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는 생명, 황우석을 반박한다 - (1) 생명에 대한 이해와 오해, 그리고 반성“살인 성공”에 모두가 환호
생명 윤리 타락·권력의 눈먼 행보 심각.
복제 과학자들 ‘죽음의 잔치’ 해명해야
우리나라의 생명윤리는 더 물러설 곳이 없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 성공 자체를 넘어서, 그러한 행위가 환호와 찬사를 받는 우리 사회의 반생명적 분위기가 더욱 그러하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묻고자 한다. 황우석 박사로 상징되는 배아 살해의 현장을 보면서, 과연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지켜봐야만 하는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는 「생명의 존엄성」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교묘하고 광범위한 생명에의 도전과 위협이 상존한다. 그 하나가 바로 장밋빛으로 채색된 국가 경쟁력 강화의 기대와 엄청난 물질적 이익을 꿈구며 진행되고 있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이다.
가톨릭 교회는 배아가 하나의 온전한 인간 생명이라고 가르치며, 이 가르침은 종교적 신념에 국한되지 않는, 자연법에 따른 보편적 진리임을 잘 알고 있다. 「배아는 생명」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다수결 원칙의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국가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일부 권력자들과, 인간에 봉사하라고 신이 부여한 자신들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여론을 오도하는 일부 전문가들, 그리고 객관성을 확보하고 공명정대한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공기(公器)의 본분을 망각한 적지 않은 언론들에 의해 주도되는, 왜곡된 시각들에 의해 배아의 생명권이 박탈될 수는 없다.
교회는 인간의 천부적 생명권을 침해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타협할 의사가 없으며, 그 본성상 타협할 수도 없다.
금지된 신의 영역에로의 침입이 주는 매력은, 금단의 열매를 따라고 이브를 꼬드긴 뱀의 감언과 상통한다. 눈이 열려서 신과 같이 되리라는 달콤한 유혹은 미지의 것을 향한 과학자들의 엇나간, 맹목적인 호기심과 유사한 종류이다.
여기에 현대의 우상인 부와 명예에 대한 욕구가 결합됨으로써 이제 일부 과학자들은 질병 치료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실험실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세포 덩어리」들이 실제로는 「인간의 초기생명」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책과 불안감마저도 대담하게 떨쳐버릴 만큼 타락했다.
「윤리가 실종된 과학」,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는 국가 권력의 눈먼 행보는 우리 사회를 인간 복제의 천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게다가 복제된 인간 생명은 실험실 안에서 날카로운 메스에 해부되고 찢겨서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실험실 밖에서는 배아들의 죽음을 담보로 「노벨상」과 「바이오 코리아」의 잔치를 벌이려 한다.
생명을 죽여서 벌이는 이러한 잔치는 많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오해는 의도된 것이기에 더 이상 지속된다면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악의적인 조작이며, 이제는 오해를 야기한 이들의 해명을 필요로 한다.
그 오해의 첫머리에는 『인간 배아는 생명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차지한다. 백번 양보해, 배아가 인간이냐 아니냐의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면, 명확하게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그것을 해쳐서는 안된다. 종교가 질병 치료를 외면한다는 비난은 두 번째 오해이다. 배아줄기세포가 질병 치료의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이미 의학적 효용성이 입증된 또 다른 치료법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연구에 집착하는 것은 그 저의를 의심케한다.
그밖에도 남아 있는 많은 오해들은 이제 해명돼야 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을 하고 있는 일부 생명과학자들에게 이러한 오해들에 대해서 묻고자 한다. 특히 이러한 물음은 「국보급 과학자」로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인간 배아 복제 연구를 선도하는 상징으로서 황우석 박사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앞서 우리는 한국 천주교회가 지금까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얼마나 헌신적으로 임해왔는지를 깊이 반성할 것이다.
