, 평화)]을 위한 길잡이일뿐... [8정도] http://cafe.daum.net/bd-dm/APsK/15
중아함 211) 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 : 선근, 지혜, 식, 정견, 5근, 의근, 죽음과 멸진정... http://cafe.daum.net/bd-dm/Gg8K/21
[아리타경(阿梨吒經) : 뗏목의 비유...]http://cafe.daum.net/bd-dm/APsK/12
[열반]의 개념을 분명하게 알아야... http://cafe.daum.net/bd-dm/GM7Y/41
통증과 고통 그리고 두번째 화살
http://cafe.daum.net/bd-dm/G6zc/11화살 경(574~592) : 독화살을 뽑아버리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http://cafe.daum.net/bd-dm/AIWV/18
멸경(滅經) http://cafe.daum.net/bd-dm/ALiV/67
해탈의 이정표 http://cafe.daum.net/bd-dm/G1Z4/86
[해탈지견]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의 실질적 의미 http://cafe.daum.net/bd-dm/Ffus/75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5온[인간 존재(명색)]이면서 무아(無我)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http://cafe.daum.net/bd-dm/AHkC/328
잡아함 306. 인경(人經) : 오온[오음]이 [사람(人)]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람들을 위하여...
http://cafe.daum.net/bd-dm/GM7Y/21잡아함 1202. 시라경(尸羅經) : 중생[5온] http://cafe.daum.net/bd-dm/AHnF/144
마음이니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은 뇌의 기능이다 http://cafe.daum.net/bd-dm/BGji/357
오온-무아(五蘊-無我) http://cafe.daum.net/bd-dm/ALiV/107
초기불교(初期佛敎)의 5온설(五蘊說)에 관한 고찰(考察) http://cafe.daum.net/bd-dm/GHGJ/9
늙음, 병, 죽음[노병사(老病死)]에 대한 숙고 http://cafe.daum.net/bd-dm/JPlw/36
오온과 오취온 http://cafe.daum.net/bd-dm/ALiV/83
잡아함 58. 음근경(陰根經), 55. 음경(陰經) : 5온과 5취온, 실체적 존재와 연기적 존재, 4대=>색, 촉=>수상행, 명색=>식, 味患離, 아만, 번뇌, 업 http://cafe.daum.net/bd-dm/GM7Y/60
5온[명색]과 5취온[집성제]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알아야 하는 이유 http://cafe.daum.net/bd-dm/JPlw/53
<5온>과 <5취온>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바르게 알고 관찰해야 바르게 불교수행을 하는 것이다! http://cafe.daum.net/bd-dm/ANKx/178
[5온]과 [5취온]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알지 못하면 [연기법]을 알지 못해 [무아]도 알지 못하고 [불법]을 이해할 수 없다! http://cafe.daum.net/bd-dm/JPlw/38
바라경 / 화살 / 열반경 / 우현(愚賢) 경 : 5온, 5취온, 연기법을 바르게 알아야... http://cafe.daum.net/bd-dm/GM7Y/82
잡아함 75. 관경(觀經) : 여래, 아라한의 공통점은 5취온(집성제) 염오, 이욕, 소멸로 해탈, 열반 [5온(명색), 5취온(집성제), 자아(아트만) 구별!] http://cafe.daum.net/bd-dm/Rd72/28
유탐경.1.2.3.4.5. : 4식, 오온, 오취온, 10지 연기, 4성제
http://cafe.daum.net/bd-dm/GM7Y/37우다나경(優陀那經) : 유신견, 5하분결, 4식주(색수상행, 식의 증장)... http://cafe.daum.net/bd-dm/GM7Y/22
잡아함 39. 종자경(種子經) : 4식주(어리석은 인식의 증장), 5취온 http://cafe.daum.net/bd-dm/AHnF/166
의도 경1(S12:38) :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재생연결식 비판!] http://cafe.daum.net/bd-dm/AHxP/41
잡아함 371. 식경(食經) : 6입->촉->수->애->4식[4食 : 식의 증장 질료] http://cafe.daum.net/bd-dm/AHnF/127
식(識)의 증장(virūlha)을 설하는 경문들 http://cafe.daum.net/bd-dm/AHxP/42
탐욕 있음 경(S12:64) - 네 가지 음식(자양분)에서 식(어리석은 인식. 5취온)이 발생함 http://cafe.daum.net/bd-dm/AHxP/45
