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로 구성된 강남 모자이크 극단
찜통 더위에도 하루 대여섯 시간씩 노래하고 춤추는 주부들이 있다. 이달 18~19일 공연을 앞두고 거듭되는 연습에도 지친 기색 없는 이들은 바로 '강남 모자이크 극단' 단원들이다.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단원들을 만나 그들의 연극 열정을 엿봤다.
- 공연 연습을 위해 강남구민회관 공연장에 모인 강남 모자이크 극단 단원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옥순, 박찬열, 서금희, 조선옥, 조혜선, 이원경, 박영희, 김경남, 김광희, 최수진, 신종희씨.
지난 8일 강남구 대치동의 강남구민회관 강당에서는 '제제'와 '밍기뉴' 등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 들려왔다. 배우와 스태프 10여 명이 J.M.바스콘셀로스의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각색한 뮤지컬 연습에 한창이었던 것.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배우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고 강당은 그들의 열연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공연을 코앞에 두고 있는 '강남 모자이크 극단'(이하 모자이크) 단원들의 총연습 현장이다.
"오는 18~19일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리는 목요상설무대에 올릴 뮤지컬을 위해 막바지 연습 중입니다. 모자이크의 제23회 정기공연이기도 하죠. 조각들을 이어붙여 멋진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듯, 단원들 마음을 한데 모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조혜선(49) 모자이크 대표의 말이다. 모자이크는 1996년 강남구청에서 구민들을 위해 마련한 문화예술강좌인 '유인촌 연극교실'에서 만난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조 대표는 "당시 연극에 열정을 가진 주부 7명이 1997년 7월 첫 공연을 올리면서 아마추어극단으로 첫발을 내디뎠다"며 "17년 동안 22회의 정기공연을 통해 창작극, 고전해학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단원은 모두 20명. 지나온 세월을 반영한 듯 단원들의 연령대는 40대 초반에서 70대로 다소 높은 편이다. KBS 예능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에서 '청춘합창단'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박찬열(74)씨는 "50대에 극단에 입단했는데 어느새 70대가 됐다"며 "모자이크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는 거의 서너 달 동안의 연습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이번 뮤지컬 또한 3월, 작품 선정에서부터 대본을 읽는 리딩 작업을 통해 배우들의 캐스팅 작업까지 이뤄졌다. 저마다 배역이 정해지고 그에 맞는 노래와 안무까지 익히다 보니 어느새 막을 올릴 시간이 되었단다. 단원 김광희(46)씨는 "개인적으로 이번이 여섯 번째 작품인데 뮤지컬은 처음"이라며 "노래와 안무를 겸하기가 힘들었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또 하나를 이뤘다는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주인공 제제 역을 맡은 최수진(43)씨는 이 작품을 위해 늘 고집해왔던 긴 생머리를 자르고 금발로 탈색까지 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번이 첫 무대인 새내기 단원 신종휘(48)씨는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달성하고 싶은 목표 리스트) 중 하나였다"며 "꿈은 이뤘지만 개성이 너무 강한 역이라 공연날 가족들이 놀랄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모자이크는 작품이 정해지면 전문 연극 단체를 섭외해 연출과 무대감독 등을 의뢰한다. 이번 연극의 연출과 각색을 맡은 정선경(40·극단 기꺼이 홀리시어터 상임연출)씨는 "기존 배우들과 견주어 열정만큼은 전혀 뒤지지 않는 분들"이라며 "캐릭터 분석이나 연극에 임하는 자세 또한 프로 수준에 가까운 노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강남구민회관 목요상설무대 10년 넘게 서와
모자이크는 창단한 뒤 해마다 정기공연을 가졌다. 2000년 제4회 전국주부연극제에서는 '아름다운 사인(死因)'으로 작품 부문 금상과 우수연기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무대 안팎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단원들의 열정과 팀워크 덕분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무료 문화프로그램인 강남구의 목요상설무대는 모자이크로서는 친정과 같은 무대다. 단원들은 2001년부터 줄곧 목요상설무대에 서왔으며 초창기에는 직접 티켓을 배부하고 객석 청소도 하는 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단다. 단원 김경남(48)씨는 "2008년 모자이크가 목요상설무대에 올렸던 '한여름밤의 꿈'이란 연극을 객석에서 보다가 '아,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지난해에 그 꿈을 이뤘다"며 "엄마나 아내로서만 살아오다가 내 이름을 찾아 연극배우 김경남으로 서니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 때마다 가족들의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창단 멤버 조선옥(59)씨는 "오로지 엄마 또는 아내로 성실하게 살았음을 가족들이 더 잘 알기에 큰 응원을 보내준다"며 "공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외조에 앞장서는 남편이나 '우리 엄마 최고'라며 힘을 북돋워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단원들 모두 가슴 벅차하며 무대에 오른다"고 설명했다. 모자이크는 주부 배우로 넘치는 끼를 발휘하고 싶은 신입 단원들을 기다린다. 다만 단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강남에 사는 45세 이하의 전업주부라는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단원들은 "웃음과 감동이 함께 하는 작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통해 올여름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보기를 바란다"며 말을 마쳤다. 무료 공연인 이번 뮤지컬은 18일 강남구민회관 목요상설무대뿐 아니라 1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2회 공연(오후 4시, 7시 30분)을 더 한다. 문의 (02)6712-0534 cafe.daum.net/esckhjm