배아는 생명, 황우석을 반박한다 - (2) 진리와 합의 “생명은 합의 대상이 아니다”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신법
교회가 영원히 지켜할 진리
로마 유학 때의 일이다. 추석을 맞아 교포신자 집에 저녁을 초대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집주인이 「화투」를 꺼냈다. 그런데 고스톱을 하기도 전에 두 시간이나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고스톱 규정(?) 내지는 법칙에 대한 「합의」를 위한 토론이었다. 오랜 토론 끝에 결국 「합의」를 본 사람들만 고스톱에 참여했다.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교회는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특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진리는 교회가 2000년 동안 지켜온,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 나가야 할 진리중의 진리이다. 이 진리는 자연법, 곧 신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나아가 진리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치적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영역은 인간이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합의」의 영역이 아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인간 생명을 존엄하지 않다고 합의했다』고 해서 인간 생명이 존엄하지 않은 것도 아니요, 또 『인간 배아는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 따라서 배아를 조작, 실험, 복제할 수 있음을 합의했다』고 해서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이름난 생명공학자 몇몇이 우겨댄다고, 정부 권력으로 밀어붙인다고, 몇 사람이 짜고 합의한다고 해서 진리가 진리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오로지 진리 일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회단체들이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합의」만 이루어지면 주저함 없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합의는 실정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형법, 민법, 도로 교통법도 그때그때 필요성에 의해서 개정하기도 하고 아예 없애버리기도 한다.
몇몇의 합의로 국민을 우롱
그런데 문제는 ‘합의’를 ‘진리’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국민들 대다수의 의견을 모아 ‘합의’를 했다고 해도, 여론조사를 통해 의견이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고 해도 그건 단지 ‘합의’일 뿐이지 결코 ‘진리’는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다수결의 원칙’이다. 무조건 다수결의 원칙 내지는 대중의 선호도만 가지고 법, 정책을 결정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의 영역’과 ‘합의의 영역’을 분명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진리를 버리고 합의만을 따르게 되고, 그 합의가 진리인양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가끔 몇몇 정책 책임자들이나 과학자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특히 최근 황우석 박사의 ‘난치병 환자를 위한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이 그 사례다. 정부 부처와 황우석 박사 연구팀은 물론 언론까지 합세하여 마치 인간 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처럼 속이고 있다.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니라, 세포덩어리일 뿐이라고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그것이 마치 진리인양...
사실 인간 배아에 대해서는 생명공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합의할 사항도 아닐뿐더러 생명공학자들 간에도 전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과연 인간 생명의 영역이 그저 합의의 영역이란 말인가? 인간생명이 고스톱의 규정 따위와 동일시 될 수 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진리는 진리일 뿐
그들이 아무리 인간 배아가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라고 우겨도 인간배아는 인간생명일 뿐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는 없다. 따라서 진리는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는 그 누구와도 합의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로지 진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러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요한 18,37)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배아는 생명, 황우석을 반박한다 - (3) 편향된 언론보도난치병 정복된 듯 찬양 일변도
황우석 박사의 일방적 견해 과도하게 대변
생명윤리·기술적 위험성 지적 비판 소홀
『생명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황우석 또 세계를 놀래키다』 『줄기세포혁명에 힘 실어줘야』 『난치병 치료에 새 장 열어』 『神의 손 황우석, 질병 고통에서 인간 해방』 『神의 기술을 복제하기까지…』 『神 기술 도전하는 황금 트리오』 『세계 의학계 「노벨상감」』….
지난 5월 20일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국내 신문지면에 도배된 관련 기사들의 제목이다.
흡사 당장 내일이라도 인류의 모든 난치병과 불치병들이 정복되기라도 하는 양 일제히 국내언론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에 입을 모아 찬탄을 금지 못했다. 수 년 동안에 걸쳐 그렇게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배아 복제 연구가 지닌 또 다른 측면, 즉 윤리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이러한 열광적 보도 태도에 대해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6월 4일자로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해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복제에 처음 성공했을 때 쏟아져 나왔던 찬반양론 가운데 생명윤리와 기술적 위험성을 문제 삼았던 정도의 비판이나 문제 제기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의아해했다.
1997년 10월부터 2003년 4월까지 「배아 복제」를 다룬 신문기사 분석을 시도한 한 논문에서는, 9개 중앙 일간지가 보도한 674개의 관련 기사를 분석하고 국내 언론의 보도가 △과학기술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논쟁의 마당을 제공하지 못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공익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은 국내 신문이 배아 복제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유명 과학자의 일방적 견해를 과도하게 대변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봉쇄하고, 특정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더욱 편향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다. 특히 2004년 2월 황우석 박사의 첫 번째 배아줄기세포 연구 결과 발표에 이어, 지난 5월 20일 두 번째 연구 결과 발표 보도에 이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의 편향된 보도 방향을 드러내고 있다.