잡아함 372. 파구나경(頗求那經) : 4식(四食), 8지연기 http://cafe.daum.net/bd-dm/AHnF/123
잡아함 373. 자육경(子肉經) : 4식(四食) http://cafe.daum.net/bd-dm/GM7Y/46
연기의 원리 http://cafe.daum.net/bd-dm/G1Xy/4
불교의 교주인 고타마 붓다의 연기법에 대한 바른 이해 http://cafe.daum.net/bd-dm/G1Xy/40
12연기 유전문 역관과 순관을 쉽게 풀어드릴까요? http://cafe.daum.net/bd-dm/G1Xy/39
연기법에 쓰인 용어의 의미 http://cafe.daum.net/bd-dm/ALiV/93
12연기의 12가지 구성 요소[아주 중요!] http://cafe.daum.net/bd-dm/ALiV/98
대인경(大因經) : 연기법, 무아의 개념, 상단견 등 견해에 대한 분명한 앎을 위하여 http://cafe.daum.net/bd-dm/Gg8K/22
「대인연경」(大因緣經, Mah ānid āna Sutta, D15) : 연기에 대한 큰 가르침 http://cafe.daum.net/bd-dm/BGji/320
12연기 유전문에서의 식(識)과 명색, 명색과 육입의 관계 http://cafe.daum.net/bd-dm/BGji/356
두려움경(A8:56) : 모태에 듦이라는 의미는... http://cafe.daum.net/bd-dm/AHxb/34
Re:6내외입처는 6근경인가? http://cafe.daum.net/bd-dm/BGji/440
중아함 31) 분별 성제경(分別 聖諦經) [4성제] http://cafe.daum.net/bd-dm/Gg8K/17
불설사제경(佛說四諦經) http://cafe.daum.net/bd-dm/Gg8K/50
책상은 괴로워하지 않는다. [고성제] [5취온苦] [일체(5취온)개고] http://cafe.daum.net/bd-dm/Gg8K/24
중아함 30) 상적유경 : 4성제, 5취온, 4대, 18계, [염오...해탈지견],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http://cafe.daum.net/bd-dm/APsK/24
중아함 162) 분별 육계경(分別 六界經) : 6계취(界聚) 6촉처(觸處) 18의행(意行) 4주처(住處) http://cafe.daum.net/bd-dm/Gg8K/25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
http://cafe.daum.net/bd-dm/AHxr/19지금 여기에서 당장 현실적으로 적용가능한 4성제[12연기]로 재정립해야... http://cafe.daum.net/bd-dm/ALiV/79
이 한길 몸뚱이[5온] 안에(로히땃사 경, Rohitassa Sutta, S.i.62) http://cafe.daum.net/bd-dm/JPlw/47
잡아함경 1307. 적마경(赤馬經) : 세간(세상, 5취온), 4성제 http://cafe.daum.net/bd-dm/GM7Y/8
붓다의 견해는 무아견이고, 정견(여실지견)이고, 중도고, 연기법이다. http://cafe.daum.net/bd-dm/Qo7Z/4
정견(正見)이 먼저 정립되어야...[사견(邪見)이 괴로움의 원인!] http://cafe.daum.net/bd-dm/BGji/257
무명경(無明經) : 5수음(受陰)[5취온], 12연기 http://cafe.daum.net/bd-dm/AHnF/109
노경(蘆經), 갈대묶음경 : 식과 명색은 상호 의존 http://cafe.daum.net/bd-dm/GM7Y/16
붓다는 단멸론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일체의 느낌이 다 사라져서 남음이 없느니라. http://cafe.daum.net/bd-dm/BGji/446
M063. 말룽끼야뿟따에 대한 작은 경(Cula-malunkya sutta)과 중아함 221) 전유경(箭喩經) : 10무기 http://cafe.daum.net/bd-dm/R2Wv/9
설명하지 않음[무기(無記)] 경(A7:51) : <5온무아>이기에 여래의 사후 존재에 대해 논할 가치조차도 없는 것이다! http://cafe.daum.net/bd-dm/QoB7/6
변형불교(북방불교, 남방불교 : 사실상 힌두교)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http://cafe.daum.net/bd-dm/JPlw/35
붓다의 무아견(여실지견, 정견, 중도, 연기법) : 자기 스스로 온갖 족쇄를 채워놓고 낑낑대는 어리석은 자들... ^^ http://cafe.daum.net/bd-dm/JPlw/37
사후윤회는 없다고 하면 단멸론(단견)자로 몰아부치는 어리석은 유아론(상견)자 http://cafe.daum.net/bd-dm/JPlw/33
[중도연기법] 가전연경(迦旃延經) http://cafe.daum.net/bd-dm/BQ8r/34
잡아함경 제 12권《289. 무문경(無聞經)》http://cafe.daum.net/bd-dm/AHnF/106
잡아함 105. 선니경(仙尼經) : 단견(斷見), 상견(常見), 무아견(중도, 연기법) http://cafe.daum.net/bd-dm/GM7Y/17
잡아함 961. 유아경(有我經) : 상견, 단견, 무아견, 연기법, 4성제 http://cafe.daum.net/bd-dm/GM7Y/58
