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성당 (Notre Dame de Paris)
노트르담으로 간단하게 알고 있는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파리 서쪽에 있는 Île de la Cité 섬에 있는 고딕 대성당이다. 이곳은 천주교 대성당으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파리의 대주교의 자리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넓게 프랑스 고딕 건축술의 정밀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은 비올레 르 뒤크(Viollet-le-Duc)란 프랑스의 가장 고명한 건축가의 한명에 의해 보수되어 보존되고 있다. 노트르담이란 말은 프랑스 말로 "우리들의 귀부인:"이란 뜻으로 카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노트르담 성당은 첫번째 고딕 대성당이고, 고딕양식 건축에 새로운 한획이었다. 보면 성당의 조각품들과 착색유리들은 이른 로마네스크식 건축술에서 결여되고 있던 세속적인 느낌을 주는 자연주의의 무거운 영향을 보여준다.
성당은 부벽과 주건물을 연결한 벽받이를 사용한 세계에 첫 번째 건물들 중 하나이다. 건물은 처음에는 성가대와 교회당 중앙의 회중석 부분 주변에 벽받이를 포함하기 위해서 설계되어지지 않았다. 건축이 시작되어서는 고딕건물들이 더욱 얇은 벽이 대중화되고 이었고 더 높게 올라갔다. 그래서 후에 벽이 바깥쪽에서 밀었을 때 균열이 생길 위험을 알고, 자연적으로 건축가는 외부 벽의 주위에 이를 받쳐줄 것을 만들었고, 다른 추가적인 것들도 이런식으로 지어졌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동안에 대성당의 많은 장식품들과 조각상이 파괴되고 노략질 되었다.
Judea 왕(프랑스의 못된 왕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의 동상까지 참수되었다. 1977년 머리의 많은 부분들이 근처에서 발굴되어 국립중세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오직 거대한 종만 용해되어 사라졌다. 대성당은 이유의 숭배 그리고 최고 존재의 숭배에 첫번째로 바쳐졌다. 교회 내부는 마초와 음식의 저장을 위해 창고로 사용되었다.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본 모습 노트르담 성당 부벽고 주건물을 이어주는 벽받이
만들어진 과정
↑노트르담 성당 정면 아래부분
1160년, 파리안에 교회가 "유럽의 왕의 본당 교회가" 되었었기 때문에, 대주교 모리스 드 쉴리는 현재파리에 있는 대성당들이 고상하고 가치없는 것들로 보여졌다. 그리고 이것들이 파괴되자 그는 대주교의 직함을 잃었다고한다., 전설에 따르면, 모리스 드 쉴리는 파리를 위해 영광스럽은 새로운 대성당의 시각이, 원래 교회의 외관이 더럽다고 그렸다. 건축을 시작하기 위해서, 주교는 폭파된 몇 집이 있고 새로운 도로를 새로운 교회를 위해 물자를 수송하기 위하여 건축해 달라고 했다.
1163년건축이 시작되고 , 루이 12세가 통치하던 동안, 모리스 드 쉴리 또는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성당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의견이 있다. 둘다 어떤것이 진실인지 알수는 없지만
모리스 드 쉴리는 그의 인생과 부를 대성당의 건축에 거의 대부분을 바쳤다.
교회당 중앙의 회중석 부분이 다 지어지기 전 , 약 1200년쯤에 서쪽정면에 특유의 두개의 타워가 일반적인 건축물 양식과는 반대로 건축되었다.
뚜렷이 다른 생김새와 높이를 가진 타워가 건축되는 동안 셀수없이 맣은 건축가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였다. 1210년과1220년사이에,네번째 건축가는 장?慊ː? 함께 탑아래에 중대한 강당을 우연히 목격했다. 탑은1245년쯤에 완료되고, 대성당은1345년쯤에 완료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의 야간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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Île de la Cité 섬위에 노트르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