5월 20일부터 6월 13일까지, 한국언론재단의 종합뉴스검색서비스(www.kinds.or.kr)에서 검색한 바에 의하면, 경향 국민 내일 동아 문화 서울 세계 조선 한겨레 한국 등 총 9개 일간지 기사 중 제목 및 내용에 「배아 복제」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는 모두 193개. 하지만 이 중에서 생명윤리 측면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기사는 32개로 전체 기사의 16.5%에 불과했다.
나머지 161개 기사들이 보여주는 시각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난치병 환자 치료를 위한 획기적 방법이고, 미래 경제 발전에 있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첨단 산업이며, 그 전제는 『배아는 단순한 세포덩어리』이다. 따라서, 이를 반대하는 일부 종교 세력들은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과학의 정당한 발전을 가로막는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러한 보도 방향이 보여준 효과는 막강했다. 「국보급 과학자」 황우석 박사는 이미 충분히 공급받고 있던 정부로부터의 더욱 막대한 지원을 거리낌 없이 받을 수 있게 됐고, 민간 부문으로부터의 각종 혜택과 지원을 입맛대로 고를 정도가 됐다.
국민들의 지지와 찬양은 「난세의 영웅」을 만난 듯했고 그에 반대하는 세력은 누구가 되든 네티즌들의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됐다. 황우석 교수 연구진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난치, 불치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간절한 심정을 십분 활용해 효과적으로 연구 성과를 과대포장하고, 이렇게 포장된 연구 성과는 언론을 통해 더욱 확대됐다. 이제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 배아 연구가 질병 치료의 유일한 대안인가 하는 물음은 「발목 잡기」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의견은 이해 관계와 신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아직 법적 이념적 입장 정리가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논쟁은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안이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이 배아 복제에 대해 알게 되는 거의 모든 것은 언론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인간 배아 복제」라는 주제가 일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이웃 간의 논의가 활발할 수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언론의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배아 복제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가치 판단 역시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즉, 보도의 방향에 따라서 독자나 시청자들은 배아 복제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하는 경향을 띤다.
결국, 언론에서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찬양일변도로 보도할 때, 수용자들은 배아 복제 연구를 지지하는 경향을 갖게 되고, 반대로, 연구의 비윤리적 측면이 강조될 때에는 연구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황우석 박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많은 범국민적인 지지는 언론의 기여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회복할 때, 문제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여기에서도 언론의 역할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배아는 생명, 황우석을 반박한다 - (4) 종교 대 과학참된 과학자라면 생명 진영에 서야
생명 vs 반생명 대결 구도 접어 들어
"배아연구 반대” 국민 목소리 제대로 반영 되지 않아
황박사, 10년 후로 미루지 말고 지금 토론에 응해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황우석 박사와의 만남에 대해, 일부 언론은 「통과의례」, 혹은 「정면돌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줄기세포 연구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는 생명윤리 논쟁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평소 황 교수의 의지가 반영된 만남이었다. 황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와 관련된 윤리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헤럴드 경제, 6월 16일자)
이번 만남은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관심과 약속,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의 촉발, 과학과 의학 기술에 있어서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 합의 등 긍정적 측면에 그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칫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크게 한 가지 잘못된 전제와 한 가지 착각이 존재한다. 잘못된 전제는,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종교 vs 과학」의 대결구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종교가 교리를 바탕으로 정당한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발목 잡는」 행위이며, 이는 극단적인 종교 대 과학의 갈등이라고 간주하려는 사고방식이다.
과학은 종교와의 대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며, 항상 「정면돌파」를 해온 황 박사의 「과학」은 종교 지도자를 만나 「난관」에 대처함으로써 「통과의례」를 거친다는 식이다. 그래서 과학은 「통과의례」를 「통과」했고,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렇게 상황 판단을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종교 vs 과학 - 잘못된 전제』
첫 번째, 잘못된 전제인 「종교 vs 과학」의 구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며, 오히려 황 박사 연구팀의, 그 연구를 지지하거나 심정적 동의를 보내거나, 또는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없이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는 일부의 의도된 연출에 불과하다.