잡아함 153. 불이경(不二經) : 힌두사상(불이론 : 범아일여)[유아견(상견)] http://cafe.daum.net/bd-dm/JPlw/40
모단경(毛短經) : 유아견(5취온), 무상 고 무아, 해탈(지견) http://cafe.daum.net/bd-dm/GM7Y/62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 http://cafe.daum.net/bd-dm/BGji/219
M 38. 갈애의 부숨에 대한 큰 경[Mahātanhāsankhayasutta] [사띠 비구경] http://cafe.daum.net/bd-dm/Gg8K/39
중아함 201) 다제경( 帝經) [사띠 비구경] : 윤회, 상견, 12연기 http://cafe.daum.net/bd-dm/Gg8K/31
사후 단멸론자들 [DN 범망경] http://cafe.daum.net/bd-dm/GM7Y/74
인식은 자아인가[뽓타빠다경(D9)] [유아견(단견, 단멸론)] http://cafe.daum.net/bd-dm/GM7Y/81
잡아함 171. 아정단경(我正斷經) : [유아견(단견, 단멸론)] http://cafe.daum.net/bd-dm/JPlw/43
야마까경 : 무아견(중도, 정견, 연기법)을 유아견(단견, 단멸론)으로 이해한 경우 [불법을 바르게 알아야...] http://cafe.daum.net/bd-dm/GM7Y/84
잡아함 104. 염마경(焰摩經) : 붓다의 가르침은 무아견인데 단견(단멸론)으로 오해! [윤회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전을 이해할 수 있을까?] http://cafe.daum.net/bd-dm/GM7Y/59
대념처경(大念處經)[4념처(四念處)] http://cafe.daum.net/bd-dm/Gg8N/1
위빠사나 4념처 마음챙김 수행 [참고 : 사마타 수행] http://cafe.daum.net/bd-dm/Gg8N/10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아나파나사티 숫타)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http://cafe.daum.net/bd-dm/Gg8d/5
중아함 52, 53) 식경(食經) : 4념처가 있은 뒤에 곧 7각지를 갖추게 되고, 7각지가 있은 뒤에 곧 명과 해탈을 갖추게 된다 http://cafe.daum.net/bd-dm/Gg8K/45
7각지 http://cafe.daum.net/bd-dm/HYMv/5
5전경 http://cafe.daum.net/bd-dm/ALiV/15
불교에 나타난 힌두교의 윤회설 http://cafe.daum.net/bd-dm/Ffus/97
윤회하기를 바라는가, 윤회하지 않기를 바라는가? http://cafe.daum.net/bd-dm/QoB7/7
외도의 주장 경(전생론, 창조론, 무인론) : 10선계, ... 4성제, 12연기, 5취온, 8정도 http://cafe.daum.net/bd-dm/AHxb/15
[무아]와 [윤회]의 모순 논쟁에 대한 [붓다의 뗏목] 카페의 입장 http://cafe.daum.net/bd-dm/Fzc9/3
각묵스님[남방불교 입장]의 윤회에 대한 시각에 대한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1
김성철교수[북방불교 입장]의 윤회에 대한 시각에 대한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4
아비다르마(아비담마)의 왜곡 해석 http://cafe.daum.net/bd-dm/ALkM/56
남방 아비담마의 특징 / 비판 http://cafe.daum.net/bd-dm/ALkM/33
죽음과 재생연결식 / 비판 http://cafe.daum.net/bd-dm/ALkM/39
실천적 연기- 붓다다사 [3세양중인과, 재생연결식 비판!] http://cafe.daum.net/bd-dm/Fzc9/6
아트만(진아) 윤회와 무아(업력) 윤회는 사실상 같습니다! http://cafe.daum.net/bd-dm/Ffus/83
[업·윤회·전생]은 무엇인가 http://cafe.daum.net/bd-dm/ALiV/86
자신을 섬으로 경(S22.43, 自燈明經) 자등명법등명을 위해 오온을 관찰하라 http://cafe.daum.net/bd-dm/AHxP/39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4념처, 5취온] http://cafe.daum.net/bd-dm/APsK/13
칼라마경(Kaalaama Sutta) :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http://cafe.daum.net/bd-dm/APsK/23
* 붓다의 최후 법문 * http://cafe.daum.net/bd-dm/AM39/6
[양머리]를 걸어두고서 [개고기]를 팔지는 말아야 한다! http://cafe.daum.net/bd-dm/Fa4t/8
2,0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진짜불교[근본불교]를 새해부터는 깨우려 합니다! http://cafe.daum.net/bd-dm/JPlw/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