일반적 선입견과 달리 종교는, 특히 가톨릭교회는 과학을 배척하지 않는다. 교회가 반과학적이라고 비난할 때 자주 인용되는 갈릴레오 사건 역시 그것이 과학에 대한 종교의 유일한 입장은 아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이 잘못이었을 때 교회는 과학에 용서를 청했다. 바티칸에는 천문대가 있고, 자연과학학술원도 있으며, 암흑기라 불리운 중세에 서구 과학의 온갖 발명품들은 수도원에서 나왔다.
그래서 종교가 과학의 적이라는 선입견은 본래가 잘못이다. 특히 배아 복제 연구와 관련해서, 종교 대 과학의 대결구도를 거론할 수 있는 것은 2가지가 충족될 때이다. 하나는 종교만이 배아 연구의 유일한 반대자일 때이다. 또 하나는 과학이 모두 함께 입을 모아 배아 연구를 찬양할 때이다.
하지만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종교, 특히 가톨릭만이 아니다. 반대자는 오히려 과학 안에서 조차 존재한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위한 최소한의 여건조차 없었기에 아직까지 그 목소리가 제대로 울림을 갖지 못했다.
이를 증명하듯, 정대주교와 황 박사의 만남 후 언론 보도나, 네티즌의 답글들에서는 황박사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찬사, 그리고 교회에 대한 비난 일색의 분위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문제이다. 오히려 더 많은 과학자들은 생명이 수정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종교 vs 과학」의 대결 구도는 배아 복제 연구자와 그 지지자들이 종교에 편협성과 집단주의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이념적 전술이며, 수사적 전략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 일반을 종교 및 종교인들과 대치시키려는 의도를 다분히 갖고 있다.
『이제 토론을 시작하자』
두 번째, 황우석 박사가 「통과 의례」를 「통과」했다고 혹시라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이번 만남은 그 자체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달라는 「요청」이고 「촉구」이며, 나아가 그 본질상 「경고」에 속한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입장의 변화는 없다. 우선 정대주교의 입장은, 만남 직전 강론 자료를 통해 지적했듯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중단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힘쓰라』는 것이다. 교황청과 한국주교회의가 천명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가톨릭의 기본 입장이다.
황박사의 입장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겠다』는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배아 복제 연구를 접겠다』는 발언은 결국 『명확하게 성체줄기세포가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지 못하면 배아 복제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객관적 비교가 가능할 만큼 연구가 진행된 뒤라면, 이미 『접겠다』는 약속은 무의미하다. 할 만큼 다했는데 뭘 접겠다는 것인가. 이 허망한 약속은 10년 뒤에도 논란이 계속되면 여생 동안 책임지겠다는 말이나, 한국생명윤리학회의 공개토론 요구에 10년 후쯤 논쟁에 나서서 답변을 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적어도 10년은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다. 윤리문제에 대한 진지함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기본 입장을 재차 확인하되, 앞으로 대화를 통해서 본격적인 윤리 논쟁을 시작하자는 것이 바로 이번 만남의 궁극적인 취지이며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논쟁에는 가톨릭 뿐만 아니라 지금껏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과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함께 할 것이다.
「생명 vs 반생명」
가톨릭이 배아 복제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교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종교적 계명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과 자연법적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편협한 교리적 입장」에 그치지 않으며, 건전한 시민사회와 뜻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제는 「종교 vs 과학」이 아니라, 「생명 vs 반생명」의 대결 구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참된 과학이라면 생명의 진영에 서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10년 뒤가 아니라 지금, 진지하게 토론에 응해야 한다.
배아는 생명, 황우석을 반박한다 - (5) 가톨릭교회는 난치병 환자를 외면하는가?치유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소명
'외면’이 아니라 누구보다 치유 위해 노력
생명 죽이는 배아복제 연구만은 용납못해
배아 복제 연구자들에 의해 조장되는 또 한 가지 오해가 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이들은 난치병 환자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배아 복제 연구를 지지하는 이들 중에 상당수가 바로 이러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가톨릭교회를 비난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교회가 가장 당혹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가톨릭교회가 생명이 촌각에 달려 있는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가? 그것은 생명을 구하려는 숭고한 인술이 아닌가?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들이 난치병에 걸려 있다면 과연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얼핏 이런 입장은 반박할 여지가 없을 만큼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 천주교회가 배아줄기세포 연구 반대 입장을 강력하게 표명하면서도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우려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 수호라는 원칙에 따라 생명으로서의 배아를 실험실의 희생양으로 삼는데 대해서 반대하면서도, 그것이 혹여 국민들로부터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성명서를 비롯해, 교회에서의 여러 입장 표명의 자리에서 『가톨릭교회는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한다고 하여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오해, 심지어는 배아 복제 연구자들과 그 지지자들이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이러한 왜곡된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사심 없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교회가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교회가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난치병 환자들을 외면할 것인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삶을 본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따르기를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예형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해주는 「치유자」이다. 예수님이 행한 수많은 기적들 중에는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하고, 눈먼 사람이 눈을 뜨게 해주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치유의 기적이 가장 많다.
예수를 따르는 교회는 그래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는 일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실천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전세계에 수많은 병원과 의과학 연구원들을 운영하면서 질병 퇴치를 위해 애쓰고 있다.
교회는 특히 병자들 중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가톨릭교회가 아닌 다른 어디로부터 그렇게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아왔던가.
거리에서 질병으로 숨져가는 부랑자들을, 마치 그리스도처럼 모시고 섬김으로써 참 사랑을 보여준 마더 데레사 수녀도 교회의 사람이었다. 가까이 하기도, 쳐다보기도 꺼려하던 나환자들을 위해 거처를 마련하고 병원을 세운 라자로 마을도 교회 사람의 일이었다.
도무지, 교회가 질병의 고통을 외면할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배아 복제 연구자들이 아직 변변한 성과 한 가지 없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강변하는 동안, 굵직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곳도 가톨릭대학교를 비롯한, 교회가 운영하는 연구소와 병원들이다. 교회는 난치별,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제외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도대체 배아 복제 연구자들이 난치병 환자, 불치병 환자들을 위해서 한 일이 무엇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교회가 일할 때, 그들은 실험실에서 수많은 인간 생명, 배아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말한다.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단순한 세포덩어리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이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전제들을 왜곡하고 있다. 배아를 왜 생명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그리고, 난치병, 불치병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배아줄기세포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가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는 악의적인 편견을 조장하는 이들은, 배아가 생명이 아니며, 배아줄기세포가 유일한 질병 치료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잘못된 전제는 모순된 결론을 이끌어낸다. 더욱이 그러한 주장 안에, 사실을 왜곡하려는 의도가 게재돼 있다면 그로부터 내려진 결론은 악의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는 결코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오히려 교회는 환자들의 치유를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하고 있다』라는,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명백한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다만 교회는 오직 배아줄기세포 연구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난치병 환자들의 유일한 희망이 아니다.
한동안 폭풍처럼 밀려왔던 파고를 저지하려는, 생명윤리에 대한 일련의 재성찰의 목소리들이 조금씩 나타나긴 하지만, 「황우석 쓰나미」의 위력은 여전하다. 이는 초반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전폭적인 뒷받침 하에 여론몰이에 있어서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던 복제 연구자들의 위세가 워낙에 거셌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배아 복제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서 언론이든 여론이든 최소한의 문제제기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계의 배아줄기세포 반대에 대해서 『쓸데없는 딴죽』으로 매도하는 언론과 여론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소간의 위안을 삼을 만은 하다.
문제는 이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한 방향으로만 무한정 쏠려가던 의견들의 향방이 이제는 서로 부대끼기 시작한 만큼, 이제부터는 좀 더 진지하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종교계 뿐만 아니라, 건전한 의식과 과학정신을 지닌 시민들과 그 단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배아줄기세포 반대 진영과 여전히 배아복제연구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학자들과 산업계, 정부 정책 당국자들 모두에게 공히 요구된다.
이제는 여론몰이나 언론플레이, 혹은 구호나 성명서가 아니라 과학과 윤리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학문적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이 토론은 더 이상 회피할 수도 없고 회피해서도 안된다. 상대를 기만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지금까지의 논쟁만으로도 찬반의 진영은 서로 전혀 물러설 뜻이 없음이 충분히 증명됐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토론의 시작을 위해서
올바른 토론을 위해서는 먼저 성실한 자세가 요구된다. 서로의 시각차가 존재할 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토론에 진지하고 전폭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임할 것과 피할 것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사안별로 진퇴를 거듭해서는 안된다.
둘째, 투명해야 한다. 인간 생명이라는 숭고한 문제를 담고 있는 이 사안은 결코 얄팍한 전술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종교인이든, 시민이든, 과학자든, 혹은 정부든, 상대를 기만하거나 물밑 작업으로 토론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된다.
셋째, 원칙에 충실하되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물론 원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인간 생명은 존엄하다』라든가, 『과학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변함없는 원칙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인간 생명인가, 생명의 존엄성은 어떻게 수호해야 하는가, 혹은 과학 발전은 제한이 없는가 등의 문제는 논의의 진행에 영향을 받는, 가변적인 입장들이다.
넷째,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떠나 공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명예나 돈, 권위나 명분 등을 막론하고, 이해관계에서 철저히 떠나야 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답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볼 때, 앞으로 논의의 향방은 자명하다. 어떤 자리가 됐든 토론에 임해야 한다. 토론, 때로는 격론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과정이 결여된다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좀 더 노골적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황우석 박사 연구진은 가장 먼저 생명윤리학회의 12개항의 질의에 답해야 한다. 『만날 용의가 있지만 토론 형식이 아니라 강연 형태가 돼야 한다』는 식의 면피성 발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자신의 연구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토론에 나설 일이다. 어찌 토론이 『소모적』일까?
정부의 이 사안에 대한 솔직하고 공정한 입장 표명과 그간의 경과에 대한 투명한 공개도 필요하다. 그간의 정부 정책 추진은 수많은 의혹을 야기해왔다. 생명윤리법 입법 과정에서 애당초의 법 제정 방향이 슬그머니 후퇴한 이유에서부터 시작해서, 극히 일부 생명과학자들에게 정부 지원이 과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지적될 만큼 과도하게 이뤄진 배경, 배아 복제 연구 계획에 대한 정당한 심의 과정 여부 등등 장막에 가려진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투명한 배경 속에서는 토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배우고 익혀서 토론에 참여하자
답해야 하는 것은 배아 복제 연구 반대자 측도 마찬가지이다.
침묵하고 있던 과학자와 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이 토론에 앞장서야 한다. 주교회의의 성명이나 극소수 교회 지도층의 산발적인 의견 표시에 그쳐서는 안된다.
수많은 신자 과학자와 의사들, 건전한 시민 의식을 지닌 선의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모두 나서서 토론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과학적인 지식이 모자라고, 교회의 가르침이 낮설다면, 배우고 익혀서 토론에 나서야 한다.
앞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정당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각종 세미나, 심포지엄, 공청회 등이 속속 마련될 것이다. 아직 계획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분주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배아 복제, 성찰 목소리 높다;정대주교-황우석 박사 만남후 생명윤리 관심 촉발“공개토론 등 윤리적 문제 논의 자리 마련돼야”
일방적인 열광으로 일관됐던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본격적인 윤리적 성찰과 학문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 찬사 일변도의 보도를 해왔던 언론과 과학적 전문성을 지닌 시민사회 단체와 학계에서도 본격적인 문제제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황우석 박사의 만남 이후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대안으로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황우석 교수 등 배아줄기세포 연구자들이 과학 및 생명윤리에 대한 다양한 토론의 자리에 적극 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대주교는 6월 15일 오후 서울 명동 주교관 집무실에서 황우석 박사를 비공개로 만나 줄기세포 연구 및 그와 관련된 제반 문제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눴다. 정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복제 배아 역시 하나의 인간 생명이므로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교회의 기본 입장임을 밝혔다.
이날 만남에 배석한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허영엽 신부는 『과학 연구에 있어서의 생명 존중이라는 큰 틀에는 이견이 없었다』며 『이번 만남이 「대화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계속해서 서로 대화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계에서는 천주교 외에 개신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이미 지난 5월 27일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비윤리적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한국생명윤리학회는 지난해에 제기한 12개 항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고 공개토론을 가질 것을 요구하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편 언론에서도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17일, 기고문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 결과에 나라 전체가 집단 흥분 상태」라며, 정부와 언론 모두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 없이 「영웅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6월 16일 사설에서 정대주교와 황우석 박사의 만남을 거론, 「잊고 지낸 생명윤리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같은 날 칼럼 「황우석 담론 활발해져야」에서 배아복제기술이 「인류복지에 기여할지, 뜻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로 연결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천주교 주교회의와 정대주교의 생명윤리 담론은 매우 중요한 시각을 제시, 배아복제 반대와 함께 복제배아도 생명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은 한국 언론의 「황우석 스타만들기」를 비판한 시민과학센터의 김명진 운영위원의 글을 보도하면서 「한국 언론, 황우석 쓰나미에 좌초」라는 제목으로 신랄한 비판의 시각을 보였다.
황우석 배아연구, 해명 없는 의문들난자 채취 의혹에 묵묵부답 일관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심사도 거치지 않고
공개토론 요구 1년 넘도록 응할 조짐 없어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 듯하던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비판과 여전히 남은 의문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다시금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초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개 세미나를 통해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비윤리성과 이를 허용한 법률의 반생명성을 비판한데 이어 21일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배아줄기세포 연구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한마디로 배아는 생명이며 이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인 행위이므로 금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문제 제기는 생명윤리적 차원의 원칙 외에도,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안고 있는 절차상의 문제와 규정 위배, 왜곡이나 거짓말의 의혹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서는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발언을 자제하며, 이에 대한 해명에 나서지 않고 있어 의혹을 더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지적되고 있는 것은 절차상의 문제로서, 실험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 문제이다.
지난 8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2004년 연구에 사용된 16명의 여성이 제공한 242개의 난자, 그리고 2005년에 사용된 13명의 185개 난자의 출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되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난자 채취에 기증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발적으로 동의했는지가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학생, 연구원, 환자 가족, 친척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지 않는 것이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황교수의 연구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또한 황교수팀의 연구는 국내의 어떤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심사도 거치지 않아 절차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즉, 소속기관인 서울대에는 IRB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난자를 채취한 한양대의 IRB도 국가인권위원회의 회의록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의문들은 이미 지난 6월 황교수를 겨냥해 난자 출처, 난자 채취 절차의 적법성, 연구비 출처 등 모두 12개항의 공개 질의서를 발표하면서, 토론에 나서라고 촉구한 내용들이다. 더욱이 이는 그 이전 1년 전인 2004년 5월 발표한 질의서를 그대로 재판한 것이다. 생명윤리학회는 이 질의서에서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와 적법성, 한양대 IRB 심사 및 승인의 적절성, 연구비의 출처 등 4가지 총 12개 문항에 걸쳐 질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1년반이 되도록 황우석 교수 연구팀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으며, 공개 토론의 장에도 참여할 의사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 난자채취의 윤리적 문제 해명해야한국생명윤리학회 의혹제기에도 묵묵부답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의 난자 채취 과정의 윤리적 문제 등 황우석 교수 연구진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의혹들이 이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서 해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황교수 연구에 합류할 예정이었던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새롭게 불거진 난자 채취 과정의 윤리적 문제는 사실 이번에 새롭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6월 한국생명윤리학회는 황우석 교수를 겨냥해 12개항의 공개 질의서를 발표했는데 그중 가장 먼저 지적되는 절차상의 문제가 바로 난자의 출처와 난자 채취 절차의 적법성, 연구비 출처 문제이다. 특히 이 질의는 지난해 5월 발표한 질의서에 대한 해명을 재차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황교수 연구진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계속 회피해왔고, 공개 토론의 장에도 참여할 의사를 보여주지 않은 채 다만 “적절한 시기가 되면 밝히겠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이동익 신부(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는 “황우석 교수팀이 정부가 제시한 기준과 법을 충실히 따랐다고 말한다면 이는 ‘눈가리고 아웅’”이라며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 황교수 자신이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교훈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학계에서 판단할 때 황교수는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한국생명윤리학회에서 낸 공개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재차 촉구한다”고 말했다. 진교수는 또 “국가윤리위원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조치를 재차 촉구했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측의 적절한 대처와 조사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